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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무학교의 다섯 수레바퀴
교육청 분들이 여기 와서 그렇게 해야 되겠다고 얘기하더라고요. 자기들이 하는 것도 똑같이 한다고요. 그런데 한 가지는 아직도 노동에 대해서는 부족해요. 노동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노동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게 아니고 현장에서 배워야 돼요. 또 시대정신을 알아서 뭐가 문제고 어떻게 해결해야 되는지 알려줘야 하는데 그 점은 부족해요.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인데 앞으로 교육은 마을을 중심으로 하지만 출발은 어디서부터 하냐면요. 가정에서 시작해야 된다, 가정에서 뭐부터 시작해야 하냐면 부엌에서부터에요. 그 다음에 텃밭, 그담에 학교, 그담에 마을, 그담에 사회 그 순서로 나가야 돼요.
뭘 먹이느냐, 이걸 왜 먹어야 하느냐, 이걸 왜 먹지 말아야 하느냐, 먹는게 좋지 않으면 건강에 대번 문제가 오거든요. 왜 그걸 먹으면 안되는지 또는 곡식이 외국에서 수입되어오잖아요. 그게 GMO잖아요. 그것을 주로 가축 속에 항생제 주는데 그게 환경에 영향을 준다고요. 그래서 아이들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편의점에서 먹어가지고는 안되겠구나 하는 관념을 가정에서 엄마들이 심어줘야 해요.
그래서 풀무학교에서는 학교 선생님만 가지고는 안된다 해서 학부모회가 있어요. 학생회가 있어서 학생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토론해요. 얘기할 건 굉장히 많은데 시간이 너무 적었다고 학생들이 얘기해요. 맨 토론하고서 그래도 모자란다니 얼마나 자기들끼리 토론하고 싶은게 많아요. 그런데 일반학교에서는 공부해야 한다고 그걸 못하게 하는거에요.
또 졸업생회, 이사회, 교사회. 이게 다섯 바퀴에요. 보통 네 바퀴면 안자빠지는데 다섯바퀴니까 이건 더 안자빠지는거에요. 학구정신이라는 것도 현장 속에서 교사들이 얘기 안했어도 친구들이, 학부모들이 얘기해줄 수 있고. 학부모들은 이렇게 얘기하는구나 하고 판단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마을은 아주 중요한게요. 저는 여기서 초등학교 교사, 고등학교 교사, 어린이집, 전공부, 도서관하다가 이제는 마을 교사가 되었어요. 학생들은 학교선생님 몇 분만이 아니고 동네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얘기를 듣죠. 학교선생들은 아무래도 좁게 가르치거든요, 스파르타식으로. 그런데 동네분들은 느슨하거든요. 이게 필요해요. 선생 얘기만 듣다가 사회에 나가면 대번 달라지니까 그게 충격기간이 있는데 동네분들은 느슨해서. 마을교사로 있다가 도서관 그만두면 동네 노인이 하고 싶어요. 동네 노인이라고 하면 다 웃는데, 왜 웃냐고, 나는 진지하게 얘기한다고요. 동네 노인이 있어야 해요. 노인을 꼰대라고 하지 말고 노인이 해서 되는가 안되는가 얘기할 수 있는 게 있거든요. 또 젊은 사람들을 격려해주고 따뜻하게 해주는 걸 알면 젊은 사람 간섭하는게 아니고 좋아할 수 있거든요.
마을 속에서 커야 한다. 옛날엔 마을 속에서 커서 면장도 하고 그랬거든요. 요새는 대학원 나와도 면장 못한다더라고요. 왜냐면 면장이나 이장이 어려워요. 별 사람이 다 있거든요. 그래서 마을과 학교가 같이 나가야 한다. 헌데 어떻게 나가느냐. 잘 찾아보면 초등학교부터 프로젝트라는게 있잖아요. 나가가지고 논에서 벌레를 찾아보는 것도 있고, 밖에 나가면 들풀 그려도 되고 많잖아요. 여러 사람 만나서 얘기 듣는 것도 좋고. 또 나가보면 농약을 치잖아요. 그런데 옛날에는 봄이 되면 종다리도 있고 제비도 왔는데 없거든요. 옛날에는 개울에서 송사리라든가 새우가 있었거든요. 이게 왜 이렇게 되었느냐 공부가 되는거에요. 마을 속에서 프로젝트로 질문하고 대답하며 배우는 게 커요. 그런데 마을이 할머니들도 선생이 되고. 선생님도 잘 자야 되요. 마을하고 교류하면 엄청난 지원을 받는거에요. 예를 들어 실습도 학교에서 하지 말고 유기농업하는 농가에 가서 계약을 해서 도와드리고 농산물 받아 자기들이 요리를 해먹거나 그것을 부모님들에게 갖다 주고 용돈을 타거나 얼마든지 할 수가 있는 거에요.
