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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지맥(五土枝脈)은 ?
오토지맥(五土枝脈)은 보현지맥 구무산(674.7m.穴山)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북쪽엔 보현지맥,남쪽엔 선암지맥을 마주보며 서진하여 비봉산(670.5m),오토산(475m)곁을 지나 태봉산(216.1m)을 지나 남대천이 쌍계천에 합류하는 경북 의성군 봉양면 구산리 구미교에서 긑나는 도상거리 33.1km 산줄기로 남대천의 우측 분수령이 된다.
이산산줄이에서 산이름이 붙은산은 분기봉인 구무산을 빼면 태봉산(胎峰山. 216.1m)뿐이고 비봉산(670m)은 1.4km,오토산은 0.5km 맥에서 떨어져 있다.
이 산줄기는 신산경표 개정증보판에서도 길이 30km이상되고 강유역면적이 200㎢이상되는 151개 지맥에서 빠져 있는데 그후 측정 ,기타 오류 수정으로 강기준이 200㎢ 이상으로 분류되고,산줄기 길이가 30km이상으로 분류돼 덤으로 지맥반열에 합류된 6개(.분적. 철성. 봉화.쇠치.오토.청명)지맥중의 하나로 최신 산줄기 지도에는 올라있다.
◇오토지맥(五土枝脈)개념도
▣ 오토지맥(접속:화목재-분기점-합수점)
◈ 산행일시 / 날씨 : 2019.10.20./ 맑음(6~21청송군 기준/ 바람 조금)
◈ 산행장소 : 청송/의성군/9명
◈ 산행코스 : 화목재-분기점:구무산-호선고개-비봉산-홀고개-오토산-태봉산
구미교-합수점:쌍계천과 남대천
◈ 시간 : 14시간36분( 0108~1545)
◈ 거리: 42.42km
몸상태가 별로 안좋은 상태로 오토지맥 종주를 위해 양재에서 2110에 버스에 탑승 청송으로 ...
01시경 들머리인 화목재에 도착 산행준비/0108분에 산행시작
오늘 무사히 분기점인 구무산에 도착해야 하는되.... 조심스럽다
3키로미터를 가여 구무산 (분기점): 약1시간 정도 가야 한다
산행준비(금성현 서로라 하내요) 안개가....
출발전 단체사진(대장님 사진 퍼옴)
도로변에 수준점도 있고
낙석 위험 구간 간판도 있고....
산행 출발... 도로를 따라.... 견공들이 엄청 요란스럽내요 ... 밥값하고 있내요... 도대체 몇마리 인지...
0126 20여분가니 특용작물 재배단지 출입금지 프랭카드가 곳곳에....벌금 500만원...
임도가 끝나고...
0131 여기도 출입금지 프랭카드... 산으로 진입
0146 산으로 진입.... 잘 가야 할것인되...
울타리가 있내요
출입금지 간판도 있고.. 산 전체에 울타리를...
넘어 가야지...
등로도 없는곳을.....
또 넘어가고
희미한 등로가....
0205 드디어 구무산 (674.7m 분기점) 도착 이곳에는 시그널과 산패등 아무것도 없고 출입금지 프랭카드만 있음
오토지맥 분기봉. 길안 313삼각점. 약초재배 철망쪽문이 있으나 잠겨 있음
구무산 확인만하고 구무산 이탈
특용작물 재배단지 출입금지 프랭카드가 곳곳에....벌금 500만원...
등로가 좋내요....
등로가 아주 좋음...
구도로에 위치한 사곡면 표시 간판
0301 미시재 도착 . 2차선도로. 통신탑. 표고는 311m.의성군 좌 사곡면과 우 춘산면경계
미시재에서 잠시 쉬고... 물한모금
등로가 좋다가도 종종 이런곳도...
다시 등로가 좋아지고..
0339 송이 수확기간에 입산 금지 프랭카드...
CCTV 가 설치되어 있다고 하내요
0345 462.8 봉을 통과 하고...
급경사를 내려가고...
편안한 등로가 다시 시작되고..
0415 효선마을뒤 정자. 좌우로 넘는 고갯길. 좌측밑은 효선마을
0416/20 세멘트도로 삼거리... 숨좀 고루고... 영양보충도 하고...
세멘트 삼거리에서 쉬고 있는모습
오늘 등로는 정말 좋내요
0507 효선고개. 79번 2차선도로.이동통신탑.춘산면경계
숨좀고르고....
효선고개 중앙에 석축을 올라 산으로 접근...
0526 239.9 삼각점봉 도착(삼각점과 준희님 산패)
239.9m 삼각점(길안 453).
