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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주류성이야기 성부제님의 주류성 찿아서....
하루신선 추천 0 조회 85 13.06.13 15:17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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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4.10.25 12:41

    〈사료 ⑤〉 거듭 반역을 도모하였으니, 즉 가짜 승려 도침과 가짜 간솔 귀실복신이 있어 스스로 민중에서 나와 거짓으로 그 괴수가 되어서는 미친 듯이 날뛰는 자들을 불러 모아 임존에 보를 쌓고 웅거하니 벌떼처럼 진을 치고 고슴도치처럼 일어나서 마침내 산곡에 가득하였다. 이름을 빌리고 품위를 훔쳐 단마로 군사를 지휘하여 성을 깨뜨리고 고을을 공파하여 점차 중부로 들어갔다.(仍圖反逆 卽有僞僧道琛 僞杆率 鬼室福信 出自閭巷 僞其魁首 招集狂狡 保據任存 峰屯謂起 彌山滿谷 假名盜位 單軍 &579;城坡邑 漸入中部)7)


  • 작성자 14.10.25 12:43

    마지막 부분, "부흥군이 중부로 들어갔다" 기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그동안 활동하던 임존성에서 부안 위금성으로...?
    부흥군의 핵심세력이 홍주목의 산악지역으로 깊숙히 들어간 것을 표현한것 아닐까......

  • 작성자 19.01.14 09:25

    임존성에서 백제 시대로 추정되는 유물 수습이 되지 않고 있다. 확실한 것은 통일신리시대의 것들이다. 물론 백제 말기이기 때문에 백제 유물이 나올 수는 있으나 전형적인 백제 유물의 수습은 없었다. 이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주류성이니 피성이니 고사비성이니 하는 성들의 지명은 당시 급조된 성들이지 기존의 행정 치소의 성 이름은 아니라는 뜻이다. 홍성 석성산성(장곡산성)의 지표조사보고서는 분명 백제시대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그리고 사시랑이현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이 백제 시대의 유물수습은 그것이 주류성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주류성이 될 수 없다는 반증이다.

  • 작성자 19.03.03 21:41

    다른 곳은 몰라도 주류성 만큼은 위 주장에 일치한다. 임존성으로 밀려오는 백제유민들로 인하여 부흥군은 유민과 함께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한 것이다. 그곳은 임존성과도 멀지않은 산악지역으로 홍주목과 공주목의 경계 지역, 지금의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와 무량사 주변으로 보인다.

  • 작성자 14.10.24 21:19

    당군의 수비지역은 웅진과 사비성이었고 부흥군의 주 공격목표도 사비성이었다. 그리고 일본군도 머나먼 뱃길로 다시 태안 앞 바다를 거쳐 아산만으로 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결국 그 논리는 연기나 홍성을 주류성으로 주장하면서 나온 추리이다

  • 작성자 19.01.14 09:56

    부흥군은 피성으로 왕성을 옮긴것은 불어나는 유민들로 인하여 산악지역의 척박한 곳에 장기간 머무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수많은 일본의 지원군이 머무를 공간은 결코 주류성이 아니다. 일본 지원군이 머무르고자 한 곳은 부흥군이 왕성으로 삼았던 피성이 아닐까..?
    부여풍은 왜의 지원군을 피성에 주둔하게 하여 서북부의 안정적 지지기반을 확보하고 부흥전쟁을 장기전으로 이끌어 가려는 목적이었다. 그런데 그곳으로 가는 길목에 당군의 배들이 정박되어 있고, 당군이 타고 돌아갈 배들을 쳐부수어 당군의 사기를 꺾고 아군의 사기를 끌어올리려는 의도로 백강해전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 작성자 19.03.03 21:43

    둘째. 김정호는 홍성 지역 어느곳에 주류성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홍주 주류성설을 주장하였고, 그곳을 지심주로 보았다. 주류성, 지심주는 같은 위치로 보고 홍성에 있다고 김정호는 추정만 했지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지심주는 서방성 자리에 있었다. 서방성은 도선성이라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 그 성을 주류성이라고 비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김정호의 홍성 주류성설의 오류는 여기에 있다.

  • 작성자 19.03.03 21:45

    김정호는 주류성을 너무나 확실하게 인지하였다고 본다.
    "주류성은 홍주목이다" 라는 표현 만큼 더 정확한 설명이 또 있을까?
    부흥운동은 금강서쪽 홍주목 전역에서 이루어졌고, 홍주목과 공주목의 경계 산악지역에서 부흥군을 지휘하였기에 김정호는 홍주목이 주류성이라 표기한 것으로 확신한다.