# ‘일소공도’ _ 일하는 학자, 공부하는 농민
그리고 여기는 어떤 일이 있냐면, ‘일소공도’(일만 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얘기를 하셨는데. 일소공도 말고 풀무학교에는 10가지가 있어요. 마을이 학교고 마을이 학교다, 다섯바퀴다, 더불어 사는 평민이다, 이런 소리를 하고 학생들한테는 뭐가 들어오겠죠. 그런데 공부는 학교에서만 하는게 아니라 평생 하는거에요. 학교에서 그런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도시로 가죠. 그런데 일부분은 여기에 남아요. 1년에 둘만 남아도 60년이면 120명이거든요. 그들이 혼자만 사는 비혼으로 있으면 모르겠는데 다 결혼을 하거든요. 그러면 120명에 둘이면 240명인데 또 자녀들이 있고 여기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지역전부가 바뀌는 건 아니지만 지역의 1%만 그런 생각 가지고 있어도 그것은 뭔가 지역에 영향이 있어요. 생각이 있는 사람이 생각이 없는 사람보다는 좀 영향을 더 줘요.
그래서 지역에서 만들어내는게 뭐냐면 공부하는 농민, 일하는 학자. 이게 옳다고 되었어요. 그래서 동네 재미난 기관이 여러 개가 있는데 풀무학교와 전공부, 도서관, 정농회(농사짓는 사람들. 생각하는 농민, 준비하는 마을이 목표에요.)가 있어요. 최근에는 마을학회라는게 생겼어요. 유엔에서 흙의 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교육이라는게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을 했는데 연장이 됐거든요. 또 하나는 소농이 세계농사의 80%를 담당한다고 해서 소농의 해. 그러고 소농들이 식량자립, 생태보존의 주체다, 소농들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래서 일본사람들이 자기들도 소농학회를 만들었는데 간사모집하려니까 아무도 안와요. 그래서 흐지부지 되었는데 그 얘기를 듣고 유엔에서 세계전체를 볼 때는 소농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소농이 쥐꼬리나 식량자급도 못하고, 소농은 너도나도 안하려 하거든요. 안하려는게 중요하다, 그래서 이 동네에서 소농학교를 만들어서 100명이 되었어요. 20명은 연구원이고 80명은 농민과 학교선생님들. 그 사람들이 명칭을 마을학회라고 정하고 다큐를 찍고 ‘일소공도’라고 명칭을 붙였어요. ‘마을학회.일소공도’ 학생들만 하는게 아니고 이 동네에서 지역 전체가 공부하는 농민, 배우는 농민이고 일하는 학자라고. 이런 것들이 학교에서 시작해 동네 분위기가 되었어요. 지역 전부가 끊임없이 공부를 해야 되고 학자들도 말로만 하지 말고 일해야 한다는 목표를 걸었어요. 그래서 이런 방향으로 나가야 되지 않나 생각하는데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문제의 실태인데요.
# 일관성
간단해요. 알고 보면 모든 건 간단한데 있어요. 우리는 대안학교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이동이 없어요. 공립은 자꾸 이동을 하잖아요. 여기는 이동이 적다는 것, 이게 첫째 비결이에요. 일관성이 있거든요. 공립은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다른 데로 가버리면 흐지부지되거든요. 대안학교나 사립의 좋은 점은 교사들이 일관성을 가지고 국가에 얽매이지 않고 교육의 본질을 가져갈 수 있어요. 그래서 선생들이 부족하더라도 어떤 때는 똑똑할 수가 있고. 열심히 하니까 학교 선생이 간판이 되는거에요. 나는 60년에 왔으니까 몇 년이 되었나, 59년 되었나. 그래서 우리 아이들도 여기 왔고. 그런데 2대 3대째 들어오거든요. 그리고 선생들이 나만이 아니고 내 뒤의 교장선생님(정승관선생님)은 지금 강화도 꿈틀리학교 교장하고 있는데 내년에 다시 온다고 해요. 그리고 바로 옆에 집을 지었어요. 교장도 다른 데 안가고 여기 있으니까 학교의 울타리가 되고 학교의 분위기가 되는 거에요. 일관성이 중요해요. 공립이 아니니까 다른 데 갈 수도 없고 또 좋은 게 뭐냐면 자유롭거든요. 외출 1시간 해도 외출부에 적어라, 뭐 이런 거 없거든요. 그리고 교장도 뭐 어깨에 힘을 못주거든요. 오히려 일꾼으로 부려먹으려고만 하니까 평등하고 인원은 적어도 이 분위기가 좋다는 사람들만 또 여기 오거든요.
