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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마일엽도강(達磨一葉渡江) 그림(daum,net/nhk2375에서 퍼 옴)
달마일엽도강(達磨一葉渡江)이라는 그림이 있는데 이 그림은 달마가 나뭇잎 하나를 타고 강을 건넜다는 일화를 그린 그림이다. 달마는 실존인물로 달마는 양무제를 만난 후 소림사로 돌아가는 길에 장강을 갈대를 타고 건너는 모습을 많은 사람이 보았다고 하는데 그래서 달마일볍도강도가 많이 그려진다고 한다. 양무제가 달마를 만나 무제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며 "짐은 많은 사찰을 짓고 불교를 부흥시켰소. 그러나 당신은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여기 포교하러 온 것과 비교해 누가 더 큰 공덕을 쌓았다 생각하시오?"라고 묻자 달마는 한 마디로 "공덕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하자 무제는 화가 나 돌아가는 달마를 추적하여 자객을 시켜 살해했지만 몇 년이 지나 무제는 서역에서 돌아온 사신을 만난 자리에서 어느 고개에서 달마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제는 당장 달마를 묻었다는 무덤을 파보니 그 안에는 달마는 온데간데없고 짚신 한 짝만 남아있었다는 전설 때문에 달마도를 그릴 때 늘 달마가 지팡이에 짚신 한 짝을 매달고 서 있는 척리달마(隻履達摩)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달마 그림의 달마대사는 늘 못난 얼굴로 그려진다. 그렇지만, 실제 달마대사는 추남이 아니라 원래 엄청나게 잘생긴 미남이었다. 어느 날 못생긴 신선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어느 정자나무 아래 이르자 잠이 쏟아져 두 사람은 나무 아래서 한숨 자고 가기로 했다. 달마대사는 잠을 잘 때 신기하게도 육신은 그대로 두고 혼만 빠져나와 세상을 살피곤 했는데 한참이 지나 다시 자리로 돌아와 보니 짓궂은 신선 친구가 몸을 바꾸어 떠나버려 이때부터 달마는 추남의 얼굴로 살았다 한다.
▶ 장경각(藏經閣)
▶ 장경각(藏經閣)내 옥(玉) 와불상(臥佛像)
대웅보전 뒤에 있는 장경각(藏經閣)은 소림파의 72종 절예권보(絶藝券譜)가 보존돼 있어 소림사 안에서도 가장 중요시하는 금단지역이었지만 지금은 1996년에 미얀마의 불교신도가 기증한 옥(玉)으로 된 와불상(臥佛像)이 서책 대신 모셔져 있다.
▶ 입설정(立雪亭)
▶ 입설정(立雪亭) 내 모셔진 달마선사
▶ 입설정(立雪亭) 옆 비석에 양각된 달마선사
장경각 뒤편에는 입설정(立雪亭)이란 전각이 보인다. 전각 안에는 청나라 건륭황제가 직접 쓴 설인심주(雪印心珠, 눈 속에 마음의 구슬을 새겨 놓았다.)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이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아주 오래된 옛날에 눈이 펑펑 쏟아지던 날, 달마가 면벽 수도하던 소림사의 어느 도량 앞에 젊은 승려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도량 문만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젊은 승려는 달마의 제자가 되길 간절히 원했건만 달마는 본체만체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문 앞에 선 젊은 승려의 무릎까지 차올랐으나 달마의 대답은 "돌아가라! 돌아가!!!" 뿐이었다. 그러나 젊은 승려도 좀체 뜻을 굽히지 않고 오히려 더 굳은 의지를 보여주고자 자신의 한쪽 팔을 잘라버린다. 그러자 온 세상을 하얗게 덮은 하얀 눈 위에 젊은 승려의 팔에서 뿜어져 나오는 선혈이 빨갛게 물들인다.(이를 단비구법<斷臂求法>이라 한다.) 달마가 깜짝 놀라 얼른 자신의 가사를 찢어서 젊은 승려의 잘린 팔을 감싸준다. 팔이 하나 잘린 외팔이 젊은 승려가 바로 선종의 2대 조실이라는 혜가스님이라 하며 그 도량은 눈을 맞으며 그 앞에서 있었다고 해 입설정(立雪亭)이라고 불리었다 한다. 그리고 소림사의 승려들은 그때부터 피로 물든 달마대사를 기리기 위해 대대로 붉은 승복을 입는다고 한다. 지금 도를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승려가 자신의 팔을 자를 수 있을까? 가르침을 받기 위해 얼마 동안이나 눈 내리는 도량 앞에 서 있을 수 있을까? 팔을 자르는 대신 혹시 지금도 권력에 기웃거리고 내 주머니 채우는 일에 팔을 걷고 있는 승려는 없는지? 이게 비단 어디 승려에만 해당되겠는가? 과연 지금의 종교인은 민초를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나? 정치하는 사람이 정치 잘하고 종교인이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할 때 세상은 편해지는데 요즈음은 민초가 그런 사람을 걱정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 서방성인(四方聖人)이란 현판이 걸린 전각
▶ 전각내 부처의 옷이 특이하다
▶ 전각 내 벽화
입설정 뒤에는 서방성인(四方聖人)이란 현판이 걸린 법당이 있는데 안에 모신 부처님 형상이 이국적이다. 이 부처님은 옷깃까지 세운 엘리자베스 여왕 같은 옷을 입고 있어 궁금했는데 잘 살펴봤더니 서방에서 온 성인이라고 한다.
