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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은 믿는 자의 '몸'과 관련한 교리가 이어지는데 요약하자면 모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성령 안에 있으나' 그들 모두가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이 육신을 따라 살고자 고집하면 그는 복된 생(현생)을 살지 못하고 때가 되기 전에 육신적 사망(아나니아와 삽피라)을 맞게 될 것입니다.
10절부터는 믿는 자의 몸의 구속과 관련해서 나오는데 성령께서는 장차 이루어질 몸의 구속을 보증하는 증인이 되어서 성도 안에 머물고 계십니다. 18절부터 구원의 완성, 곧 휴거를 다루고 있는데 부활과 휴거야말로 '구원의 완성'(몸,혼,영)이며 구원받은 사람의 최고 소망입니다. 더 나아가 '피조물 전체의 소망'이기도 한데 그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야 썩어짐의 속박에서 벗어나기 때문입니다(20-23절).
<로마서 8장>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3 율법이 육신을 통하여서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 그 육신에 죄를 선고하셨으니
4 이는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5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6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화평이니라.
7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로 할 수도 없음이라.
8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
10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은 의로 인한 생명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으로 인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들이나 육신에 진 것이 아니니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15 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 되는 영을 받았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8 이는 현재의 고난들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영광에 감히 비교되지 못한다고 내가 여기기 때문이라.
19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분 때문이며
21 피조물 자체도 그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22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
23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시켰기 때문이라.
3 율법이 육신을 통하여서는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죄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 그 육신에 죄를 선고하셨으니
4 이는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려 함이라. 우리는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1절, 이 구절은 '극단적 은혜주의자'들에 의해(혹은 극단적 세대주의자인 구원파) 심히 오용되는 말씀인데 그들이 틀리게 사용하는 의미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반절인 '육신을 따르지 않고 성령을 따라 행한다'가 이 구절의 핵심입니다. 즉 거듭난 사람들 중에서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을 것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속사람'(혼)은 '지옥에 가지 않는다'가 사실이지만 육신을 따라 행하는 거듭난 사람은 반드시 그 몸에 정죄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생을 얻고, 정죄에 이르지 아니할 것이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느니라(요 5:24).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정죄'는 영원한 지옥불 정죄를 말하며 롬 8:1에서 말씀한 정죄는 일시적 정죄, 곧 육신의 징계를 말합니다.
2절, '생명의 성령의 법'은 율법과 모든 면에서 다른데 성령의 법은 율법 조문을 들고 와서 이것들만 지키라고 가르치는 법이 아닙니다. 성령의 법은 '성경을 공부하게 하고', '죄를 멀리하게 하며', '성경대로 믿는 형제들과 교제하라고 하며', '저주받은 세상에 복음을 전하라'고 알려주는 법이지만 그럼에도 그 시키는 모든 것들에 대해 '강제성'이 없습니다. 성령의 법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성령께서 당신을 다시 지옥으로 정죄하시지 않습니다. 이 법은 믿는 이 스스로 의지로 성령의 명령에 부응하여 따라 행하면 되는 법입니다. 타성적으로 지키는 구약 율법과 완전히 다릅니다.
성령의 법은 다음 사항들을 포함합니다. 1) 새로운 출생, 2) 성령 침례, 3) 영적 할례.
3절, '육신을 통하여서는 연약하여 할수 없는 것이므로', '연약하다'는 말은 육신으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다는 죄로 인한 육신의 연약함에 대해 말했습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지만 그 분은 죄가 없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에 죄가 선고되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주님의 몸에는 온갖 세상 죄가 같이 매달려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무덤에서 다시 일어나셨을 때 그 몸에는 죄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미리 앞을 내다봄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하여 말한 것은, 주의 혼이 지옥에 버려지지 아니하였으며, 또 주의 육신도 썩어짐을 보지 아니하였다는 것이라(행 2:31).
