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계마을 생성 연구]
아이에게 삶으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기소개를 간략하게 나눠주세요.
저는 덕계마을에 사는 은정입니다. 고등학교 사회 교사로 27년째 일하고 있고, 가정에서는 생각 많은 사춘기 18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 8살 두 딸과 만만찮은 육아를 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도 어떻게 하면 함께 사는 삶의 기쁨을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지내고 있어요.
'생명평화 덕계마을'은 어떤 곳인가요?
덕계마을은 지금은 분리되었지만 대안학교인 ‘꽃피는학교’가 씨알이 되어 시작했어요. 꽃피는학교가 양산 덕계에 터를 잡은 초기에는 그 근처에 모여 사는 가정들이 거의 없었고 각자 사는 곳에서 마을이라는 이름을 걸고 모임을 하고 있었어요. 이후 점차 학교 주변으로 이사 오는 가정이 늘어났고, 꽃피는학교 10주년을 기점으로 학교 문화를 지역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바람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마음이 모였습니다. 그 결실로 사회적 협동조합 ‘평화를 잇는 사람들(평잇사)’과 거점 공간인 마을카페 ‘이음’이 만들어졌답니다. 마을카페 이음을 시작으로 마을 목공방 ‘이음’, 수공예 공방 ‘손수’, 마을방송국 ‘FM이음’, 마을서점 ‘당신의 글자들’ 등이 문을 열었고, 2021년에는 마을밥상이 자리를 잡았지요.
‘밝은덕중학교’는 2019년 2월에 꽃피는학교 초등학사(5년제)를 수료한 학생들이 여러 사정으로 1년간 단체 홈스쿨을 한 이후 중등 진학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같은 해에 꽃피는학교 교사와 학부모가 중심이 되어 여러 사람이 공동체지도력훈련원 정규과정 13기로 함께 공부하면서 마을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 지향이 생겼어요.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올해 초에 밝은덕중학교에 초등과정이 만들어져 ‘밝은덕 배움터’로 거듭났고, 교육을 학교에서만 전담하는 게 아니라 마을이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을의 이모, 삼촌들이 여기저기서 배움을 열어서 아이와 어른이 함께 공부하는 ‘온마을 배움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둘째 아이는 평잇사를 만들던 해에 태어나서 마을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있는데, 그 아이의 삶으로 덕계 마을살이를 설명해볼까 합니다. 지금은 밝은덕 배움터 초등에 입학해서, 선생님이 된 마을의 이모, 삼촌과 배움을 하고, 저녁이면 마을밥상에서 언니 오빠, 마을 이모 삼촌들과 사귐을 하며, 달날 나무날이면 마을카페 이음의 ‘달빵’을 먹습니다. 달빵은 이음에서 만든 채식 쌀빵을 한 달 치(주 2회) 예약을 받아 파는 건데 우리 마을 자랑거리이지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마을 이모가 하는 과일가게(무아)에 들러서 과일도 사고, 바로 옆 마을서점에 들러서 책을 읽어달라고 조르기도 합니다. 가끔은 엄마 따라 달리기 동아리, 기타 동아리에 살짝 끼기도 하고, 두레모임, 텃밭 등을 쫓아다니기도 하고요. 방학에도 마을 배움터에서 열리는 여러 배움을 하며 지내고, 춘분, 하지, 추분, 동지 절기마다 열리는 마을 축제에서 마을 사람들과 온몸으로 즐기며 마을살이를 하고 있습니다.
살림학연구소 살림꾼으로 함께하며 덕계마을 생성과정을 자기 삶과 연결시켜 연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주셨는데요. 어떤 맥락에서 이런 연구주제를 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연구주제가 구체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우리 마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마을살이로 이어지는 내 삶의 과정’이란 주제로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보고 싶습니다.
작년에 대안학교를 다녔던 큰아이가 자신의 배움에 대해 고민하며 저에게 큰 숙제를 던져주었어요. 저더러 제도권에서 안정된 삶을 사는 엄마는 대안학교를 다니는 자기의 불안을 모른다고 하더라고요. 사실 아이 키우며 가장 잘한 일이 대안학교에 보내 계속 그 배움을 잇게 도운 거라 자부했는데, 세상에 휘둘리며 불안해하는 아이를 보니 마음이 답답하기도 하고, 아무것도 도와줄 수 없어서 참 많이 슬펐어요.
그러면서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는 왜 마을살이를 시작했는지, 이모 삼촌들은 왜 이렇게 모여 살고자 하는지, 무엇이 우리를 이리로 끌고 왔는지, 당위나 관념이 아니라 우리 삶으로 보여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연구활동을 하면서 기대되는 바가 있다면 나눠주세요.
2023년 8월 15일 살림꾼들 모두 모인 날, 앞에서 제 소개를 한 적이 있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가슴이 벅차올랐던 것 같아요. 대안학교를 나온 아이들을 위한 생태계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계속 하고 있었는데, 그 구체적인 모습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거든요. 공동체지도력훈련을 하면서 마을과 마을의 연결이 그 답이라는 확신은 들었지만, 그것 역시 생각으로만 머물러 있었는데, 그날 대안적 삶을 실제로 살고 있는 생기 넘치는 100여 명의 살림꾼을 보면서 이제 아이의 불안함에 이 많은 사람의 삶으로 답할 수 있겠다는 감사함이 밀려왔던 것 같아요. 저의 연구뿐 아니라 살림꾼 전체가 펼쳐낼 활동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리라 기대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살림꾼들에게 나누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해주세요.
낯선 사람들인데 낯설지 않고, 처음 만났는데 처음 같지 않았던 만남들이 저한테는 참 신비로운 경험이에요. 그전에는 늘 마을에서의 삶이 비현실적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내가 진짜 마을에서 살림을 하고 있다는 감각이 생기고 있어요. 생명살림을 실천하고 있는 살림꾼들 앞에 저는 참 많이 부족하고 여전히 가야 할 길이 멀지만, 함께하는 길 위에서 그 모자람을 서로 채워줄 거라 믿고 함께 발 내딛으려고 합니다. 함께라서 참 감사합니다.
은정_양산 덕계마을에서 살아요. 아이들을 제대로 사랑하는 교사가 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