▶ 초조암(初祖庵)
▶ 초조암(初祖庵) 내 벽면수도 중인 달마상
소림사를 나와 옆 안내판을 따라 옆길로 접어들어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초조암(初祖庵)이라는 달마를 기리는 암자가 나온다. 선종의 조상이라는 의미로 초조라 했고 여기를 초조암이라 부른다. 초조암은 숭산 천지지중(天地之仲)의 하나로 역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곳이다. 달마동이 있는 오유봉과 소림사 상주원의 중간쯤인 산기슭에 있다. 산문을 열고 들어간다. 북송 때 건축한 곳이니 거의 천년 가까이 된 아주 오래된 암자다. 초조암은 가운데 중심선을 따라 제일 앞에 산문이 있고 그다음 대전이 있다. 그리고 그 뒤로 천불각이 있어 세 개의 건축물이 일렬로 정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초조암 대전은 북송시기인 선화 7년인 1125년에 지은 전후좌우 각각 3칸의 건물로 기둥이나 상랑 등 건축방식이 영조법식이라고 한다. 영조법식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마 중국 고대 건축방법 중 한 가지 방법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이 목조 대전의 건물이 허난성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라 한다.
▶ 초조암(初祖庵) 대전 앞 육조수식백(六祖手植栢)이라는 나무
대전 앞에는 아주 오래된 나무가 서 있는데 육조수식백(六祖手植栢)이라는 나무로 이 나무는 선종의 여섯 번째 후계자로 추앙받는 혜능선사가 당나라 초기에 광동에서 직접 묘목을 들고 이곳 소림사까지 찾아와 달마를 경배하는 의미로 직접 심은 나무라 한다. 그 외에 작은 건물 두 개가 더 있고 송나라 때부터 만든 비석이 49개가 보존되어 있다.
▶ 달마면벽지암(達磨面壁之庵)
뒤로 돌아가니 작은 암자 하나가 보인다. 암자 앞엔 달마면벽지암(達磨面壁之庵)이란 비석이 서 있다. 달마가 뒤에 있는 오유봉에 올라 9년 동안 동굴 속에서 벽만 바라보고 참선을 했다하여 여기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암자라고 한다.
▶ 멀리 오유봉 정상에 보이는 게 달마동(達磨洞)
소실산 오유봉 꼭대기에 올라 달마가 선종을 전파했다는 달마동(達磨洞)까지 가보려 했지만 아내가 지친 것 같아 이제 하산해야겠다. 여행 중 목적지를 다 본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체력에 맞춰, 시간에 맞춰, 동행자를 배려해 가며 여행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자일 것이다. 초조암까지 올라오는 길은 평탄한 길이 아니라 거의 등산 수준이어 좌우를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내려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복잡한 일상을 벗어나 산새가 지저귀고 파릇파릇한 새순이 돋아나는 이런 길을 걷는다는 일은 정말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여행 중에만 느낄 수 있는 작은 틈새 시간에 즐길 수 있는 호사라고 생각된다.
▶ 산을 오르는 무술 수련생들
초조암에서 탑림으로 내려오는 길에 도복을 입고 산을 오르는 여러 무리의 무술 수련생들과 마주친다. 아직은 엄마에게 응석을 부릴 어린 아이들부터 중고생 쯤 돼 보이는 수련생들까지 무술 사범의 인솔 하에 질서정연하게 산을 오르고 있다.
▶ 무려 284개의 다양한 양식의 전탑이 있는 탑림(塔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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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양한 모습과 양식의 탑들
▶ 탑림에 있는 비섯의 필체가 매우 힘차다
초조암으로 올라 올 때 안내판이 있었던 곳에서 우측으로 조금 올라가니 무성한 측백나무 숲 속에 탑림(塔林, 타린)이 있다. 탑림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은 곳으로 탑림이란 이름처럼 정말 많은 탑이 있어 마치 그 탑이 숲처럼 많이 있기에 탑림이라고 한다. 이곳의 부지 면적은 약 14,000여㎡로 당나라 때부터 지금까지 이어오는 모두 248기의 불탑은 중국에서 가장 많은 불탑이며 또 가장 오래된 불탑으로 문물가치가 무척 높은 곳이라 한다. 탑림은 소림사 역대 고승들의 안식처로 탑을 만들고 탑 안에 고승들의 사리를 모아 보관한 곳으로 불탑의 크기가 서로 다르고 형태로 서로 다르다. 또한, 대부분 조각과 서두(書頭)는 각 시대의 다른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어 예전에 벽돌을 쌓는 기술이라는 고대 전석 건축기술을 볼 수 있고 조각이나 서법, 회화예술을 모두 한곳에서 볼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그 가치가 무척 높이 평가되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어느 고승의 사리탑인지는 몰라도 탑에 살아 생전의 모습을 새겨놓았고 다른 사리탑과는 달리 무척 아름답게 꾸며놓았다.
