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을 끝낸 늦가을 들판은 고즈넉한 한폭의 그림이다. 겨울비에 울긋불긋한 나뭇잎들이 하나, 둘 마지막을 고하며 떨어지던 날 하성면 후평리의 송태인(58세)?이순옥(54세)씨 농가를 찾았다.
아내가 마을부녀회원들과 여행을 가서 대접할게 없다는 그는 복숭아즙을 내놓으며 말문을 연다.
“복숭아라는 것이 참 손이 많이 가는 과일이죠. 잠깐도 게으름을 부릴 수가 없어요. 한 나무에 달려도 가지에 따라 익는 속도가 다르니 매일 한바퀴씩 돌며 가지 끝에서부터 따 나가야 합니다” “게다가 조금이라도 힘주어 복숭아를 따게 되면 영락없이 그 자리가 멍들어 못쓰게 되니 남의 손에 맡기기도 쉽지 않죠”라고.
그런 애정과 욕심 때문에 송태인·이순옥 부부는 4천5백평 복숭아밭을 남의 손을 거의 빌지 않고 감당해 낸다. 한쪽 텃밭에 가꿔진 배추, 무우, 생강, 고구마, 도라지 들을 보니 잠깐의 짬도 없어 보인다.
한창 복숭아 재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던 송태인씨는 올 여름 태풍을 떠올리며 “올해처럼 비가 많이 오면 봉지채로 쏟아져 한해 농사가 헛것이 되지요. 떨어진 봉지를 보고 아내가 어찌나 울던지…”라고 말을 이었다.
1년을 꼬박 붙어서 애정으로 키웠던 복숭아가 그렇게 되면 포기하고 싶기도 하련만…. 그는 쏟아진 봉지를 다시 씌우고 멍이 나거나 떨어진 복숭아는 거둬들여 멍자욱을 파버리고 즙을 내렸다.
즙을 내리며 속상해 하는 아내를 위해 재미있는 표정으로 바보춤을 한바퀴 돌면 아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지고 웃음보가 터진단다. 다행히 복숭아 즙은 90%이상이 다 판매됐다.
“행복하게 사는 건 마음먹기에 달려있죠. 내가 먼저 웃고 내가 먼저 다가서면 상대방도 벽을 허물고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그게 무병장수의 비결이죠”라는 송태인씨. 여지없이 말끝에 웃음보를 터트린다.
하성면 농악단장이기도 한 그는 “마르고 닳도록 들어 몸에 밴 건데 배우긴 어디서 배워요”라며 얼마전 한밤중에 초등학교 운동회를 하며 즐거워했던 기분을 떠올린다.
김포에서 대를 이어 농사를 지어 어깨너머로 배운 것도 충분하건만 그는 여전히 틈틈이 연구하고 공부하는 사람이다. 경기도복숭아 연구회 회원으로 참석하여 신기술도 배우고 경험담도 나눈다.
그렇게 알게 된 지식들은 관내 복숭아 농사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조언자로서 도움을 준다. 오랜만에 외출 길 양복을 입고 있어도 누가 복숭아에 대해서 물으면 양복을 입은 채 밭에 들어가 도움을 준다.
송태인씨는 올해 한쪽 복숭아밭에 비가림 재배를 시도했다. 남은 한쪽 밭도 곧 비가림 재배를 하겠단다.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한 세월속의 지혜가 알알이 그의 삶에서 뿌리를 내린다.
주차장과 원두막이 완성되면 관광농원을 하겠다는 그의 계획은 그의 환한 웃음과 넉넉한 인심에 멀지 않아 열매 맺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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