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 추워진 어제의 날씨에 정녕 계절은 나의 사랑 가을을 건너뛸 것인가? 앞으로 이 추위에 오름 어떻게 다니지 내심
걱정했었다. 우리 21기에는 날씨요정님 아니 날씨장군님이 계시는 게 분명하다. 새벽까지 비가 오다가도 그치고 잔뜩 흐리다가도 해가 나고 오늘은 천고마비 완전 가을이잖아.
오름을 걷는 시간에 또 어떤 이야기와 만나게 될까 날씨만큼 들뜬 기분으로 평화로를 내달려 대정향교로 향했다.
향교 - 성균관과 더불어 조선시대 학생을 가르쳐 수많은 인재를 양성하고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폐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립교육기관
제주에는 3개의 향교가 있다. 제주향교(제주목), 정의향교(정의현), 대정향교(대정현) 중 우리가 방문할 곳은 대정향교이다
대정향교는 1420년 대정성 내 북쪽에 처음 건립된 후 1653년 지금의 단산(바구미오름) 기슭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성현들의 위폐를 모시는 곳이라 '겸손함의 마음으로 자세를 낮추어라'라는 의미로 향교의 모든 출입문의 높이는 낮다. 행여 모두들 제 차례에 머리가 부딪힐까 낮은 자세로 겸손하게 둘러본다.
북으로는 단산과 산방산이 남으로는 바다가 병풍처럼 멋진 풍광이 펼쳐졌다. 정원에는 삼강오륜을 의미하는 팽나무 세 그루, 소나무 다섯 그루가 있다.
가장 높은 지대에는 향교의 제일 중요한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고 그 아래에는 학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이 있다.
양 옆으로는 학생의 기숙사였던 동재와 서재가 위치한다.
(현판의 진본은 추사기념관에 보관 중)
동재에 걸려있는 '의문당' 현판은 당시 대정에 유배돼있던 추사 김정희의 글씨다. '의문당'은 무릇 학문에 뜻있는 자는 모든 사물에 의문을 품어야 한다' 추사의 깊은 뜻이 담겨 있고
8년 6개월의 유배 중 이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추사의 '세한도'에 나오는 소나무의 모델이 이 대정향교의 소나무라고 알려져 있기도 하다.
평생에 추사는 열개의 벼루가 구멍이 나고 천 개의 붓이 몽당이 되었다는데 나 같은 학생은 사계절 변하는 풍광에 한 눈 파느라 분명 추사 선생께 꾸지람을 들었을 터 쓸데없는 상상을 하며 피식 웃다 출구에서 추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담아 낮은 자세로 대정향교를 빠져나왔다.
향교 바로 옆으로는 세미물이라는 마을의 샘물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상수도 시스템이 발달되지 않아 물이 아주 귀했던 제주에는 작지만 아주 귀중한 세미물이 마을마다 있다. (작다는 의미의 조리물이라고도 함.) 첫째 칸은 먹는 물 둘째 칸은 먹는 것들을 씻고 셋째 칸은 설거지를 하거나 몸을 씻었고 그 밑으로는 빨래를 하는 용도로 귀한 물을 깨끗하게 쓰는 암묵적인 룰이었다. 그리고 세미물 옆에는 뱀이 싫어하는 앵두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독사로부터 식수를 지키려는 지혜가 엿보인다.
보리장나무 꽃 향에 미소가 지어지고 국화과인 감국의 노란 물결을 뽐내려고 준비 중이라 가는 길에도 심심할 겨를이 없다.
단산(바구미오름, 바굼지오름) 표고 158m 비고 113m
날개를 편 박쥐의 모습을 닮았다 하여 바구미오름이다. 바구미는 박쥐의 옛말, 바구미를 바구니로 잘못 옮겨져서 바굼지 오름으로 변하였고 일제강점기에 소쿠리 '단' 자를 써서 단산이 되었다. 단산은 지질학적으로는 대부분 송이로 이루어진 오름들과 달리 화산 폭발 당시 물과 만나서 화산재가 생성되고 그 재가 굳어져서 켜켜이 쌓인 응회암으로 이루어진 오름이다. 높이가 높고 화구는 작아 이를 응회구라고 하며 80만 년 전 생성된 가장 오래된 수성화산이다. 겉으로는 단단해 보이지만 화산재가 쌓인 것이라 작은 충격에도 잘 부서지는 특징이 있어서 오를 때 주의가 필요하다.
(수성화산 - 도두봉 별도봉 알오름 냉이술 고내봉 입산동 당산봉 수월봉 쇠머리오름 베릿네오름 망밭 삼매봉 제지기오름 송악산 두산봉 성산일출봉 군산 석은다리 용머리 단산 금산 매오름 등 )
멀리서 바라본 바구미오름은 여느 오름의 부드러운 능선과 달리 뾰족 뾰족 험상궂게 생겨서 오르기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널찍널찍한 바위들이 있고 약간은 높은 바위들은 밧줄이 있어서 생각보다 오르기 어렵지 않았다. 다만 양 옆으로 낭떠러지가 있어서 약간 불안했으나 조금만 올라도 바다와 섬들의 풍경이 너무 근사해 탄성이 저절로 나왔다.
