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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너 있다
(삿 6:25-32)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사기 6장 말씀 중심으로 <내 안에 너 있다> 라는 제목의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연말이 되어서 일 년 동안 방영 되었던 TV 드라마들의 내용들이 다시 마치 복습하듯이 회고되는 그런 순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TV드라마 명대사’라고 하는 제목으로 인상 깊은 대사들을 모아놓은 장면을 방송하는 것을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아주 인상 깊은 것이 말씀을 사랑하는 여인을 향해서 한 젊은 남자가 고백하는 가운데 '내 안에 너 있다' 라는 그러한 말을 한 것을 명대사 모음에 포함시켜 방송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내 안에 너 있다'
내가 널 사랑한다는 말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지요.
오늘 이 말을 우리가 좀 비유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기드온의 이야기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받기를 원합니다.
자, 하나님께서 이제 기드온에게 명령하십니다.
칠 년 동안 미디안의 압제를 상징해서 인지 모르겠습니다마는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의 집에 있던 칠 년 된 수소를 잡아 제단에 올려놓고 제사를 드리라.
근데 그러기 전에 집안에 있는 바알 제단을 다 부숴 버리고 아세라 여신상 그 우상을 다 도끼로 찍어 없애버려라 하는 명령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열 명의 종들을 데리고 기드온이 바알 신상과 아세라 신상과 그리고 제단을 다 훼파하게 되면서 밤에 수행을 합니다.
밤에 수행한 것은 아버지 가문과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했다 라고 하는 이 두렵다고 하는 말은 무엇을 두려워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가 읽은 부분에 보면 그 사람들이 죽이려고 달려들지 않습니까? 이 정도로 강하게 바알 숭배에 전념하고 있었다는 것이에요. 바알을 사랑했어요. 아세라를 사랑했습니다. 그 우상들을 사랑한 것이에요. 아~ 대단하지요?
그래서 밤에 한 이유는 그 사람들의 어떤 대적이 무섭기도 했겠지마는 그 사람들의 대적과 훼방을 통해서 바알을 훼파하고 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할 것 같으니까 바알을 훼파하기 위해서라도 아마 밤에 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밤에 행했는데 이 밤에 결국은 기드온이 행한 것이 이제 미디안의 어떤 학대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가 실행되는데 자기 집안의 우상을 먼저 제거해버렸다 라고 기록되어 있는 거예요.
이게 뭘 의미하는 거겠습니까?
이게 바로 내 안에 너 있다는 것이에요.
뭐가 있다는 것이겠습니까?
이스라엘이라는 나라 전체가 미디안의 학대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 이 환경적인 어떤 고통 그 이유가 어디 있냐 이거에요.
내 안에 있다는 겁니다. 집안에서 바알을 훼파한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우리는 우리 환경의 문제, 우리 삶의 문제를 그 삶의 문제 자체에서 해결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환경에서 문제라고 여겨지는 그 지점을 파악하고 거기서 해결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이에요. 내 안에 있다는 거예요.
내 안에 너 있다. 그 너가 뭡니까?
삶의 문제, 환경의 문제, 내 외부의 문제, 어려움, 곤란함, 고통스러움 이 모든 것들의 이유가 어디 있느냐?
내 안에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미디안의 학대 그것을 제거하시는 단초로 기드온을 선택하시는데 기드온에게 뭘 시키느냐면 기드온 집안의 바알을 제거하기를 원하시는 겁니다.
이것은 곧 뭘 말합니까?
기드온 마음 속에 있는 바알 숭배의 뿌리를 없애버리는 것이에요.
내 속에 있는 바알 숭배의 뿌리를 없앤다고 하는 것을 겉으로 드러내는 것이에요. 결국 내 안에 있는 바알 숭배와 아세라 목상을 찍어내는 것이지요.
내 안에 있다는 게 뭡니까?
이게 결국 부자 되기를 원하는 거, 이 마음을 없애는 것이 환경적으로 주어지는 어려움의 열쇠라는 겁니다.
왜? 우리 삶의 환경의 열쇠는 하나님이 쥐고 계시니까요. 그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으면 결코 문제가 해결될 수가 없지요.
