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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말씀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로마서 3:9~20)
* 본문요약
그러면 유대인이 이방인보다 더 낫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두 다 죄 아래 있습니다.
이 땅에 의인은 하나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모두가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자가 없습니다.
찬 양 : 415장 (새 292) 주 없이 살 수 없네
202장 (새 268) 죄에서 자유를 얻게 함은
* 본문해설
1.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9~12절)
9)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확인)하였느니라.
10) 성경에도 기록되기를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깊이 생각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모두가 다 곁길로 빠져서 쓸모가 없게 되었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죄 아래 있다(9절) :
죄의 노예로 죄의 권세와 속박 아래 있으며,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 의인은 하나도 없나니(10절) :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에 맞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뜻
-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11절) : 쉬니온
깨닫는 자에 해당하는 동사 ‘쉬니온’은
‘몰두하다, 심사숙고하다, 깊이 생각하다’의 뜻이고,
‘하나님을 찾는 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찾고 탐구하는 자‘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두 어구를 합하면 ‘하나님을 깊이 숙고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깨닫는 자가 하나도 없다’라는 뜻이 됩니다.
-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11절) :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탐구하는 자가 없다는 뜻.
하나님 대신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에 대하여 궁금하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 다 치우쳐(12절) : 사르, 여세클리난
‘치우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사르(시 14:3)’는 ‘가버리다, 떠나다’이고
‘치우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세클리난’은 ‘피하다, 멀리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돌아서서 빗나가는 자,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삶의 표준에서 벗어나 곁길로 나아가는 자들을 뜻합니다.
- 무익하게 되고(12절) :
부패한 우유처럼 쓸모없을 뿐 아니라 오히려 해를 주는 자가 되었다는 것으로,
그가 하는 모든 행동과 활동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는 것이 되었다는 뜻.
-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12절) :
착한 행실을 하는 자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모두가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뜻.
2. 죄로부터 나오는 악(13~18절)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사람을 속이기만 하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16) 그들이 가는 길에는 파멸과 고생(참담함)이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라고 한 것과 같으니라.
- 열린 무덤(13절) :
유대인들은 절벽에 굴을 파서 그 안에 시체를 넣고는 돌로 막고 석회를 바릅니다.
그런데 비가 와서 석회가 씻겨 내려가서 한쪽에 구멍이 뚫리면
그곳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목구멍에서 더러운 말들이 나오므로 목구멍을 이 무덤의 구멍에 비유하였습니다.
온갖 추한 말들이 끊임없이 솟아 나오는 모양을 표현한 말입니다.
- 독사의 독(13절) :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해악을 끼치는 사악한 말
- 저주와 악독(13절) : 이웃을 향해 토해내는 언어의 난폭성과 죄악성을 이르는 말
-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14절) : 습관적으로 저주와 악독의 말을 계속 내뱉는다는 뜻.
- 피 흘리는데 빠르다(15절) : 남을 파괴하는 일에는 매우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인다는 뜻.
- 파멸과 고생,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함(16~17절) :
타인을 해하는 죄의 폭력성을 가진 사람들의 내면에 파멸과 고생이 있다는 것으로,
남을 파괴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그들 자신의 몸 안에 고통의 독이 가득 쌓여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가장 큰 피해자는 그들 자신입니다.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3. 율법으로는 구원을 얻은 자가 없다(19~20절)
19) 우리도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정죄) 아래 있게 하려는 것이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니라.
- 율법이 말하는 바는…(19절) :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랑하는 구약의 율법은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가 무엇인지 알리는 것에 불과합니다.
구약의 율법을 통해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고,
그 삶의 결론은 심판, 죽음, 파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에게도 피할 수 없는 결론입니다.
* 묵상 point
1. 우리는 나으뇨 ➠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1) 더 나은 의를 가진 자는 없다(9~10절)
이방인의 죄와 유대인의 죄를 지적한 후 “그러면 우리는 나으뇨?”하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특정한 사람을 염두에 둔 질문이 아니라,
사도이든,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누구든 간에
다른 사람들의 의보다 우리의 의가 더 낫다고 말할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것입니다.
바울은 한 마디로 “결코 아니다”라고 강하게 부정합니다.
