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6558]梅湖(매호)진화(陳澕)선생시-유 오대산(遊五臺山)
원문=동문선 제20권 東文選卷之二十 / 七言絶句
遊五臺山
畫裏當年見五臺。掃雲蒼翠有高低。
今來萬壑爭流處。自覺穿雲路不迷。
유 오대산(遊五臺山)-진화(陳澕)
언젠가 그림 속에서 오대산을 볼 때에는
/ 畫裏當年見五臺
구름을 쓰는 푸른 봉우리 높았다 낮았다 하더니
/ 掃雲蒼翠有高低
지금 오매 골짝마다 물이 다투어 흐르는 곳에
/ 今來萬壑爭流處
구름을 뚫은 길이 낯설지 않은 것을 스스로 깨닫겠네
/ 自覺穿雲路不迷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8
원문=매호유고 / 梅湖遺稿 / 七言絶句
遊五臺山 時公因王事。往關東作。○載輿地勝覽
畫裏當年見五臺。浮空蒼翠有高低。
今來萬壑爭流處。自覺穿雲路不迷。
補閑集曰。丁秘監而安邃於文章。墨竹㝡妙。
嘗曰。士大夫揮掃。例以詩爲本。若沓其圖則畫工也。
鄭舍人知常醉題云。
桃花紅雨鳥喃喃。繞屋靑山間翠嵐。
一頂烏紗慵不整。醉眠花塢夢江南。
此詩可作圖畫着也。陳補闕遊五臺山云。
畫裏當年見五臺。掃雲蒼翠有高低。
今來萬壑爭流處。却喜穿雲路不迷。
此古人所謂對境想畫也。
陳氏家藏曰。我肅廟戊戌秋。公十四代孫翼漢。
以保安督郵入五臺。鏤公詩揭月精佛閣。次其韻 曰。
先祖何年到五臺。碧山無語暮雲低。遺篇爲向禪樓揭。回首千崖意自迷。
去歲登臨最高臺。四邊喬嶽眼中低。偶然入洞還回轡。不是劉郞再到迷。
오대산에서 노닐며 당시에 공이 국가의 일 때문에 관동에 가서 지은 것이다.
《여지승람》에 실려 있다.遊五臺山 時公因王事往關東作○載輿地勝覽
언젠가 그림 속 오대산을 보았을 때 / 畫裏當年見五臺
하늘에 뜬 푸르른 산 높기도 낮기도 하였네 / 浮空蒼翠有高低
지금 와 본 온갖 골짝 물 다투어 흐르는 곳 / 今來萬壑爭流處
구름 뚫고 나 있는 길 낯설지 않음을 깨닫겠네 / 自覺穿雲路不迷
《보한집》에 “비서감(秘書監) 정이안(丁而安)은 문장에 조예가 깊었고,
묵죽(墨竹)에 가장 뛰어났다. 이전에 ‘사대부가 붓을 휘두를 때는
대체로 시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그림에 탐닉하면 바로 화공(畫工)이다.’라고 했다.
사인(舍人) 정지상(鄭知常)은 〈취제(醉題)〉에서
‘복사꽃 붉은 빗속 새들은 재잘재잘,
집을 두른 푸른 산은 여기저기 아지랑이.
이마 한 편 검은 사모 귀찮아 그냥 둔 채,
꽃 핀 언덕 취해 누워 강남 꿈을 꾸노라.
〔桃花紅雨鳥喃喃 繞屋靑山間翠嵐
一頂烏紗慵不整 醉眠花塢夢江南〕’라고 했는데,
이 시는 그림을 그려 본 것이라 할 수 있다.
보궐 진화는 〈오대산에서 노닐며〔遊五臺山〕〉에서
‘언젠가 그림 속 오대산을 보았을 때,
구름 다 쓴 푸르른 산 높기도 낮기도 하였네.
지금 와 본 온갖 골짝 물 다투어 흐르는 곳,
구름 뚫고 나 있는 길 낯설지 않아 참 기쁘네.