얼마 전에 그런 짧은 시간 동안에 상담이라고 하기에는 좀 너무 짧지마는 그러나 어쨌든 제가 상담을 하게 됐습니다.
집을 샀습니다. 근데 먼저 있던 집이 모기지로 세상 산 집이라서 이 집이 팔려야 여기에 들어갔던 다운페이를 이 쪽에 할 수가 있습니다. 근데 이 집이 너무 오랜 기간 동안 안 팔리는 겁니다. 그래서 모기지에 대한 이자와 상환해야 되는 이런 돈들이 이중으로 돈이 나갑니다. 너무 오랜 기간 동안 그러니까 너무 너무 힘들어지지요. 경제적인 수치상으로 힘든 점도 있지만 심리적으로 압박감을 갖게 됩니다.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야 되느냐? 복덕방에 알아보고 뭐 열심히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그것 가지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이쪽 집을 아직 팔지도 않았는데 새로운 집을 사게 될 때에 마음가짐을 회상해내서 하나님 앞에서 그때의 마음가짐이 바른가 그른가를 따져보고 거기서부터 하나님 앞에서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을 열쇠로 삼으라고 그렇게 말씀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모든 문제가 하나님이 키를 갖고 있는 문제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 모든 문제의 키 어디에 있습니까?
내 안에 있다는 거예요. 그 키를 가지신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있을 때 문제는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내 안을 정비해야 되는 거예요. 분명히 하나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실 수 없을 만큼 나는 풍요와 다산에 대한 애착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을 거라는 겁니다.
뭐 딴 거 없어요. 하나님 말고 뭐 믿냐? 풍요와 다산 미든 거예요. 양단간이다. 딴 거 안 믿어요.
명에요? 별개 없어요. 여러분.. 명예? 그것도 결국 다산 아닙니까? 숫자상 많은 사람의 인기를 모으겠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뭐 별개 있겠습니까? 그냥 내가 좋아서 무슨 일을 했는데 명예가 주어지는 거 그런 거면 모르겠는데 요즘 보니까 뭐 방송국마다 연기대상 연예대상하면서 상이 난리야. 그런 상 받고 울고 난리가 납니다. 그거 위해서 사는 거예요. 별거 아니죠.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인정을 받고 이거 다산이지요. 돈 많이 벌고 많은 사람이 인정해줘야 돈이 많이 벌리니까 다 연결이 되어 있어서 풍요와 다산 이외에 다른 것을 원하는 게 실제 없어요. 뭐 그렇게 대단한 게 없어요. 특별히 광적으로 어떤 특별한 분야에 대해서 빠져 있는 사람들, 어느 분야에 대해서 미친 사람들 그런 사람 말고는 뭐 별거 없지요. 다 잘 살기를 원하고 많은 사람의 주목을 받기를 원하는 것이지요.
자, 이것이 있는 한 절대로 미디안의 학대와 같은 환경적 어려움은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물론 거꾸로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마음에 잘 섬기면 그런 환경적 어려움이 없느냐? 글쎄요. 그렇지는 않겠습니다만 문제는 환경적 어려움을 절대로 어려움이라고 느끼게 되지 않을 것은 제가 예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으로 가득 찬 사람에게는 분명히 세상 기준으로 환난이라는 환경이 임해도 그것이 고통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것이에요.
오늘 보면 참으로 웃기기 그지 없어요.
자, 밤에 바알을 훼파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바알이 훼파되어 있거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몰려와서 기드온을 잡아 죽이려고 합니다. 이렇게 까지 거꾸로 되는 거예요.
이 이스라엘 선민 공동체 결국 교회가 아닙니까? 그 구악시대의 교회에요. 교회 안에서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바알 신을 없앴다고 해서 그 구약의 교회 안에서 교인들이 풍요와 다산의 우상을 없앤 사람을 죽이려고 합니다. 기드온을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구약의 교회 전체가 다 잘 사는 게 좋은 거고, 많은 숫자가 좋은 거라고 하는 이 생각에 감염이 되어서 바알 우상을 없애버린 기드온을 죽이려고 합니다.
