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4일 오전 10시 30분 인천공항 3층 집합....
빗방울을 가득 머금은 하늘을 보며, 혹시나 늦을까 하여 서둘러 9시에 집을 나섰다.
10시 조금 넘어 도착해 보니, 박신식 선생님, 이규희 선생님 모두 이미 도착해 있었다.
이규희 선생님은 일찍 도착하여 환전도 이미 마쳤고, 비행기에서 읽을 책을 세 권이나 사놓으셨다.
정말로 부지런한 선생님....
하긴 아동문학계뿐 아니라 여러 사교계에서도 최고의 멋쟁이로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남다른 패션 감각도 있어야 하지만
그건 정말 부지런하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 말로만 들었던 동유럽 여러 도시를 구경하는 것 못지않게 이규희 선생님의 패셔너블한 옷차림을 보는 것.
박신식 선생님은 인터넷에서 환전한 유로를 아래층에서 찾고 있는 중이란다.
인터넷에서 환전하면 수수료가 조금 싸다고 한다.
나는 왜 그렇게 하지 못했을까? 소심한 나는 잠시 죄의식을 느낀다.
사실은 박신식 선생님이 동유럽행에 합류하겠다고 했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
혹시 혼자 방을 쓰게 되면 싱글차지가 35만원이나 하는데 하는 걱정...
또 어찌보면 기이한 이 여행을 재밌게 잘 끝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하지만 그것은 모두 나의 기우였다.
박선생은 좋은 룸메이트를 만났고, 삼각관계(우리 팀 이름)는 환상적인 팀이었다.
여행 내내 우리는 환상의 3인조였다.
이것저것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가 뜬 시각은 오후 3시, 예정시간 1시 45분에서 1시간 15분이나 연착을 하였다.
이규희 선생님은 자신의 글쓰기 작업을 '삯바늘'로 비유하였다.
한땀 한땀 정성을 들여 지어내는 옷감, 땀과 수고가 가득 배인 옷감.
그 옷감들이 다 아름답다면 얼마나 좋을까?
때로는 성글고, 부실하여 만족스럽지 못한 옷감도 나올 수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 글쓰기는 무엇일까..
고통스럽지만, 즐거운 농사짓기라고나 할까?
글쓰기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가고자 했지만 역시 우리는 글쟁이들...
비행기 안에서도 독서 삼매경에 빠지고 말았다.
지루한 11시간의 비행을 견딜 재간이 없었으니까.
두 번의 기내식(비빔밥과 생선가스) 그리고 맛있는 간식(삼각김밥과 피자)을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다가, 한숨 자고 나니 프라하에 도착했단다.
박신식 선생 바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알고보니 우리 일행이었다.
박선생보다 4살 어리고 스포츠 조선에 근무하는 그는 사진가방을 두 개나 짊어지고 왔고 여행 내내 우리와 즐겁게 지냈다.
오후 6시 25분 프라하 도착....
1936년에 지어졌다는 프라하 공항은 작고 아담해 보였다.
동유럽은 우리나라보다 7시간 느리니까 한국시간으로는 새벽 1시 25분에 도착한 것이다.
새로운 곳에 도착했다는 설레임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프라하는 맨 마지막날 일정에 들어있기 때문에 전용버스를 타고 Brno(브루노)로 다시 출발했다.
브루노까지는 약 2시간 30분...
우리는 또 다시 버스에서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박신식 선생은 이번 여행을 위해 목베개를 준비하여 우리에게 하나씩 나눠주었다.
버스에 오르자 본격 채비를 하고는 잠을 청하였다.(어, 목베개는 어디로 갔지?)
기내에서 준 양말을 손에 끼고, 코를 보호하기 위해 손수건을 두르니 영락없는 강도의 모습...
그렇게 웃으며 브루노에 도착하였다.
작은 도시 브루노...한적하여 쓸쓸하기까지 한 브루노.
브루노는 내일 아침 폴란드 크라카우로 가기 위해 잠깐 머무는 도시였다.
늦은 저녁, 할아버지들이 연주해주는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저녁식사를 마쳤다.
'이럴 때, 팁을 줘야 하는 건가, 마는 건가?'
'줘야 한다면 얼마 정도를 줘야 하는가?'로 우리는 속닥속닥 의논을 하였다.
1유로 5유로짜리로 환전해 달라고 하니까 유럽은 물가가 비싸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으려고 해도 5유로 이상이라던 환전창구의 아가씨 말이 생각났다.
5유로면 6,800원?
아무도 팁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몰라서도 그렇고, 얼마를 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팁 문화에 익숙치 않은 우리 나라 사람에게는 참으로 당황스런 일이라 하겠다.
이규희 선생님이 화끈하게 5유로를 꺼내 팁으로 주었다.
