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부암 느티나무
잘 다듬어진 은해사 입구의 정원에는 꽃무릇이 한껏 예쁘게 피어있다. 한쪽에는 군락으로, 다른 쪽에는 잔디 사이사이에 하나둘 피어있다. 함께 있는 꽃들은 화려하고 다정해서 보기 좋고, 홀로 있는 꽃들은 외로워도 돋보여서 좋다. 친구들과 오랜만에 은해사를 찾았다. 약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오늘의 목표는 은해사 위쪽 운부암이다.
운부암 가는 길은 완만한 포장길이지만, 십리 길은 되는 듯하다. 산속으로 들어서자 ‘힌남노’가 다녀간 흔적이 곳곳에 엿보인다. 길가에는 잔가지들이 나부라져 있고, 산에는 큰 나무들도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다. ‘힌남노’가 이쪽은 얌전하게 지나간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이다. 이 쓰러진 나무들을 어이할꼬.
한참을 걸어 신일지에 다다랐다. 청송의 주산지를 닮았다. 경치 좋은 곳에 돗자리를 깔고 일행들은 준비해 온, 맛난 다과와 함께 이야기꽃을 피운다. 계란과 땅콩, 사과와 배, 커피와 음료 등이 소풍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즈넉한 저수지는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며 자기와 더불어 여기서 놀자고 유혹한다. 예서 멈출 순 없기에 애써 뿌리치고 다시 산길을 오른다.
운부암에 도착하니 ‘보화루’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라 한다. 젊은 날의 필체라 힘이 있고 기백이 넘쳐 보인다. 오는 길에 추사의 글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는 은해사 ‘성보 박물관’을 들려 추사의 필체를 보고 온 터라 익숙하고 반가운 느낌이다.
운부암 뒤편으로 올랐다. 여기가 오늘의 주인공인 느티나무가 있는 곳이다. 나무를 보자 충격적인 모습에 모두가 비명을 지른다. 몇몇은 여러 번 이 나무를 본 적이 있고, 이 나무로 글을 쓰기도 하고, 신문에 기고도 했단다. 전문가들이다. 오늘 일행 중 넷은 문학가고, 둘은 음악가로 각자 저마다의 시선으로 느티나무를 해석한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운부암은 신라 시대 때, 의상대사가 스님들의 수련 장소로 창건했다고 한다. 후일에는 성철 스님도 여기서 수행했다고 한다. 의상 대사가 전경 좋은 운부암 뒷산에 올랐다가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를 여기에 꽂았는데, 그게 자라서 이 나무가 되었다고 하니 수령이 무려 1,300여 년은 된 듯하다.
그 긴 세월이 말해주듯, 이 나무도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겠는가. 나무의 허리는 텅 비어있었고 반만 남은 등가죽만 흉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나뭇가지에는 아직도 이파리가 풍성한 걸 보니 살아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일부러 자기 몸통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가슴을 활짝 열고 있는데, 그 속은 텅텅 비어있다. 이 모습으로 어떻게 살아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보고도 믿을 수가 없다. 누군가는 불에 탔다가 간신히 살아났다고도 하고, 누군가는 벼락을 맞았다고도 한다.
기록이 없으니 상상에 맡길 뿐이다. 상상력이 더 풍부한 이들은 자식이 하도 속을 썩여 속이 다 뭉그러져 썩어 버렸다고도 한다. 하기야 100년도 살지 못하는 인간도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으며 살아가는가. 이 나무는 무려 천 년을 넘게 살았으니 이 정도도 기적이 아니겠는가.
누구나 삶을 되돌아보면 수많은 고비가 있었을 것이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부닥치기도 하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당하기도 한다. 때로는 자식들이 애를 썩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마음에 심한 흉터를 간직한 채 아직도 살아낸다. 크고 작은 차이일 뿐 고난의 연속이 우리네 삶인 듯하다.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가까운 곳에 있는 한 맛집을 찾았다.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지만, 이 집 비빔밥은 특별한 맛이 있다. 반찬들도 색깔도 컬러플하고 모양새도 이쁘다. 식사를 막 시작하려는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음악 소리가 들려온다. 두리번거리다 보니 은해사 앞 정원에서 음악과 함께 분수가 춤을 추고 있다. 감성적이고 슬픈 음악이 나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신나고 흥겨운 음악으로 바뀌어 간다.
우리네 인생도 슬픔과 기쁨이 뒤섞여 있지 않을까. 슬픔에 처하더라도 낙심하지 말고, 기쁨 가운데 있더라도 자만하지 말지니, 이 둘은 친구처럼 번갈아 나타날 것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