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청도의 독립운동
1920년대 경북 청도인의 민족운동 스크랩
The National Activities of Chungdo Peoples of Kyungsangbukdo in 1920s.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약어 : 민족운동사연구 2007, vol., no.53, pp. 149-182 (34 pages)
발행기관 : 한국민족운동사학회 연구분야 : 인문학 > 역사학
조규태 11한성대학교 KCI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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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1920년대 경북 청도인의 민족운동 1. 조규태 경북지역 청도인들은 3ㆍ1운동 후 문화운동의 추세에 맞추어 청년단체를 만들고 청년운동을 전개하였다.
청도인들은 1920년 화양면 청도청년회를 만들고, 1924년 풍각면 송서동에 풍각수양단을 만들었다가 풍각청년회로 발전시켰다.
그리고 1927년 대성면에서는 대성청년회를 설립하였다.
이 청년회에서는 주로 강연에 의한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사회주의의 확산과 아울러 청도지역의 청년단체들은 점차 그 구성원과 운영체제와 활동내용이 변화되었다.
먼저 청도지역의 청년들은 1925년 경 운영체제를 회장ㆍ간사제에서 위원회제로 바뀌었다. 그리고 회원의 가입연령을 낮추었다. 이에 따라서 청도지역의 청년단체들은 지역 유지들의 의견에 의하여 운영되던 데에서 청년회원의 주장에 따라 운영되게 되었다.
그리고 청도지역의 청년단체들은 민족협동전선운동이 전개되던 흐름에 맞추어 1928년 청도청년동맹을 조직하였다. 청도청년동맹은 청년에 대한 계몽활동에 머무르지 않고 경북청년연맹과 연계하여 청년대중의 정치ㆍ경제ㆍ민족적 권리를 획득하는 활동을 전개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경북청년연맹의 간부들이 ML당사건으로 검거된 후, 청도청년동맹에 대한 일제당국의 제제가 강화되자 청도청년동맹은 활동을 전개하기가 여의치 않았다. 그 후 청도청년동맹의 청년들은 신간회 청도지회에 참여하여 민족협동전선운동을 전개하였다. 또한 청도인들은 1924년 사상단체인 의우단을 만들고 사회사상을 학습하였다.
그리고 청도인들은 이 의우단을 통하여 사회주의사상을 수용하고, 소외되고 차별받은 이웃을 위한 형평운동, 소년운동, 농민조합운동 등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이 의우단은 1927년 이후 신간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청도인들은 1927년 전국적으로 신간회 지회가 만들어지자 준비에 착수하여 그 다음해 신간회 청도지회를 조직하였다.
신간회 청도지회는 계몽운동과 아울러 민족문제의 해결, 민족단일당의 촉성을 위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청도인들은 청도지역 내에서 문화운동, 사회운동, 신간회운동 등 합법적인 민족운동을 전개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국내와 국외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매전면 온막동에 거주하던 李庭禧는 서로군정서 국내파견원 金元植과 연계를 맺고 대구와 청송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서면 서원동 출신인 강수영은 서간도에서 대한독립단과 통의부의 독립군으로 활동하였고, 이 활동으로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그리고 각남면 예리봉 출신의 이월봉은 1920년대 중후반 대구에서 사회주의계 비밀결사인 혁우동맹 등에 간여하여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외에 최태욱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군자금을 보내는 활동을 전개하였다고 한다. 1930ㆍ40년대에 일부의 청도인들은 동진회 등의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철로를 파괴하는 등 일본의 전쟁수행을 방해하였다.
또한 1940년대 대구에 유학한 학생 가운데에는 대구지역의 학생비밀결사에 참여하여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몇몇의 청도인들은 1940년대 중국의 관내에서 광복군에 참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일제의 전시동원체제에 저항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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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구(본명:최현구) 만주방면 항전(抗戰)
1930년1월24일 최윤구(통의부 출신 崔允龜.1885)는 한국독립단원[조선혁명군은 창설된지(1929) 얼마되지 않았을때임]으로써 장백현 십육도구에 심각한 도박판(소위.치타도박)으로 탕진한 사람들이 있어[흥경[興京]=장백[長白]으로 취췌 할 것을 김세호(31세)를 통에 자치기관의 집행위원장인 이정일에게 전달케 하고 대원들을 데리고 가는데 부락의 피해가 막대할수도 있다고 김세호(金世浩)는 한사코 안절부절 하였다.
