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꿈투사 방식의 상담과의 근원적인 차이는
아마도
내 안에 올라오는 것을 모두
내가 소화해 내고 알아차려야한다는
지점일 것이다.
꿈투사를 통해서 어떤 내면의 이슈를 상세히 풀어헤치기는 하겠고
그것이 집단으로 우리가 함께 해야하는 일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안고 가는 것은
내 감정에 대한 이해? 힌트 정도일 것이고
그런 일들이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지를 잘 받아안아서
혼자만의 시간에 들여다보고
나는 그렇다면 어떤 선택을 하길 원하는가?
를 결정하고 살아내는 것은 개개인의 몫이다.
한동안 상당히 이유를 알지 못하지만 힘들었던 지점이 있었다.
어제 오늘 동안 그것에 대한 알아차림에 도달한 것이 있는데
내가 상담하시는 분들을 흉내내고 있었던 지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즉 나는 영혼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기 때문에
영혼의 목소리를 알아차리고 그 목소리가 있다. 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생애 초기의 어려움들로 인해 현재에도 고통속에서
머물 때 목소리가 내 안의 어린 아이적인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 목소리가 아이의 목소리라는 지점과
아이의 목소리가 생애 초기에 부모에 의해 온전히 받아들여지고 긍정되지 않았기에
지금 그 고통스러운 상태로 남아있는 것이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부모화" 된 어린 아이가 이것에 반응해서
그것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수용하고 뭔가 그것에 대해서 부모가 해주지 못한
긍정을 해주려고 노력하고 있던 시간이 있었다.
나는 그것에 대해 꽤 오랫동안 꽤 무시할수 없을 만큼의
내가 하지 말아야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아주 애매한 불편함이 있어왔다.
어제 밤에
비로소
꿈집단 참가자의 내면의 상처 받은 아이로의 목소리를 수용하는데 사용해왔던
내 에너지가
내 안에 아이의 감정과 느낌을 알아주고 수용하는데 써야하는 에너지였음을
알아차렸다.
남의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에너지를 다 소모해서
(내 상처받은 아이 이야기를 나 자신이 들어주어야 한다고 이야기해야하는 시점에서
그것을 내가 그것을 받아 안으려고 하고 있었다니!!!! )
정작 내 안의 아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들어줄 여력이 없는 내 안에서
홀로 외롭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아이에게 너는 훌륭한 아이니까 참을수 있지? 라고
이야기해왔던 사실을 알아차리고
설거지 하면서 갑자기 너무 미안함과
아이가 느껴왔을 외로움과
그리고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 모든 것을 다 알아주고 다독여주고 그랬구나. 그랬구나.
정말 그럴만 했구나.를 밤새 하고 보니
아침이 되었고
그것에 대한 어떤 꿈이 왔지만
한 장면을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동안 오래 고생했던 부분에 대한 알아차림이라
무척이나 값지고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