0536 농노 세멘트 도로에 도착(약14키로 지점).... 비봉산 갈림길로....
0610 급경사를 올라선 비봉산 갈림길.
표고는 464m쯤 되고 오름길 중턱인데 아무런 표식이 없어 지나치기 쉽다.
배낭을 벗고 비봉산을 행해 출발..(왕복2.8키로 미터 1시간정도 소요).
숲사이로 비봉산이 조망되고...
급경사도 오르고
0635 암릉구간에 자라고있는 바위손
0640 우측 금성산쪽에서 올라온 메인 등산로를 만나고.119 구조 표시목.표고 597m.
0647 비봉산(670.5m). 넓은 헬기장에 정상석과 1등삼각점(의성12).
이정목(금성산 4.8km.여인의턱 0.6km).
비봉산 정상석
정상의 헬기장
1등삼각점(의성12)과 안내간판
이정목(금성산 4.8km.여인의턱 0.6km).
여기까지왓으니 인증 사진(나)
유주열님
신경호님
김양호님
송주봉님
단체사진
바위손이 많은 암릉구간을 내려가고...
가야할 마루금...
급경사도 내려 가고...
0716 1시간만에 돌아 왔내요(17키로를 왔내요..밥먹고 갑시다.) 정상가서....
0726 늦은 아침... 민생고 해결
0746 조망바위 가기전 무명봉에서 바라본 운무
곳곳에 입산금지 ....
0753 조망바위 안개 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임
조망바위에서 본 좌측 암벽
조망바위에서 본 전경... 안개...
0804 조망바위1 안개때문에....
0814 364.1 봉을 통과
0825 약초, 버섯 꾼들....
0842 홀고개. 2차선 930번 도로 . 절개지를 우측으로 내려와서 좌측으로 올랐는데 좌측으로 내려오는게 빠르다.
금성면,사곡면 경계판 뒤로 오른다. 이곳에서 쉬어 가고...
쉬면서 간식도 먹고...
0909 346.7 맨발 산패를 지나고
0920 임도를 만나고.. 임도따라 ...
0925 임도와 이별 산으로...우측으로 오름..오토산을 오르기 위해..
0939 /41오토산 갈림길도착.. 좀쉬고
0941 배낭을 벗어 놓고 출발...왕복1키로정도...
0952 오토산에 도착 준희님 산패, 돌탑 각산악회 시그널등이 있고...
오토산 정상전경
지맥의 주산에서... 송주봉님
유주열님
김양호님
나
신경호님
대장님
김양호님
단체사진
오토산에서 하산.. 안개가...
1005 오토산 갈림길에 다시 도착
멋진 등로를 따라...
1015 임도에 도착.. 임도를 따라
구절초도 만발....
임도 안내도
1019 좌측 산으로 진입
1037 쉬면서 .. 영향보충.. 갈길은 먼되(25키로 지점 정도)
1050 246.5봉 통과
등로는 좋고
1101 만천2리(만천고개)
좌측으로 승방이 마을 들어가는 만천2길 도로명.만천2리 표석.고개 우측은 자두밭. 의성읍과 금성면 경계판
만천고개에서 가수원쪽으로 오르고..
1118 승방지를 좌측에 끼고 수렛길따라 오름.. 이곳에서 물보충 가능(약28키로지점) ..좌우측 민가(100여미터 이격)
1125 물보충 대원을 기다리며... 좀쉬고... 영양보충
1150 중앙선철로. 철로 건너는 28번국도인데 옹벽이 높아 좌측으로 돌아오름
중앙선 철로를 건너고...
철로 모습
열차가 오고있내요...
1151 28 국도
좌측 절개지에서 산길로 오름
1156 물보충 대원을 위해 잠시 휴식... 영양보충
1208173.4 미터봉을 지나고(준희님 산패)
요런 등로도...
1224 붉나무가 예쁘게 옷을 갈아입고...
억사기 길도 막내요...
1228 산수농장 직전 초지
1228 비정고개 2차선도로.
산수(풍성한)농장700m.의성마늘소작목회표지판.길건너 우측 세멘길로 오름
송계산유공비.(박문수)
길건너 우측 세멘길로 오르면 삼거리에 있는데
원비는 태봉산 가는길에 다시 만나고 이비는 1987년에 큰길가에 복사본을 세운것임.
1235 콩밭을 지나고
1237 먼저간 두분을 만나고... 좀쉬고.. 영양보충
능선 정상에 물이...
모과도 주렁주렁...
1247 임도따라...