그러나 최윤구대장은 손해가 생기지 않도록 적당히 조치하겠으니 동행할 필요없다고 하였으나 김세호는 억지로 동행을 요구하자. 최윤구대장은 장총 한자루를 건네주었다.
최윤구대장은 모젤권총을 무장하고 대원들과 약40여명이 개장중인 현장을 포위하여 발포하면서 일망타진[一網打盡]하여 그동안의 마적들은 도박을 방임한 약점을 이용하여 걷어가는 일명 세금의 횡포도 해결하였고 마을주민들의 행복을 찿아주었다.
그러나 타진 과정에서 도주자 발포사건으로 김세호는 강도치상건으로 징역7년 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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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우.김세호의 재판자료가 남아있어 최윤구의[崔允九.金允龜]
업적이 발굴되었다.]
최윤구는 [1885-1942]청도.운문.지촌[동경] 사람 입니다.
만주로 건너가 20여 년간 일본군과 항전하다 전사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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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구(崔允龜, 1885.8.23-1942.9.10)는 일제강점기 중국 동북 지역에서 활동한 항일 무장투쟁의 맹장입니다.
대한통의부, 조선혁명군 등에서 사령장.동북항일연군 제1군 본부 총참모장으로 활동하며 일본군과 전투를 벌이고 일제 시설을 파괴하는 등 20여 년간 독립운동에 헌신한 전형적인 독립군 장군입니다.
정부에서 그에 공을 기리기 위해 1990년 애족장.2005년 독립장을 추서 하였다.
조선혁명군 제2사령관(師長)최윤구(崔允龜)
박대호 부총사령은 1890년 경북청도화양면에서 태어났다.본관은 밀양 박씨 이며 셌째아들이다.
檀紀 4260年 1927년5월12일 참의부 군사부장겸 제2중대장 최동경 變名.최세웅(崔東京.崔世雄) 환인현... // (고향주소:지촌리(東京이라고함) 운문면 3.18 만세운동때 최윤구는 대한독립만세 현수막 글자중 한(韓)자를 큰 붓으로 쓰고 세(歲.世)자는 박대호가 마지막으로 큰 붓으로 썼습니다. 이름하여 변명이 한世진이 된것이지요. 최世웅 世자가가 들어간 이름은 동맹을 맺은(뜻깊은사연) 이름으로 보입니다.양세봉.서세명.윤세용.윤세복 형제등에 이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선전부장 겸 제5중대장 박대호 變名 한세진(朴大浩.韓世振) 경상도(慶尙道)환인현...선임 (중국 당안관서류 독립기념관 증 보존 자료)
최윤구.최동경.최세웅(崔東京.崔世雄)참의부 군사부장 겸 제2중대장 환인현 횡도천(참의장 성명 김승학변명 김희산 본적의주군)
최윤구(崔允龜)의 이명 최동경(崔東京.崔世雄) 군사부장 환인현 횡도천 (단기4260년)1927년 5월12일 참의부 현재 간부 박대호(朴大浩)의 이명 한세진(韓世振) 선전부장겸 제5중대장 경상도(慶尙道)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최동경 이명은 최윤구의 고향이 경북 청도 운문 지촌리를(동경.東京)이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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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항일연군에 합류하여 교도 대대장 겸 총참모장으로 선임 되어서 1940년2월15일 최윤구장군이 항전하다 전사하다.
김일성1912~1945: 하권 역경과 결전 유순호. 2020).서울셀렉션(주) 767.768.1150면
[출처] 독립군 최윤구(崔允龜)-만주방면|작성자 이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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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환 교수의) 만주지역 한인유적답사기
박대호·최윤구·양기하 대한통의부 본부 하로하 유인석의 근거지 방취동 유인석 백삼규가 처형당한 사첨자 유인석 자정처 기념비 환인현의 민족학교인 동창학교 윤세복 동창학교... 북만주지역 만보산·채가구·쌍성보 장춘과 만보산 우덕순 등의 이등박문 저격 예정지 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