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한 많은 삶
이 두 사람은 설명이 필요없는 조선 시대 최고의 여류 시인이고, 둘 다 그림까지 잘 그렸던 화가였다.
조선 시대에 여자가 아무리 똑똑해도 공부시키지 않는 시대에 두 사람은 사회 통념을 깨고 최고 수준의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개방적이고 시대를 앞서가는 생각을 가진 부모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사임당 아버지 신명화는 벼슬을 하지 않았지만 강릉에서는 알아주는 부잣집이었다.
그는 어린 사임당이 매우 총명한 것을 보고 글과 그림을 가르쳤다. 심지어 딸이 커서 결혼을 해야 할 나이가 되자, 그는 딸이 학문과 그림을 그리는데 방해가 되지 않는 인물 이원수를 사실상 데릴사위로 구해, 딸이 계속해서 친정에 살 수 있게 했다.
허균의 누나로 잘 알려진 허난설헌은 자신이 죽을 때,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워버리라고 했는데, 동생 허균이 버리기 아까와 시를 모아 시집을 만들어 세상에 알리면서 유명해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 허엽은 당시 동서인 양당이 있을 때 동인의 우두머리로, 높은 벼슬을 하면서 사회적인 지위가 높았고, 큰 오빠 허성은 선조의 사위 부마로,
둘째 오빠 허봉은 당대 문장가였고, 동생 허균까지 조선 최고의 천재형제와 명문가 집안이었다.
그녀의 남편 김성립은 오빠 허봉이 그의 제자 중에서 똘똘하고 착실한 청년을 구해 주었다.
두 사람 모두 집안은 더할 나위없이 좋았는데 문제는 남편이었다.
사임당의 남편은 소위 말하자면 공부나 벼슬에는 관심이 없는 한량이었고,
장인이 죽자 사임당의 속을 무지하게 썩혔다. 그녀는 자식을 일곱명이나 낳아 초기의 부부 금슬은 아주 좋았으나, 나중에 남편의 바람기 때문에 속을 썩이다가 48세로 죽었다.
그녀의 무덤에 흙이 마르기도 전에 남편은 주막 주모를 집에 데려와 살자, 착하고 효자였던 율곡 이이가 열받아 가출해 중이 되는 사건이 생길 정도였다.
허난설헌은 죽기 전에
자신이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 태어난 것,
지금의 남편을 만난 것을 가장 후회한다고 할 만큼 남편과 사이는 안 좋았던 것으로 보인다.
자식이 둘 있었지만 아주 어려서 모두 죽고 자신도 26세에 죽었으니 한 많은 인생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녀는 능력이 너무 뛰어난데 여자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조선시대였으니 울분이 쌓였을 것이다.
남편 김성립은 20대에 과거에 합격할 정도로 똑똑했고,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출전해 전사했다.
그는 너무 잘나고 드센 부인을 감당하지 못해 불화가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며, 절대로 남편이 찌질해서 부인을 괴롭혔을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산 사람을 비교하면 스트레스를 받지만, 죽은 사람을 비교해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신사임당 필체
신사임당 그림
허난설헌의 글.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