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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사탄숭배의 상징
카톨릭의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화상에 대한 교리가 확정되었다.
성화상 타파에 나섰던 이들은 징계가 결정 되었고,
십자가 형상에 대한 공경을 명문화 하였다.
② 제 2차 니체아 공의회(787년, 제 7차 공의회).
성화상(聖畵像) 논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여황제 이레네(Irene)가 소집하였다.
교황 하드리아노(Hadrianus) 1세는 여왕의 공의회 초대에 대하여 성화상 파괴에 대한
히에리아 교회회의(753년)의 결정을 파기하는 조건으로 두명의 사절을 파견하였다.
그러나 성화상 파괴주의자인 군인들의 폭력(786년)으로 공의회는 예정대로 콘스탄티노플에서 열리지 못하고,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 타라시오(Tarasius)의 주제 하에 니체아에서 열렸다. 공의회는 교황의 서한대로 성화상 숭배에 대한 교리를 채택하여 성화상에 바쳐지는 공경은 그 본체로 돌아가므로 절대적인 흠숭은 신에게만 바쳐지는 반면, 성화상은 상대적인 사랑에 의해 공경되어진다고 부연하였다.
이 교리를 공포하는 교령에는 참석한 전원의 서명이 첨가되었으며, 성상파괴주의자들은 파문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천사 및 모든 성인의 화상도 십자가와 같이 가구, 의복, 벽, 책상, 거실 및 복도에 비치하고 드러낼 것이다. 왜냐하면 성상에 자주 접할수록 더욱 그 본체를 잘 상상할 수 있으며 그 거룩하신 분들을 표양으로 우러러보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에게 경의와 숭상의 생각을 함이 결코 하느님께만 바쳐야 할 흠숭을 행함은 아니다……성상에게 드리는 경의는 본체의 명예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것을 숭상함은 거기에 표현된 인격을 공경함이다. 교회의 전통을 파괴하려는 의도로 거룩한(전례) 용기나 존경해야 할 수도원을 모독하는 자들 중 주교나 신부는 직위해제 파면하고 수도자나 평신도들은 파문당할 것이다.
위의 글은 카톨릭의 교리를 정하는 공의회에서 성화상에 대한 결정문이다.
성화상중 가장 주된것은 십자가 상인데 카톨릭의 생각은 분명하다.
"성상에게 드리는 경의는 본체의 명예로 돌아가는 것이고, 이것을 숭상함은 거기에 표현된 인격을 공경함이다."
"인격을 공경함이다라함은 " "성상에게 드리는 경의는 본체의 명예로 돌아가는 것이고" 분명한것은 성상(십자가에대한 경의, 성인들에 대한 경의)에 드리는 경의가 본체의 명예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기독교 종교인들은 갖은 말로서 십자가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 하고 있는데 이는 개신교나 카톨릭이 한 가족이라는 것입니다.
개신교에서 하는 말이나 카톨릭에서 하는 말이나 똑 같은 말인것입니다.
개신교는 분명히 카톨릭에서 개혁을 해 나온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뿌리가 같다는 것에는 부정할수가 없을것이다.
아울러 카톨릭은 불교와 유사한 점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십자가=만자, 염주=묵주, 신부=스님, 수녀=비구니, 반복되는 주문, 온갖성상=12지상)
로마 카톨릭, 개신교,기독교(✝), 힌두교(卐),불교(卍)이들 종교는 같은 십자가를 소유하고 있으며, 십자가를 믿는 상징으로 내세우고 있다.
위의 예배당 십자가와 불교의 만자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불교의만자는 끝 부분에서 왼쪽으로 꺽어져 있을뿐입니다.
기독교와 불교가 같은 사상을 가졌거나 같은 신을 섬긴다고 볼수 밖에 없는것이 아니겠는지요.
우리들이 죄에서 구원을 받음에는 우리들의 어떠한 행위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뒤에는 분명히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라면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무엇을 기뻐하시고 싫어 하시는지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 구원을 받은 성도라면 사탄의 올무가 무엇인지 분별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무엇에 대한 믿음인지.
십자가는 무엇인지.
크리스마스는 무엇인지.
크리스마스 트리는 무엇인지.
회개는 무엇인지.
고해성사는 무엇인지.
등등.....