누구든 다른 사람의 의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조차도
다른 사람들의 의보다 결단코 낫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2) 우리끼리 따져서 더 나은 의란 하나님 앞에서 아무 소용 없는 것
물론 우리끼리 따져볼 때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낫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우리끼리 누구의 의보다 더 낫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가령 파선한 타이타닉호에서 이제 곧 모두 물에 죽을 사람들이
내가 저 사람보다는 그래도 10미터쯤 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에 합당한 의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를 가졌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2.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되고
1)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10절)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에 도달된 자가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하나님의 의의 수준에 도달된 자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기들의 노력으로 하나님의 의에 도달될 수 없으니
세상에는 의인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2)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11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자도 없고,
그 뜻을 찾는 자도 없습니다.
혹시 누가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다고 말하여도 듣고 싶어 하지도 않습니다.
장차 주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 모든 만민을 심판하시리라는 말씀을 해도
두려워할 줄을 모릅니다.
3)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되고(12~14절)
다 치우쳤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으로부터 돌아서서 빗나가는 자들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해주셨는데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그 말씀을 따라 사는 길뿐인데
그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고 듣는 자가 없습니다.
오직 썩어 없어질 세상 것을 얻는 데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입니다.
입에서는 이웃을 해치려는 말뿐입니다.
입구가 열린 무덤에서 시체 썩는 냄새가 나오는 것처럼
사람들의 입에서 저주와 악독의 말들이 끊임없이 나옵니다.
남을 해치는 일에는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이지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에는 둔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과 활동들은
마치 부패하여 썩은 우유처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이 일으키는 문화와 문명들, 건물들과 화려한 거리의 풍경들,
그들이 성공의 증거로 내세우는 화려한 이력들만 좇는 자들은 허무만 남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멸하실 때
그 모든 것이 불에 탄 휴짓조각처럼 허망한 것들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바울은 마치 오늘날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의 병폐를 보는 것 같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조차 이 세상의 것을 얻기에 마음을 빼앗긴 모습들을
바울은 통탄하면서 “이 치우쳐 무익하게 되었다”고 외칩니다.
오직 주께서 인정하시는 것만이 의미 있는 참된 것입니다.
공부를 하든 직장에 다니든 무엇을 하든 주님 안에서 하십시오.
3. 파멸과 고생이 있고,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1) 죄와 악의 악순환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치우쳐 사는 사람들은 죄와 악이 서로 맞물려
죄에 점점 더 깊이 빠지게 하는 죄의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기심에 사로잡혀 나의 이익만을 위해 살아갈 때
악마가 내 안에 더 강한 죄의 독을 집어넣어 세상을 더욱 좋아하는 자가 됩니다.
2) 점점 더 강한 죄의 늪에 빠지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사람은 점점 하늘의 복은 싫어하고
섞어질 세상 것만 좋아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는 사이에 점점 파멸과 고생의 늪에 더욱 깊이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남에게 독설을 퍼부을 때
그 말을 듣는 이보다 그 독설을 퍼부은 자의 몸에 강한 독이 더 많이 쌓여서
더 무서운 파멸의 고통이 그를 향하여 다가오는 것입니다.
3)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17~18절)
그러다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죄와 악을 즐거워하는 자가 됩니다.
이처럼 악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합니다.
평강은 오직 주께서만 주실 수 있는데,
악에 머물러 있으니 그에게 평강의 길이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아무리 노력하고 힘써도
그 마음에 있는 번민과 고통과 갈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4. 율법은 죄가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
1)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20절)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을 얻을 자가 없다는 말은 위 2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사람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수준의 의에 도달할 자가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율법을
하나도 빠짐없이 완벽하게 지키는 자는 세상에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는 것입니다.
2) 율법으로는 죄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라(20절)
율법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율법도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길인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들이 연약하여 그 율법을 지킬 수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해 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죄에 속박된 사람들을 대신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감히 바랄 수도 없었던 하나님의 의를 얻는 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 그러면 율법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 율법의 역할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이유를 율법이 말해줍니다.
율법을 단 한 가지라도 어기는 자는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우리는 율법을 지킬 힘도 능력도 없는 자이니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우리 주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피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다 치우쳐 무익하게 된
허망한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2. 오직 주님 안에서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시는 평강의 길에 서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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