〔畫裏當年見五臺 掃雲蒼翠有高低
今來萬壑爭流處 却喜穿雲路不迷〕’라고 했는데,
이것이 옛사람이 말한 경치를 대하고 그림을 상상한 것이다.” 하였다.
《진씨가장(陳氏家藏)》에
“숙종 임금 무술년 가을에 공의 14대 후손 익한(翼漢)이 보안 독우(保安督郵)로
오대산에 들어갔다가 공의 시가 월정사(月精寺)의 누각에 새겨져 있는 것을 보고
그 시운에 차운하여
‘선조께서 어느 해에 오대산에 오셨나,
푸른 산은 말이 없고 저문 구름 깔렸는데
, 남은 시편만 불사의 누각에 걸려 있으니,
머리 돌려 본 천 길 벼랑 마음 절로 아득하네.
지난해 가장 높은 대에 올라 보았더니,
사방의 우뚝한 산 눈에 낮게 깔렸었지.
우연히 골짝에 들어 고삐 돌려 돌아가려니,
유랑이 다시 와서도 길 잃은 것 아니겠나.
〔先祖何年到五臺 碧山無語暮雲低
遺篇爲向禪樓揭 回首千崖意自迷
去歲登臨最高臺 四邊喬嶽眼中低
偶然入洞還回轡 不是劉郞再到迷〕’라고 했다.” 하였다.
[주-D001] 오대산(五臺山)에서 노닐며 :
이 시는 《동문선》 권20에 같은 제목으로 수록되어 있다.
[주-D002] 정이안(丁而安) : 고려 시대의 선비화가 정홍진(丁鴻進)으로, 이안은 자이다.
본관은 압해(押海), 즉 지금의 나주이다. 시문과 묵죽으로 이름이 높았으며,
선비화가로서는 드물게 초상화에도 뛰어났다.
[주-D003] 사인(舍人) :
고려 시대의 관직으로 중서문하성(中書門下省)과 합문(閤門)
ㆍ동궁관(東宮官)ㆍ제비주부(諸妃主府)에 설치되었다.
품계와 정원은 관부에 따라 다르다. 중서문하성에는 중서사인(中書舍人)과
기거사인(起居舍人)이 있었다.
[주-D004] 정지상(鄭知常) : ?~1135. 고려 중기의 문신이다.
서경 출신으로, 초명은 지원(之元), 호는 남호(南湖)이다.
뛰어난 시인으로 문학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려 12시인 중의 하나로 꼽혔으며,
노장 사상에 심취했고 역학(易學)ㆍ불교(佛敎)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림ㆍ글씨에도 능통했는데, 특히 사륙변려체를 잘 썼다고 한다.
작품으로는 《동문선》에 〈신설(新雪)〉ㆍ〈향연치어(鄕宴致語)〉가,
《동경잡기(東京雜記)》에 〈백률사(柏律寺)〉ㆍ〈서루(西樓)〉 등이 전하며,
《정사간집(鄭司諫集)》ㆍ《동국여지승람》 등에도 시 몇 수가 실려 있다.
[주-D005] 숙종 임금 무술년 : 숙종(肅宗) 44년으로 1718년이다.
[주-D006] 익한(翼漢) : 진익한(陳翼漢, 1677~?)으로, 자는 한경(漢卿),
본관은 여양(驪陽)이며, 거주지는 미상이다. 1714년인 숙종 40년에
증광시(增廣試)에서 을과(乙科) 5위로 합격했다.
[주-D007] 유랑(劉郞)이 …… 아니겠나 : 동한(東漢)의 유신(劉晨)이
천태산(天台山)에 약초를 캐러 들어갔다가 선녀를 만나 행복한 생활을 누린 뒤에
세상에 내려왔더니 벌써 진(晉)나라 시대였는데, 옛날 생각이 나서
다시 천태산에 들어가 보니 옛 자취가 묘연(渺然)하더라는
《유명록(幽明錄)》의 기록에서 나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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