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타락의 극치: 엠프네온 아페일레스 카이 포누 (ἐμπνέων ἀπειλῆς καὶ φόνου,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스데반을 죽인 사울은 피 맛을 본 야수처럼 예루살렘을 넘어 다메섹(시리아)까지 교회를 추적합니다. 헬라어 원문은 그가 위협과 살기를 '호흡하듯 내뿜으며(Empneōn)' 미친 듯이 돌진했다고 묘사합니다. 인간의 종교적 열심이 십자가 없는 율법주의와 결합할 때, 얼마나 잔인한 괴물로 전락하는지를 보여주는 극치입니다.
은혜의 원자폭탄: 주권적 매복(Ambush)
바로 그 살기의 한복판에 하늘로부터 태양보다 밝은 빛이 벼락같이 내리꽂힙니다. 사울은 예수를 찾은 적이 없습니다. 도리어 예수를 찢어 죽이려 했습니다.
R.C. 스프로울(Sproul)은 포효합니다! "이것이 개혁주의 구원론의 심장인 **'불가항력적 은혜(Irresistible Grace)'**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죄악을 향해 미친 듯이 질주하는 인간의 정수리에 부활하신 창조주께서 일방적으로 뚫고 들어오사 그 영혼을 완벽하게 박살 내고 항복을 받아내시는 맹렬한 주권적 매복(Ambush)이다!"
교회와 그리스도의 신비적 연합 (Union with Christ):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사울은 예수님을 본 적도, 박해한 적도 없습니다. 그는 스데반과 예루살렘의 '교회'를 박해했을 뿐입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이 구절을 기독교 교회론의 위대한 선언으로 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피로 사신 교회(성도)는 머리와 몸으로서 완벽하게 묶여 있는 **'유기적 일체'**다! 세상이 내 백성 중 가장 작은 자 하나를 건드리는 것은, 곧 내 눈동자를 찌르고 내 심장을 찢는 것과 같다는 만왕의 왕의 무시무시한 선전포고다!"
II. 위대한 그릇(Skeuos)의 창조와 고난의 부르심 (9:10-19)
(행 9:13, 15-16)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리리라 하시니"
인간의 두려움 vs 하나님의 주권:
다메섹의 제자 아나니아에게 주님이 나타나 사울에게 안수하라 명하십니다. 아나니아는 극도로 공포에 질려 항변합니다. "그는 성도들을 죽이는 도살자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 명령을 절대 수용할 수 없습니다.
구속사의 재창조: 스케유오스 에클로게스 (σκεῦος ἐκλογῆς, 택한 나의 그릇)
주님은 그 두려움을 신적 권위로 산산조각 내십니다!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Skeuos eklogēs: 주권적으로 선택된 도구)이라!" * 하나님은 스데반을 죽인 그 잔인한 핍박자의 지성과 열정을 십자가의 피로 씻어내어, 전 우주를 뒤집어엎을 가장 위대한 이방인의 사도로 완벽하게 재활용(재창조)하십니다.
사명의 본질: 고난(Pathein)
그러나 부르심의 조건은 성공이나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사도 바울의 위대함은 그가 쓴 13권의 서신서나 개척한 수많은 교회에 있지 않습니다. 그가 예수의 이름을 위해 채찍에 맞고, 파선하고, 감옥에 갇히고, 마침내 목이 잘려 순교하는 그 처절한 '고난(십자가)' 자체가 그의 가장 찬란한 영광의 부르심이었습니다!
III. 핍박자가 증인으로: 제자도의 역설 (9:20-25)
(행 9:20, 22, 24-25)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사울은 힘을 더 얻어 예수를 그리스도라 증언하여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그 계교가 사울에게 알려지니라 그들이 그를 죽이려고 밤낮으로 성문까지 지키거늘 그의 제자들이 밤에 사울을 광주리에 담아 성벽에서 달아 내리니라"
폭발적 변증: 쉬네퀴넨 (συνέχυνεν, 당혹하게 하니라 / 굴복시키니라)
시력을 회복하고 세례를 받은 사울은 즉각 돌변합니다. 교회를 찢으려던 입술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고 맹렬하게 선포합니다!