출애굽기 20장 4절
4 "너는 너를 위하여 어떤 새긴 형상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모습이든지 만들지 말며"
주 예슈아님께서는 세상의 어떠한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십자가라는 형상을 교회라고 하는 예배당의 가장 높은 곳에 설치하여 하나님의 교회라고 표시를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단지 예슈아님께서 피흘리시어 자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을뿐인데 말입니다.
십자가라고 한다면 나치의 철십자가, 불교의 만자, 성을 상징하는 앵크십자가등 수없이 많은 십자가들이 있습니다.
불교의 상징인 만자가 꺽어진 십자가인데, 불자들이 예수님께서 자신들의 죄를 대신하여 저주의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셨다는것을 믿고 있는 것일까요?
전혀 믿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십자가는 저주의 상징이고 사탄을 숭배하는 표시입니다.
이글은 (조성제의 무속이야기와 칼럼)에서 스크랩한글을 편집한것임.
십자가는 여자의 그것이다.
우리는 십자가를 보면 먼저 기독교를 생각하게 된다.
언제부터인지 십자가는 기독교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전유물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십자가가 기독교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기 때문이라 한다.
요즘은 십자가나 만자 모양으로 반지며 목걸이며 귀고리까지 만들어 크리스천이나 불교를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많이 착용하고 있다.
이렇게 십자가 모양의 장신구를 달고 다니는 이유는 은연중에 나쁜 악령으로부터 자신이 보호받고 싶다는 의식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의식과 행위는 무교의 부적과 같은 역할을 기대하는 것이라고 볼수 있다.
그러나 십자가는 예수 그리스도교나 석가모니가 출현하기 훨씬전에 고대민족 사이에서나 토속종교에서도 사용되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대 이집트인든 영생의 상징으로서 바퀴가 달신 십자가를 사용하였고, 그리스 신화에서는 태양의 신이라는 아폴론신이 십자형의 홀을 가지고 있으며, 게르만 신화에서는 토르라는 신이 십자 모양의 헤머를 가지고 있다. 또 바빌로니아인이나 칼데아인은 하늘의 신인 아누의 상징으로서 등변십자가(기독교 십자가)를 사용하였다.
그밖에 십자가는 고대 페르시아인, 페니카아인, 에트루리아인, 로마인, 갈리아 지방이나 브리타니아의 켈트족,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페루 등지의 원주민 사이에 널리 종교적 의의를 가지고 사용되어 왔다.
또 북교에서는 십자가의 끝을 구부려서 만자로 만들어 불교의 징표로 삼고 있다.
이 만자는 인도의 힌두교에서 먼저 사용하였다. 힌두교에서는 남성을 상징하는 오른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를 가네사라 하고, 여성을 상징하는 왼쪽 어깨가 올라간 갈고리형 십자가를 사우바스티카라고 부르며 이를 칼리라고 한다고 하니, 불교 역시 힌두교에서 이 만자를 가지고 왔다.
이러한 십자가 중 그리스 십자가, 즉 등변십자가인 지금 기독교 십자가는 우리 무교에서도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하여 왔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별로 없다.
심지어 무당들조차 자기네들이 십자가, 즉 열십자를 사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되다보니 십자가는 크리스천들에겐 성스러운 물건으로 절대적인 물체로 여겨지며 신주처럼 모셔지고 있다.
또한 가끔 영화에서 보면 악령과 싸울 때 십자가는 최고의 위력을 가진 무기가 되어 악령을 쫓아내곤한다.
이하생략....http://blog.daum.net/muam777/16141238
십자가의 유래.
http://kr.blog.yahoo.com/sou5004/1400.html?amp%3B
십자가 그 진실을 밝혀 보자.
http://pann.nate.com/talk/3249169
위에 링크된 곳에 들어가 보면 십자가에 대하여 참으로 잘 설명하여 놓았습니다.
현재의 기독교가 무엇을 숭배하고 있는지, 이제는 기록된 말씀으로 돌아가 분리되는 믿음을 가져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는 루시퍼를 하나님으로 섬기는 사탄숭배의 집단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은 자신이 지켜야 할것입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올리고 싶겠지만 하나님 자리에 앉아서 고맙게 영광을 취하는 사탄은 기뻐하고 있습니다.
오랜시간동안 차근차근 준비해온 것들이 열매를 맺었으니까 말입니다.
