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배제] 탑골공원에 이발소가 많은 까닭은
가격도 싸고 마음도 편해 멀리서 머리 깎으러 오는 노인들
[뉴스포스트=강대호 기자] 서울 종로는 <도시탐구> 취재를 위해 기자가 자주 들르는 곳이다.
서울의 동서남북 모든 곳을 연결하는 버스들이 지나기 때문이다. 서울은 지하철 노선이 많기도 하고
소요시간도 정확해 편리하지만 거리 분위기를 느끼며 이동하기에는 버스만큼 좋은 교통수단이 없다.
종로에서도 탑골공원은 중간 기착지와도 같다. 이곳을 중심으로 인사동과 북촌, 익선동과 종묘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예전에 이곳을 지날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었다. 종각 쪽에서 탑골공원 방향으로 건널목을 건너자마자 분위기가 바뀐다는
거였다. 종각 쪽에는 주로 젊은 층들이 보였다면 탑골공원 쪽에는 거의 노인층들만 보였다.
탑골공원은 노인들의 해방구였다. 탑골공원 안은 물론 공원 앞 대로변에도 많은 노인이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코로나19로 공원 문이 닫혔다. 그래서인지 공원 앞은 썰렁해 보였다.
탑골공원 근처 대로변에도 노인들은 보이지 않았다.
탑골공원. 코로나19로 출입이 금지돼 썰렁하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코로나19로 노인들이 집에서 나오지 않았나? 그런데, 아니었다. 탑골공원과 종로2가 파출소 사이 골목으로 들어가니
노인들이 보였다. 그곳은 노인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들이 있는 골목이었다.
근처 ‘송해길’에도 노인들로 붐볐다. 송해길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저렴한 식당들과 노래방 같은 유흥 시설들이
들어찬 곳이다. 전국노래자랑 MC 송해씨의 사무실도 있고, 그가 그 거리의 업소들을 잘 이용한다 해서 송해길로 이름지었다.
이발요금 5천원 이발소들이 몰려 있는 종로
“코로나19 때문에 예전보다는 줄어들었지만 무료급식 때문에 나오는 어르신들이 많습니다.”
종로2가 파출소 한 직원의 말이다. 탑골공원 뒷골목으로 들어가니 담장을 끼고 노인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무료급식은 한참 전에 끝났지만 떠나지 않고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 사이로 머리에 염색약을 칠한 노인들이
여럿 보였다. 탑골공원 뒷골목에는 무료 급식소들과 노인들 대상으로 장사하는 저렴한 식당들도 있지만 이발소들도
여럿 자리했다. 빙빙 돌아가는 이발소 조명등만 보면 얼핏 식당보다 많아 보였다.
기자는 이발소 숫자를 세어 보았다. 탑골공원 뒷골목과 송해거리 사이 눈에 보이는 곳에만 10개의 이발소가 있었다.
한 건물에 이발소 두 곳이 붙어 있는 곳도 있었다. 근처 골목에도 이발소들이 숨어 있다.
탑골공원 인근 이발소들. 한 건물에 여러 곳이 들어섰다.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탑골공원 인근 골목의 이발소.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여기 다닌 지 1년쯤 됐습니다. 서울에 일 보러 온 김에 머리도 자르고 염색도 하고 그러는 거지요.
원래 집 근처 이발소에 다녔었는데 문 닫았거든요.”
인천에 사는 문태하(66세) 씨의 말이다. 그는 서울에서 볼일 보는 지역이 종로 쪽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이곳에 이발소가 많고 교통도 편하고 해서 머리를 자르거나 염색을 할 때 일부러 들린다고 했다.
이 지역의 이발요금은 대략 5천원이다. 이발 5천원, 염색 5천원. 이보다 비싼 곳은 없었다. 싼 곳은 있었지만.
신장개업한 곳은 4천원, 후미진 골목에 있는 이발소는 3천원 받는 곳도 있었다. 그곳들도 염색은 5천원이다.
