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于山(今 鬱陵島)
于山(今 鬱陵島)
千山은 今陵島이 或武陵이라 하고 或 羽陵이라고 하였다. 蔚珍郡 正東海中에 있으니 地方이 百里이고 土地가 饒沃하며 竹이 大하기 杠과 같고 鼠가 大하기 猫와 같고 桃核이 大하기 升과 같았다. 三国史에 新羅 智證麻立干 十三年에 于山国이 帰服하고 해마다 土宜로서 貢을 바치었다.
春風五雨邏帆廻
海上桃花寂寞開
唯見可之登岸臥
更無獅子撲人来
春風 五雨에 邏帆이 돌아오니
海上 桃花가 寂寞히 피였더라.
오직 可之의 岸에 登하여 臥 함을 보니
다시 獅子가 人을 撲함이 없더라.
邏帆은 巡邏하는 官用船이니 文獻備考에 말하되 欝陵島에 産物이 많으니 柴胡와 藁本과 石楠과 藤草와 모든 香木과 蘆竹 等이니 蘆竹은 大하기 合抱이며 芦実과 桃核은 大하여 可히 杯升을 만들더라.
本朝에서 島民을 옮기고 그 땅을 비어 항상 三年에 한번씩 送할 때 審視官이 十五 斧子를 주어 그 竹과 木을 伐하고 또 土物을 釆하여 朝에 드렸는데 三陟의 営将과 越松의 万戸가 交進하여 서로 入할 때 그때에 来往하는 배를 邏帆이라 하였다.
桃花寂寞開는 섬에 人民을 옮긴 故로 桃花가 寂寞히 피였다는 말이다. 可之는 獣名이니 文献備考에 말하되 欝陵島 海中에 獣가 有하니 牛이 形이며 赤眸이고 角이 없었다. 무리가 海岸에 나아와 누웠다가 이 独行함을 보면 害하고 人이 多함을 보면 달아나 水에 入하니 이름을 可之라 하였다.
獅子는 三国史에 異斯夫가 阿瑟那 軍主가 되어 于山国치기를 피할 때 그 国人은 愚悍하니 可히 꾀로써 服하리라 하고 이에 木獅子를 많이 만들어 戦船에 싣고 그 国人더러 말하되 네가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此 獣로서 踏殺하겠다 하니 其 国人이 恐하여 항복하였다 한다.
- 한글
우산(지금의 울릉도)
울릉도를 송화산이라고도 불렀으며, 무릉 또는 우릉이라고도 했다. 울진군 정동쪽 바다 가운데 있으며, 지역이 100리이고 토지가 비옥했다. 대나무가 큼지락과 같고, 쥐가 고양이 만하며, 복숭아 핵이 되 크기와 같았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신라 지증마립간 13년에 우산국이 귀복하고 해마다 토산물을 바쳤다고 기록되어 있다.
봄바람 오기비에 순라선이 돌아오니
바다 위 복사꽃 적막히 피었구나.
오직 가유의 해변에 올라가 누웠음을 보니
다시는 사자가 사람 공격함이 없었네.
순라선은 순라하는 관용선박이다. 문헌비고에 울릉도에 많은 산물이 있어 시호, 섬머꾸리, 석류, 등나무, 각종 향목, 달래 등이 있는데 달래는 크기가 한 아름이며 명아주알과 복숭아 핵이 크기가 잔을 만들 만하다고 했다.
본조에서 섬 주민을 옮기고 그 땅을 비워 두었는데 3년마다 한 번씩 파견할 때, 심사관이 15개의 도끼를 주어 그 대나무와 나무를 베고 또 토산물을 채취해 조정에 바쳤다. 삼전의 영장과 월송의 만호가 번갈아 가며 서로 드나들 때 그때 오가는 배를 순라선이라 불렀다.
복사꽃 적막히 핀다는 것은 섬에 주민을 옮긴 탓에 복사꽃이 적막히 펴있다는 말이다. 가유는 짐승 이름인데, 문헌비고에 울릉도 바다에 소 형상의 붉은 눈동자에 뿔 없는 짐승이 있었다. 무리지어 해변에 나와 누웠다가 사람 혼자 오면 해치고 많은 사람이 오면 바다로 들어갔으므로 가유라 불렀다고 한다.
사자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이잉포가 아체나 군주가 되어 우산국을 정벌할 때 그 나라 사람들이 어리석고 거칠어 꾀로 복속시켜야 한다고 하고 많은 목재사자를 전선에 실어 가져가 "만약 복속하지 않으면 이 짐승들로 밟아 죽이겠다"고 하자 그 나라 사람들이 두려워 항복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