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청 15세때 정약용과 첫 인연
■ 손암 정약전 안드레아 (1758 ~ 1816)경기 마현 출생. 1801년 신유사옥에 연루해 흑산도 등지에서 15년간 귀양을 살다 뭍으로 나오지 못하고 1816년 59세로 우이도 진촌마을에서 숨졌다. 현재 묘소는 경기도 천진암 천주교 성지.
저술은 ‘자산어보’ ‘표해시말(문순득 표류기)’ ‘논어난’ ‘역간’ ‘송저사의’ ‘몽학어휘’. 모두 섬에서 귀양 살 때 지었다. 19세 때 서울에서 천주교와 서양 문물에 눈을 떴다. 33세에 급제해 승문원 부정자 보직을 받았다. 42세 때 탄핵받아 파면된 이후 다시는 관직을 못 받았다. 귀양지 흑산도에서 사촌서당을 열었다.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547425&cid=46622&categoryId=46622
정약전
조선후기 전적, 병조좌랑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천전(天全), 호는 손암(巽庵)·연경재(硏經齋)·매심(每心). 경기도 광주(지금의 남양주군 조안면 능내리) 출신. 정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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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전 이청경북 경주 출생. 15세 때 정약용이 그의 집에서 2년 기거하며 인연을 맺었다. 평생 과거를 봤지만 합격하지 못했다. 스승 정약용 사도요한 (시경강의보유 대동수경 악서고존 사대고례)과 정약전 안드레아(자산어보) 저술을 도왔다. 본인은 ‘정관편’을 지었다고 알려졌다. 1861년 70세로 눈을 감았다. 계산해 보니 1792년에 태어나셨네요~ (1792~1861) 그리고 제자로서 이청도 천주교 신자였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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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 - 예스24 작가파일
본관은 경주, 자는 금초琴招, 호는 청전靑田이다. 다산 정약용이 신유사옥과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유배되었을 때, 1806년 가을부터 1808년 초봄까지 이청의 집에 거처했다. 십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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