“이 동네가 워낙 싸잖아요. 동네 목욕탕 이발소에 가면 1만원은 줘야 해요. 그나마도 요즘엔 코로나19 때문에 손님이
없는지 문 닫았더라고요. 그런데 여기는 싼 이발소와 식당이 많잖아요. 무엇보다 친구들이 많아서 멀리서 오게 됩니다.”
천안에서 온 장재삼(72세) 씨의 말이다. 그는 동네 목욕탕 이발소에서 머리를 자를 때 돈을 낸 만큼 대접을 받지 못하는
느낌을 받았었다고 했다. 자기에게 1만원은 적은 돈은 아닌데 그 돈 쓰고 무시 받는 느낌까지 받았었다고.
그런 면에서 탑골공원 이발소들은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이발 가격. 인근 거의 모든 이발소 요금은 균일했다.
그런데 저렴한 이발소들은 탑골공원 근처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종로3가역 인근과 종묘공원 건너 세운상가 인근까지,
그리고 동묘 벼룩시장 등 노인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는 모두 저렴한 이발소들이 있었다.
요금은 이발 5천원, 염색 5천원으로 균일했다.
“여기도 거의 노인 손님들이죠. 노인들이 이곳에 오는 이유는 일단 싸고, 노인들 많아 마음이 편하고,
교통이 편리한 데다 65세 이상은 수도권 전철이 무료이기 때문입니다.”
세운상가 근처 어느 이발소 주인의 말이다. 그는 주머니 사정 좋지 않은 노인들이 많아 요금을 올리기 쉽지 않다고 했다.
“젊은 남자들 누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아요? 군대 갈 때도 미용실에서 자르고 가는데.
손님층이 점점 나이 들어가고 줄어드니 운영이 힘들었지요.”
한때 다른 지역에서 이발소를 운영했다는 한 이발사의 말이다. 그는 현재 탑골공원 앞 이발소에서 직원으로 일한다.
나이 들고 돈 없으면 머리를 어디서 자르지?
동네에도 이발소들은 있다. 기자가 사는 경기도 성남을 검색하니 수십 곳의 이발소가 있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목욕탕 내 이발소들은 영업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고, 다른 이발소들은 손님이 줄어든다고 하소연했다.
그곳들의 이발요금이 싼 곳은 1만원 선이지만 보통 2만원 선이었다.
바버샵이라는 곳도 여러 곳 있었다. 이발소이긴 한데 젊은 감각의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준다고 광고했다.
요금은 보통 3만원 선에서 시작했다. 만약 경제력 없는 노인들이라면 몇만원 하는 이발요금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멀리까지 머리 깎으러 가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사회적으로 배제되는 원인 중 하나가 경제력 상실이라고 관련 논문들은 밝히고 있다.
서울 홍대 인근의 바버샵. (사진=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50대 남성분들은 종종 방문하지만 60대는 못 본 것 같아요.
나이로 손님들을 평가하지는 않지만 나이 많으신 손님은 대하기가 좀 조심스럽기는 하죠.”
서울의 한 미용실 실장(남, 30세)의 말이다. 물론 그의 말이 미용실 전체 분위기를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그런 마음가짐이 이용자의 마음에 전달되어 서로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는 노릇이다.
50대 중반인 기자는 미용실을 이용한 지 30년쯤 됐다. 지금은 단골 미용실이 있어서 괜찮지만 만약에 새로운 곳으로
옮기게 된다면 조금은 주저할 듯싶다. 겉으로 보이는 나이 때문에 대하기 어려운 사람처럼 보일까 해서다.
기자는 나중에 어쩌면 “이제 이발소에 가야 하나” 푸념할지도 모르겠다. 분위기는 매우 다르겠지만 마음은 편할까 해서.
탑골공원 인근에서 만난 노인들은 모두 그 근처가 젊은 사람들 눈치 보지 않아 편하다는 표현을 했다. 그 말은 다른
곳에서는 불편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배제를 일으키는 원인에는 ‘나이’와 ‘세대’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누군가가 본인을 불편해한다는 것이고, 그것 때문에 본인까지 불편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또래들이 모이는 곳으로 모여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마음이 편하니까.
어쩌면 그런 노인들의 마음을 헤아린 이발소들이 모여드는 이유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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