예부터 모슬포는 모래가 많은 마을이라 모살캐, 살기 너무 힘들어서 못살캐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살기 팍팍한 동네였다고 한다. 안성, 보성, 인성리 큰 마을이었고 당쟁에서 밀린 이들의 최남단 유배지이자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어 삼족을 멸하는 엄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던 마을, 일제강점기에는 강제로 동원되어 군용 비행장에 무기 격납고의 알뜨르 비행장과 수많은 진지동굴이 지어졌고, 4.3에는 수많은 양민들이 학살 장소였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육군제1훈련소가 들어선 곳 단산에 오르니 전쟁과 피의 아픈 역사가 한눈에 보인다.
얼마나 고단한 삶이었을지 가늠조차 힘들다.
단단한 바위들을 지나 갑자기 아늑한 대나무숲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대나무도 종류가 많은데 제주에서 흔히 보이는 수리대다. 수리대밭을 지나니 정상이다.
신기한 것은 오를 때마다 최애 오름이 바뀐다는 것인데 그전에 올랐던 오름의 모습들은 다 잊고 오늘은 단연 단산이 내 최애 오름이 되었다. 교수님께서 오름을 하나만 추천할 수 없는 이유가 이해가 된다.
북쪽으로 한라산과 드넒은 알록달록 평야가 펼쳐져있고 산방산을 옆으로 용머리 형제섬 가파도 마라도 송악산에 바다에 반짝이는 윤슬까지 눈이 부시는 풍경이다.
대정읍에는 오름이 많지 않아서 곶자왈이 없고 돌도 없어서 밭담이 없고 농사도 잘 된다고 한다. 어떻게 이 좁은 제주의 지형이 이렇게 다 다를 수가 있는지 봐도 봐도 신기하다.
(단산 따라 삼만리 시간)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 하고 나를 대적할 왕이 어디서 나올고 걱정이 되어 고종달 (호종단)이라는 술사를 탐라에 보낸다. 평지돌출형인 산방산에서 왕이 날까 위협을 느꼈고 그 뒤 용머리가 태평양으로 비상할 것처럼 보여서 칼로 세동강을 냈고 용머리는 일주일 동안 엉엉 울며 피를 뿜어 냈다는데 그래서 제주에 인재가 없다는 믿거나 말거나 전설 따라 삼만리 띠리리
간식타임을 가지고 작은 음악회도 가졌다. 갑자기 무슨 복이 터져서 올해 이렇게 즐거운 시간들을 가지며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는지 감사하다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반대쪽 절벽이 있는 방향으로 나무계단이 쭉 나있는데 그 계단이 바람과 습기로 많이 부식되 있기 때문에 하산 할 때도 끝까지 다리의 힘과 마음을 놓으면 안된다.
이번 단산에서는 오름의 지형, 지질적, 경관적, 생태적 가치는 물론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인문학적인 가치 또한 가득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특히 오름과 자연이 주는 위로와 치유의 가치를 또 한 번 느끼는 시간이었다. 옛사람들의 고달픔이 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왔고 오름을 오르면서 펼쳐진 눈부신 풍경에 몹시도 위로가 되었다. 아마 그네들도 이 단산에 올라 모든것을 품을 것 같은 한라산을 바라보고 바다를 보며 눈물을 훔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엉덩이 툭툭 털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을까?
훗날 우리 아이들도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기를 이곳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작은 바람을 가져본다.
첫댓글 아주 세세하게 복습하면서, 그 때의 마음도 흠뻑 즐길수 있음에 감사해요~~
너무하시네요...
정말 너무하시네요...
다음 보고서 쓰실 분에 대한 배려가 1도 없이 꼼꼼하고 재밌고 유려하게 내려쓰셨어요.
매우매우 너무합니다~~♡
이렇게 쓰시면 복습이 자동100% 되버리잖아요~♡
까마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갈때 올라 온 후기~~맞어 지난주 향교에서 단산에서 이런 수업을 했지~~빠짐없이 일목요연하게 ~~그날의 수업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지지난 주에 지혜님 없어서 아쉬웠다는ㅎ
역쉬 요망진 지혜님^^
글도 사진도 참 므찌네요..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당 😊 🙏 😊
오늘은 한라산 영실에서
단산을 바라보았습니다.
짙푸른 하늘을 보면서 그날의 멋진
풍경을 떠올렸는데
사진으로 다시 보니 새삼 근사합니다.
후기를 보니 오늘의 피곤함이 삭
사라져버립니다.
여러분의 후기는 제게도 위로입니다,
수고하셨어요~^^
멋진후기..잘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