너무 재미있는 건 여러분, 이렇게 주객이 전도된 상황도 웃기기 한량 없는 이야기입니다마는 더 웃기는 건 여러분,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자기 아들 기드온을 죽이려고 온 사람들에게 하는 말을 가만히 생각하면 정말 기가 막힙니다.
뭐라고 얘기합니까?
31절.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바알이 진짜 신일진대 그 제단을 훼파한 기드온에 대해서 바알 스스로가 대적할 테니까 너희는 염려하지 마라.
야~ 이렇게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자기 집안에 바알 제단을 만들어 놓고 아세라 신상을 세워놨다는 겁니다. 여러분..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렇게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이걸 아는 사람이 이럴 수가 있어요? 바알이 진짜 신일진대 자기 제단을 훼파했으니까 자기 스스로 대적하겠지 너희가 나서냐?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이걸 알아요.
근데 왜 바알 제단을 자기 집안에 만들어 놨을까요?
이게 바로 대중의 힘입니다. 김대중씨의 힘이라는 게 아니라 대중(大衆) - 무리, 무리의 힘이에요. 이성적으로 조그마한 자극을 줘도 깨달을 수 있을 어리석은 일들을 무리가 하게 되면 같이 따라 하는 거예요.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여러분..
한국 교회가 이러한 어리석음 가운데 빠져 있지 않은가 참으로 두렵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돌아봐야 돼요. 이 대중, 무리 이 힘. 모든 사람의 냉정한 이성적인 자각을 마비시켜버리는 거예요. 사람이 많이 모이면 잘 되는 것이고 그것이 진리고 그것이 법이고..
얼마든지 자기 아들이 죽게 된 상황이 되자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아들이 죽느냐 사느냐 하는 기로에 딱 처하게 되니까 바짝 정신이 들자마자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바일이 진짜 신이냐?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자기의 제단을 훼파한 내 아들을 맞서 죽이든지 대적할 것이지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언제부터 너희가 바알을 위해 그렇게 친하게 바알을 제대로 섬겼냐?”따지는 거예요.
아니,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사람이 집안에 바알 제단을 만들었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한 거예요.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 바알 제단을 허물었다고 그 사람을 죽이려고 해요. 원래 율법에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우상을 숭배하면 돌로 쳐 죽이라고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근데 바알 우상을 제거했다고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거예요. 이렇게까지 변할 수 있을까? 완전히 업 사이드 다운된 겁니다. 그러니까 물구나무를 서 버린 거에요. 이 구약의 선민 공동체 교회가 물구나무서기를 서 버렸어요.
우리의 현실 교회는 어떨까요?
혹시 물구나무선 거 아닐까요? 풍요와 다산이 신이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국면도 있지 않습니까? 많은 게 진리 아닙니까?
이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요.
그래서 얘기합니다.
목사님들끼리 서로 말씀을 갖고 싸우는 걸 전 봤어요. 두 분이서 대면해서 싸운 게 아니라 한 분이 설교할 때 내가 들은 그 이야기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그야말로 치시더라구요.
그 내용이 뭐냐? 한 목사님이‘가난은 불편한 것이다. 불행한 것이 아니다.’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아주 유명한 목사님들이세요. 그러니까 다른 목사님이 뭐라고 얘기하냐면 ‘다 가난이 불편한 것 정도라고 말하는 것은 진짜 가난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가난은 불행이다.’이렇게 치고받는 거예요.
저는 얘기합니다.
가난은 불편한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닙니다. 가난은 하나님께서 그 상태가 최선이라 생각해서 주시는 최상의 복입니다.
그게 왜 불편합니까? 뭔가 돈으로 하고 싶은 욕망이 강하니까 그걸 못할 때 불편하다고 느끼는 겁니다. 돈이 있어서 자가용을 샀으면 차 타고 갈 수 있는데 안 그러면 전철역까지 가서 갈아타야 되니까 불편하다 그 정도로 보는 겁니다.
그럼 불행하다는 건 뭐냐?
정말 찌들 게 가난했던 모양이야. 그 목사님이. 그러니까 그 가난 속에서 정말 불행함을 느낀 거예요. 이건 저주라고 느낀 겁니다. 가난 자체가.. 그것이 다...