4절, '율법의 의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게 하려 한다', 이 말을 자세히 봐야 합니다. '율법의 의'는 구약 성도들의 '몸'을 규제했으며 몸에서 이루어졌던 반면 양심은 정결케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현재를 위한 모형이었으니, 그에 따라 예물들과 희생제물들을 드려도 양심에 관해서는 섬긴 자를 온전케 할 수 없었도다. 이 예배는 오직 먹는 것과 마시는 것, 여러 가지 씻는 것과 육신의 율례들에 근거한 것으로 이것들은 개혁의 때까지만 부과된 것이로다(히 9:9-10).
그런데 성령의 법은 '율법의 의가 안에서 이루어지게 합니다. 당신의 육신이 아닌 양심을 정결케 하는 것이 성령의 법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자들이라'. 육신을 따라 행하는 거듭난 자들도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 '우리'라고 할때 '그리스도인'을 말하는 것이지 단지 거듭난 상태를 말하지는 않습니다. 거듭난 죄인들은 속히 육신 대신 성령의 법을 따라 '그리스도인'(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이 되라는 것입니다. (저는 육신적 크리스찬들이 지옥에 간다는 말이 아니라 '성령의 법'을 배우지 않는다면 그들이 유업에 있어서, 육신의 수명에 있어 손실을 당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성경을 나누어 공부하지 않는 과격한 목사들은 육신적 교인들이 구원을 잃어버린다고 밀어붙입니다, 폴 워셔나 존 맥아더)
5 육신을 따르는 사람들은 육신의 일들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르는 사람들은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느니라.
6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나 영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생명과 화평이니라.
7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로 할 수도 없음이라.
8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9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
5절, 모든 거듭난 죄인이 가만 있어도 자동으로 이런 상태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경건의 훈련을 거부하지 않고 따른 사람들은 '육신의 일 대신 성령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에 익숙해집니다.
몸의 훈련은 유익이 적지만 경건은 모든 일에 유익하여 현재와 미래에 생명의 약속을 소유하게 하느니라(딤전 4:8).
6절, 계속해서 영적인 그리스도인과 육신적인 거듭난 죄인을 구분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거듭난 게 맞다 해도 현재 성령의 법을 따르지 않고 산다면 '생명과 화평'을 실생활에서 맛보는 것은 '그림의 떡'이라는 말입니다. '육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사망이라고 했으니 성령의 법 아래 있지 않은 거듭났음에도 고집센 죄인은 차라리 "빨리 죽는 게" 나은 처지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고 점점 망가져 갈테니 그 자신에게 해가 되는 생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진짜로 그런 사람은 빨리 데려가실 수 있습니다.
7절,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혼'을 마귀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오셨는데 하나님의 소유가 된 혼이지만 육신은 여전히 불순종하고 '육신적인 생각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육신적인 생각들은 전부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데 육신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할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조심스럽게 풀면, 당신이 성령님께 '육신을 복종시켜 주세요, 이 육신이 제멋대로 구네요'라고 기도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스스로 육신을 다스려서 성령의 법에 따르도록 억제시켜야 합니다. 성령께서 거듭난 사람 육신까지 고삐를 꿰어 억지로 순종시키실 수는 없습니다. 몸을 다스릴 의무는 당신 스스로에게 있습니다. 따라서 먼저 육신의 악한 일들을 멈추고, 그 후에 성령님께 '제 할 일을 했습니다'라고 보고드리면 됩니다.
내가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함은 다른 사람들에게 전파한 후에 어떻게 해서든지 내 자신이 버림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고전 9:27).
바울은 분명히 스스로 '내 몸을 억제하여 복종하게 한다'라고 했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자신이 할 일까지 성령께 떠넘기는 것은 곤란합니다.
