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정조의 공구일생
영조의 맏아들 신은 일찍 죽고 제2자의 선(愃)으로 세자를 봉하였더니 불행하게도 두주 속에서 비참히 죽음을 당하였으니 다시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부득이 제2자 곧 사도세자의 아들을 택하여 왕세손으로 봉하니 세손은 영조의 제일 자신의 후를 이어 세손이 되고 그를 추손 하여 효장세자라 하고 그 후에 또 추존하여 진종(眞宗)이라 하다. 세손은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니 영조 크게 사랑하고 칭찬하였다.
영조 51년에 임의 로혼 하시와 성수가 임의 80이라 기력이 쇠하여 국무를 참청할 수 없는 고로 세손으로 대리를 명하시니 좌상 홍린한(洪麟漢)은 세손의 어머님 홍씨의 숙부라 사도세자도 좋아하지 않더니 세손에 대하여도 호감을 갖지 않았다. 세손도 이것을 아는 고로 그 위인을 조심하여 얼굴을 항상 엄하게 보이니 인한도 항상 불쾌히 여기었다.
이때 대리의 명이 내리시니 홍린한이 힘써 이것을 방해하며 그 명을 거두기를 청하여 동시에 정후겸(鄭厚謙)이란 자는 화완옹주 곧 정치달의 양자라 궁중에 출입하며 위복을 마음대로 하더니 이때 홍린한과 결탁하여 가지고 세손의 대리를 방해하여 십분 위험하였다. 그러나 대리는 조왕의 처분대로 행하게 되다. 그러나 홍린한과 정후겸의 협박은 쉬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세손은 그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라 조금이라도 아버지 사도세자의 일을 생각하면 철천지원이 다 잊을 수 없건 만은 그런 사색을 낼 수 없고 영조도 늘 세손의 동정을 살피어 아비를 생각하는 기색만 있으면 화색이 박두할 것이다. 홍계희(洪啟禧)와 홍린한과 정치달의 감시가 무시무시하여 공구 중에 일생을 보내다가 영조가 하세한 후에도 마음을 놓지 못하였다. 그 아버지의 일을 말하면 대비 김 씨로부터 꾸지람이 내렸다.
이렇게 공구 중에 지내시다가 52년에 영조 하세하시고 세손이 위에 오르니 곧 정조(正祖)이다. 정조 즉위하실 때도 반대가 있었다. 호남의 김한록(金漢祿)은 상소하되 태조의 자손이면 누구든지 왕위를 이을 수 있거늘 하필 죄인의 아들로 위를 이으리오 하고 즉위를 막았으나 시론이 소인이라 지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