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곤?" "하이, 미르" "너 오늘 아침에 나나 접속했어? 지금 여름방학 시즌이라 이벤트로 새로운 페이스 마스크 주던데." 미르가 화상채팅에 접속한 곤에게 신이 나서 말을 쏟아낸다. 곤은 미르의 5년지기 온라인 친구지만, 둘은 한번도 얼굴을 직접 마주한 적이 없다. 10년 전, 코로나가 재유행하면서 여러 바이러스들이 등장했고, 사람들은 밖에 나가지 못하는 '격리' 처벌을 받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나(I&I) 시스템으로 향했다. 코로나가 재유행하기 전의 세상을 재현해놓은 메타버스 공간인데, 이곳에서 '일, 교육, 사교'와 같은 모든 일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들은 밖보다 집 안에서의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졌다.
미르가 삐에로같은 얼굴에서 조커 얼굴로 페이스를 체인지했다. "야, 이 조커 마스크 어때? 나 가챠 돌려서 10% 확률 뚫고 받았잖아." 미르는 나나 안에서 한 달에 한번은 꼭 얼굴을 바꾼다. 사실, 미르와 같은 일은 시스템 안에서 흔하다. 사람들은 이름을 새로 설정하고, 페이스 마스크를 수시로 바꾼다. 자신의 본래 얼굴과 이름보다 훨씬 개성을 뽐낼 수 있고, 오랫동안 대면 생활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미르, 너 페이스 마스크 자주 바꿔서 헷갈린다고." "괜찮아, 짜샤. 어차피 식별 팔찌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사람들은 신상을 파악하기 위해 기꺼이 팔찌에 구속되는 것을 택했다. 얼굴과 이름이 사라지고, 식별 팔찌에 적힌 일련번호가 자신의 신상을 나타내는 유일한 정보가 되었다.
"야 곤, 근데 너 나나 괴담 알아? 나나 안에 낙산공원 지역이 있는데, 거기에 들어가면 웬 동굴이 나온대. 거기에 입장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나나에 접속 못하게 된다는데? 우리 한번 담력테스트 가보자." "싫어, 내가 왜?" "아니, 요즘 나나 안에서 핫하다고. 그리고 동굴 안에 들어가면 레어 페이스 마스크 얻을 수 있는 치트키가 있대. 원래 위험 대비 보상이야."
곤은 요즘들어 페이스마스크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곤은 페이스마스크 초기 디자인을 쓰고 있었는데, 나나 안에서 유행에 뒤떨어진 취급을 받았다. 어떤 마스크를 착용하는지가 사람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서열이었다. 곤은 잠깐의 생각 끝에 "알겠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미르의 조커 페이스 마스크가 사악하게 웃는 얼굴로 바뀐다. "역시 너밖에 없다니까. 오늘 가는거야."
그렇게 곤과 미르는 나나 안에서 괴담 속의 동굴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동굴 입구에는 별다른 디자인이 없어서인지, 묘하게 스산한 기운이 풍겨져 나왔다. 그래서 곤과 미르 둘 중 어느 누구도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눈치를 보던 와중, 미르가 곤의 손을 끌어당겼다. "가자!" 둘은 얼떨결에 동굴 안에 들어왔다. "뭐야, 아무 일도 없는...뭐야!" 순간 화면에 'ERROR' 문구가 뜨기 시작하더니, 곤의 나나 시스템이 강제 종료되었다. '헐, 괴담이 진짜였어? 큰일났다.' 곤은 부랴부랴 재접속을 시도했다. 예상보다 화면은 별다른 문제없이 다시 켜졌다. '뭐야, 들어가지네?' 다시 들어간 나나 시스템은 아무 곳도 잘못된 부분이 없었다. 곤은 미르에게 화상채팅을 시도했다. 채팅이 켜진 순간, "뭐야, 너 누구야?" 미르는 어디가고 30대 정도 되어보이는 남자의 얼굴 밑에 '이한울'이라는 이름이 쓰여있었다. "설마...미르?" 미르라고 불린 남자는 당황하더니, "내 페이스마스크 어디갔어!"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러다 남자가 곤을 보았다. "어...어디서 봤는데...어? 정현곤 이사님?" 그렇게 나나 메타버스 제작 회사 'DEAR NANA'에 다니는 두 남자가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순간 한울은 당황했는지, 서둘러 채팅을 나갔다. 현곤도 마찬가지였다.
'아, 설마 회사 홈피나 기사에서 내 사진을 봤던건가.' DEAR NANA의 이사인 현곤은 몇 번 얼굴 사진이 기사에 나간 적이 있었다. 물론, 실제로 자신의 얼굴을 대면한 사람은 거의 없지만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은 자신의 얼굴을 알만했다. '뭐야...그럼 나나 시스템에 숨은 버그는 본래 내 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거였나?' 현곤은 천천히 상황을 더듬어 보았다. 그리고 이내 불안감이 현곤을 뒤덮었다. 솔직히, 얼굴과 이름이 나와있지 않은 세계였기에 현곤은 거침없는 언행과 행동을 일삼았었다. 미르같은 새로운 친구도 얼마든 만들 수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향한 평가도 서스럼없었다. '한울이 지금까지 했던 채팅과 내 얼굴을 나나에 뿌린다면?' 분명 뉴스감이었다. '제발, 정현곤은 절대 세상에 나와서는 안돼.' 현곤은 더 이상 나나 시스템에 접속할 수 없었다. 본래 자신, I(아이)의 모습으로는 사람들을 마주할 수 없었다. '곤이 위험하다면 변신하면 돼' 현곤은 이내 자신이 다니는 회사인, 나나 메타버스의 관리자 시스템에 접속한다. "미르...미르...아니 여기 일련번호 8340728 영구밴(banning)" 한울을 밴하고 나자, 현곤의 마음이 후련해진다. 곧, 그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조커 페이스를 착용한 채로 나나에 입장한다. '미르' 그것이 이제부터 현곤의 새 이름이다. 환골탈태다. 아, 이렇게 수많은 나를 만들기 쉬운 세상이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