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기초교리 ㅡ10
불교의 성지 1 룸비니
(8) 불교의 8대 성지(聖地):
부처님의 탄생, 성도, 초전법륜, 열반 장소를 4대성지라 하고 신통을 보이신 곳 4곳을 합쳐서 8대 성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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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은 4대성지 파란색은 8대성지를 나타낸다
① 탄생지 : 룸비니동산
룸비니 동산은 인도와 네팔의 국경지대에 있다. 예전에는 인도의 영토였으나 지금은 네팔 땅이다. 그래서 인도에선 “붓다는 인도 사람”이라 하고, 네팔에선 “붓다는 네팔 사람”이라고 말한다. 붓다는 주로 인도 북부에서 활동했다. 8대 성지 중 나머지 7곳은 모두 인도땅이다.
아소카왕의 석주가 붓다의 실존 보여주다
오랜 세월 룸비니 동산은 ‘묻힌 동산’이었다. 초기 불교 경전 속에 ‘붓다의 출생지가 룸비니’란 구절이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그곳이 어딘지 몰랐다. 그래서 룸비니는 ‘설화 속의 땅’이었다. 일부에선 고타마 붓다까지도 ‘설화 속 인물’로 볼 정도였다.
1877~1946년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였다. 갠지스강 북부는 정글이 많고 호랑이와 말라리아도 득실대는 곳이었다. 당시 유럽의 고고학자들은 붓다의 유적을 찾고자 이 지역을 뒤졌다. 그러다 1896년 독일의 고고학자 휘러가 인도 북부에서 아소카 석주를 발견, 비로소 룸비니의 위치를 확인했다. 붓다가 역사적으로 실재한 인물임을 밝히는 ‘확고한 증거’를 찾은 셈이었다.
최초로 인도를 통일한 아소카왕(기원전 269~232년)은 기원전 249년에 룸비니를 방문, 탑 4기와 석주 1개를 세웠다. 벼락을 맞아서 부러진 룸비니의 아소카 석주(약 7.2m만 남아 있음)에는 ‘아소카왕은 친히 이곳을 찾아 참배했다. 여기가 붓다의 탄생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룸비니 마을은 조세를 면제하고, 생산물의 8분의 1만 징수케 한다’는 내용이 인도 북부의 지방언어로 새겨져 있다. 붓다 입멸 후 250년, 지금으로부터 2250년 전의 기록이다. 그러나 룸비니는 힌두교의 왕들과 이슬람의 침략으로 인해 오랫동안 흙속에 묻혀 있었다.
불교가 유럽에 전해졌을 때, 유럽인들은 불교의 이야기를 수많은 인도의 신화 가운데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신화적 상상력이 가공된 이야기로 치부됐던 불교는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의 글을 해독하고 부처님이 실존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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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건물은 룸비니 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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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비니의 아쇼카 석주
아쇼카는 누구인가?
부처님의 성지를 이해하기 전에 아쇼카왕을 먼저 알아보자
부처님께서 아난과 함께 탁발을 하시는데 어린아이들이 소꿉장난을 하다가 한 아이가 흙을 부처님께 공양 올렸다. 아난이 그 아이를 혼내려 하자 부처님께서 웃으시며 바루에 담고 아난에게 "이 아이는 공양을 올린 복으로 200년 후에 전륜성왕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밥이 아닌 흙을 공양 올려서 얼굴이 못생기고 성질이 나쁠 것이다."고 하셨다.
형제들을 모두 살해하고(형제가 99명인데 어머니가 같은 동생 한 명만 남겼다고 함) 왕위에 오른 아쇼카왕(Ashoka B.C 273~232)은 인도를 통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너무도 잔인한 왕이었다. 마지막 정복전쟁이었던
칼링가 왕국과의 전투에서 그는 10만 명이 넘는 병사를 죽였는데,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들판에 가득했다고 한다. 승리에 도취해 있던 아쇼카 왕의 마음을 바꾼 것은 죽어가는 한 병사의 눈빛이었다. 목에 화살이 꽂힌 채 아쇼카왕을 비난하며 죽은 병사를 보며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는지를 돌아보며 괴로움에 빠졌다.
이에 야사라는 스님을 통해 모든 생명의 귀중함과 평등함을 자각하고 불교에 귀의한 아쇼카 왕은 이후 부처님의 사리탑 7개를 헐어서 사리를 나누어 전국에 8만4천기의 탑을 세우고, 부처님 성지마다 사원을 세웠다.
아쇼카왕은 역대 왕 가운데 인도인들에게 가장 추앙받은 인물이다. 인도를 최초로 통일하고, 훗날에는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운 그다. 인도국기 가운데 있는 차크라도 아쇼카왕이 세운 석주의 아쇼카 차크라이고, 인도국장에 있는 네 마리 사자도 아쇼카 석주의 사자상을 인용했으며 인도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에도 아쇼카(무우수, 근심없는 나무)라는 이름이 붙혀져 있을 정도로 인도인에게 사랑을 받는 임금이다.
조선시대 세조임금이 되기 전에 한글로 지은 석보상절에는 아쇼카왕이 불교를 전 세계에 전파하려고 부처님 사리를 나누어 사천왕을 시켜서 온 세상에 퍼뜨렸다. 북쪽을 관장하는 비사문천왕이 우리나라에도 2곳에 사리를 안치 했는데 그 중 하나가 계룡산 신흥암 뒤에 있는 천진암이라고 한다. 지금도 천진암에서 가끔 방광을 하여 주위 사람들이 산불이 난 줄 알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안심정사에서 계룡산에서 산신기도를 하는 곳이 바로 천진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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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천진암(자연석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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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암에서 방광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