8절,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육신적 크리스찬과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을 합해서 말하는 것인데 그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육신적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싫어하고 가려운 귀를 즐겁게 해 주는 거짓 교사들을 좋아합니다(딤후 4:3).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 12: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은 거듭난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 공부', '구령', '교제', '경배', '찬양' 같은 것들을 행하는 것, 그렇게 하려면 육신의 일들을 버려야 합니다. 극소수의 성도가 '온전하신 뜻'에 근접하고 소수가 기뻐하시는 뜻까지 행하지만 대부분은 '선하신 뜻'(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뜻, 롬 8:28)에 멈춰버립니다. 그들이 육신적 삶을 안 버리기 때문입니다.
9절, 이 구절은 모든 거듭난 자가 '성령 안에 있다', '그리스도의 영을 가졌다'고 말하며 누구든지 4-8절의 '성령의 법'을 따라서 행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 자격, 능력이 있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성령의 법'이 육신에 이루어지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수련을 통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즉시 조그만 순종부터 시작하면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공부하고 깨닫고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진리의 지식을 공부하지 않는다면 결승점을 모르고 달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처럼 달리되 불확실하게 하지 아니하며 또 내가 그처럼 싸우되 허공을 치는 자같이 아니하노라(고전 9:26).
10 만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성령은 의로 인한 생명이니라.
11 예수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분의 영으로 인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들이나 육신에 진 것이 아니니 육신을 따라 살 것이 아니니라.
13 너희가 육신을 따라 살면 죽을 것이나 성령을 통하여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
10절, 이제부터 믿는 자의 몸 안에서 성령 편에서 행하시는 사역을 기술하고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당신의 '몸'은 거듭난 순간 이미 죽었습니다. '성령은 의로 인한 생명이니라', 성령을 소유했으면 당신은 영생을 소유했습니다.
11절, 성령은 '예수를 살리신 분의 영'인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신 '살리신 분의 영'을 통해서 우리의 몸도 살리실 것입니다. 즉 성령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부활, 휴거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현재 우리 안에서 하고 계신 일은 장차의 부활을 위해 구원받은 자의 몸,혼,영을 지키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를 살리셨으니 그분의 능력으로 우리도 살리시리라(고전 6:14).
12절, 따라서 우리는 사실 큰 빚을 지고 있는데 이 빚은 스스로 갚을 수 없는 빚입니다. 성령께,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 각자가 빚을 졌습니다. 그분은 댓가도 받지 않고 우리를 거저 구원받게 하셨고 댓가없이 성령으로 지키시며 댓가없이 몸의 구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구원은 '선물'로 받았지만 그 받은 것을 따지고 보자면 우리는 엄청난 빚을 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염치가 있다면' 우리도 육신을 따라서 살면 안된다는 말입니다.
13절, 이 구절을 잘 이해해야 하는데 '죽을 것이나'는 문자 그대로 '몸의 사망'을 말합니다. '죽는다'는 말을 문맥에 따라 구별하지 못하면 여호와의 증인들(영혼수면설)의 이단 교리도 나오고 행위 구원 이단에도 빠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은 시작부터 계속 '몸', 그리스도인의 '육신'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당신의 혼을 다시 멱살 잡고 지옥에 던지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점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법을 따라 몸의 행실을 죽이면 그는 주의 일을 하면서 오래 살 것입니다. 이 말씀이 '모든' 설교자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많은 신실한 목사들이 사역을 마치지 못하고 일찍 본향을 향해 떠납니다. 그들이 육신적으로 살았기 때문은 아닌데 말입니다. 따라서 '선한 그리스도인은 장수한다'는 것은 교훈의 말씀이지 '정해진 물리 법칙'은 아닙니다.
14절,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며 이들은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이 '아들들'은 창세기 6장의 죄지은 '하나님의 아들들'(창 6:2)과는 다른 '교회'라는 아들들입니다. '하나님의 딸들'이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섭섭해 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이 되리라는 것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볼 것이기 때문이라(요일 3:2).
