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첫 번째 주제 : 이단을 통해 한국교회를 경고하시다
지난 세월호 사건에서는 구원파라는 이단이, 이번 코로나에서는 신천지라는 이단이 등장해 온국민의 공분을 사고 기독교에 충격파를 끼치고 있는 것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해 볼 때 이단은 항상 기독교의 약점을 파고 들어와서(사단은 항상 인간의 죄와 약점을 공격합니다) 혼란을 야기시켰습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단의 공격이 긍정적인 면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정통 기독교가 그 도전에 맞서는 과정을 통해 정통 기독교 교리가 확립이 되고, 공격당한 약점을 보완하면서 기독교가 질적 성장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큰 그림 하에서 사단과 이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이 여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단의 공격에 대해 기독교가 올바른 대응을 했을 때 이야기입니다.
(1) 세월호 사고에 등장한 구원파는 이단이 얼마나 인간성과 가치관을 타락시키는지 그 실체를 드러내 주었습니다. 구원파는 초대교회 당시에 그노시즘(영지주의)이라는 특별한 영적지식을 강조한 이단과 맥락을 같이 합니다. 그노시즘은 헬라철학의 영혼은 선하고 육신은 악한 것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받아 들여서, 자기들만이 가지고 있는 영적인 사유를 통해 습득한 영적인 지식을 알게 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정통 기독교와 달리 영육의 구원이 아닌, 영혼만이 구원받는다고 생각해서, 육체를 하찮게 여겨 금욕주의 또는 쾌락주의라는 양극단의 치우친 행태를 동시에 보이는 이단이었습니다.
구원파는 포교활동을 “당신이 몇날 몇시에 구원받았는지 이야기 하라. 말할 수 없다면 당신의 구원은 가짜다”라는 희한한 논리를 폄으로 인해 구원파라는 별명을 가졌습니다. 이들 역시 다른 이단과 마찬가지로 기독교인들을 주로 포교 대상으로 삼아서 집중 공략하는데, 평소 구원관이 올바로 정립되어 있지 못한 기성교회 교인들은 갑작스러운 이들의 질문에 당황하기 십상입니다. 이들이 이런 논리를 펴는 데에는 구원을 지성적인 이해로 국한시키는 잘못된 이해, 아니 억지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정통기독교는 중생하고 구원받는 데에 성령이 행하시는 설명이 불가능한 측면이 있음을 인정하면서(특히 여러 정통교단 가운데 장로교는 구원받는데에도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습니다), 복음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도 단순히 지성적인 이해만이 아니라 인격의 세가지 측면, 즉 지,정,의가 같이 믿고 영접하는 전인격적인 구원을 믿습니다.
초대교회 때의 그노시즘(영지주의)처럼 자기들만이 특별한 영적인 지식을 통해 구원받는다는 구원파는 한번 회개하고 구원받았음을 알게 되면 더 이상 회개할 필요도 눈물도 흘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구원관의 위험성이 드러난 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이었습니다. 구원파인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이 보인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떠올려 보십시오. 이들이 보인 행동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불가능한 행동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이런 행동을 보인데는 두가지 요인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번 구원받으면 더 이상 회개나 눈물이 필요없다는 그들의 주장입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의 지식을 소유한 이후부터는 더 이상 참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멈춰져 버린, 아니 아예 할 필요가 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매일처럼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성경 말씀에 나의 삶을 비추어 보면서, 또 내 안에 계셔서 나를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면서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참 신앙인으로의 길을 걸어가지 않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배를 버리고 홀로 목숨을 건진 선장이 자원봉사자가 말아 준 국밥을 맛있게 먹더라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도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일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영을 선한 것으로 육을 악한 것으로 구분하는 이분법적 세계관입니다. 이들도 그렇지만 대부분의 이단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영의 지식을 소유한 자기들 공동체만을 구원의 방주로 생각하고, 그 외의 세상은 마귀의 지배를 받고 있는 육의 세계로 바라보고 구분짓는 것입니다. 어차피 멸망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반면에 정통 기독교인은 썩어질 세상이지만 이를 주관하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바라봅니다. 그러기에 세상을 포기하고 산이나 동굴로 숨는게 아니라 실패할지언정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노력해 나갑니다.
그런데 구원파의 억지 논리와 무책임한 행동을 보면서 왠지 낯설지가 않은 느낌은 뭘까요...^^ 우리 교회 성장만을 추구해 온 우리 한국교회의 모습이 오버랩되지 않습니까? 당장 교회성장을 위해 값싼 구원을 선포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사회의 책임을 도외시하는데...그래서 안티기독교인들이 기독교인들을 공격할 때 주요 레퍼토리가 “기독교인은 말만 앞서고 삶은 받쳐주지 않는다”입니다. 위에서 이단의 도전이 정통 기독교에 일정부분 영적 진보를 가져온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파 사태를 통해 배워야 할 교훈은, 구원파의 교리가 이래 저래 잘못되었고 정통교리는 이것이다라는 이해가 아닙니다. 우리가 정통교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단 구원파와 다름 없이 보여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성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