  • 작성자 14.10.24 21:21

    사료 ⑬] “신라의 날랜 기병들이 당의 선봉이 되어 먼저 언덕의 진을 깨트리니 주류성이 담력을 상실하여 드디어 곧 항복하였다. 남방이 이미 평정되자 군대를 돌려 북벌을 하는데 임존 한 성이 고집하고 명민하지 못하여 항복하지 않으므로........”

  • 작성자 14.10.25 10:30

    주류성이 견고한 석성이 아닌 산악지형의 목책으로 이루어졌다는 설명 아닌가...
    가림성보다 허술하다는 주류성의 또다른 설명이다.

  • 작성자 14.10.24 21:25

    홍성 주류성에 관심을 가지면서 재 답사를 하였다. 산 정상에 성을 쌓은 것으로 보아 이는 분명 서남쪽에서 접근하는 적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풀이된다. 석성(장곡)산성은 광천 쪽에서 오는 적을 방어하는 데는 요충지 역할 하지만 서천지역에서 북상하는 적은 무용지물이라는 말이다. 적은 부여에서 청양을 거쳐 임존성에 온 것이 아니라 1,2차 모두 서천-보령-화성-광시 쪽으로 온 것으로 추측된다. 분명한 것은 광시 쪽에서 와 마사리, 신대리 쪽에서 공격했다는 사실이다. 부흥군은 북상하여 임존성을 공격하러 오는 적을 막기 위한 유격부대를 이 태봉산성에 주둔시켰던 것이다.

  • 작성자 15.06.22 09:27

    진압군은 공주 부여 금강을 건너 구룡 정산을 지나 외산의 주류성을 함락시키고 장곡산성과 학산성의 부흥군을 토벌하고 임존성으로 진격하지 않았을까?
    부흥군을 진압을 위하여 웅진에서 사비를 거처 강을 건너 주류성으로 가는 도중 가림성이 근거리에 이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어떤 근거로 서천 보령 방향에서 진격하였다는 것인지.....

  • 작성자 14.10.24 21:27

    넷째. 문헌의 기록을 보면 복신은 굴에 있다가 잡혀죽었다. 최고의 병권을 쥐고 있는 자가 굴속에 있다 잡혔다. 주류성의 상황은 건물조차 제대로 지어져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모두 야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왕궁의 건물터 운운하고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떻든 주류성에는 굴이 있었으므로 굴을 찾아내는 것이 주류성을 비정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

  • 작성자 19.01.14 10:46

    복신굴을 설명한 내용이 어디에 있을까?
    위금성의 복신굴?처럼 암벽에 만들어진 굴만이 복신굴 일까?
    천연동굴일까 인공굴일까?
    인공굴이라면 전쟁중에 바위에 팠을까 토굴을 팠을까?
    아마도 토굴일 가능성이 더 높고 천년의 긴 세월에 남아있을 토굴이 있을까...?

  • 작성자 14.10.25 12:52

    여섯째: 주류성은 9월 8일에 함락되고 임존성 공격은 10월 21일에 시작되었다. 근 한 달이 넘는 동안 나당군은 무엇을 했는지 알 수 없다. 남방기정 북벌회군이라고만 표현되었다. 남쪽에 있는 저항하는 여러 지역을 평정하고 북쪽을 정벌하고 돌아왔다는 말이다. 하지만 임존성과는 40여리에 불과하고 중간에는 아무런 방어시설이 없다. 군량미 부족에 시달리던 나당군이 40여 일 간을 학성산성, 태봉산성, 천태산성에서 묶여 있었다는 것인데 이는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홍성 주류성설의 최대 취약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임존성을 공략하러 오는데 40여일을 보내었다는 것은 바로 홍성 석성산성이 주류성이 될 수 없다는 증거다.

  • 작성자 14.10.25 12:58

    홍주목 주류성을 함락시킨 후 진압군은 석성산성, 학성산성, 태봉산성, 천태산성을 함락시키기 위한 한 달여 기간으로 보면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가................

  • 작성자 21.01.12 19:09

    맺음말 부분 장곡산성은 분명 주류성이 아닌 부흥군의 외곽산성으로 보인다.
    그곳에서 멀지않은 산악지역 부흥군의 비밀본부를 나당군의 입장에서 반란의 무리들이 모여있는 지역을 한자로 표기한 주류성의 한자 周(두루 주, 넓은 둘레) 留(머무를 류) 城( 성 성-지역)에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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