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선 열차
崔 昌 重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휩쓸며 K팝의 전성기가 도래함을 예고하던 2012년, 필자는 직장 때문에 일주일에 두 차례 정도 충북선 열차를 이용했습니다. 과거 학창 시절에 자주 이용하던 충북선 열차를 사십여 년 만에 다시금 이용하게 되었던 것인데, 어쩌자고 충북선 열차는 사십여 년 전인 1970년대나 다름없이 2010년대인 당시에도 변함없이 덜커덩거리며 느릿느릿 기어다녔습니다. 그야말로 세월아 네월아 바쁨이라곤 전혀 없이 충청도 말씨만큼이나 느려터지게 달렸습니다.
그동안 바쁜 생활에 길들여졌던 탓인지 처음에는 그 걸음이 너무도 답답해 위정자들에게 마구 욕을 퍼부었습니다. 대통령을 만들어내지 못한 지역이라고, 뚜렷한 정계 거물 하나를 우뚝 세우지 못하고 선거 때마다 새로운 인물을 선출하는 줏대 없는 지역이라고, 만만하게 여기면서, KTX로 삼십 분이면 손쉽게 주파할 수 있는 거리를 그 서너 배의 시간을 들여 터덜터덜 왕래하도록 충북 도민을 홀대하고 있는 높은 분들에게 험구를 퍼부었던 것입니다.
철로만 그랬나요? 도로 역시 오십보백보였습니다. 시속 110킬로미터로 달린다면 한 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거리를 숨이 차도록 달려도 목적지에 닿으려면 두 시간 이상이 걸렸습니다. 다른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전국을 도로 건설 지역으로 만든다 싶을 정도로 이곳저곳에서 공사가 벌어져 고속도로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데, 유독 이 지역만큼은 남북으로 기호 지역과 영·호남 지역의 연결 통로 역할만을 할 뿐 동서로 고속도로가 연결될 기미를 도무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높은 분들을 욕하며 일 년여 동안 충북선 열차를 이용하다 보니, 빠른 교통시설이 만들어지려면 말대가리에 뿔이 나거나 모래알에 싹이 틀 정도로 장구한 세월이 흘러야 가능할 것으로 여겨져, 어느 날부터인가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바로 열차의 느려터짐을 즐기기로 마음을 정했던 것입니다. 그 왜 있잖습니까? ‘느림의 미학’이라는 걸 즐기기로 했던 것입니다.
‘어찌하여 느림의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는가? 아, 어디에 있는가, 옛날의 그 한량들은? 민요들 속의 그 게으른 주인공들, 이 방앗간 저 방앗간을 어슬렁거리며 총총한 별 아래 잠자던 그 방랑객들은? 시골길, 초원, 숲속의 빈터, 자연과 더불어 사라져 버렸는가?’
소련의 침공 이후 사회주의 개혁운동을 주도하다 체코에서 프랑스로 망명한 작가 밀란 쿤데라가 지은 장편소설 ‘느림’의 일부입니다. 쿤데라처럼 뒤늦게 아쉬워하지 않도록 눈에 비치는 풍경 모두를 즐기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열차에 앉아 아름다운 산하를 그윽한 시선으로 더듬노라면, 산자락 사이로 가느다란 햇살이 부끄러운 듯 모습을 비치고, 벼이삭들이 나란히 고개 숙인 황금 들판에서는 쌀뜨물 같은 안개가 수로(水路)를 중심으로 병풍처럼 일어서고, 산자락에서는 하얗게 피어난 억새들이 바람결을 따라 물결처럼 스러지고,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왔다 어느 순간 멀리 달아나는 가을 산에서는 단풍이 오색으로 물들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 사이사이로 펼쳐지는 과수원에서는 탐스러운 사과들이 빨간 자태를 마음껏 자랑하고---. 그렇게 번잡한 곳을 벗어나자마자 한적하게 펼쳐지는 주변의 풍광을 차곡차곡 눈에 넣으며 사색을 즐기기로 했던 것이지요.
좋은 풍광은 바라보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 아는 만큼 보이고 보는 만큼 느낄 수 있다고 하더니 정말로 차창 밖으로 천천히 흘러가는 풍경을 바라보며 느림을 즐기다 보니 행복은 멀리 있지 않고 바로 마음속에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처구니없게도 높은 분들이 충북선을 옛 그대로 놓아둔 것이 어쩌면 ‘느림의 미학’을 창조하기 위한 깊은 뜻에서가 아니었나 싶더군요.
첫댓글 충북선!
귀향 후 아직 한번도 타지 못했습니다.
손주들 데리고 조치원서 청주까지라도 타보려고 맘 먹은 때가 3년 전인데-.
느림을 발견하는 선로였네요.
종종 충북은 우리나라 중심이면서 변방이란 생각을 합니다.
시사적이면서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