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1월 6일 토요일 오전 6시40분.
내 남편은 소천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품으로 갔 습니다
46년동안 나와 인생을 함께하다 먼저 갔습니다
내 남편은 과묵하고 고집스럽고 자존심이 강하고 자상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여리고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늘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평생 말로 애정표현을 안 하는사람이었습니다
나의 고생을 보면서도 '' 미안하다''는 말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혼자 애들의 교육과 양육을 열심히 해도,
시어머니의 치매 간병을 대소변 받아내며 5년동안이나 해도 ''고맙다''말 한마디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사람과 산다는 것은 많은 인내가 필요했습니다
내가 인내 할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나에 대한 깊은 애정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땅 보상을 받았을 때 비 오는 날 퇴근하여 처마밑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여교사들을 보며 내게 자동차를 선물했습니다
그 때가 1989년도,
여자들이 자동차를 운전하고 가면 택시 기사들이 뒤 딸아 가면서
''여편네들이 집에나 있을 것이지 차 끌고 다니면서 걸리적 거린다''고 욕을 할 때였습니다
그리고 1995년도 유럽 여행 중 스위스에서 로렉스 시계를 사주었습니다
시계판에 4개의 다이야가 박혀 있는 시계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와서 시계줄을 금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생색도 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시계를 잃어버렸는데도 모른척하며
군담 한마디도 않했습니다.
내 마음이 더 아플거라며.
사 준 자동차가 10년이 되자 1999년에 마침 그림을 시작한 나를 위해서 그림도구 싣고 다니라며 이제 막 출시되기 시작한 차인 카스타를 사주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suv차가 지금처럼 흔하지 않아 휴게소에 주차해 놓으면 사람들이 차 옆으로 와 차를 살피고 또 내가 운전하는 걸 보면
''여자가 운전하네?''
수근 대기도 하던 때였습니다
또 내 나이 60세에 그림공부를 더하기 위해 미술대학을 다니겠다고 했을 때 내 의견을 존중해 주어서 만학도로 4년제 미술대학교를 63세에 졸업 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은 선구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생활의 무게 때문에 힘들면서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이런 행동에서 나에 대한 애정을 확인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가는 병상에서 남편이 첫번 째 한 말은
''미안해.''
그리고
''여보, 나를 사랑했어요?''
내 물음에 눈도 못뜨고 가래 끓은 소리로
''으응, 많이''
그리고 마지막에 한 말
''고마워.''
이 세 마디였습니다.
남편에게서 이 말들은 처음 듣는 말들입니다
중언부언지않고 이 세 마디 안에 많은 의미를 담아서 내게 해 주고 갔습니다
남편은 참 멋진 사람입니다
그리고 크나큰 선물을 또 하나 안겨 주고 갔습니다
46년 동안 나의 기도였던 하나님을 받아드리고 확실하게 영접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로 갔습니다
남편은 가면서도 내가 아파 할까 봐 고통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갔습니다
그 동안 표현 못 했던 말들을 단 세 마디로 내 마믐을 가득 채워 주고 갔습니다
마지막으로 46년간의 나의 기도를 이루어 주며 큰 선물을 안겨 주고 갔습니다
1972년 1월4일,
우리의 결혼식날은 겨울 가뭄으로 농부들이 애타 할 때 단비가 여름비처럼 주룩주룩 내렸습니다
2018년 1월6일,
오늘 남편이 하늘나라로 가는 날에도 그 날처럼 겨울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습니다
나와의 인연의 처음과 끝을 확실하게 하고 갔습니다
내 남편은 참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은 새벽 다섯시
비가 눈으로 변하여 사락사락 내리고 있습니다
이제 남편은 제 곁에 없습니다
이제 보고 싶어도 못 봅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세 마디,
' 미안해. 많이 사랑해, 고마워.''
46년동안의 나의 기도를 선물로 안겨 주고 가셔서
전 외롭지 않을것입니다
나도 남편에게 이 말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은 훌륭한 아빠, 훌륭한 남편은 아니었지만 당신은 좋은 아빠였고 좋은 남편이었어요
그리고 나도 당신에게 미안하고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당신이 고마웠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