1251 57번철탑
소나무 숲 등로.. 멋진등로
1258 송계산유공비.(박문수)
소화 8년(1933년)에 세운 송개비 원본
소화8년(1933년)에 세운비인데 내용은 훨씬전인 영조대(1725~1776)에
암행어사 박문수의 심판에 의해 송계산을 되찾은것을 기념하는 내용이다.
아래글은http://usss.pe.kr/culture/songaesan.에서 퍼온 글이다.
의성읍 팔성리에서 봉양면 풍리3리로 향하는 길가의 오른 편에 빼앗긴 송계산을 되찾은 기념비가 있다. 이 송계비는 1987년 9월에 세운 것으로, 최근 조성된 것이나, 그 내용이 지나는 이들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원비[原碑]는 봉양면 풍림3리 풍림 마을 동쪽의 진밭골 못[池]을 지나, 양 마을을 연결했던 옛 길 고개목 왼편에 있다. 그러나 잡초와 송림사이 다니기 어렵게 되자, 이곳으로 이건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비또한 조성된 시기가 일제시대인 소화 8년(1933년) 8월로 기재된 것을 보아서 아주 오래된 것은 아니다. 특히 일제 때까지만 해도 소송의 과반수가 산송[山訟] 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유[類]의 사건은 별 관심사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곳에 기록된 내용은 이 땅에 한창 송계가 조직되기 시작하였던 18세기 중반 조선 영조시대 사건(1725년~1776년)을 기록하고 있다. 또 하나는 너무도 유명한 암행어사 박문수의 심판에 의해 송계산을 되찾은 것을 기념하고 있다는 것이어서 가치가 있다.
잘 생긴 산세로 인한 산 소유권 경역[境域]분쟁의 전말을 기록한 비문내용을 살펴보면 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당시 금성면 초전리[草田里]에 살았던 세도가 김모[某]가 현재의 풍림마을 외백호에 해당하는 태봉산 서쪽 줄기에 선영[先塋]을 마련했는데, 동쪽으로 두 산등성이 너머에 있는 풍림리 내청룡에 해당하는 지맥까지 소유권을 주장하게 되었다.
그 당시는 사대부들이 분묘를 쓸 때는 음양구기설[陰陽拘忌說]에 따라 분묘의 앞쪽은 물론, 좌우 용호지맥의 몇 산등성이 너머까지도 타인의 분묘가 보이는 것을 꺼려하던 때이다.
또한 세도가가 거주하던 초전마을의 사람들 또한 비봉산의 봉이 깃들이길 기원하며, 마을의 뒷산을 오동산[梧桐山]이라 이름하고, 마을에 마[馬]씨가 들어와 살면 혼자서 발복을 독차지한다고 하여 마씨 성가진 사람들의 전입을 불허할 정도로 풍수를 굳게 믿던 사람들이다.
특히, 조문국시대 태자의 태를 묻었다는 명산 태봉산[胎峰山] 주변지역에 해당하는 산 줄기이기에 더욱 외외청룡[外外靑龍] 지맥을 확보하려는 마음이 간절하였을 것이다.
임야 경계를 무시하고 송계산을 강압적으로 탈취하게 되자, 비봉마을 송계의 대표이던 이기영, 김기진, 최운경 등 삼씨가 항쟁하였다. 이에 세도가 김모가 현령의 힘을 빌어 이들을 하옥하고 여러차례에 걸쳐 모진 악형을 가하게 되었다. 사건이 더욱 커지게 되면서, 어사 박문수가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소식을 접한 박문수 어사는 현령을 비롯한 일당을 엄벌하고, 본래의 소유자에게 환원하였다. 이같은 쟁송에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경계지에 표석을 세우게 되었다.
송계비는 이 당시에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 송계산을 지켜낸 송계원들의 유공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석으로 송계산의 가장 오랜 역사가 기록돼 있는 기념물로서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 보게 하고있다.
비봉리의 송계산은 의성읍과 봉양면, 그리고 금성면 경계 지점에 위치한 산으로, 별도의 이름을 갖지 못한 무명의 산이다. 태봉산 줄기 동쪽에서부터 오동산 줄기의 북쪽까지의 역[逆] C자 모양의 수백 정보(ha)의 임야가 곧 송계산 영역이다.
비봉리로 봐서는 서쪽과 남쪽, 그리고 봉양면 풍림[豊林]마을로 봐서는 동쪽 골짜기에 놓여있는 산줄기 전체가 송계산이다. 송계산의 가장 높은 곳이 해발 155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나지막한 구릉성 봉우리들로 구성되어 있다.