예수 그리스도는 33살 반의 유대인 남성으로 죽으셨고 그 몸 그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성경을 정직하게 믿는 사람이라면 '그분 그대로 그분을 본다'는 말씀이 어떤 뜻인지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 들어온 지체들이 현재 '자매와 형제'로 나뉘지만 결국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로 바뀐 형상을 입게 될 것입니다.
15 너희는 다시 두려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 되는 영을 받았으므로 그에 따라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16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시거니와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들이니 하나님의 상속자들이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들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은 함께 영광도 받게 하려 함이니라.
18 이는 현재의 고난들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될 영광에 감히 비교되지 못한다고 내가 여기기 때문이라.
15절, 이 구절은 대환란 때의 성령받은 사람들과 이 시대의 크리스찬을 비교할 때 중요한 참조 구절이 되기 때문에 기억해 놓아야 합니다. '종의 영'도 성령이며 '양자 되는 영'도 성령입니다. 분명히 '종의 영'이 악령이거나 사람의 영이라는 식으로 해석할 여지는 전혀 없습니다. 구약 시대 성도들은 '성령'을 받아서 왕, 제사장, 선지자가 되곤 했으나 그 성령은 '종의 영'으로서 그들의 '사역을 시키신 영'이었습니다. 구약의 성령 받은 인물들은 '성령으로 거듭나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니코데모가 '거듭남'에 대해 완전히 무지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십자가 이전 사람들은 거듭나게 하는 성령을 알지 못했습니다.
'종의 영'으로서 성령은 구약 성도를 떠나 버리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령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도했습니다.
주의 면전에서 나를 내어쫓지 마시고 주의 거룩한 영을 내게서 거두어 가지 마소서(시 51:11).
성경을 나누어 공부하지 않는 개혁교회 목사나 은사주의자가 다윗의 기도를 자신에게 적용한다면 그것은 '성령을 슬프게 하는' 비성경적 무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너희가 그로 인해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엡 4:30).
성령께서는 거듭난 성도를 (육체의) 구속의 날까지 인치셨습니다(구원의 확증). 따라서 거듭난 사람이 자기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염려하는 생각은 성령을 슬프게 하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른다, 이 말은 왜 거듭나지 못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신성 모독으로 여겼는지, 그들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밖에 부르지 못했는지 설명해 줍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의 일들을 행하는도다.”라고 하시더라. 그때 그들이 주께 말하기를 “우리는 음행을 통하여 나지 아니하였으며, 우리에게는 한 분 아버지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시라.”고 하니(요 8:41)
16절, 구원의 보장은 성령께서 혼자 증언하시는 게 아니라는 말입니다(요 1:32; 5:39). 율법에 의하면 '두 증인'이 합법적 재판을 위한 증인 숫자입니다(요 8:17). 우리의 거듭난 영도 자기 구원에 대한 증언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영은 주님과 함께 셋째 하늘에 앉혀졌기 때문에 우리가 언젠가 반드시 그곳(셋째 하늘)으로 간다는 것을 선구자로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천상에 함께 앉히셨으니(엡 2:6)
17절,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얻는 지위에 대한 설명입니다. '자녀'이면서 '공동 상속자들'인데 이는 주님께서 피조물들을 상속받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도 같이 받아서 통치한다는 말입니다. 주님께서 천년왕국의 왕이 되시면 우리도 '왕같은 제사장'(벧전 2:9)이 될 것입니다.
단, ''자녀'는 믿음을 통해 거저 되었지만 '공동 상속자'가 되는 조건은 주를 섬긴 일에 대한 합당한 댓가로 주는 보상입니다(그와 함께 고난을 받은 것). 그리스도를 위해 수고한 일이 없으면 유업은 없습니다.
18절, 그리스도인은 악한 현세상에서 '왕같이 다스리려고' 폼을 잡아서는 안되는데 벌써 왕들처럼 통치하는 주교들과 추기경들, 교황과는 결코 손잡아서는 안됩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실수라도 그들과 무슨 일을 도모한다면 하늘의 상급은 완전히 놓칠 것입니다(WCC, 교회 통합 운동).