오후 10시 30분 짐을 풀고 밖으로 나오니 지나가는 차 한 대 없고, 길거리는 한적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처럼 습도가 높지 않아 선선하여 몸도 마음도 상쾌했다.
박신식 선생이 구글에서 뽑아온 지도에 의하면 브루노 근처에 가볼만 한 곳이 딱 한군데 있단다.
'슈벤베르크 성'- 하지만 너무 깜깜하여 찾기가 어려웠다.
"자, 체코에서의 첫날 밤을 이렇게 보낼 순 없지. 체코에 오면 맥주를 맛보라고 했거든?"
우리는- 박선표(스포츠 조선)포함- 어두운 거리로 나가 맥주나 와인을 파는 바를 찾았다.
조용한 시골 동네 바는 모조리 문을 닫았고, 딱 한 군데 Holiday Inn만 문을 열었다. 그곳 바에 가서 그 유명한 맥주 '필스너 우르켈' 를 마셨다.
한 잔에 2유로(한국돈으로 2,600원)- 맥주값은 그리 비싸지 않은 듯했다.
이리하여 우리의 술여행이 테이프를 끊었다.
박선생이 술을 많이 마시는 걸 나는 한 번도 못 봤다.
물론 나도 그렇고. 스포츠조선 박선표도 그런 것 같고.
그러나 우리는 분위기파 이규희 선생님 덕분으로 힘든 여행, 잠 못이루는 밤을 술로 달래며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었다.
이 여행에서 이규희 선생님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밍숭밍숭 미적지근, 오로지 학구적인 여행이 되었겠지.
필스너 우르켈은 소태처럼 썼다. 마지막 한 방울을 다 마시고 날 때까지 처음 마신 술맛이 목구멍에 쓰디쓰게 남아 있었다.
한약 만큼 쓴 맥주-필스너 우르켈...
새벽 1시...지금쯤 한국은 아침 8시일 것이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브루노 길거리 먼지를 털어내는 청소차만이 조용히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있었다.
해가 뜨고 있다.
낯선 이국 땅, 지구 반대편에서 맞는 해는 언제나 변함이 없다.
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따뜻하다.
작은 도시 브루노는 서서히 몸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깨끗하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
아침을 먹기 전 근처를 산책했다.
이름모를 꽃들이 한창이다. 보랏빛, 노란 진달래, 분홍 메꽃(?)들...
꽃은 언제 보아도 예쁘다. 어디서 보아도 예쁘다.
좋은 동화도 마찬가지다.
좋은 동화는 누가 보아도 좋다. 어디서 읽어도 좋다.
우리가 산책을 하는 동안, 박신식 선생은 더 일찍 일어나 지도에 나와 있던 '슈벤베르크 성'을 기어코 가 보았단다.
높은 언덕에 자리잡은 거대한 성....을 보며 그는 과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자~ 이제는 폴란드를 향해 출발!
폴란드 국경까지도 2시간 40분 정도 걸린단다. -2편에서 계속-
* 폴란드에서는 그 유명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크라카우 구 시가를 보기로 되어 있다.
수용소가 있기 때문에 나찌의 폭격을 피할 수 있었던 크라카우.....
첫댓글 정말 부러워요. 멋진 여행이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여행을 했지만...가장 유쾌상쾌한 여행이었어요.
크라카우는 영어식 발음이고, 폴란드 사람들은 '크라코프' 또는 '크라쿠프'라고 하더군요. 아우슈비츠도 마찬가지...아우슈비츠는 독일식 발음이어서 '오슈비엥침'이라고 해야 알아듣습니다.
계속 즐거운 여행기를 기대하면서~~
우와, 속전속결로 쓰는, 통통 살아있는 기행문이라니! 새삼 두 번째 동유럽을 떠나는 사람처럼 가슴이 두근두근거립니다. 역시 부지런한 우리 안선모선생, 화이팅! 빨리 2편이 보고싶다.
공짜 여행에 미안한 맘 밥 삽니다.
아이고, 황송해라. 무슨 밥을요. 급히 쓰느라, 엉망진창이에요. 빨리 쓰지 않으면 죄다 잊어버릴 것 같아서요.
박신식 선생님의 모습 정말 뭐 같은데요..ㅋㅋ
에너지가 대단하세요. 여행 후유증도 없이 이리 삼박하게 여행을 정리하시다니요.
삼빡하게는 아니죠. 주저리주저리, 쫑알쫑알이지요.
재미있게 읽엇습니다~~ 2편을 기대하면서,,,
고맙습니다.(꾸벅) 누군가 재미있게 읽어준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도 힘이 솟습니다.
선생님,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에요. -해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따뜻하다 - 가슴이 따뜻해지는 글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