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다섯 아리따운 아가씨 남부끄러워 말없이 헤어졌네 돌아와 겹문을 닫아걸고 배꽃 같은 달을 보고 우네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羞人無語別 수인무여별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泣向梨花月 입향이화월
조선채풍록(朝鮮採風錄)을 통하여 청의 문인 왕사정이 '지북우담(池北偶談)에 수록하여 중국에까지 전파된 작품이니 중국인의 안목으로도 공인된 것이라 하 겠다. 열다섯 앳된 처녀가 마음에 두고 있던 사내를 길에서 만났지만 부끄러워 말 한마디 건네 보지도 못하고 돌아왔다. 그 사내는 물론 어느 누구도 처녀의 이마음을 알리가 없건만 혼자 부끄러워 집으로 돌아와 문을 걸어 잠가 붉어진 붉어진 얼굴을 가리려 한다. 하소연할 데라고는 하늘의 훤한 달 밖에 없다. 어 린처녀의 속마음을 이처럼 곡진하게 대신 말한 작품이다. 말을 건네지 못한 미 련이, 밝은 달빛과 흰 배꽃 아래 눈물짓는 처녀의 한숨으로 긴 여운이 되어 남 는다.
차마 말하지 못한 여운이 꽃에만 있겠는가? 그림과 글씨에도 뛰어났던 강세황 엮시 우연히 만난 여인에 대한 여운을 이렇게 시로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