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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교회의 예배 원칙
최근 들어 개신교는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배갱신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주요 교단마다 그동안 드렸던 예배와는 사뭇 다른 시도들이 ‘갱신과 회복’이란 미명하에 확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1950년대부터 개신교와 가톨릭에서 실험적으로 반복해 온 갱신운동의 진화에 불과합니다. 사실 이런 현상은 경제 중심, 과학 중심으로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 위기감을 느낀 교회가 현대 신학을 앞세워 예배의 성경적 원칙을 수정하면서까지 교회를 지키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차 교회의 예배는 드리는 예배(worship)에서 보여주는 예배(show)로, 이성적이고 기별적인 예배에서 감정적이고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는 축제 예배로 바뀌었습니다. 요즈음 축제 예배는 더 쉽게 대중을 교회로 인도하고 현대인들이 더 쉽게 기독교에 적응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전도의 수단과 방법이 필요하다는 명목 하에 거의 모든 교회가 앞 다투어 도입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물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경축하고 송축하는 예배를 정죄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예배가 스스로의 영벌을 위하여 금송아지 주변을 맴돌며 회개와 순종을 거부한 채 죄를 경축하는 위조된 축제 예배는 아닌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현대신학이 추구하는 방향과 세계교회연합운동은 안타깝게도 교회들로 하여금 기독교 기별의 본질을 반신반의하도록 이끌었고 복음의 본질과 교회의 존재 목적에 대한 확신을 잃도록 했습니다. 동시에 범 교단적 차원에서 일어난 ‘오순절 운동’은 교회 안에 방언, 신유, 축귀 등과 같은 또 다른 동요를 일으켰습니다. 이런 기묘한 일들은 마치 하나님의 실존성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여주었으나 오히려 신비주의와 사이비기독교운동들이 대거 출연하는 길을 열어주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는 이러한 사회적 변화와 범 기독교 운동에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요? 재림교회의 예배를 평생 연구해온 홈(Holmes) 박사는 “이 기간에 재림교회는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기독교의 모습을 반석처럼 굳건히 보여주었다. 재림교회는 과도한 사회적 변화뿐만 아니라 예배 갱신운동에도 전혀 동요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재림교회는 견고하게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재림교회가 견지하고 있는 성경적 예배 원칙은 무엇일까요?
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예배(worship)란 단어는 옛 영어 “worthship”에서 유래되었다. Worship은 두 단어 worth(가치)와 ship(신분)의 합성어로 그 의미는 “신분에 합당한 가치를 돌려드리다”, “존경을 보내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예배란 하나님의 신분에 합당한 영광과 가치를 드리는 행위이다.
1. 성경은 왜 사람이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고 하였습니까?
①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② 출 20: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③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④ 시 116:13~17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6 여호와여 나는 진실로 주의 종이요 주의 여종의 아들 곧 주의 종이라 주께서 나의 결박을 푸셨나이다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⑤ 신 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답/ 성경은 참된 경배의 대상으로 오직 ( )와 ( )이신 여호와 하나님(출 20:11; 신 5:15) 한 분만을 유일하게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존경과 합당한 경배를 받으실 이유는 우리의 ( )시오 ( )이시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표현은 공중 예배를 지칭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시 79:6; 116:17; 렘 10:25; 습 3:9)”(성경주석, 창 4:26) 예컨대 구원을 표상하는 홍해 사건 직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구원을 송축하고 경축하였던 것처럼, 또한 유대인들이 70년 만에 포로생활에서 회복되었을 때 가장 먼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였던 것처럼, 예배는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의 최우선 의무요 본분이다(전 12:13). 그러므로 인간은 예배자로 지으신 그 분 앞에 설 때 궁극적으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재림교회 예배의 특징
재림교회가 사회적 변화와 혼란스런 갱신 운동의 여파 속에서도 견고히 설 수 있었던 이유는 (1) 성경과 복음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2) 화잇을 통해 주신 영감의 기별 속에 남겨두신 강력한 감화력 때문이었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를 황폐화시킨 현대신학과 계시에 근거한 세계교회연합운동과 오순절운동과는 달리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굳게 신뢰하는 신앙으로 성경의 기별을 선포하는데 주력하였기 때문이다. 노발 피즈가 “예배는 경배자의 신학을 반영한다”고 말한 것처럼 재림교회는 재림교회 신앙이 예배에 표현되어 있다.
1. 재림교회의 예배의 기초가 되는 두 개의 성경절은 무엇인가?
① 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9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10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② 계 14:6~11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8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9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10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11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답/ 위의 두 성경절은 재림교회의 존재의 이유가 되는 기본 성구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두가 우리뿐 아니라 온 세상을 예배로 초청하는 기별이라는 것이다.