구약 성경에 정통했던 사울이 성령의 조명을 받자,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기독론의 논증은 다메섹의 모든 유대인들의 입을 틀어막고 영적으로 **'완전히 굴복(Synechynen: 혼란에 빠뜨려 압도함)'**시켜 버렸습니다.
위대한 사도의 첫 고난: 스퓌리디 (σπυρίδι, 광주리)
사울을 이길 수 없자 유대인들은 그를 암살하려 합니다. 성문을 철통같이 지키는 암살단들을 피해, 천하의 사울이 밧줄에 매달린 볼품없는 **'광주리(Spyridi)'**에 담겨 성벽을 타고 야반도주를 합니다!
훗날 바울은 고린도후서 11:32-33에서 자신의 수많은 업적을 다 뒤로하고, 바로 이 '광주리 타고 도망친 수치스러운 사건'을 자신의 가장 큰 자랑(약함의 신학)으로 삼습니다. 기독교 영웅주의는 박살 났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수치스럽고 약한 그 광주리 안에서, 온 세계를 뒤집어엎을 복음의 다이너마이트를 살려내고 계셨던 것입니다!
IV. 예루살렘의 두려움과 바나바의 연합 (9:26-31)
(행 9:26-27, 31)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가 제자 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전한 것을 말하니라...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코이노니아의 징검다리: 바나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사도들조차 사울의 회심을 위장 전술로 의심하며 거부합니다. 그때 위로의 아들 **'바나바'**가 등장하여 자신의 영적 생명을 걸고 사울을 변호합니다! 바나바의 이 거룩한 중재(십자가의 품음)가 없었다면 사울은 결코 예루살렘 교회의 주류와 연합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행전 전반부의 웅장한 결론: 오이코도무메네 (οἰκοδομουμένη, 든든히 서 가고)
사울마저 회심하자 교회를 짓누르던 핍박의 광풍이 잦아듭니다. 누가는 여기서 사도행전의 가장 위대한 요약 선언 중 하나를 터뜨립니다!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교회의 진정한 성장은 환경의 편안함에서 오지 않습니다. **'주를 경외함(Phobō tou Kyriou: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두려움)'**과 **'성령의 위로(Paraklēsei: 보혜사의 도우심과 격려)'**가 완벽한 조화를 이룰 때, 교회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군대로 증식(Eplēthynonto)하는 것입니다!
V. 베드로의 치유 사역과 이방 선교의 서막 (9:32-43)
(행 9:34, 40, 43)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한대 곧 일어나니...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신을 향하여 이르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베드로가 욥바에 여러 날 있어 시몬이라 하는 무두장이의 집에서 머무니라"
기독론적 치유: 이아타이 세 이에수스 크리스토스 (ἰᾶταί σε Ἰησοῦς Χριστός,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시선은 다시 베드로에게 옮겨집니다. 룻다에서 8년 된 중풍병자 애니아를 고칠 때, 베드로는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명확히 선포합니다! "내가 아니라,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 너를 낫게 하신다!" 치유의 주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입니다.
죽음을 찢는 권능: 아나스테디 (ἀνάστηθι, 일어나라)
욥바에서 죽은 다비다(도르가)의 시신 앞에서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 하셨던 말씀("달리다굼")과 정확히 똑같은 권능으로 선포합니다! "다비다야 일어나라(Tabitha, anastēthi)!" 사도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사역을 이 땅에 그대로 재현해 내는 십자가의 통로입니다.
장벽의 붕괴: 비르세이 시모니 (βυρσεῖ Σίμωνί, 무두장이 시몬)
이 장의 마지막 구절은 사도행전 10장을 폭발시키기 위한 엄청난 뇌관입니다. 베드로가 죽은 짐승의 가죽을 다루어 유대 율법상 가장 '부정하게' 여겨지던 직업인 **'무두장이(Tanner) 시몬'**의 집에 머뭅니다.
율법주의자였던 베드로가 이방인과 진배없는 부정한 자의 집에 자발적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철저한 장벽이 성령 안에서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며, 곧이어 폭발할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를 향한 구속사의 거대한 도약을 완벽하게 준비하는 세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