그러고 이야기만 하지 않고 실천하려고 노력한 점이 있어요. 예를 들면 교과서 같은 것도 편집하거든요. 학생들이 선생님은 거짓말하지 않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교복 입히라 그랬는데 안입혔거든요. 반공표어 붙여라 했는데 안붙였어요. 그런데 왜 안붙이느냐고 장학사들이 성화를 부리더라고요. ‘이웃집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 교육적으로 재미가 없거든요. 그래서 교사회에서 잘 생각해서 붙이겠다고 했는데 암만 봐도 붙일 게 없어요. 그래서 커다랗게 ‘국어사랑 나라사랑’ 이렇게 했어요. 그리고 학도호국단, 교복 등 난리가 났는데 학생들한테 좋은 게 아니라고, 북한하고는 대화를 해야지 이렇게 싸우면 되겠느냐고 해가지고. 우리는 전방에 있는 군인들을 위해서 식량 생산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더니 -쪼그만 학교니까 아마 보지 않았을거에요.- 어찌 통과가 돼서 교복 안입혔어요. 학생들한테는 거짓말하지 않은거거든요.
# 협동조합
그런데 학생들은 학교 때는 젊으니까 그런데 당장 도시 나가면 학교생각 다 잊어버리거든요. 그러나 한두 개는 남아있어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한해에 둘씩만 남아도. 그리고 학교에서 유기농업도 했고. 잘은 못했어요. 그런데 협동조합도 댓가지 했거든요. 이 도서관도 10년 전에 시작했지만 그 이전에 40년 동안은 책을 서로 갖다 주는 협동조합도 했거든요. 그러니까 동네 협동조합을 하면 졸업생들이 이제는 40대 50대가 되어서 해야 된다는 공감대가 된거에요. 40년 동안 협동조합을 한다, 신용조합을 한다, 학교에서 조그맣게나마 30년 했으니까 졸업생들이 이제 군대 다녀와서 장가들고 선생님들이 뭘 한다니까 그게 뭔지 아는 거에요. 아는 사람만 있으면 총회 정관 만드는 거 쉬워요. 정관 만들어가지고 창립총회를 하거든요. 동네사람들은 잘 모르니까 이사회를 하면 4분의 3은 졸업생들이 하는 거에요. 하려고 한게 아니고 동네사람들이 너 하라고 하니까.
예를 들면 여기는 생산자조합이 5,6가지가 있어요. 농협이 있고 이번에 농협조합장에 졸업생이 출마해요. 아이쿱생협은 규모가 커요. 그러고 또 홍성유기농이란 것은 농민들의 조합이에요. 또 하나는 꾸러미조합이 있어요. 뭐냐면 소비자가 주문하는 것을 생산자들이 얼굴을 알리고 공급하는 거에요. 그 농사가 아주 좋아요. 친구들이 해주니까. 또 학교생협이 있고. 홍성에 여성민우회 사람들이 하는 조합이 있어요. 한 가지 있는 것보다 여러 가지 있어도 좋아요. 선택하면 되잖아요. 신협이라는 것도 30년 학교에서 하다 동네로 나갔어요. 전국에서 시작은 많은데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4개중에 하나가 되어야 해요. 왜냐면 사고가 없어요. 총회할 때 조합원들이 안오는데 여기는 과반수이상 다 오거든요. 세 번째는 40년 넘었을텐데 집을 설계는 2층인데 2층을 안지어요. 왜냐면 조합원들은 서비스를 하면 되지 넓지 않아도 된다, 필요하지 않다고 고집스럽게 안하고 2층은 그냥 비워두었어요.
또 하나가 있는데 대개 우리나라엔 그런 조합이 도시에 있고 시골에 분점을 두잖아요. 여긴 거꾸로 해요. 여기에 본점이 있고 홍성에 분점이 있어요. 아까 소비조합도 여기 본점이 있고 홍성에 분점이 있는데 그건 특이하다고 볼 수 있어요. 신용조합도 크게 되다 보니까 국가에서 규제를 하거든요. 이자라든지. 원래 뜻하고는 다르다고 해서 없는 조합을 만들었어요. 어떻게 된거냐면 출자하잖아요. 그러면 그 돈을 신협에 맡겨 이자가 나오면 그 이자를 가지고 운영비를 쓰는거에요. 나머지 돈은 그냥 이자 없이 꾸어주는 거에요. 이자 없이도 꿔줄 수가 있다는거죠. 또 지금 하려는 마을돈이라는게 있는데 농산물에 한해서 세종대왕 쓰지 말고 이걸로 하자고 해서 지금 준비중에 있어요. 그래서 신용조합도 댓가지가 될 수 있어요. 다양하게 나가자는 거지요.