이글을 읽는 여러분들이 십자가에 대한 거부반응이 없이 친근하게 느껴진다면 자신의 영혼은 사탄과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이버 블러거 ISPRI69님의 글
십자가를 세우는 것이 성경적인가, 세우지 않는 것이 성경적인가?
밤중에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서 주위를 둘러보면 높이 솟아 붉은 네온사인을 발하는 십자가가 많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게 됩니다. 철탑을 높게 세우고 그 위에 십자가를 세워 밤이면 현란한 빛을 발하게 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드는데도 불구하고 수많은 교회들이 이를 아깝게 여기지 않고 십자가를 세우는 것은 십자가가 있어야만 정통 기독교라는 사상과 그 십자가 형상을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발원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옛날에는 서양 귀신인 드라큘라가 나타나면 십자가를 내밀어 쫓아낸다는 미신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십자가를 악귀를 쫓는 부적이나 호신용으로 생각하여 집안에 두거나 승용차 유리에 걸어두기도 하고, 목걸이나 귀걸이를 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십자가 숭배 행위가 과연 성경적인지, 비성경적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우상의 정의
- ‘우상’의 사전적 정의
① 나무·돌·쇠붙이·흙 따위로 만든 형상.
②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
- 우상의 성경적 정의
하나님만을 경배할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위해 만든 유·무형의 형상.
2. 우상은 만들지도 말고 숭배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후 시내산에서 반포하신 십계명 중 두 번째 계명으로 우상을 만들거나 숭배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출 20:4~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우상 숭배를 금지한 두 번째 계명은 하늘에 있는 형상, 땅에 있는 형상, 땅 아래 물속에 있는 형상 등 모든 형상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라는 말씀인데 카톨릭이나 개신교에서 자신들의 상징으로 여기는 십자가 또한 출애굽기 20:4~5에 명시한 우상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러한 우상들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 만물의 창조주로, 무한 광대의 우주를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니 이토록 위대하신 하나님을 피조물인 태양이나 달, 별, 동물, 식물 등으로 비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어떤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당부하신 것입니다.
사 40:13∼20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같이 빈 것같이 여기시느니라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위하여 은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대체로 우상은 다른 신을 섬기던 이교도들이 만든 것으로, 이 우상들이 하나님 백성들에게 침투해 들어와 자리잡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여 쫓겨난 죄인들은 죄로 인해 영적 눈이 가려졌기에 육안으로 보이지 아니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신심(信心)이 빨리 일어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것을 잘 아는 사탄은 인간들 앞에 어떤 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잘못된 신심을 이용하여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경배를 받으려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탄의 계략을 아시기 때문에 당신의 백성들이 사탄에게 빠져 멸망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해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사랑의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갔을 때에도 가나안인들이 섬기던 바알, 아세라 등 여러 종류의 우상들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신앙과 결합시킨 예가 많았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항상 그것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행위라고 합리화시키곤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우상들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형상에 불과합니다. 그 우상의 입을 만든 것도 사람이요 눈과 귀를 만든 것도 사람입니다. 그것에는 어떠한 생명력도 없고 호흡도 없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에다 신성을 부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미련하고 우둔한 행위입니까?
시 135:15∼18 “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그 입에는 아무 기식도 없나니 그것을 만든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것과 같으리로다”
십자가 역시 스스로 선 것이 아닌 ‘사람의 수공물’입니다. 사람이 세워 놓은 대로 있을 뿐입니다. 숨도 쉬지 못하고 생명력도 없습니다. 사람이 세우면 세워지고 무너뜨리면 무너지는 사물에 불과합니다. 시편 기자는 우상을 만든 자와 의지하는 자가 다 우상과 같을 것이라 했는데 우상 숭배자들이 우상처럼 생명력이 없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많은 종교들이 각각 우상을 만들어 섬기고 그 앞에 경배하고 있는데 이는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의 편지에서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요일 5:19)라고 하였는데 온 세상이 우상을 숭배하는 현 세대를 볼 때, 온 세상이 악한 자 안에 처해 있음이 분명합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쉬이 잊어버리고 이방 신을 섬기며 우상 숭배에 빠졌던 적이 많았던 것처럼,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 백성이라 하는 자들의 우상 숭배 행위는 존재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는 우상 숭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는 것이라고 합리화하였으나 성경은 이러한 우상 숭배 행위에 대해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습니다.