요새 교회에서 부흥 부흥 하는 것과 연결이 되는 같은 가치관을 말하는 거예요. 풍요와 다산은 붙어 다닙니다. 교인이 많아지면 헌금도 많아지고 헌금 많아지면 예배당 건물도 크게 짓고 오르간도 2억짜리 갖다 놓을 수 있고 이거 다 연결되어 있는 겁니다.
하나님과 가장 큰 적대세력이 뭐냐?
풍요와 다산이에요. 우리 마음에 대해서..
그러면 하나님은 풍요와 다산을 싫어하시냐? 원래 풍요와 다산을 하나님이 만드신 거예요. 근데 문제는 풍요와 다산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것을 하나님보다 더 좋아하는 겁니다. 어느 정도로? 업 사이드 다운 될 정도로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졌어요. 바알 신을 죽이니까 풍요를 우리 마음에서 몰아내자 다산에 대한 열망을 몰아내자 그러니까 그 사람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거예요.
약자의 변(辯)이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가치관이 그렇게 바뀌어버리고 만 거예요.
여러분, 여러분도 가난이 불편하십니까?
가난이 불편한 게 아니라 여러분의 욕망이 하나님이 정해주신 분수 이상으로 커져버린 거예요. 허풍선이가 되어 버린 거예요. 허풍선이 됨을 없애버리면 불편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내 마음이 커져버리니까 그게 불편이 느Rudy.
가난이 불행합니까?
아닙니다. 아니에요. 돈으로 행복을 찾으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으로 먼저 행복을 찾으세요. 돈은 없어도 하나님 있으면 행복하다고 믿는 게 기독교입니다. 그것이 바로 환경을 풀어가는 열쇠이기도 하다는 것이에요.
그러나 환경을 풀려고 하나님을 찾겠습니까? 그게 찾아지지도 않아요. 내 안에 환경의 열쇠 ‘너 있다’는 것이에요. 내 안에 있다는 것이에요. 자꾸 돈이 없는 환경을 탓하지 말라는 거예요. 안 되지요 근데 이게.. 참 안 되지요? 돈이 없으면 당장 불편하고 불행해집니다. 근심스럽고 걱정스러워집니다.
그래서 다시 주님의 십자가로 돌아가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주님의 십자가 가장 가난한 자리에요. 가장 불행한 자리에요. 그 십자가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불행이 사라지지 않고 불편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에요.
주님의 십자가로 가서 내 마음의 열망을 죽입니다. 풍요와 다산에 대한 바람을 죽이는 것이에요. 풍요를 원하지 마세요. 다산을 원하지 마세요. 하나님을 원하세요. 하나님으로 끝내세요. 더 이상 바라지 마요.
하나님을 내가 모셔 들이면 하나님께서 다시 풍요하게 해주시겠지 이 마음은 결국 풍요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수단이 되어버리고 말지요.
그러므로 풍요를 원하지 마세요. 다산을 원하지 마세요. 풍요와 다산을 향한 내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는 겁니다. 차라리 죽여 버리세요. 아니, 죽었어요. 죽었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겁니다.
왜? 하나님만 갖기 위해서. 하나님만 가지면 끝나는 것이고 세상에 대해서는 따고 배짱을 부리세요. 하나님을 땄으니까 세상 일은 어떻게 되든지 망할래면 망하고 흥할래면 흥해라. 상관하지 마세요. 배짱을 부리세요.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믿음 이것이 세상을 풀어가는 열쇠이기도 하지요. 세상이 풀려나갈 것입니다.
내가 푸는 게 아니라 하나님만 모시면 세상은 풀려나가게 될 것이고 기드온을 들어 이제 전쟁을 수행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들어 하나님이 새 생명 가운데 거하도록 활동하게 됩니다.
십자가에 죽었다고 멈춰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과 붙어있는 사람으로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해나가시게 될 것입니다.
이 전도된 신앙적 가치관. 주님의 십자가로 바로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07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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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 M. M. 6 .9 닸.켬 (추,천,인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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