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3154]춘정(春亭)卞季良(변계량)선생 雪晴(설청)
雪晴(설청)- 눈 온 뒤의 맑은 날
춘정(春亭)卞季良(변계량)
風急雪花飄若絮(풍급설화표약서)
山晴雲葉白於綿(산청운엽백어면)
箇中莫怪無新句(개중막괴무신구)
佳興從來未易傳(가흥종래미이전)
급히 부는 바람결에 하얀 눈꽃 솜처럼 날리는데
산 비탈 맑은 날에 구름 잎사귀 솜보다 더 희다네
개중에 새로운 시 귀절 없음을 이상히 여기지 마소
예로부터 좋은 흥취는 쉽게 전하지 못한다네요.
飄= 회오리 바람 표.나부낄 표. 동자(同字)飃
絮= 솜 서, 간 맞출 처, 실 헝클어질 나.
晴= 갤 청. 동자(同字)=暒,
綿=솜 면.
箇= 낱 개.
怪= 기이할 괴.괴이할 괴. 속자(俗字)恠.
易= '바꿀 역' 또는 '쉬울 이'
원문출처=春亭先生詩集卷之一
雪晴
風急雪花飄若絮。山晴雲葉白於綿。
箇中莫怪無新句。佳興從來未易傳。
눈이 개다.
강풍에 눈꽃은 솜처럼 날렸는데 / 風急雪花飄若絮
갠 산에 구름잎은 솜보다 더 하얗네 / 山晴雲葉白於綿
이 경관에 산뜻한 시 없는 것 의심 말게 / 箇中莫怪無新句
좋은 흥취 함부로 전하지 않나니 / 佳興從來未易傳
ⓒ 한국고전번역원 | 송수경 (역) | 1998
卞季良(변계량)은
高麗 恭愍王18年(1369)~朝鮮 世宗12年1430)時代의 文人 學者로서,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거경(巨卿), 호는 춘정(春亭). 변주(卞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찬성사 변원(卞元)이고,
아버지는 검교판중추원사(檢校判中樞院事) 변옥란(卞玉鸞)이다.
어머니는 제위보부사(濟危寶副使) 조석(曺碩)의 딸이다.
이색(李穡)·권근(權近)의 문인이다.
李穡,權近의 門人이며,어려서부터 聰明하여 네살에 古詩의 大句를 외우고
여섯살에 글을 지었다. 1382年(禑王8年)進士科에 及第하고,
이듬해 生員試에도 及第하였으며,
1395年 文科에 及第하여 典校主簿 備巡衛精勇郞將兼進德博士가 되었다.
1392年 朝鮮王朝의 建國과 더불어 千牛衛中郞將兼典醫監丞이 되었으며,
醫學敎授官을 거처 1396年(太祖4年)에는 校書監丞에 知製敎를 兼하였다.
太宗初에 成均館樂正 司宰監少監兼藝文館應敎와 直提學을 歷任하였으며,
1407年(太宗7年) 文科 重試에 乙科 第1人을 뽑혀 堂上官에 오르고 禮曺右參議가
도되었다.이듬해 世子左輔德이 되고,
그 뒤 藝文館提學, 春秋館同知事兼內贍寺判事, 經筵同知事等을
거처,1415年 世子右副賓客이 되었다.
이때 가뭄이 甚하여 上王이 크게 근심하므로 하늘에 祭祀하는
것이 禮는 아니나 狀況이 切迫하니 圓壇에 빌기를 請하여
太宗이 그에게 祭文을 짓게하고
領議政 柳廷顯을 보내 祭祀 드리게하니 果然 큰비가 내리었다.
그뒤 太宗末까지 修文殿提學,議政府參贊 等을 歷任하였다.
1420年(世宗2年)集賢殿이 設置된 뒤 그 大提學이 되었고,
1426年에 右軍都摠制府判事가 되었다.
特히 文章에 뛰어나 거의 20年間을 大提學을 맡아 外交文書를 作成 하였으며,
科擧의 試官으로 선비를 뽑는일에 至極히 公正을 期하여
高麗末의 弊端을 改革하였다. 그러나 大提學으로서 鬼神과 부처를 섬겨
하늘에 祭祀를 지냈다 하여 周圍로부터
"살기를 貪내고, 죽기를 두려워한 사람"이라는 非難을 받았다.
高麗末과 朝鮮初期의 鄭道傳,權近으로 이어지는
官人文學家의 代表的인 人物로서 華山別曲,
太行太上王諡冊文을 지어 朝鮮王朝의 建國을 讚揚하였다.
著書로는 春亭集 3券5冊이 있다.
太祖實錄의 編撰과 高麗史 改修에 參與하였고,
箕子墓의 碑文과 樂天亭記 獻陵誌文을 撰하였다.
時調 2首가 전하고, 居昌의 屛巖書院에 祭享되고 諡號는 文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