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습니다.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I believe) the communion of saints;
가톨릭교회에서는 이미 죽은 성인(聖人)들에게 기도하는 전통이 있는데 이들은 치료, 다산, 풍요 등 맡은 분야가 있어서, 살아있는 신자들이 필요에 따라 그것을 주관하는 성인들에게 기도한다고 합니다. 이것을 가톨릭교회에서는 communion 즉 ‘통공(通功)’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신앙고백에 도입한 것을 개신교에서 ‘교통(交通)’으로 번역하여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물론 개신교회에서는 ‘communion’을 ‘통공(通功)’의 의미로 이해하고 암송하지는 않습니다. ‘교통(交通)’ 또는 ‘교제(交際)’의 의미로 이해하고 암송할 뿐입니다.
하지만 좋지 못한 뜻으로 쓰인 표현(통공 ; 通功)을 굳이 다른 표현(교통 ; 交通)으로 번역하여 써야 했는가 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유명한 종교개혁자 칼빈조차도 그의 저서 기독교 강요에서 이 부분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수 세기 전부터 이 세상을 떠난 성인들(saints)이 하나님과 대등한 위치로 높여져서, 하나님 대신에 영광과 기도와 찬양을 받게 되었다.”
생각건대, 가톨릭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성도(saints)가 서로 통공(通功 ; communion)하는 것이 신앙의 대상이 될 수가 있겠습니다. 가톨릭교회 식으로 말하면 the holy catholic Church 즉 천상과 지상을 아우르는 우주적인 교회 안에서, 살아있는 가톨릭 신자가 죽은 가톨릭 성인(聖人 ; Saints)들에게 기도하면 들어줄 것이라고 하는 것, 즉 통공(通功)이 신앙의 대상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의 the communion of saints 즉 통공(通功)의 의미를 좀 더 살펴보면, 이것은 살아있는 신자들과 죽은 신자들 간의 영적 결합을 의미하며, 지상과 천국, 연옥 등에 있는 모든 성도의 공로와 기도가 서로 통한다는 의미입니다. 통공(通功)이라는 말 자체가 공로와 선행이 즉 공(功)이 서로 통(通)한다는 뜻입니다. 살아있는 신자들과, 죽어서 천국이나 연옥에 있는 영혼들 모두 교회를 구성하는 일원으로서 기도와 선행 등으로 서로 도울 수 있게 결합 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교리는 개신교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은 성인(聖人)들은 물론 예수님의 친모(親母)인 마리아에게조차도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기도합니다. 목사에게 고해성사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직접 회개기도 합니다.
그리므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성인(聖人)의 통공(通功)’은 영문의 글자는 ‘the communion of saints’로 같지만 그 뜻은 서로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가톨릭교회에서는 나름의 교리에 따라 ‘성인(聖人)의 통공(通功)’이 믿음의 대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개신교 교리상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 믿음의 대상인가 하는 점도 지적해 두지 않을 수 없겠습니다.
한편 이러한 주장에 대하여, 사도신경은 중세 가톨릭교회가 아니라 그 이전에 이미 만들어졌으므로 아무 문제 없다는 주장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