2. 살아있는 재림교회 신앙의 어떤 신경계가 재림교회 예배에서 느껴져야 하는가?
① 계 14:7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출 20:8~11)
② 히 8:1~2 이제 하는 말의 중요한 것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라 그가 하늘에서 위엄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2 성소와 참 장막에 부리는 자라 이 장막은 주께서 베푸신 것이요 사람이 한 것이 아니니라
③ 히 10: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답/ 재림교회의 예배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하는 차별적인 세 가지 신앙이 있는데 그것은 (1)_________ (2) 그리스도의 __________ (3) 그리고 ________이다. 우리의 예배적 사명은 _________에 그분의 _____________와 약속하신 ______을 선포하는 것이다. 재림교회는 안식일 아침에 하늘성소에서 중보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예전(禮典-예식을 집행하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다. 재림성도는 다른 어떤 기독교인들보다도 이 사실을 더 잘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경배자의 초점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극단적인 화려함과 그에 휩쓸린 교회의 예전적 순서에 빼앗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재림성도는 십자가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희생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그분의 봉사에 대한 감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을 경험한다. 따라서 재림교회는 예배에서 재림신앙을 분명히 반영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배할 때 말하고 행하는 것은 시온산에서 있을 최종적인 경배를 미리 맛보는 것이다.
3. 재림교회 예배의 초점은 누가 되어야 하는가?
① 계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② 계 5:13~14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답/ 재림교회의 예배는 계시록 4장과 5장에 나오는 장엄한 하늘예배를 미리 반영해야 한다. 재림교회의 예배는 따라서 _________과 그의 ______에게 최고의 가치를 돌리고 그분들의 품성과 위대한 사역을 기억하고 감사하고 송축하여야 한다. 예배의 초점은 교회의 인간애, 연합, 거룩함, 혹은 사명을 찬양하는 것이나. 혹은 사람이나 순서나 화려함이 아니라 바로 그분들이다. 인간의 위치는 계 5:14에 지적된 바대로 “엎디어 경배하는 것이다”(땅에 입을 맞추고 절하는 것)
재림교회 예배의 삼원칙
1. 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경축하는 것은 예배의 본질이다. 홍해를 건너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경축했다(출 15장).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늘 유리바닷가에서 어린양의 희생을 통한 구원을 영원히 경축할 것이다(계 7장). 누구도 하나님의 구원과 승리를 경축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이 잠잠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신대로 “돌들이 소리지”(눅 19:40)를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마음가운데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계시면, 아무도 거룩한 경축의 정신을 억누를 수 없을 것이다. 특별히 웃사의 운명과 다윗의 경축은 예배의 본질에 대한 좋은 예이다. 왜 웃사의 행동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지 못하였는가?(삼하 6:6~7) 웃사의 잘못은 무엇이었는가? 반면에 다윗의 경망스럽고 불경스런 행동은 왜 용납되었는가? 웃사는 거룩한 십계명을 담은 언약궤를 _________의 도움 없이 접근하였다. 오직 대제사장만 그 일을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궁극적인 불경은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림의 구원을 통하기보다는 우리 자신의 의에 기초하여 하나님께 접근할 가치가 우리에게 있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윗처럼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분의 구원을 기뻐할 때, 아무도 경축하고자 하는 심령을 질식시킬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결점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회개한 죄인을 받아들이시는 분이심을 안다면, 우리는 그분의 은혜의 보좌 앞에서 즐거워할 수 있다.
