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과 고려(高麗)와 금(金)의 관계(關係)
발해(渤海)가 없어진 뒤로 만주(滿洲)가 다시 조선인(朝鮮人)의 영토(領土)가 되지 못하고 다만 군웅(群雄)의 각축(角逐)하는 장소(場所)가 될 뿐이더니 마침 북만주(北滿洲)에 있던 여진(女眞) 부락(部落) 중에 완안부(完顔部)의 존장(尊長) 영가(盈歌)는 고려(高麗)사람 김준(金俊)의 현손(玄孫)이라 모략(謀略)이 있고 용맹이 뛰어나더니 이에 여러 부락(部落)을 통일(統一)하고 나라 지경이 고려(高麗)에까지 접(接)한지라. 자주 변방의 근심 되더니 예종(睿宗)께서 윤관(尹瓘) 오연총(吳延寵) 등을 명(命)하여 여진(女眞)을 쳐 물리치고 함주(咸州) 이북(以北)에 9성(城)을 두었더니 영가(盈歌)의 아들 조아속(鳥雅束) 때에 와서 사자(使者)를 보내어 말하되 고려(高麗)는 우리 부모(父母)의 나라이라 하여 세세(世世) 입공(入貢)하기를 맹약(盟約)하고 9성을 도로 주었더니 이때 조아속(鳥雅束)의 아우 아골타(阿骨打)가 완안부장(完顔部長)이 되어 더욱 강성(强盛)한지라. 이에 국호(國號)를 금(金)이라 하고 황제(皇帝) 위(位)에 나아가 송화강안(松花江岸)에서 요군(遼軍)과 싸워 크게 이기니 남북만주(南北滿洲)가 다 금인(金人)의 차지한바 되니 고려(高麗)에서는 이 틈을 타서 압록강내(鴨綠江內)의 예전 요(遼)의 영지(領地)로 있던 보원(保遠) 2성을 빼앗아 의주(義州)를 두었느니라.
- 한글
발해가 멸망한 이후 만주 지역은 다시 조선인의 영토가 되지 못하고 여러 세력 간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북만주의 여진 부족 중 완안부 족장 영가가 고려인 김준의 후손이라 지모략과 용맹이 출중하여 여러 부족을 통일하고 나라를 세웠는데, 그 영토가 고려까지 미쳐 고려의 변방 불안요인이 되었습니다.
예종은 윤관, 오연총 등을 보내 여진족을 격퇴하고 함주 이북에 9성을 쌓았습니다. 그러자 영가의 아들 조아속이 "고려는 우리 조상의 나라"라며 세공을 약속하고 9성을 돌려주었습니다. 이후 조아속의 동생 아골타가 완안부장이 되어 부족을 더욱 강성하게 이끌었고, 국호를 금으로 정하고 황제에 올라 송화강 전투에서 요군을 크게 이겼습니다. 이에 남북만주 전역이 금인의 영토가 되자, 고려에서는 이 기회를 이용해 압록강 이북의 예전 요 영토인 보원 2성을 빼앗아 의주를 설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