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과 당쟁(黨爭)의 2
이에 남인(南人)이 쫓겨나가고 소론파(少論派)인 남구만(南九萬) 최석정(崔錫鼎) 윤증(尹拯) 등이 집권(執權)하기 17년이러니 그 후 36년에 다시 최석정(崔錫鼎) 일파(一派)가 쫓겨나가고 노파(老派)인 김창집(金昌集) 이신명(李頣命) 등을 불러 국정(國政)을 맡기더니 및 경종(景宗)이 임금이 됨에 질병(疾病)으로 인하여 사속(嗣續)의 희망(希望)이 없는지라. 김창집(金昌集) 이신명(李頣命) 등이 왕(王)의 아우 연잉군(延礽君)으로 세제(世弟)를 봉(封)하여 국정(國政)을 대리(代理)케 하자고 주장하니 소론(少論)인 조태구(趙泰耈) 이광좌(李光佐) 등이 차(此)를 반대(反對)하여 김창집(金昌集) 이신명(李頣命) 등 여러 사람을 모역죄(謀逆罪)로 죽이니 이로부터 소론(小論)이 권세(權勢)를 얻은지라. 그 후 경종(景宗)이 죽고 연잉군(延礽君)이 임금이 되니 곧 영조(英祖)시라. 영조(英祖)가 겨우 소론(少論)의 모해(謀害)를 피(避)하여 임금이 됨에 마음에 소론(少論)을 미워하나 한때에 그 세력(勢力)을 다 몰아내기 어려운지라. 한편으로 소론중(少論中) 완화파(緩和派)인 이광좌(李光佐) 유봉휘(劉鳳輝) 등을 인용(引用)하여 그를 안심(安心)케 하고 한편으로 과격당인(過激黨)인 김일경(金一鏡) 목호룡(睦虎龍) 등을 차례로 죽여 그의 세력(勢力)을 감퇴(減退)케 하더니 그 후에 일경(一境)의 자(子) 해녕(海寧)과 호룡(虎龍)의 아우 시룡(時龍) 등이 저의 실세(失勢)됨을 분(忿)히 여겨 남인(南人)의 불평파(不平派)인 이인좌(李麟佐) 정희량(鄭希亮)등으로 더불어 모반(謀反)하다가 실패(失敗)하니 이후로부터 노론당(老論黨)이 정권(政權)을 잡았느니라.
-한글
남인들이 쫓겨나간 후, 소론파인 남구만, 최석정, 윤증 등이 17년간 집권했습니다. 그 후 36년 만에 최석정 일파가 다시 쫓겨나고, 노론파인 김창집, 이신명 등이 국정을 맡게 되었습니다.
당시 경종이 왕위에 오르셨는데, 질병으로 인해 계승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김창집, 이신명 등은 왕의 아우인 연잉군(영조)을 세자로 봉하여 국정을 대리하게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소론파인 조태구, 이광좌 등이 이를 반대하며 김창집, 이신명 등을 모반죄로 처형했고, 이로써 소론파가 권력을 잡게 되었습니다.
경종이 돌아가시고 연잉군(영조)이 왕이 되었습니다. 영조는 소론파의 음모를 겨우 피해 즉위했지만, 그들의 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영조는 소론파 내 온건파인 이광좌, 유봉휘 등을 등용하여 달래는 한편, 과격파인 김일경, 목호룡 등을 차례로 처형하여 세력을 약화시켰습니다.
이후 이들의 가족들이 불만을 품고 남인의 불평파인 이인좌, 정희량 등과 모반을 꾀했지만 실패했고, 이로써 노론당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