2. ___________________________
예배에는 반드시 경축을 포함해야 하지만 또한 경축 이외의 것도 포함되어야 한다. 일부교회들이 경축하는 것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 나머지_____이나____이 전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게 될 수도 있다. 성경은 예배의 균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spirit)과 진정(진리 truth)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 4:23). 예수께서는 또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되는 계명이요(마 22:37~38)라고 하심으로 우리의 마음이 머리를 앞질러 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또한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무시하는 것을 원하시지도 않는다. 예배를 계명 준수의 대용물로 사용하지 않는 한, 예수님을 위하여 열렬한 공중 찬양을 표현하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여는 것에는 전혀 잘못된 것이 없다. 우리는 진리 안에서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서 주님을 경배하는 생명력 넘치는 균형을 잘 유지하여야 한다. ________에 대한 감사와 __________ 삶이 늘 균형을 이루어야 하듯이 예배도 어느 한 쪽으로 너무 치우치지 말 것이다. 이웃집 사람이 불을 잘못 조절하여 그들의 집을 태워버렸다고 해서 이것이 정반대 극단으로 가서 얼어 죽어야 한다는 의미일 수 없기 때문이다. 예배는 언제나 경축과 묵상 그리고 헌신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재림교회는 확고한 예배의 기초를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기별과 사명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재림교회의 예배는 확고하면서도 단순한 기별과 하나님 그리고 모이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어야지 세부적이고 화려한 순서나 진행자가 조명을 받아서는 안 된다. 복음의 열정이 예배를 위한 각종 장식으로 대치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하지만 재림교회는 다른 예배 형태를 가진 사람들을 정죄하고 싶은 유혹에 주의해야만 한다. 다음과 이유 때문에 재림교회는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다. (1) 우리는 각자 다른 ____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감정적으로 구원에 대하여 반응하는 반면에 어떤 이들은 갈보리의 구원에 감사하면서도 조용하게 반응한다. 이것을 기억해야 한다. 단지 한 남자가 그의 손으로 박수를 즐겨 치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주님의 기쁨을 알지 못함을 뜻하지 않는다. (2) 다른 중요한 요소는 ______ 유산 때문이다. 흑인들의 예배가 백인들의 예배보다 더 불경스럽다고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문화가 다른 문화보다 원래부터 나을 수 없기 때문이다. (3) 마지막 이유는 우리가 처해 있는 _______ 때문이다. 시편이 그 좋은 예일 것이다. 시편에는 철저히 분노한 내용이 있는가 하면, 조용하고 묵상에 잠긴 내용도 있다. 뿐만 아니라 시편 149편과 150편은 환희에 넘치는 경축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모든 예배는 경축과 묵상 그리고 헌신의 균형진 혼합을 필요로 한다.
토의 질문
1. 재림 교회는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가 도입하고 있는 축제 예배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취하여야 하는가?
“인디애나 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그대들이 묘사한 것과 같은 일들이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 직전에 있을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나에게 보여 주셨다. 온갖 기괴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큰 소리로 외치며 드럼과 요란한 음악소리가 들리며 춤추는 광경을 재연할 것이다. 이지적인 인간의 감각들은 혼란을 일으켜 올바른 결정들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런데 저들은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성령의 역사라고 부른다.”(2기별, 36)
“성령께서는 결코 잡음의 광태와 같은 그러한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이것은 이 때를 위한 순결하고 성실하고 고상하고 고결하며 성화시키는 진리를 무력하게 하기 위해 교묘한 방법을 은폐시키려는 사단의 발명품이다. 지난 정월에 나에게 보여진 바 우리 장막 집회에 있을 사업을 하기 위하여 그와 같이 악기들을 사용함으로 난잡한 음악으로써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좋다. 이 때를 위한 진리는 영혼들을 회개시키는 사업에 있어서 이런 종류의 일들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잡음의 광태는 감각들에 충격을 주고 만약 올바로 행하였다면 축복이 되었을 것을 악용하게 된다. 사단을 대리하는 권세들은 북새통을 일으키기 위하여 고막을 찢을 듯한 괴상한 소리와 온갖 잡음들로 혼합되며 이것을 가리켜 성령의 역사라고 말한다. 장막 집회가 끝났을 때에 거룩한 진리를 증거함으로 마땅히 이루어야 하고 또한 능히 이룰 수 있었던 선한 과업을 성취하지 못하게 된다. 소위 부흥집회인 줄 알고 참여했던 자들은 마치 저들 자신이 정처 없이 표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감상을 받게 된다. 저들은 과거를 알고 있었던 바 성경의 원칙들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다. 이런 종류의 예배를 결코 권장해서는 안 된다. 1844년의 실망기 직후에 있었던 것과 똑 같은 감화력이 침투하게 된다. 또한 그런 집회에는 그 전과 똑같은 양상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흥분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능력인 줄로 생각한 거짓된 능력에 의해서 행동을 하게 되었다.” (2기별, 36-37)
“사단은 그러한 음악의 괴음(怪音)과 혼란 속에서 역사한다. 음악은 올바로 사용하기만 한다면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사단은 그러한 음악의 효과를 뱀의 독한 이빨처럼 사용한다. 과거 역사에 나타났던 그러한 것들이 미래에도 나타날 것이다. 사단은 음악이 처리되는 방법 여하에 따라서 사람을 유혹하는 올무로 만들어 버린다.... 새로운 것을 창의적으로 구상해 내려는 근질근질한 욕망은 이상한 교리들을 빚어내는 결과를 가져오며 만약 저들이 주님께서 주신 진리에 대하여 처음부터 굳은 신뢰심을 보였다면 훌륭한 능력을 가질 수 있는 자들의 감화력을 크게 파괴한다.”(2기별, 37-38)
2. 손을 들고 기도하는 것과 손을 모으고 눈을 감고 기도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성경적인가?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막 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