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세군(救世軍. 영 Salvation army)
감리교(監理敎) 창설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의 가르침을 따르는 영국의 ‘윌리엄 부드’(William Booth, 1829년 4월 10일~1912년 8월 20일) 목사가 감리교회를 떠나 1861년에 창설한 국제규모의 교단(敎團)을 ‘구세군’이라 한다.
↳ 교리(敎理. 라 Doctrina, 영 Doctrine)는 감리교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하였으나 특정 교파의 교리를 초월하고 성경을 생활과 신앙의 유일한 기준으로 삼고 있으며, 조직(組織, 영 Constitution)은 효율적인 활동을 위하여 군대식을 채택하고 있다.
웨슬리감리교회(~監理敎會)를 거쳐 개혁 감리교회의 목사였던 ‘윌리엄 부드’는 순회전도(巡廻傳導)를 둘러싼 교단(敎團)과의 마찰로 인해 1861년에 감리교회를 떠나 한때 영국 런던 동부의 화이트 채플(White Chapel)에 세워진 천막교회(天幕敎會)에서 사목(司牧. 라 Ministerium pastorale, 영 Pastoral ministry)을 담당하였다.
구세군 창설자인 ‘윌리엄 부드’는 이곳에서 수많은 빈민(貧民)들의 비참한 생활을 목격하고 커다란 충격을 받았는데, 빈민의 대부분은 아무런 문화적 혜택도 받지 못한 채 빈곤(貧困)과 죄악(罪惡)의 소용돌이 속에서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었다.
빈민가의 모든 문제가 교육부재에 있다고 생각한‘윌리엄 부드’는 이들의 영혼(靈魂)을 구제하는 빈민가 전도에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는데, 후에 구세군운동이 된 빈민가 전도는 영국 런던 중부의 최 하류계층민(下類階層民)을 대상으로 전개되었다.
1875년에 소위 기독교전도회(基督敎傳道會. 영 The christian mission)라고 불리게 된 그의 전도회(傳道會, 전도를 목적으로 하는 모임)는 32개의 지회(支會)를 갖게 되었다.
↳ 이 과정에서 ‘윌리엄 부드’는 교회의 전통적인 전도방법이 빈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데 도움보다는 방해가 된다는 점을 인식하여 보다 강력한 전도방법, 즉 복음전파에 대중적인 호소력을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고안한 조직이 군대식이었다.
기독교전도회는 1878년에 군대조직으로 개편되었고, 2년 뒤에는 명칭이 ‘구세군’으로 변경되어 1880년부터 해외로 진출하여 전 세계로 확장되었다.
구세군은 행정상 영국 런던에 만국본영(萬國本營. International headquarters)을 두고 있으며, 1950년에 영적인 군대로서의 구세군 병사들을 양성하기위해 만국사관대학(萬國士官大學. The salvation army international training university)을 세웠다.
빈민구제 · 매춘 · 음주 등의 사회악을 근절하기 위해 출발한 ‘구세군’이 한국에 진출한 것은 1908년인데, 창설자인 윌리엄 부드 대장에 의해 파견된 윌리엄 호가드(William Hogard) 정령(正領)은 서울 평동에 구세군 대한본영(救世軍大韓本營. The salvation army territorial headquarters in Korea)을 설치하고 사업을 전개하였다.
현재, 한국에는 폐쇄된 해주·개성지방 본영 및 서울 · 충청 · 경북 · 경남 · 전라 등에 본영을 두고 있으며, 매월 <구세공보>를 발행하고 월 2회 <뉴스레터>도 발간한다.
우리나라의 산하기관으로는 구세군사관학교 · 기술학교 · 신학원 · 통신대학 · 어린이집 · 육아시설 · 부녀시설 · 양로시설 등 30여개소가 있다.
☞ 구세군은 복음전파 · 신앙공동체 형성 · 빈곤과 악의 타파를 통한 사회개혁을 지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