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체험(10회) 덕유산 일원 후기
- 덕유산의 숲 처녀 -
덕유산의 숲 처녀가 샛노란 가을 옷으로 갈아입고
구천 계곡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란 은행나무 손을 잡고 산에 들어서니
붉은 옷의 단풍이 가을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온 산을 뒤덮은 오색 자연 향연에 숨을 멈추고
천년 고찰 백련사 앞에 섰을 때
굵은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모처럼의 가을비에 덕유산의 숲 처녀가
연홍빛 옷을 벗기 시작했다.
빗속에 나목이 추위에 떨며 낙엽 춤을 추면서
심산유곡의 숲 잔치가 시작되었다.
나뭇가지가 돌려나서 층을 이루는 층층나무
대패를 만드는 대팻집나무
잎으로 떡을 갈아 싸는 떡갈나무
짚신바닥이 헤어졌을 때 깔았던 신갈나무
고추 잎을 닮은 고추나무
참나무 중에 잎이 가장 작은 잎을 가진 졸참나무
꽃이 밤에 보면 빛을 발하는 것 같다는 야광나무
꽃 모양이 튤립 꽃과 비슷하다는 튤립나무
꽃 모양이 병과 같다하여 병꽃나무
열매가 작은 아기 배 모양을 닮은 아그배나무
잎이나 가지에서 생강 냄새가 나는 생강나무
가지를 꺾어서 물속에 넣으면 푸른 물이 난다하여 물푸레나무
열매가 달다는 다래나무
열매가 말발굽 모양을 한다는 말발도리
나무속이 황색이 난다는 황백나무
붉은 수피의 주(朱)목
껍질을 벗겨 삿자리 등으로 이용한 피(皮)나무
서(西)목에서 변한 서어나무
수액이 뼈에 좋다는 골리수(骨利樹)가 변한 고로쇠나무
까치를 닮았다는 까치 박달나무
고추 잎을 닮은 고추나무
비목, 쪽동백, 모감주, 물박달, 낙엽송(일본잎갈), 보리수,
산딸, 당단풍, 개벚, 느릅, 팥배, 호랑버들, 전나무, 노린재,
다릅, 함박꽃, 개회, 거제수, 개옻나무 등이 단풍잔치를 끝내면
겨울을 준비할 것이다.
낙엽이 썩으면
숲의 자양분이 되어 생명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고
향적봉에 올라 500년 풍상을 인고한 주목나무가 보고 싶었지만
구천 계곡의 가을비와 되살아난 초록의 바위이끼와
불어난 물소리와 흩날리는 낙엽위에서 마신
생탁 때문에 산에 오르는 것을 포기했다.
왜 많은 사람들은 산에 급히 오르려고만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며
내가 볼 수 있는 만큼만 여유롭게 보고 가고 싶었다.
도시에 미쳐 있는 내가
비가 온다는 예보도 무시하고
오색 우산을 들고 1614미터의 향적봉에 오른다는 생각을 왜 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산을 내려와 입구에 다시 서니
처음 우리를 맞이하던 그 은행나무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가을비 맞은 애련한 모습으로 우리 손을 잡으며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약속하고 헤어지자며
노란 손수건 잎에 비 눈물을 적시고 있었다.
( 2006.10.23. )여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