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래실편지1] 나무와 풀이 무성한 집에서 순우 이경구
어느새 1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지난해 8월 초 이곳 나래실이라는 시골의 농촌 마을로 삶의 터전을 옮긴 뒤 그해의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올해의 봄과 여름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계절 가을을 맞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곳 시골로 나의 거처를 옮긴 것은 내가 도시에서의 삶을 산 지 근 50년 만의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도시에 살면서도 은퇴를 하고 나면 언젠가는 시골살이를 해야지 하는 나의 소망이 실현된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그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오래전부터 꾸준한 준비를 해왔습니다. 20여 년 전에 이곳에 산기슭 아래의 땅뙈기와 허름한 산방(山房)을 마련하고 주말이면 이곳을 찾아 틈틈이 정원을 가꾸고 농사 연습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시골로 들어오는 것이 그리 낯설거나 두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1년여의 시간이 후딱 지나간 걸 보면 새로운 곳에서의 삶이 그리 지루하거나 힘들지는 않았던 듯합니다.
나무와 풀이 무성한 집 나래헌( 南萊軒) 전경
나래실이란 곳은 강원도 영월의 서북쪽 한 귀퉁이의 작은 촌락으로 논이나 밭보다도 산이 더 많은 아주 수수한 마을입니다. 나래실이라는 이름은 하늘에서 마을의 형상을 보면 독수리가 날개를 편 모습이라고 해서 ‘날개 마을’ 나래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마을 사람들이 말합니다. 나래실, 아주 살가운 이름이지요? 그 이름만큼이나 이 작은 마을은 아름답습니다. 우리 마을은 큰 도로로부터 계곡을 따라 오르는 5km쯤의 완만한 경사의 나래실길 좌우로 펼쳐져 있습니다. 마을 안길은 마을 뒤편의 방갓산과 물미라는 산마루로 오르는 계곡을 따라 좁고 구불거리며 나 있지만, 그 계곡은 마을 아래의 동편을 향해 탁 트여있습니다. 그리고 말 그대로 동쪽을 향해 나 있는 동류수(東流水) 나래실천이 항상 흘러내립니다. 마을 중심에는 250년 나이의 보호수인 느릅나무의 일종인 비슬나무 두 그루가 서 있습니다. 마을의 당산목이라고 할 수 있지요. 마을에는 신일교회라는 예쁜 교회당과 광명암이라는 작은 사찰도 있습니다.
한편 마을 안길을 따라서는 주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집이 뜨문뜨문 자리해 있습니다. 70여 호에 이르는 농가에서는 주로 감자와 옥수수, 수수, 고추, 콩, 들깨, 사료작물, 그리고 배추 등 각종 채소와 산나물 따위의 농사를 짓습니다. 일 년에 두 번씩은 마을 안길 풀 깎기 작업을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하기도 하면서 함께 마을을 가꿔 나갑니다.
아내와 나의 거처를 지난해 나래실로 옮긴 이후 이곳에서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무엇보다도 일상의 환경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도시에서 살던 아파트와는 전혀 달리 한적한 터전에 마련된 독립된 공간에서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거친 자연의 정원과 텃밭으로 이루어진 공간이 삶의 터전이고 생활의 공간이 되었습니다. 나름 특징적인 터전이기에 각각의 공간에는 이름을 지어주고 그 이름표를 달아주었습니다. 지난해 이사를 오기 전에 수리를 마친 산방에는 살짝 마을의 이름을 넣었습니다. 나무 나(南)와 풀이 무성할 래(萊) 자를 써서 나래헌(南萊軒), 내가 꿈꿔온 ‘나무와 풀이 무성한 집’으로 풀이되는 이름을 짓고 현관 위쪽에 현판을 새겨서 달았습니다. 집에 달려서 새 단장을 한 서재 겸 목공방에는 ‘나무방(Wod Barn)’이란 이름의 작은 문패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Instagram에 올리고 있는 풀과 나무, 자연을 테마로 하는 사이버 우표 전시관인 '숲속우체국(Forestepost)'의 상징적인 오프라인 공간으로 '숲속우체국'이라는 현판도 손수 새겨서 걸었습니다. 나래헌이 있는 정원과 텃밭의 공간이 기본적으로는 농장인 만큼 오래전에 지어놓은 이름인 '나래실아침농원'이라는 이름의 간판도 곧 농원 입구의 대문에 걸을 예정입니다.
주거와 생활 환경의 변화에 따를 당연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삶의 패턴과 생활 방식이 또한 큰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이른 아침 새소리에 눈을 뜨고 동트는 아침을 맞이합니다. 이른 아침의 산책에 이어 닭의 모이와 물을 챙겨주고 식전부터 정원에서 하루의 일을 시작합니다. 아침을 들고나서는 주로 텃밭을 돌보거나 정원을 가꿉니다. 하루가 어찌도 빨리 지나는지 모릅니다. 거의 매일 어스름이 내릴 시간까지 종종걸음을 치며 바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냅니다. 식생활의 변화 또한 적지 않습니다. 지난 여름 동안의 아침상에는 텃밭에서 손수 기른 오이, 방울토마토, 블루베리 따위가 들어간 그리스식 샐러드가 자주 올랐고, 텃밭 상추, 치커리 따위로 쌈을 싸고 호박이나 가지무침으로 저녁을 먹기도 했습니다. 최근까지도 텃밭에서 갓 수확한 싱싱한 피망과 파프리카로 만든 채소 덮밥이나 토마토 파스타를 자주 즐기고는 했습니다. 요즘은 갓 수확한 땅콩, 산 밤 따위가 아침 식사의 디저트입니다. 올해의 김장은 밭에서 기르고 있는 고추, 배추, 갓, 총각무, 대파, 쪽파 따위의 것들로 그 재료를 충당할 참입니다.
또 다른 큰 변화의 하나는 새로운 가족이 많이 늘었다는 점입니다. 길고양이 한 마리를 입양해서 기르기 시작한 지 1년이 다 돼갑니다. 녀석으로 바다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얼마나 깔끔한지 서재를 나와 함께 자신의 방으로 쓰게 내주었습니다. 이제는 녀석과 둘도 없는 친구가 됐습니다. 지난해 9월부터 닭을 기르기 시작했습니다. 로즈컴(Rosecomb)이라는 진기한 품종의 닭을 시작으로 청계와 집 기러기 등 지금은 모두 13마리의 가금류 가축을 기르고 있습니다. 지난 7월에는 진돗개 강아지 한 마리를 이웃집에서 분양받아 돌보고 있습니다. 고양이의 이름 '바다'에 맞춰 강아지의 이름은 '산'으로 짓고 이들 두 녀석이 사이좋게 지내도록 지도를 하고 있습니다. 정원과 텃밭에서 돌보고 기르는 나무와 농작물, 농원으로 찾아드는 새와 풀벌레까지를 나래헌 한 가족의 범주에 넣는다면 그 종류와 숫자는 여기에서 일일이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나 꽤 여러 종류의 나무와 화초, 채소와 과수, 농작물을 가꾸어 기르고 거두고 있습니다.
아침 기온이 오늘도 8℃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찬 이슬이 듬뿍 내리고 안개가 자욱한 걸 보니 오늘도 아주 맑은 가을의 하루가 될 듯싶습니다. 상쾌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2024.10.5.) |
첫댓글 미리 준비한 모습이 ᆢ역시 대박입니다.ᆢ천국같은 곳서ᆢ더 자연과 더불어 지내는 모습이 부럽습니다 ㆍ 더 행복한 나날되소서ᆢ 존경합니다 ㆍ사랑합니다.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