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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리자는 이탈리아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상반신 초상화이다.
이탈리아 르네슨스(르네상스) 시대의 대표적인 걸작으로 여겨지고 있는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지고, 가장 많이 방문하였으며 가장 많이 쓰여지고,
가장 많이 불려지고, 가장 많이 패러디된 작품"으로 묘사되어 왔다.
이 작품의 새로운 특성은 수수께끼같은 표현, 구성의 기념비, 형태의 미묘한 모델링, 분위기있는 환상주의를 포함하고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으로 이탈리아 귀족, `리사 델 지오콘도`를 묘사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 작품은 흰색 포플라 패널 위에 유채로 그려졌다.
레오나르도는 결코 이 그림을 지오콘도 가문에 주지 않았다.
이 작품은 1503년에서 1506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믿어져 왔으나.
레오나르도는 1517년까지 이 작품에 대한 작업을 계속해 왔을지 모른다..
1519년,
프랑스 왕, 프랑시스 1세가 레오나르도의 사후에 이 작품, 모나 리자를 획득했다.
그리고 이 작품은 지금 프랑스 공화국의 소유물이다.
이 작품은 보통 1797년부터 프랑스 파리, 르브루 박물관에 전시되어져 왔다.
이 그림의 세계적 명성과 인기는 부분적으로 1911년 이탈이아의 장식가, 빈첸조 페루쟈의 절도에 기인하고 있다.
그의 행동은 이탈리아 애국심에 기인하고 있었다. - 이 작품은 이탈리아에 속해야 한다는 믿음.
그 절도 그리고 그후,
1914년의 회수는 한 예술 절도를 유례없는 홍보로 만들어 냈다.
또한, 1915년 오페라 `모나 리자`, 2편의 1930년대 초기 영화(모나 리자 절도와 아뤼센 루팡)
그리고 미국 가수, 냇 킹 콜에 의해 녹음된 `모나 리자`란 곡 - 1950년대 가장 성공적인 노래들 중 하나 - 과 같이
많은 문화적 묘사의 출판을 이끌었다.
모나 리자는 세계에서 가장 가치있는 그림들 중 하나이다.
이 작품은 1962년 미화 1억달러(1,451억원) 으로 - (2023년 10억 달러(1조 4,513억원)와 동등한)
역사에서 가장 높게 알려진 그림 보험 가치로써 기네스 월드 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한 책에서 발견된 아고스티노 베스푸치의 `주석`(오른쪽에 보인다)은 `1503년 날짜`로 되어있다.
그것은 레오나르도가 `리사 델 지오콘도`의 초상화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었음을 서술하고 있다.
영어로 `모나 리자`로 알려진 이 그림의 제목은
비록 그녀의 모습이 불확실하지만,
`리사 델 지오콘도`를 묘사하고 있다는 가정에 근거하고 있다.
르네상스 예술사학자, 조르지오 바사리는 다음과 같이 썼다.
"레오나르도는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를 위해 그의 아내, 모나 리자에 대한 초상화 그림을 그리기를 시작했다."
이탈리아어로 모나(Monna) 는 - 영어로 성인 여자에 대한 정중한 표현인 맴(Ma'am), 마담(Madam),과 유사-
원래 마 돈나 (Ma donna)의 예의바른 호칭 형태이다.
이것이 마돈나(madonna)가 되었고
마돈나의 축약이 `모나`이다
이 그림의 제목은 이탈리아어로 `모나 리자` - 모나(mona)는 이탈리아어로 저속함이다 - 로 표기된다.
그것은 영어에서는 드물며
작품은 전통적으로 모나(Mona)로 표기되어진다.
`리사 델 지오콘도`는 피렌체와 투스카니의 `게라르디니` 가문의 구성원이며
부유한 피렌체의.실크 상인, `프란체스코 델 지오콘도`의 아내였다.
이 그림은 그들의 새 집, 그리고 그들의 둘째 아들,안드레아의 탄생을 위해
그림 요청되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그림의 이탈리아 작품명 `라 지오콘도`는
"jocund"( 행복한 또는 즐거운) 또는 문자대로 "Jocund one"(즐거운,행복한 사람)을 의미한다.
리사의 결혼한 이름,`지오콘도`에 대한 여성 형태의 말장난이다.
이 그림의 프랑스어 작품명, `라 조콤므`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바사리의 모나 리자에 대한 설명은 예술가, 레오나르도가 사망한 지, 31년인, 1550년에 출판된
바사리의 레오나르도 전기에 나온다.
.
그것은 오랫동안 시터(그림의 대상)와 이 작품에 대한 소유권 변화에 대해 가장 잘 알려진 출처였다.
레오나르도의 조수, 살라이가 레오나르도의 사망한 1524년,
레오나르도의 개인 서류들 속에서,
레오나르도가 살라이에게 유증한 그림, `라 지오콘도`라고 이름 붙여진 한 초상화를 소유했다.
레오나르도가 그런 작품을 그렸다는 것과 작품의 날짜는
독일 하이델베르그 대학의 한 학자가 고대 로마의 철학자, 키케로의 1477년 인쇄본의 주석을 발견한 해인, 2005년에
(이 그림이) 1503년 10월, 그려진 날짜로 확인되었다.