# 학교의 지향이 분명해야
학교가 공립학교도 있고 사립학교도 있는데 어린이집도 병설유치원도 있고 여기도 있어요. 초등학교는 시설도 좋고 재정도 풍부하죠. 이 마을에서 하는 어린이집은 문 열자마자 닫을 거라고 추측했거든요. 그런데 부모들이 공립으로 안보내고 이리로 보내거든요. 왜냐면 거기 장점도 있지만 여기는 잘 돌봐준다든지 그러니까. 그래서 가만 보면 학교가 추구하는 방향을 확실히 정하는게 중요해요. 돈도 아니고 건물도 아니지만 학생들 생각을 멋짓는다든가. 생각의 힘을 키운다고요.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거든요. 나 혼자 아니고 함께 더불어 산다든지, 일소공도라든지, 마을학교라든지, 그런게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바보스럽게 생각하고 다섯바퀴에서 그게 공유가 되고 그것이 또 풀무학교 선생님들, 나 포함해서 특별한 사람들이 아닌데 그런 생각 가지고 10년 20년 하면 모르지만 한 60년 하면 그건 뭐가 거짓이래도 정말이 돼요. 학생들이 전부 움직이는 건 아니에요. 1,200명인데 움직이는 사람이 60년에 120명이라고 했잖아요. 졸업생은 120명이라 하더라도 한 지역에 쌓이면 큰거라 이거에요. 좀 어리석더라도 어떤 생각이 있고 일관성이 있으면 어리석은 생각도 실현, 나타난다 그런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 학부모들은 학생들 뒷바라지를 하는게 아니라 학생들은 학생들끼리 놀고 학부모들은 학부모들끼리 놀아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니까 모이면 굉장히 좋은가봐요. 학생들은 졸업했는데도 계속 모여요. 요새 학부모들이 하는 것은 축구시합클럽을 만들어서 어른하고 아이들하고 같이 섞어서 하고 있어요. 중학교 아이들도 같이 와서 하고, 초등학교 아이들 가르쳐주고 동네를 뒤섞어놓는거에요.
그런데 공립학교에서 한동안은 풀무학교에 절대 안보냈거든요. 할 수 없이 120명졸업생 중 맨 끄트머리에 둘 정도 보내가지고 그것도 우리가 아니면 누가 보내줄 줄 아느냐고 그랬어요.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학생들 개성을 존중해야 한다, 지역 속에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그러니까 공립학교에서도 들어왔거든요. 그런데 이제 공모제 교장을 하고 또 학부모들이 관심이 비슷하거든요. 생태, 먹거리 등. 이렇게 되니까 진학을 목적으로 교장선생님이 오면 여기서 학부모들한테 상당히 둘리게 된다는 말이에요. 적응을 하느라고 그런 분들만 오셨어요. 그래서 공립과 사립학교하고도 해소가 됐어요. 요새는 풀무학교에 중학교 애들이 오는데 합격하라고 피켓도 들고 그래요. 엿도 가져다주고 붙이고 그래요.
또 한 가지는 공립 중학교 교장선생을 풀무학교 선생님들이 토론을 해서 풀무학교로 모셔왔어요. 그분이 생태 좋아하고 학교 개성 존중하고. 특이하지요. 그분도 학부모였어요. (올해 새 교장선생님이 그렇단 말이지요?) 네. 그분의 딸이 졸업해서 지금은 독일에서 슈타이너학교 사범대학 나왔어요. 아주 기쁘게 생각한다고 하대요. 세상이 달라졌어요. 지금은 그러니까 끊임없이 교육의 본질이 뭔지 생각하고 학생들의 개성을 키우는 것을 생각해요. 당장 토익이라든지 무슨 대학교라든지 그런 것을 생각하다보면 교육은 고칠 수가 없어요.
여기 어린이집 원장을 10년 정도 했는데 절대 한글 가르치지 말자고 했어요. 친구들과 건강한 먹거리를 먹고 다국적 아이들과 통합교육을 하고 자연 속에서 뛰어놀고 지역 사람들을 신뢰하고 그런 것 다섯가지인데 그렇게만 하자고 그랬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런 분위기에서 쉽게 깨쳐요. 그래서 졸업할 때는 다 읽고 쓰거든요. 한 가지만 주입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원칙교육에 있어서 본질이 뭐라는 걸 잘 파악해서, 그거 어려운 거 아니거든요. 그래서 그걸 꾸준히 한 10년 하고 말면 안되고, 16년? 어렵네요. 아직도 한 10년 더 해보세요. (제가 20년까지는 해볼랍니다. 한 몇 년 남았습니다.) 20년 하고 그만둘지 내가 볼께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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