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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5: 19 - 21 육체의 일 ( 1 )
6. 육체의 일 ( 5: 19-21 )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 19 음 행 -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
1]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육체"란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 부패성을 의미한다.
* 롬 8: 6-7 -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이런 괴악한 것의 움직임이 우리의 눈에 감취어서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현저히 나타나 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지적하여 멸절할 방침을 세울 수 있다.
구원받은 성도 속에 있는 두 가지 대립되는 소원은 '육체의 소원'과 '성령의 소원'이다. 하나는 죄를 향한 소원이고, 다른 하나는 의를 향한 소원이다.
성도는 구원받은 후에도 이 두 가지 소원을 가지고 있다. 이 둘은 서로 구별하거나 분별하기 어렵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뜻을 잘 알지 못했을 때는 더러 그 둘을 혼동할 수도 있었지만, 진리의 지식, 성경 지식이 더할수록, 그 둘은 명백히 구별된다.
사람의 타고난 죄악 된 본성에서 나오는 행위들은 '현저하다'. 그 행위들이 본성의 죄악성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너무 명백하고 분명하다.
2]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이 세 가지는 성적 죄악(性的罪惡)이다. 하나님과 원수된 육체(인간의 부패성)는 무엇보다 먼저 성적 죄악으로 나타나서 하나님의 성전인 몸을 더럽힌다.
* 고전 3: 16-17 - 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성경은 사람의 성적 죄악이 자기 몸에 대한 범죄라는 의미로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라'(고전 6: 18)고 하였다.
곧, 그 성적 죄악은 몸이 주님의 성전 된 거룩한 소속임을 위반한다는 것이다. 다른 죄악은 외계(外界)의 남들에게 손해를 주는 것이지만, 성적 죄악은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손해를 주는 것이다.
특히 그 손해는 종교적인 면이 더욱 크다.
고전 6: 15-17에는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 몸을 가지고 성적 죄악을 범하면, 그것은 주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범성죄(犯聖罪)이며, 주님 앞에 정절을 지키지 않는 훼절(毁節)의 죄도 된다.
안셈(Anselm)은 말하기를, "다른 죄들은 대항하여 싸움으로 이길 수 있으나, 성적 죄악은 피함으로야 이긴다."고 하였다.
요셉이 이 죄를 이긴 방법도 그러하였다.(창 39: 1-18). 안셈의 말은 물론 '음행을 피하라'(고전 6: 18)는 성경에 의거한 것이다. 죄악의 많은 종류 중에는 매력을 가지고 유인하는 것들이 있는데, 성적 죄악이 거기에 속한다.
성적 죄악은 외모의 미(美)를 가지고 사람을 꾀어 넘어뜨리는 독한 것이다. 그것은 마치 독사(毒蛇)의 이빨에서 나오는 살인독(殺人毒)과 같다.
또 그것은 마치 알프스 산의 아름다운 잔디 언덕과 같다. 많은 여행자들은 아름다운 잔디가 있는 땅을 든든히 디디고 발을 붙이려다가 떨어져 죽는 일이 많다고 한다.
음행은 멸망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음행자를 가리켜 '소가 도수장으로 가는 것 같고 미련한 자가 벌을 받으려고 쇠사슬에 매이러 가는 것과 같도다. 필경은 화살이 그 간을 뚫게 되리라 새가 빨리 그물로 들어가되 그의 생명을 잃어버릴 줄을 알지 못함과 같으니라.'(잠 7: 22-23)고 하였다.
그런 죄를 범하게 하는 집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 집은 스올의 길이라. 사망의 방으로 내려가느니라.'(잠 7: 27)고 하였다.
"음행"은 특수한 범행(犯行)으로서의 성적 죄악이다.
"더러운 것"은 일반적인 성적 불결의 행습을 의미하는 바, 남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들일 수도 있다고 한다.
"호색"(*)은 방종으로 노골화한 불결의 행습을 의미한다고 한다(Trenchm Syn New Testament).
육체의 일의 첫 번째 부류는 음란이다.
전통 사본에는 '음행' 앞에 '간음'이라는 말이 하나 더 있다. 인간 세상의 많은 죄악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이고 두드러진 죄악은 바로 이 음란이다.
음란은 부부관계를 벗어난 모든 종류의 육체적 관계를 가리킨다.
인간의 성(性)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이며 그것은 부부관계에서만 사용되도록 의도되었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의 이 규칙을 깨뜨리고 육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악을 범하고 있다. 그것이 음란의 악이다.
모든 죄가 다 그러하지만, 음란의 죄악은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죄악이다.
특히, 하나님의 유황불 심판을 받았던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은 매우 음란했었다. 그들의 음란은 동성애라는 변태적 행위로 나타났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전에 그곳의 원주민들은 매우 음란했었다.
