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4. 다음은 신라에서 최초로 우역이 설치된 기록이다. 그 시대적 상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은? 2010년 계리직 11번 기출문제
비로소 사방에 우역(郵驛)을 두고 맡은 관청에 명하여 관도(官道)를 수리하게 하였다. -삼국사기- |
① 왕위의 부자상속제 확립
② 활발한 정복사업의 전개
③ 수도의 방리(坊里) 명칭 제정
④ 수도에 시장 설치
※문제 해설
지문의 내용은 5세기 말 집권한 신라 제21대 소지미립간(479∼500(소지마립간 22)의 업적을 묻고 있다. 비처마립간이라고도 한다. 자비마립간의 장자이며, 어머니는 김씨로 서불한(舒弗邯) 미사흔의 딸이다. 487년(소지마립간 9) 사방에 우역(郵驛:공문을 전달하고 마필을 공급하는 곳)을 설치하고, 국내의 기간 도로인 관도(官道)를 수리하였다. 490년에는 왕경(王京)인 경주에 처음으로 시사(市肆)를 열어 사방의 물화(物貨)를 유통시켰다.
이러한 일련의 정책은 자비왕 대의 경주의 방리명(坊里名) 확정과 아울러 족제적(族制的) 성격이 강한 육부(六部) 체제를 개편해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를 수립하려는 노력으로 이해된다. 493년에 소지마립간은 백제 동성왕의 결혼 요청을 받아들여 이찬 비지(比智)의 딸을 시집보냄으로써 결혼 동맹을 맺었다. 변경 지방의 요충지에는 삼년산성(三年山城 : 지금의 보은) 등을 개축하거나 증축해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시조가 처음 태어난 곳인 내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설치하였다.
내물왕부터 박석김으로 교체되던 왕위가 김씨로 고정되고 이후 내물-실성-눌지-자비-소지왕으로 왕위가 이어진다. 다음 6세기는 신라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던 시기로 지증왕-법흥왕-진흥왕으로 이어지면서 삼국 시대 신라가 주도하던 시기이다. ① 왕위의 부자상속제 확립은 눌지왕, ② 활발한 정복사업의 전개는 법흥왕때 금관가야 복속과 진흥왕때 대가야와 한강차지 및 함경도 지역까지 진출한다. ③ 수도의 방리(坊里) 명칭 제정은 소지왕의 부친인 자비왕 때이다. ④ 수도에 시장 설치는 소지왕때이며 동시전은 6세기 지증왕때이다.
따라서 지문의 내용이 상당히 애매하다. 소지왕의 업적을 보려면 ④이 정답이 되는데, 중앙집권국가가 완성되기는 법흥왕대로 연맹왕국과 고대왕국의 완성시기를 비교하면 ②번이 정답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