▶ 무술공연장 입구의 평안종
▶ 560석 규모의 무술공연장
탑림 구경을 마치고 길을 한참 따라 내려와 무술공연장으로 향한다. 지난 봄 숭산에 올랐다 내려오면서 복호사에서 잠시 소림 무술을 봤지만 공연은 아니고 동자승들이 수련하는 모습이었다. 아마 소림사 관광을 오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이 무술공연이라 할 정도로 이곳은 늘 많은 사람으로 붐비는 곳이다. 소림사 무술관은 국가 관광국과 하남성 인민정부에서 공동 투자한 곳으로 무술에 재능이 있는 사람과 공연 예술 등 관광에 관한 사람을 모집하여 교육하는 곳으로 무술관 안에는 모두 560석의 좌석이 있다. 공연장 앞에 중국인 단체관광객의 깃발부대가 보인다면 공연시각이 머지않은 것이다. 공연의 상황은 늘 이래서 시작 시간 다 되어 가서도 구경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무척 순진한 생각이다. 소림사에 온 관광객은 누구나 보려고 하기에 늘 만원으로 공연시간은 30분에 불과하지만 공연을 보기 위해 대기 시간은 한 시간 전부터 줄을 서야 한다. 겨울철을 제외하고 공연시각은 오전은 9시30분, 10시30분, 11시30분 세 차례가 있었고 오후에는 14시, 15시, 16시, 17시로 네 차례 공연하여 하루에 모두 일곱 차례 공연을 한다. 겨울철에는 첫 번째 9시 30분 공연과 마지막 17시 공연은 하지 않는다. 이미 공연장 광장은 다음 공연시간에 들어가려는 구경꾼으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입장이 시작되면 정문을 통해 들어가며 바로 앞에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이 문은 늘 많은 사람이 몰리는 곳이기에 빨리 들어가도 자리를 잡기 쉽지 않다. 특히 중국 단체관광객은 한두 명만 들어가도 많은 자리를 자기네 자리라고 앉지 못하게 큰소리친다. 그러니 입구로 들어가며 보이는 제일 앞에 보이는 문 말고 양쪽 옆으로 가면 문이 또 있는데 이 문은 사람이 오지 않아 쉽게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다. 그렇지만, 공연장 정면이 아니기에 옆모습만 볼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 무술공연 사회자
▶ 무술공연 장면
공연이 시작되자 예쁜 여자 사회자가 나와 무술공연에 대한 설명을 하고 이어 초등학교 1~2학년 쯤 돼 보이는 어린 출연자가 나와 봉술시범을 조금 보이더니 여러 출연자들이 나와 함께 막대기로 두드리기 시작한다. 봉술시범인 것 같은데 도리깨질하듯 봉을 마구 두드린다. 무술인지 쇼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목에 쇠를 대고 구부리는 길거리 차력사가 하는 그런 무술도 보여 주고 유리를 가운데 두고 바늘을 던져 유리 건너편의 풍선을 맞추는 무술도 보여준다. 관객을 무대로 불려 올려 무술 동작을 따라 하게 하는 코너도 있다. 불려나온 관객이 무술 고수가 하는 대로 따라 하라고 하는데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웃자고 하는 일이자 공연 시간 늘리는 쉬운 방법이기도 하다. 관객이 제법 잘하면 웃자고 시킨 일에 죽자고 잘하면 시킨 사람의 표정이 영 떨떠름하다. 공연은 30분으로 무척 짧다. 시작하자마자 몇 번 뛰고 구르더니만 모두 나와 인사하고 들어가니 끝이다.
소림사 무술 공연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달마가 처음 무술을 연마할 때 득도를 위한 체력 단련으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돈 벌기 위한 공연으로 변질한 게 아닌가? 이곳에서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안쓰럽다는 생각마저 든다. 무술연기를 하는 사람은 아주 어린 아이부터 성인까지 출연하는데 너무 어린아이가 오랜 훈련으로 기계적으로 공연하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저 나이에 얼마나 고생하며 연습하였기에 저렇게 기계 같은 동작을 할까?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더욱이 어린 학생이 출연하여 기계적인 동작을 하는 모습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는 사회주의국가에서 너무 상업적인 공연을 하며 돈을 번다는 생각이 든다. 달마가 그렇게 돈을 밝혔을까? 썩 유쾌한 일은 아니지 싶다. 돌아서며 씁쓸한 기분은 왜일까?
▶ 마지막으로 달마선사께 인사를 올리고
▶ 운동장에서 무술수련 중인 수련생들
공연을 보고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운동장을 보니 소림사 무술학교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 수련생 중에는 서양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이미 소림사 무술은 세계화 되어 있는 것 같다.
▶ 소림사 맞은 편에 보이는 숭산(嵩山)
소림사 구경을 마치고 이곳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 쉬창으로 돌아오니 오후 8시 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