이는 우리가 잠시 받는 가벼운 환난이 우리를 위하여 훨씬 뛰어난 영원한 영광의 비중을 이루어 가기 때문이라(고후 4:17).
19 피조물이 간절한 기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의가 아니요, 오직 소망 가운데 그것들을 굴복케 하시는 그분 때문이며
21 피조물 자체도 그 썩어짐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
22 모든 창조물이 이제까지 함께 신음하며 고통받는 것을 우리가 아노니
23 그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첫열매들을 가진 우리까지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되는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느니라.
19절, '피조물'(creature, 헬라어 크리티스)은 '창조물' 중에서 특별히 '사람(죄인들)'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 근거는 마가복음 16:15와 골로새서 1:23의 '피조물'이란 용례에 나타나 있습니다.
또 주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만일 너희가 자리잡고 정착된 믿음 안에 계속 있으며 복음의 소망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이것은 너희가 들었고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에게 전파된 것이니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노라(골 1:23).
변개된 역본들은 이 구절들에서 '피조물'을 '창조물'(creation)로 바꿔 놓았는데 그들의 번역은 일관성이 없습니다.
'피조물'을 '창조물'(개나 고양이 소, 말)로 오인한 결과 배꼽을 잡을 일이 일어났습니다. 암흑시대 로마 카톨릭 성자 '성 프란시스'는 애완 동물들에게 침례를 줌으로써 자연계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고자 애쓴 최초의 '생태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카톨릭에서 매우 존경받는 '성인'인데 영적 지식은 동물에게 침례를 베푸는 정도의 참담한 수준입니다. '성 프란시스'의 이름을 물려받은 현 교황 프란시스는 최근 '외계인에게도 필요하면 침례를 주겠다'고 공언함으로써 이름 그대로 '막상막하'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죄인들(아담의 형상을 한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전해야지 모든 창조물들에게 은혜 복음을 전파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오해하는 사람들은 개신교계에 많이 있습니다. 그 자들이 결국 '사회 복음', '해방 신학', '생태 신학'이니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20절, 19-21절에서 말씀하는 '피조물'은 사실 거듭난 성도 우리 자신을 말하는데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즉 자기 몸이 변화되어 하나님의 아들들의 형상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현재 허무한 데 굴복하는 그 '피조물들'입니다. 주님께서 속히 오시지 않는다면 이 거듭난 피조물들(우리)은 몸이 흙으로 돌아가서 휴거의 때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21절,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는 천년왕국 때 나타날 교회시대 성도들의 영광을 언급한 것입니다(시 72:1-9, 사 11:1-9).
22절, 이제 '창조물'(creation)이 나왔기 때문에 우리는 '하늘과 땅의 궁극적 회복'에 대해 논한다는 것을 알고 문맥 전환을 알 수 있습니다. 순서는 이러합니다. 먼저 '피조물'(인간들)이 회복된 후 창조물(개, 고양이, 소, 말, 사슴....)도 회복될 것입니다. 이 구절이 가르치는 바에 의하면 '이산화탄소 줄이기 운동', '그린피스'나 '모피반대운동' 등은 반성경적 어릿광대 짓에 불과합니다. 주님께서 먼저 그리스도인들을 들어 올리셔서 '하나님의 아들들'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신 후, 또 그들이 7년 후에 이 땅에 다시 나타나서 군림하게 되면 그때서야 '창조물들'은 에덴 동산에서처럼 제자리를 찾게 될 것입니다. 생태계의 회복을 바란다면 자연보호 캠페인을 벌일 것이 아니라 재림이 빨리 오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23절, 우리가 기다리고 있는 소망의 정체를 분명히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몸의 구속'(휴거, 부활)로서 이 소망은 그리스도인과 자연인을 나누는 식별표입니다(요일 3:1-3, 빌 3:21, 벧전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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