신 27장 15절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3. 이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로마 교회에 들어음
십자가는 원래 기독교의 상징이 아닌 이교도의 상징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비교적 여러 지역, 여러 종교에서 숭배의 대상물로 삼고 있었습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태양신으로 섬겼던 담무스(Tammuz)의 첫 글자 T자를 십자가로 형상화하여 경배하였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T자 모양의 타우 십자가와 앵크 십자가를 종교 의식에 사용하였습니다.
십자가는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들어온 부산물입니다. 기독교가 이교화되어가자 세속화된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교도들을 더 많이 전도한다는 명목으로 이교도들의 사상과 상징물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방 여신을 섬기고 숭배하던 자들이 교회에 와서 적응할 수 있도록 성경에 등장하는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를 대신 섬기도록 해 주었고, 십자가 형상 앞에서 이교의 신들에게 경배하던 개종자들을 위해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것을 상기시키며 십자가 형상을 교회 내에 유입하여 그들로 숭배하게 해 주었습니다.
십자가를 교회 내부에 부착하기 시작한 역사적인 기록은 주후 431년경이며,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를 세우기 시작한 것은 주후 586년경부터라고 합니다.
이교도에서 개종한 신자들을 위해 도입했던 이교도의 사상이나 상징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교회 내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모든 신자들이 그 상징물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나 기독교 신앙을 상징하는 것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기독교가 이교화되는 과정에서 들어온 우상이 십자가, 마리아 상, 성인 상들입니다.
4. 우상 숭배로 인한 로마 교회의 십계명 변경
로마 교회가 십자가, 마리아 상, 성인 상 등 이교의 상징들을 유입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모순도 있었으니 그것은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제2계명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는―이교의 사상과 축제에서 차용해 온―십자가 숭배, 마리아 숭배, 성인 숭배 등이 성경의 십계명과 충돌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 교회는 5세기에 십계명을 합리적으로 분류한다는 명목 하에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두 번째 계명을 없애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제4계명을 ‘주일을 지키라’로 고치며 세 번째로 끌어올렸습니다.
그리고 부족한 한 계명을 채우기 위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출애굽기 20:17)라는 열 번째 계명을 제9계명―‘남의 아내를 원하지 말고’―과 제10계명―‘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으로 나누어버렸습니다.
가톨릭의 교리책자 ‘상해천주교요리(중)’ ‘제1장 천주 십계’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상해천주교요리(중)’ 15쪽, ‘제1장 천주 십계’편〕
가톨릭에서도 처음에는 유다인 필로의 분류를 그대로 따랐다. 그러다가 5세기에 이르러 성 아우구스티노의 분류가 나타났는데, 더 합리적인 이 분류가 차차 우세하여 그 후 가톨릭에서는 이 분류가 일반화되었다. 이제 두 분류를 비교하여 보자.
십계의 분류
필로의 분류 성 아우구스티노의 분류
1.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 1. 하나이신 하느님을 만유 위에
공경하여 높이고
2. 너는 무슨 우상이든지 숭배하지 말라 2. 하느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불러
거짓 맹세를 하지 말고
3. 하느님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 3. 주일을 지키고
4.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4. 부모에게 효도하여 공경하고
5. 네 부모를 공경하라 5. 사람을 죽이지 말고
6. 살인하지 말라 6. 사음(邪淫)을 행하지 말고
7. 간음하지 말라 7. 도둑질을 말고
8. 도둑질을 하지 말라 8. 거짓 증언을 말고
9. 네 이웃을 해하려고 거짓 증언을 말라 9. 남의 아내를 원하지 말고
10.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 10. 남의 재물을 탐하지 말라
이 두 가지 분류를 놓고 볼 때 성 아우구스티노의 것이 더 합리적임을 알 수 있다.
본문 내용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는 제10계명 속에는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여종이나 소나 나귀 등 이웃의 소유가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2계명을 없앴기 때문에 억지로 제10계명을 둘로 나누어 십계명의 숫자를 맞췄던 것이다.
지금도 카톨릭의 십계명에는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둘째 계명이 없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신 넷째 계명 대신 셋째 계명으로 ‘주일을 지키라’가 자리잡고 있으며, 열 번째 계명은 제9계명과 제10계명으로 나뉘어져 신자들에게 암송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숭배는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우상 숭배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변경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도 그 변경을 인정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계명이 있으면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백성 된 도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