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 무렵
내 핸드폰에 남동생의 이름이 나타났다
"누나! 오늘 엄마 생신인 줄 알았어?"
아차! 어쩌냐!
내 기억으로는 생신을
잊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사람이란 자기가 잘못한 것은
지워지니
알 수 없는 일이고
누나 체면이 말이 아니라
당황하며
"깜빡 잊었다…. 빨리 엄마한테 가 볼게"
생신인데 기별도 없어 섭섭하셨을 어머니께 얼른 전화 드렸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엄마, 생신 축하해요!
좀 있다 집으로 갈게요"
"그래라 몇 시에 올 거냐?"
어머니 목소리에 기쁨이
묻어났다
생신 날 쇼핑하기 성가시어
주로 돈 봉투로 선물을
대신했었는데
이번에는 생신을 잊고 있었기에
속죄하는 마음으로 급히
실버용 종합비타민, 꽃무늬 면 실크 티셔츠 등
특별히 정성 들여 선물을 샀다
누나를 위해
전화해 준 남동생이 아니었다면
두고두고 후회로 남았을 텐데
그리고 생신 날 어머니는 얼마나 섭섭했을까?
어머니는 굴비를 굽고
혈압이 높아지셨다며
싱거운 미역국과
불고기를 차려 주셨다
"어떻게 엄마 생일을 알았냐?
창이는 누나가 알려줬다고 하던데.."
순간 잠시 나는 숨을 멈췄다
''그랬구나.....''
동생의 마음 씀씀이를 그제야 헤아리게 되었다
바다처럼 속 깊은 내 동생
어머니 생신이라 이제나 저제나
누나를 기다렸을 테지
소식 없는 누나에게
화가 났을 텐데 티도 안 내고
넌지시 알려주며 시간 나는 대로 가서 엄마와 밥 먹으라고 한다
누나가 무안해 할까 봐 웃으면서
어머니께는 누나가
자기에게 생신을 알려줬다고 말씀드려서
당치도 않게 날 칭찬 듣게 한
깊은 배려가 어찌할 바를 모를 감동인데
속으로만 ''역시 내 동생...''
"엄마 사실 나는 창이가 알려주었어..."
"허허! 야들이 서로 알려주었다고 하네"
늙은 어머니는 생신에
남매 우애 좋은 것이 기분 좋으신가 보다
사려 깊은 동생이 마련한 또 하나의
생신 선물이다
누나가 어머니께 제 할 도리를 못 해
곤혹스러울까 봐
또 한편으로는 생신에 어머니 섭섭하실까봐
이리저리 마음을 쓴 모양이었다
오래전 내가 서른 일곱 살이던 해 우연히
갑상샘 암 진단을 받았다
지금은 흔하고 별거 아닌 암으로 생각하지만
그때만 해도 듣도 보도 못한
그것도 암이라고 하니 끝장 인 양 놀랐었다
소식을 듣고 누나 집에 한달음에 달려온 동생이
"누나…. 괜찮아 의학이 발달해
그깟 것은 아무것도 아니야''
의연하게 안심시켜 주었다
가끔 한숨을 쉬는 것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얼마 지난 뒤에 동생 친구가 근무하는
은행에 어머니가 예금하러 들렀더니
"누님은 괜찮으시지요?
창이가 제게 누님 이야기하며 울더라고요...."
어머니가 내게 전해주신다
내가 마음 약해질까 봐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더니
나는 동생의 마음 씀이 애잔했다
얼마나 애 타했을지 알 것 같기 때문이다
겉으로 표현 못 하고
속으로 깊이 아끼며 소중히 하는 동생과 나
화살표 긋듯이 늘 마음이 간다
딸만 있는 집 어렵게 얻은 금지옥엽 외동아들
감기들면 내가 업어 달래 주었었는데
지금은 나보다 큰 중년이 되었다
아들 선호가 극심했던 외할머니는
바스켓도 온갖 보약도 남동생 만 끼고 앉아 먹였다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내리사랑이니 보살펴야 하는
대상이라고만 여겼는데
그런 동생이 일찍 시집간 누나가 안타까워
공부하라며 학교도 알아봐 주고
컴퓨터 메모장에 글 쓰는 법도 일러주었다
드러내 말하지 않아도
내 동생이 누나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잘 알지
누나가 내 동생 생각하는 것처럼
우린 서로 그렇게 아끼며 사랑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