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가
바라보는 시조
—3장 6구 12음보 칸타빌레
문현애 울산창작음악협회 대표
1. 시조를 접한 작곡가
시조를 접하게 된 계기는 딸아이의 초등학교 방과 후 동시조 교실 수업이다. 임성화 선생님께 동시조 배우기를 재미있어 하다 보니 백 일장을 통해 좋은 성과도 보였다. 김천 직지사에서 개최하는 백일장에도 참여하였다. 그 당시 유치원에 다니던 아들이 “나도 써볼래요” 하는 것이었다. 누나만 글 쓰는 것을 보고 은근히 샘이 난 모양이었 다. 초, 중, 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백일장이어서 유치부는 해당이 안 되었는데, 시상식에 아들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닌가. 머뭇거림 없이 아들이 당당하게 시상대에 뛰어나가는 것이었다. 격려 겸 참가상을 주신 것 같았다. 딸아이는 초등부 장원을 하였다. 아이들 덕분에 3장 6구 12음보로 함축된 시인들의 생각이 녹아 있는 시조의 매력이 나의 창작 작곡에까지 스며들게 되었다.
2. 시조의 음악적 성격
시조를 노래로 공연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노래라는 말을 살려 지칭하면 ‘가곡창歌曲唱’과 ‘시조창時調唱’이다. 시조창은 민속악으로 쉽게 배울 수 있어 여러 계층의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오늘날까지 광범위하게 불리는 노래다. 즉,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이었던 반면에, 가곡창은 가사歌詞와 함께 정악正樂 성악곡으로 오랜 훈련을 쌓아 올려야 했던 전문가의 음악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다.
가곡창과 시조창이 요즘 시조에 곡을 붙여 시 노래와 가곡으로 많이 불리고 있다. 자유시가 아닌 3장 6구 12음보의 정형시는 노래로 만들기에 적합하다. 초장의 3 4 3 4 / 3(마디) 4(마디) / 3(마디) 4(마디) 작은악절로 마디마디에 음보가 정해져 있어 함축된 시어들이 대체적으로 리듬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현대시는 주제를 숨기고 독자가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들이 예전에 비해 많다. 작품성은 뛰어나겠지만 시 내용이 이해가 안 되고 어려우면 관객들에게 가사 전달이 어렵다. 노래로 불리어지려면 제목만으로도 시 내용이 쉽게 이해가 되고 서정적으로 불리어질 수 있는 시가 곡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 낭독하기에도 매끄럽지 않은 시는 노래로는 더더욱 힘들다.
물론 모든 시가 다 그렇지는 않지만 작곡자의 역량에 따라 조정 가능하니 너무 의식할 필요는 없다. 시나 곡을 창작한다는 것은 쉬 운 일은 아니다. 가곡의 경우 곡을 쓰기 전에 마음에 드는 시를 선택하여 시에서 주는 메시지 느낌 감정 등 시 분석 후 리듬 박자 선율 속도 등을 정해, 주제 선율을 만들어 발전시켜가며 곡을 만들어 간다.
단시조일 경우 짧아서 곡이 만들어질까 하는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다. 시를 반복할 수도 있고 작곡자가 구상하기에 달렸기 때문에 길이가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가사가 있는 노래는 가사에 먼저 충실 해야 한다. 가사가 없는 기악곡은 작곡자의 생각이 더 많이 작용한다. 하나의 곡이 완성하였을 때 시인의 생각이 작곡가에 전달되어 공감대가 형성이 된 곡이라면 명곡이 아닌가 생각한다.
오스트리아 작곡가 슈베르트는 빌헬름 연작시에 작곡된 대표적인 「겨울 나그네」 24곡 가곡집이 있다. 사랑에 찢긴 상심한 사나이의 정처 없는 나그네길에 시작으로 쓸쓸한 설경 속을 헤매는 나그네의 기분을 노래하는 「겨울 나그네」 24곡 가곡집 제5번 「보리수」가 특히 유명하며, 「봄의 꿈」, 「우편마차」, 「까마귀」, 「이정표」 등의 명작들이 아직까지 사랑받고 있는 좋은 예이다.
울산의 시조 시인의 작품이 가곡이나 합창곡 기악곡으로 작곡된 곡들이 많다. 매년 시조시인과 함께 작품 활동을 진행하고 있고 오 래전에 대구에 계신 이정환 시인의 작품을 합창곡으로 작곡한 게 인연이 되어 지금도 안부를 묻고 지낸다.
3. 나의 시조 창작곡
네 영혼 이곳까지
드높이 떠올랐구나
그 무슨 설움의 힘이 천의 날개에 휩싸여
그 무슨 설움의 힘이 저리 밀어 올린 것일까
곧장 타올라라
활활 불타올라라
꿈꾸어 온 높이만큼 아득히 타올라라
귓전을 치는 그 소리 흰 뼛가루를 흩는다
(이정환 「산정의 잠자리 떼」 전문)
이정환 시인의 작품 「산정의 잠자리 떼」를 ‘소프라노 바리톤 클라리넷 타악기’로 편성 작곡하여 초연하였고 한국음악작곡가협회 정 기연주회 때 ‘소프라노 바리톤’ 듀엣 창작가곡으로 초연한 곡을 편곡 발표하였다. 그리고 울산작곡가협회 창작합창음악의 밤 행사에 서 「산정의 잠자리 떼」를 ‘천국의 계단’이란 부제를 붙여 대규모의 합창관현악곡으로 구성 편곡하였다.
합창곡으로 재구성한 이유는 두 수의 짧은 시조를 4성부로 편성하여 다양한 음역대를 활용하여 다채로움을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체 곡 길이는 142마디로 1마디에서 31마디는 서곡으로 ‘어이야디야’ 32마 디부터 93마디에 해당 시조가 인용되었고 94마디에서 142마디 ‘어이 야디야’가 반복하여 나오지만 지루한 감이 없는 것이 박자표와 리듬의 변화를 주어 파트별로 다양한 변주형태로 곡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렇듯 2수의 시조를 3분 내외의 창작가곡과 5분 내외의 웅장한 합창곡으로 발표함으로써 음악을 통하여 관객들에게 작곡가의 의도와 시인의 감성이 공감각적으로 만나는 소통의 장을 보이고 싶었다. 시조는 현실이다. 현재의 자연과 사람들의 삶을 노래할 때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된다. 그런 작품으로 작곡을 하고 싶다.
문현애
안동대학교 대학원 작곡 석사, 안동대학교 외래교수 역임. 울산작곡가협회, 울산음악 협회 사무국장. 울산창작음악협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