이 주석은 레오나르도와 동시대 피렌체의 정부 서기, 아고스티노 베스푸치가 썼다.
이 주석은 레오나르도를 저명한 그리스의 화가, 아펠레스에 비유하고 있였다.
아펠레스는 문자로 언급되어 있다.
그리고 이 주석은 레오나르도가 그 당시, `리사 델 지오콘도`에 대한 그림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문서의 발견에 대한 발표에 대한 반응으로, 르브르 박물관의 대표, `밴상 들뤼에방`은 다음과 서술했다.
"1503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리사 델 지오콘도`란 이름의 피렌체 출신의 한 숙녀에 대한 초상화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현재 확신합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절대적으로 이 `리사 델 지오콘도`의 초상화가 르브르의 그림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 대한 `카탈로그 레조네` (2019)는 이 그림이 아마도
`리사 델 지오콘도`를 묘사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것은 확인시켜주고 있다.
(만토바 후작부인이었으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주요 문화, 정치 인물로 꼽히는 여성인) `이사벨라 데스테`가 그럴 듯한
유일한 대안이다.
학자들은 일부 대안적 관점들을 발전시켜 왔다.
리사 델 지오콘도는 여러 초상화의 대상이었다고 주장하며
바사리가 언급한 최소 4점의 다른 그림들이 모나 리자로 확인되고 있다.
일부 다른 이들은 이 그림의 대상으로서
아라곤의 이사벨라, 체칠리아 갈레라니, 코스탄자 다발로스, 프랑카빌라 공작부인, 파치피카 브란다노/브란디노,
이사벨라 구알란다, 카테리나 스포르차, 비앙카 지오반나 스포르차, 살라이, 그리고
심지어 레오나르도 자신을 제안해왔다.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드는
레오나르도가 그의 어머니,`카테리나`의 인자한 미소를
모나리자와 다른 작품들, `크리스트의 세례`, `바위의 성모`, `성 앤과 함꼐 있는 성모와 아기 지저스`와
같은 작품에 더했다라고 이론화하였다.
뒷배경의 세부 모습 (오른쪽)
모나 리자는 그 당시 여성의 이상으로써 여겨졌던 성모 `매리`에 대한 수많은 르네상스 시대 묘사와
강하게 유사함을 지니고 있다.
여성은 팔이 접혀진 채, `포제토 팔걸이 의자`에 똑바로 앉아있다.
절제된 자세에 대한 하나의 신호이다.
그녀의 시선은 관찰자에 고정되어 있다.
레오나르도는 윤곽을 그리지 않은 방법에 의해 달성된 특별한 정도로
여자는 살아 있는 듯 나타나고 있다.
부드러운 색혼합 (스푸마토 기법)이 모호한 분위기를 창조하고 있다.
- 주로 2곳의 특징: 입꼬리(입의 끝구석), 눈꼬리(눈의 끝구석).
3/4의 측면으로 있는 시터에 대한 묘사는
15세기말 `로렌초 디 크레디`와 `아뇰로 디 도메니코 델 마치에레`의 작품들과 유사하다.
독일 예술사학자, 프랭크 죌너는 시터의 일반적인 위치가 밸기에, 플란더르 시대의 모델들로 다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특히 패널 양쪽에 있는 기둥의 수직적 잘림은 플란더르 시대의 초상화에서 전례가 있었다며 주목했다.
우즈-마르스텐은 독일-플란더르 화가, 한스 멤링의 `베네데토 포르티나리`(1487) 또는
레오나르도의 초기 초상화 작품, `지네브라 데 벤치`에서 잃어버린 특징인, 시터와 먼 풍경사이에 중재 효과,
즉 `로자` 건축양식의 사용으로 `세바스티아노 마이나르디`의 `펜던트(목걸이) 초상화` 작품들과 같은
이탈리아 모방작들을 인용하고 있다.
리자의 손의 세부 모습, 그녀의 오른손은 왼손 위에 있다. 레오나르도는 덕이 있는 여성, 충실한 아내로서 리자를 묘사하기 위해 결혼 반지보다는 이 자세를 택했다.
비록 일부 학자들은 사실적인 묘사를 선호했지만,
이 그림은 가상의 풍경 정면에 있는 시터를 묘사하는 이탈이아 첫 초상화 중 한 작품이었다.
그리고 레오나르도는 공중 원근법을 사용한 첫 화가들 중 한 명이었다.
수수께기 같은 여자는
양쪽에 있는 어두운 기등과 함께,
열린 `로쟈` 양식으로 나타나는 것 속에서 앉은 채로 묘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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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뒤로는, 거대한 풍경이 얼음으로 덮힌 산,.구불구불한 길들과 먼거리에 있는 하나의 다리까지 후퇴하고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암시는 매우 조금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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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작품 `제네브라 데 벤치`에서 했던 것처럼,
수평선을 목에 위치시킨 것이 아니라, 두 눈의 수준에 놓았다.
