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광기 사이에서..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04-1989)

익살스런 콧수염이 인상적인 스페인 초 현실주의의 대가라고 불리는 살바도르 달리. 전방위 예술가, 광기와 모순과 신경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미치광이, 삶이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었던 20세기 최고의 예술가입니다.
그는 자신의 삶 그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승화시킨 20세기 최고의 예술가로, 현대 예술의 혁명적 전환점이엇던 초현실주의 운동을 시각 언어로 구체화시킨 대표적인 화가입니다.
"달리를 빼놓고 20세기의 얼굴과 색깔을 상상해볼 수는 없다." - 미셸 보로도 <르 몽드> -
그는 의식의 세계를 다루던 기존의 미술에서 무의식의 세계를 최초로 회화에 도입한 근대와 현대의 이정표이며, 회화를 통해 정신분석학의 묘경을 탐구한 미술의 프로이트라 할 수 있습니다. 이성과 합리성의 추구를 넘어 비이성적인 것, 비합리적인 것으로의 문을 연 그는 다른 사람에게서라면 곧장 광기로 치달았을 내밀한 정신적 모순들과 신경증을 예술로 승화시킨, 그저 미치광이나 괴짜, 기인이라는 분류표만으로는 정의내릴 수 없는 천재였죠.

시간의 눈
삶과 죽음은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미 형성되어 그에게 침투해 가고 있었습니다.
살바도르라는 이름은 그가 태어나기 전 죽은 그의 형의 이름이었죠. 달리는 죽은 형의 이름을 물려받았고, 그는 자신에게서 죽은 형의 모습을 찾으려는 부모님에게 강한 반발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후일 그는 '나는 결코 죽은 형은 아니며 살아 있는 동생이라는 것을 항시 증명하고 싶었다.' 라고 말했죠.

The Dream 1937
그는 14세때부터 바르셀로나와 마드리드의 미술 학교에서 공부를 하지만 과격한 성품 때문에 1926년 퇴학을 당하죠. 그 후 그는 인상파, 점묘파를 거쳐 미래파, 피카소의 큐비즘 등에 관심을 갖습니다.
처음 예술 활동을 시작할때부터 달리는 끊임 없이 자신의 그림에 대한 시와 이론적 주석을 발표하면서 회화와 문학 작품을 통해 자신을 표현 하였습니다. 그는 프로이트의 정신 분석학설에 심취하여 의식속의 꿈이나 환상의 세계를 표현합니다. 1928년 파리로 가서 초 현실주의화가나 작가들과 교류하며 개인전을 열기도 합니다. 그 스스로 <편집광적인 비판적 방법>이라 부른 그의 창작 수법은 환각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것입니다.

나르시스의 변모 1937
달리의 나르시즘은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더욱이 연못의 물 안에 반사되어진 이미지와 현실적 이미지 사이의 혼동은 그 배경에 깔린 죽음의 이미지와 함께
이러한 이중 이미지 뒤에 감추어진 거의 불가사의한 상징입니다.
1929년 그는 러시아 태생의 폴 엘뤼아르의 부인 엘레나(갈라)에게서 운명적인 사랑을 느낍니다.
극도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그는 그녀를 치유제로 믿으며 그녀에게 몰입하게되죠.

갈라와 레다 1949

원구로 그려진 갈라 Gala of the Spheres 1957
그와 그녀는 동거를 시작합니다. 타인의 아내를 가로 챈 아들의 부도덕에 노한 아버지는 달리에게 절연장을 보내기에 이르렀고 달리는 그 충격으로 삭발을 하고 머리카락을 흙속에 묻지요. 그 매장은 곧 그를 낳고 기른 아버지와 가정과의 이별을 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혈연보다 정신적 지주인 갈라를 선택합니다.
달리의 수많은 작품 속에는 갈라가 등장합니다. 심지어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도 말이죠.
그것은 정신적 노이로제에서 고통 받는 그를 구하고 치유한 것이 갈라였기 때문이었겠죠.

성모 마리아
1930년대는 달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10년이었습니다. 이 때 그의 대부분의 주제들이 표면화되어 대표작들을 쏟아냅니다.
살바도르 달리는 금세기 가장 특이하며 괴이한 화가로서 그는 작품을 통해 인간의 회의, 무의식의 위력, 기묘한 상황등 초현실의 세계를 전개합니다. 그러한 그를 두고 병적인 그림, 광인의 그림이라는 말이 들려오죠. 왜냐하면 인간의 의식과 개성이 무의식적인 내용물의 홍수 속에 빠져들어 잠적하는 현상은 마치 정신 분열의 증세와 같기 때문입니다.

내란의 예감 Premonition of Civil War 1936
하지만 달리 자신의 언급처럼 광인과 달리 자신의 유일한 차이점은 미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작품속에서 현대인이 지닌 고민,불안, 모순, 공포, 절망등을 숨김없이 표현하였습니다.
그의 활동은 영화 제작과 연극무대장치, 보석 디자인, 홀로그램에까지 확장 되는데 이 모든 작품들을 제작하면서도 그는 세속적이고 거만하고 과장적인 변장을 포기하지 않고 그림 그리기와 글 쓰는 일을 계속 병행하지요.

십자가의 한, 요한의 그리스도 1951
주의에 대한 달리의 관심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그리게 합니다. 십자가에 달린 수의 형상이 사탄의 상징, 뿔 달린 사탄의 얼굴 형상이라는 논란이 일어납니다. 배경색의 경우도 하늘로 승천하는게 아닌 밑으로 추락하는 느낌이라는 말이 많았죠.
달리는 크리스찬은 아니지만 풍부한 상상력과 놀라운 지혜로서 종교화를 제작하였는데, 그 공통점은 편집광적 비판방법과 자기도취에서 벗어나 매우 정교하고도 수려한 필치의 사실적 묘사를 보이며,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포착한 구도를 도입하여
형이상학적 작품을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The Ascension of Christ 1958
나는 늘 똑같은 짓을 되풀이하는 인간의 맹목적인 습성에 경악한다.
은행직원이 수표를 먹지 않는 것에 놀라고 나 이전에 어떤 화가도 흐물거리는 시계를 그릴 생각조차 않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 Dali

The Persistence of Memory 1931
달리의 작품중 가장 대중화 된 작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