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에세이 9>
우리의 수호신 호랑이
심영희
호랑이를 그리다 보면 눈이 매력적이다. 빨간 눈에 노란 눈동자를 칠하면 호랑이 이빨이 확 살아난다. 사람도 눈을 보고 그 아이 참 총명하게 생겼다고 칭찬을 하기도 하고 어른 들의 눈을 보며 그 사람 아주 선하게 생겼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히 여성들은 눈에 쌍꺼풀이 있으면 다른 곳이 좀 미워도 그냥 얼굴이 예뻐 보인다.
이렇듯 호랑이 그림도 다른 곳을 다 칠해 놓아도 아직 눈에 색칠이 되어 있지 않으면 용맹스러운 호랑이가 아니다. 반대로 눈을 먼전 색칠해 놓으면 벌써 익살스러운 표정이 절반은 나타난다. 옛날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란 말이 있듯이 내 유년시절에도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또 호랑이 하면 제일 먼저 떠 오르는 게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학창시절 학생들이 무서워하던 ‘호랑이선생님’ 손에는 늘 회초리가 들려 있었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하며 체구가 큰 것이 특징이었다. 간혹 작은 체구의 야무진 선생님이 호랑이 노릇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호랑이선생님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체벌이 금지되어 있는 학교에서 회초리를 들고 다녔다가 학생들과 학부모들한테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들의 눈과 입이다.
유년시절 호랑이 말만 들어도 엄청 무서워하면서도 어른들이 하는 호랑이 얘기를 들으려고 귀를 세우곤 했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대관령국사성황당’으로 소풍을 간 적이 있는데 그때 성황당을 지키던 여인이 허벅지를 내보이며 호랑이에게 물린 자국이라고 말하던 것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군데군데 움푹 파인 곳을 보여주던 그 넓적다리가 정말 호랑이에게 물리거나 산신령에게 혼난 자국이었을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는 보은의 호랑이도 있고, “해님 달님” 이야기처럼 사람으로 변신하여 어머니를 잡아 먹고 그것도 모자라 두 오누이도 잡아 먹으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움으로 동아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 해가 된 동생과 동생이 밤에 무서울까 봐 무서운 밤을 택해 달이 된 오빠의 마음 씀씀이도 우리가 배워야 하는 일상의 교훈이다.
(60cm X 40cm)
호랑이는 십이지 동물 중에 세 번째 동물이다. 또 체구도 가장 크고 포악하고 사나운 맹수로 여겨왔다. 하지만 사악한 잡귀를 물리칠 수 있는 영물로 인식되어 호랑이는 단순히 무서운 동물이 아니라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으며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고 믿고 있다.
호랑이 해에 태어난 사람도 시(時)를 잘 타고 태어나야 한다. 부모님과 우리 남매 중 유일하게 호랑이 띠인 오빠는 이승을 떠날 때까지 좋은 빛을 보지 못했다. 무엇이든 하면 성공이란 단어가 없다. 그래서 돈도 많이 날리고 아버지께 꾸중도 많이 들었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께서는 오빠가 태어난 시를 탓하셨다. 호랑이는 캄캄한 밤에 태어나야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는데 막 아침 해가 솟아 오를 때 태어난 오빠는 해가 비춰 눈을 바로 뜰 수 없어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애태우셨다.
그래서인지 오빠는 호랑이처럼 용맹스럽지도 못하고 악하지도 못했다. 누구를 도와주는 보은형도 아니고, 사람으로 둔갑해 다른 사람을 해치는 호랑이처럼 계략을 꾸밀 줄은 더더욱 못하고 안 했다. 오빠는 “호랑이와 곶감” 이야기에 나오는 호랑이처럼 어수룩한 우둔형 호랑이였나 보다. 태어난 ‘시’란 정말 중요하며 일생을 좌우하는지도 모르겠다. 꾸중하시던 아버지도 애태우시던 어머니도 활동을 제대로 못하던 오빠도 고인이 된 지금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호랑이 이름이 들어간 속담을 살펴보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또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호랑이를 잡는다.”는 말과 같이 호랑이에 관련된 속담들이 저마다의 뜻을 간직한 채 전해오고 있다. 더 재미있는 속담은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 한다”라는 것이다.
지금이야 한집에 자식이 한두 명이지만 오륙십 년대에는 많은 남매가 한집에서 부대끼며 살았다. 이때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집을 비우시면 오빠나 언니가 대신 왕 노릇을 하며 동생들을 휘어잡았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돌아오시면 곧 토끼인 오빠 언니는 슬금슬금 부모님 앞에서 도망을 치곤 했다.
사회생활에서도 맨 꼭대기에 있는 사람이 사라지기를 은근히 바라는 토끼무리들이 많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또 매년 정초가 되면 벽사용 세화로 호랑이 그림을 대문에 붙이고 기둥이나 출입문 위에 호축삼재(虎祝三災), 용호오복(龍虎五福)이라는 방문을 써 붙여 귀신을 쫓고 액땜을 하고 복을 빌었다고 한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는데 이름을 남길만큼 큰 일을 못했으니 다른 말로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을 인용해 내 글과 그림이 오래도록 남을 수 있게 좋은 작품을 탄생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좋은 글을 쓰고 싶고 좋은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그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말이다. 그래도 손에 힘이 있는 한 노력을 하며 최선을 다해보련다.
(2020년 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