이와같이 인물을 풍경과 연결하고
이 그림의 신비로운 자연을 강조하였다.
뒷 배경의 다리는 `실바노 빈첸티`에 의해 `아르노` 강 너머 이탈리아의 `아레쪼`,`라테리나` 근처,
에트루리아-로마 시대의 4개의 아치형 다리 `로미토 디 라테리나`로 확인되었다.
가능성있는 위치로써 제시된,
유사한 아치를 가진 다른 다리들은 더 많은 아치를 가지고 있다.
일부 관찰자들은 `아쪼네 비스콘테` 다리와의 유사성을 발견하고 있다.
`모나 리자`는
비록 바사리가 상세하게 눈썹을 묘사하고 있지만,
확실히 보여지는 어떤 눈썹이나 속눈썹이 없다.
2007년,
프랑스의 엔지니어, 파스칼 코트는
이 그림에 대한 초고해상도 스캔으로 모나 리자가 원래 속눈썹과 눈썹이 그려졌다는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런 것이 점차 사라졌다.
아마도 과도한 세척의 결과일 것이다.
파스칼 코트는 얼굴 크기에 행해진 변화 그리고 응시 방향의 변화와 함께,
이 그림이 여러 번 재작업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코트는 한개의 층으로,
대상이 수많은 머리핀과 진주들로 장식된 머리장식을 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으며
그 후에 그것은 대상이 문질러 지고 덧칠되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그림의 시터(그림의 대상)과 뒷배경 풍경에 관한 많은 추측이 있었다.
예를 들자면, 레오나르도는 아마도 자신의 시터 외모를 충실히 그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심지어 후기 콰드로첸토(15세기) 또는 21세기 기준으로 측정해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최고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유키오 야시로와 같은 동양 예술 사학자들은
이 그림 뒷배경의 풍경은 중국 회화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문은 확실한 증거 부족으로 논쟁이 벌어져 왔다.
2003년, 하버드 대학의 마가렛 리빙스턴 교수의 연구에서
모나 리자의 미소는 `안와`로 알려진 직접적 시각으로 관찰하였을 떄,
모나 리자의 미소는 사라진다고 말했다.
인간의 눈이 시각적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 떄문에, 직접적으로 그림자들을 포착하는데는 덜 적합하다.
하지만 주변 시야는 그림자들을 잘 포착할 수 있다.
이탈리아 우르비노 대학의 한 지형학 교수와 한 예술 사진가의 2008년의 연구는
모나 리자의 풍경이 이탈리아 `페사로`와 `우르비노` 그리고 `리미니`지방의 `몬테펠트로` 지역 일부 전경과
유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이탈리아의 지질학자이자 예술 사학자인 `앤 피초루소`는 알아볼수 있는 일부 풍경이
"북부 이탈리아의 롬바르디 지역의 `라케 코모` 호수 연안에 있는 `레코` 시의 특징을 포함하고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젊은 여자의 초상화
로렌초 디 크레디
1490년대 경
58.7 cm (23.1 in) x 40 cm (15.7 in)
패널 위에 유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오브 아트 박물관 소장
자살을 선언하는 루크레치아
아뇰로 디 도메니코 델 마치에레
1505/1510년 경
패널 위에 패널유채 그 위에 템페라
.63 × 113,5 cm.
프랑스 파리, 갤러리 G 사르티 소
성 베네딕트 - 베네데토 포르티나리(1487)
한스 멤링
1487년
패널 위에 유화
45 cm (17.7 in) x 34 cm (13.3 in)
이탈리아 피렌체,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 소장
아기 (지저스)와 함꼐 있는 마돈나 (성모 메리)
한스 멤링
1487년
패널 위에 유화
43 cm (16.9 in) x 31 cm (12.2 in)
독일 베를린, 게묄더 갈러리 박물관 소장
펜던트(목걸이) 초상화
세바스티아노 마이나르디
1490년 경 / 1480- 1500년
포플라 패널 위에 물
44.6 cm (17.5 in) x 34.4 cm (13.5 in)
독일 베를린, 게묄더 갈러리 박물관 소장
크리스트의 세례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1435-1488)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1470-1475년
패널 위에 템페라와 유채
180 cm (70.8 in); width: 152 cm (59.8 in)
이탈리아 피렌체, 우핏지 갤러리 박물관 소장
바위의 성모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83-1486년
캔버스 위에 유화 (1806년 캔버스에 나무가 추가됨)
199 cm (78.3 in) x122 cm (48 in)
프랑스 파리, 르브르 박물관 소장
성 앤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지저스)
레오나르도 다 빈치
1503-1519년
?
지네브라 데 벤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1474년 경 - 1478년 경
패널 위에 유화
38.8 cm (15.2 in) x 36.7 cm (14.4 in)
미국 워싱턴 D.C., 내셔널 갤러리 오브 아트 박물관 소장
모나 리자
레오나르도 다 빈치
1503-1506년 경, 1517년 경까지 작업 계속
포플라 패널 위에 유화
대상: 리사 델 지오콘도
77 cm × 53 cm (30 in × 21 in)
프랑스 파리, 르브르 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