그들에게는 부모와 자식과 형제를 범하는 근친상간적인 음행이 있었다. 동성 간의 음행이 있었고, 심지어 짐승과의 음행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가증한 행위들을 인하여 그 땅의 사람들을 진노하셨다. 이스라엘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여 그들을 진멸하셨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매우 음란한 시대이다. 젊은 여자들이 자기 몸을 파는 매춘 행위가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다. 오늘날 매스컴이 보도하는 대로, 심지어 주부들이나 대학생들, 그리고 중, 고등학생들까지 아르바이트로 그런 일을 하고 있다.
그런 일들이 없던 시대는 없었다. 고급 요정들이나 호텔이나 여관들은 음란한 일을 중계하고 그것들로 돈을 버는 재미를 보고 있다.
독한 술과 마약, 음란한 춤과 음악, 텔레비전이나 음란 비디오, 음란 잡지, 음란 만화, 컴퓨터 통신을 통해 받아보는 음란 그림들, 음란한 컴퓨터 게임들이 이 시대의 음란한 풍조를 부추기고 있다.
성경은 이런 모든 음란 행위와 풍조를 정죄한다. 이런 죄 가운데 있는 자는 다 회개해야 한다. 그래야 멸망치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육신의 죄악성은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남아 있다. 성도도 이런 욕구와 충동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행위를 버리고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거룩해야 한다. 음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결혼한 이들은 부부의 관계를 귀히 여기고 아름답게 가꾸어야 한다.
* 잠 5: 18-19 - 18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19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또 고린도전서 7장에는 이렇게 교훈했다.
* 고전 7: 2-5 - 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음란에 빠지지 않는 최선의 길은 피하는 것이다. 결혼하지 않은 남녀는 단 둘이 은밀히 있는 것을 피해야 한다.
성적 자극을 받을 수 있는 그림이나 글도 피해야 한다. 성적 자극을 줄 수 있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는 것도 피해야 한다.
술 마시는 것도 피해야 한다. 춤이나 현란한 음악도 피해야 한다. 음란의 충동은 강한 것이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이긴다는 것은 어렵다. 피하는 것이 가장 좋은 최선의 방법이다.
갈 5: 20 우상 숭배 -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
1] 우상 숭배와 주술과
이것들은 종교적 죄악이다.
"우상 숭배"라는 것은 하나님을 보이는 형태로 만들어 섬기려는 동기에서 생긴 행동이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알거나, 혹은 하나님께 드릴 영광을 그것에게 돌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육안(肉眼)으로 보고 야 믿겠다는 마음이 역시 우상 숭배의 사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과 존엄성을 무시하는 교만이요 어리석음인 것이다.
보이지 않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본질상 속성인데, 사람이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분으로 여긴다면 그 얼마나 교만한 행위인가?
스랍들도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고 성경은 말한다.
* 사 6: 2-3 -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 출 33: 20 -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욥 9: 11 - 그가 내 앞으로 지나시나 내가 보지 못하며 그가 내 앞에서 움직이시나 내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 딤전 6: 16 -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 요일 4: 12 -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 시 18: 11 - 그가 흑암을 그의 숨는 곳으로 삼으사 장막 같이 자기를 두르게 하심이여! 곧 물의 흑암과 공중의 빽빽한 구름으로 그리하시도다.
* 골 1: 15 -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 히 11: 3 -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이와 같이 성경은 보이지 않으시는 그가 모든 보이는 것을 지으셨다고 입증한다.
그러므로 그의 보이지 않으시는 성질은 더욱 우리의 신앙을 이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 29)라고 하셨다. 보지 못하나 믿는 그 신앙은 더욱 고상하다. 그 이유는,
(1) 보이는 감각 세계에 의존하지 않는 참 신을 그대로 믿는 까닭이다.
(2) 신앙을 방해하는 감각주의(感覺主義)의 마음을 이기며 믿는 까닭이다.
"우상 숭배"가 제사적(祭祀的)인 방면의 범죄라면, "주술"는 예언적(豫言的)인 방면의 범죄이다.
(1) 하나님의 뜻대로 나온 예언은 천국을 중심한 하나님 말씀이지만, "주술"(呪術)은 개인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행위이다.
(2) 예언은 인간으로 하여금 회개케 함을 목적한다. 그러나 "주술"은 인간으로 하여금 낙심케 하든지 혹은 요행수를 바라보게 하여 도덕적 반성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3) 예언은 그것을 받는 자가 거의 뜻밖에 자주 의식(自主意識)에 의하여 하나님의 객관적 계시(客觀的啓示)를 받아 말한 것이다. 그러나 주술 하는 자는 공교히 만든 소위 예언으로써 사람들을 속인다.
성도들 중에 무의식적으로 그리스도의 미명(美名) 아래 숨어서 "주술"의 죄를 범하는 자들이 적지 아니하다. 예를 들면,
신자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지 않고 자기의 육적 야욕을 위하여 성령을 구하며 이용하려 하는 것, 신자가 지식에 절제할 줄 모르고 하나님만이 아실 수 있는 고급 영계(靈界)의 깊은 지식까지 알고자 하여 분수에 넘치는 사색을 일삼는 것, 하나님을 신종(信從)하고 일상생활의 평범한 책임을 다함에 주력하지 않으면서 기이(奇異)한 것만을 탐하여 그것에 주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알려진 하나님의 말씀(성경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이적(異蹟)을 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적을 믿는다. 특별히 성경에 기록된 표준 이적들을 믿는다.
