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 창작의 실제 〔시조시인 16인이 말하는 시조작법〕
■ 나의 시조 이렇게 썼다.
8․ 그림으로 떠오르는 마음의 세계 / 이영지
달 먼저 떠 오르면
해는 달, 따라나와
달 밑에 서서 있는
그 차례 하얀 차례
해는 달
하얗게 웃으면
하얀 웃음 보조개
해 먼저 볼 붉히면
달은 해, 활 활 활
속차례 분홍차례
달은 해
함께 웃으면
분홍웃음
보조개
<행복의 순위>
이 작품의 창작 과정은 다음과 같다.
강의가 처음으로 시작되는 학생들에게 나는 하얀 종이를 준비하게 한다. 어리둥절해 하는 아이들이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칠판에 '해','달','나무','호수','집'을 그리게 한다.
엄연히 현실에서는 해와 달이 같이 공존할 수 없지만 시에서는 가능하다고 이야기하면서 이것이 바로 시적인 기능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면 가지각색의 그림들이 그들의 책상앞에 펼쳐진다. 더러는 해와 달이 나란히 놓이기도 하고, 더러는 호수에 달이 빠져 있기도 한다.
그리고는 그림을 다 그린 학생들을 향하여 설명을 하기 시작한다. 해는 자아의 문제로서 해가 그림 중앙에 와 있으면 자신을 항상 중앙에 놓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라고 설명해 준다. 왼쪽이나 오른쪽에 그리게 되면 내가 제일이라는 생각보다는 양보하는 입장에 있는 의식세계라고 이야기해 준다. 달의 위치는 여자의 위치로 내가 여자일 경우 해와 달과 비교하여 해와 나란히 있게 되면 나와 남자의 대한 관점이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본다고 하여 준다. 만약 해 밑에 달이 있으면 해를 높이 받드는, 즉 남자를 받드는 전통적인 사고의식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만약 해보다 달이 높이 있으면 여성 숭배사상이라고 하여 주면 아이들은 깔깔거리고 웃는다.
이렇게 하여 해와 달의 관계는 대인관계로 발전하며 상대방을 높이는 감정을 가지면 해를 더 높이 그린다고 하여 준다. 집은 소유욕으로 단층을 짓게 되면 '내 사랑은 오직 그대 하나'의 의식이라고 하여 준다. 만약 아파트를 층층이 짓게 되면 소유욕이 강하여 진시황같이 모든 여자를 자신의 소유로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고 하여 준다. 나무는 친구의 관계로 나무를 많이 그리면 친구가 많고 큰 나무를 그리게 되면 목숨을 바꿀 친구가 존재한다고 이야기해 준다. 호수는 마음의 넓이로 크게 그리면 넉넉하고 넓은 마음이고 좁게 그리면 좁은 마음의 소유자라고 이야기해 준다. 그러나 이 마음의 세계는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이 넓으면 나의 마음은 좁아야 같이 어울려 살 수 있는 짝의 역할이 된다고 하여 준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학생들은 신이 나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린 좁은 호수도 상대방의 넉넉한 마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에 대하여 넉넉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이 세계는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짝과 더불어 그 의미의 폭이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원리들은 상대방의 관계를 가늠해 볼 수 있는 대응관계에서 상응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신의 결점을 대응되는 상대방과 더불어 어울려질 수 있는 원리로 나의 시조도 탄생하게 되었다.
마치 그림으로 보듯 시를 써 내려가서 그 글을 보고 그림이 생각나게 하면 잘된 글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이처럼 하여 나의 시조도 탄생하였다. 오래 전에 들은 문학강의에서 탄생한 나의 이 시조는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는 전통적 한국사상에 심취되어 있고, 또 그것이 나의 고향의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심취되어 있고, 나의 시조의 경우 초장에서 남편이나 남자들의 이야기는 하늘처럼 떠받들어지고 중장에서 나의 이야기는 낮은 현실적인 이야기들로 쏟아져나온다. 그러기에 순종의 질서를 나타낸 것이 이 <행복의 순위> 시조이다. 이러한 서열은 내가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겸손의 위치에서 출발할 때 질서는 유지된다는 점이다.
나의 이 시조는 나보다 높은 자, 하나님을 따르는 의식의 중요성을 주제로 하고 있고 이러한 순서에서만이 행복이 탄생할 수 있다는 주제를 가지고 있다.
<이영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