하나님 말씀의 사역에 따라 그런 이적들이 나타났다. 오늘날 교회시대에도 우리가 믿음으로 바로 살기만 하면 주님의 뜻인 경우 특별 섭리의 일들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에도 부족함이 없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주술"의 잔재(殘滓)가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 그 이유는 "주술"는 우리의 신양을 해롭게 하며 또한 하나님께 욕을 돌리기 때문이다.
육체의 일의 두 번째 부류는 우상숭배이다. 사실 이것이 더 근원적인 죄악이지만, 음란보다 더 드러나는 것 같지는 않다. '우상'은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불교나 유교 문화의 전통에는 우상숭배의 요소들이 있다. 불교의 본래의 정신은 그렇지 않았지만, 오늘날 불교는 다분히 부처의 상 앞에서 피곤하게 엎드려 절하며 소원을 아뢰고 복을 빈다. 그러나 그들이 비는 대상이 복을 줄 수 있는 참 신이 아니므로 그 행위는 우상숭배이다.
유교에서 유래되었을 제사와 차례의 조상숭배 행위는 부모 공경과는 실제로 관계가 없다. 그 행위를 통해 부모님이 공경함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다. 부모님은 이미 세상에 계시지 않다.
효도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해야 하는 것이지 돌아가신 후에는 할 수 없다. 장례식 때 고인의 사진이나 시신 앞에 절하는 것도 비슷하다.
절은 인격자 앞에 하는 것이 옳다. 돌아가신 부모님이나 죽은 자 앞에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더욱이 제사와 절에 어떤 종교적 의미가 가미되어 있다면 그것은 명백히 우상숭배이다.
제사와 절에 종교적 의미가 없는가? 만일 종교적 의미가 없다면, 왜 그렇게 무의미한 행위에 중요성을 두는가?
왜 정한 날에 정한 방식으로 제사나 차례를 드리려 하는 것인가? 부모님이나 죽은 분이 실제로 받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정성을 쏟아 제사상을 차리고 절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하는가?
그것은 제사와 절이 조상숭배의 정신을 가진 것임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조상에게 하는 제사의 전통은 후손들이 조상신에게 화를 받지 않고 복을 받고자 하는 우상숭배이다.
우리나라의 미신 혹은 샤머니즘도 잡신 숭배이므로 우상숭배이다. 우리의 전통 문화나 민속 문화 속에는 이런 요소들이 많다.
결혼이나 취직이나 승진을 앞둔 사람들은 점이나 궁합 혹은 사주팔자를 본다. 어떤 사람들은 장난삼아 그런 일을 해 보기도 한다.
심지어 교인들, 집사들이라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행한다. 이런 것들은 다 미신적 행위들이며 우상숭배다.
기독교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천주교는 이방 종교의 우상숭배적 요소들을 들여와 교묘하게 기독교화 하였다.
예수님의 모친 마리아에게 '중보자'니 '보혜사'니 '하늘의 여왕'이니 하는 호칭을 돌리고 그에게 기도하며 그를 경모하며 의지하는 것에서 우리는 천주교가 분명히 우상숭배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모친이었던 한 여인에 불과하고 그 이상을 그에게 돌리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오늘날 은사주의 교인들 가운데는 기독교를 미신화 하는 일들도 없지 않다. 기도 권사니, 기도 장로니 하여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본다 하며 그의 미래의 일을 예언한다고 한다. 이것은 무당에게 가서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뜻을 성경에 명백히 기록하셨으므로 오늘 우리는 그런 신비주의자들에게 가서 물을 것이 아니고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오늘날의 우상들은 이런 것에 머물지 않는다. 하나님 대신에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가치 있게 여기고 삶의 목표로 삼고 있는 모든 종류의 것들이 다 우상이다.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인간을 숭배하며 인간 승리를 찬양한다. 사람들은 과학을 하나님 대신 믿고 숭배한다. 사람들은 돈과 명예와 쾌락을 삶의 목표로 두고 산다. 그렇다면, 그것은 분명히 우상숭배이다. 사람들은 참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식하고 하나님 아닌 헛된 것에 대해서는 유식하다.
성도들 속에도 참으로 삶의 목표가 되기에 합당하신 하나님보다 헛된 세상의 것들을 좋아하고 거기에서 위로를 찾으려 하는 죄악성, 연약성이 남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종류의 헛된 우상숭배를 청산하고 살아계시고 참되신 한 분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고 그를 섬기며 그의 뜻을 행하기를 원하신다. 그는 자신만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과 위로와 소망이 되기를 원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