골짜기를 향해 뻗어내린 송계산의 지맥들 하나하나가 모두 잘생기고 옹골차기 그지없다. 따라서 분묘를 쓰기에도 좋은 지세이다. 이처럼 좋은 지세이었기에 산송[山訟]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풍림마을을 지나면서 골짜기 양쪽으로 눈이 시리도록 짙푸른 솔숲이 펼쳐진다. 이처럼 숲이 울창하게 잘 관리된 것은 송계에 의한 것이다. 60년대 땔 나무를 사용할 때까지 송계에 직접 참여하였던 분들에게 들어본 진술에서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당시 나무를 심기에 좋을 봄이되면, 한 집에 한 사람씩 반드시 부역에 나와서 산에 나무를 심는 것은 물론, 산에서 땔감을 하는 양을 엄격하게 규제하였다고 한다.
송계원에게도 예외는 없었으며, 송계원 아닌 사람들은 이 산에서 나무를 할 수 없었다. 이처럼 엄격한 송계규율로 인해, 대규모로 숲을 훼손한 바가 없었다. 또한 끊임없이 나무를 심으면서 적당히 나무들을 솎아 땔감으로 사용하는 등 합리적이면서도 지속적인 생태관리가 있었다.
'굶어 죽으나, 얼어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는 말이 전해져 온다.예전에는 땔 나무를 얻는 것은 식량을 확보하는 것에 버금가는 중요한 일이었다.
연료로 땔나무가 각광받던 시대에는 송계원에 의하여 수목이 많이 보호되고 관리되었으나 요즘은 잘 생긴 지세 탓인지 군데군데 분묘들만 늘어나고, 연료림으로서의 가치가 많이 떨어진 송계산의 일부분이 외지 사람들에게 분할되어 많은 부분 팔려나갔다.
그러나 송계산을 지키고자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송계정신을 오늘에 되살려 볼 일이다.
이와는 달리 분산을 알리기 위하여 예전 산지의 경계 구역을 표시하는 각석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단밀면 속암리 서재배수장 맞은 편 산기슭 암벽을 파내어 安東權氏와 羅州丁氏의 분산 - 墳山, 무덤을 쓴 산 - 임과 건비연대(建碑年代)와 '後方右西'등 위치를 각석(刻石)하고 있는데, 도로변에 있는 안동권씨 분산표시를 보면 속신 꼭대기에서 이곳 바위의 위쪽은 안동권씨 분산[束薪頂此岩上山主安東權氏墳山]임을 표기하는 형식이다.
이러한 사례로 미뤄 보아서 예전 묘지 또는 산지와 관련된 송사가 많았음을 미루어 짐작케 한다.
송계라는 것은 산림을 지키기 위한 계 - 금송계(禁松契)·산계(山契)·산리계(山里契)라고도 한다 - 이다. 이에서 산림자원을 보존하기 위하여 지역민들의 단합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송계가 조직되는 원인을 따져본다면, 첫째, 마을 주위 산림이 연료채취를 비롯한 공동이용의 대상이므로 이용자들 스스로가 상호규제하여 산림 훼손을 막고자 한 것이다.
다음으로는 선조의 묘역을 수호하는 데는 풍수지리상 수목의 형세가 긴요하였기 때문이다.
끝으로 마을 주민이 권세가의 예속민일 경우에 송계가 유력한 씨족의 선산보호를 주목적으로 하는 경향이 뚜렷하였다.
수령은 산림의 보호책임자이기도 하므로 송계를 장려하고, 때에 따라서 어느 정도의 형벌권을 허용했던 것으로 보아, 송계의 관허계적(官許契的) 성격을 엿볼 수 있다. .
송개비 뒷면
열심히 가고 있음
1322 태봉산(216.9 m) 맨발 산패.정상 이정목, 납작삼각점(의성465).
개어진 납작삼각점(의성465).
이곳에서 좀 쉬어 가고.. 갈길은 아직 먼되... 10여키로 남았는되
1343 멧돼지 3단 목욕탕 애기탕, 남여탕
1406 칡넝클지대...
1406 칡넝클지대...
신의지가 조망되고...
가을을 느낄수 있는 밤이 지천에 있고..
1414 216.9 미터봉을 지나고...
멋진 가을 풍경...
맷돼지 선생의 목욕탕.. 여기는 독탕...
1455 270m삼각점봉. 의성461삼각점. 준희님 산패.우측으로 꺽어 사정없이 뚝 떨어져 내려감
의성461삼각점
삼각점과 산패
간식도 먹어며 잠간 휴식
또 열심히 가여지
1517 참옷나무 밭을 지나고...
1526 지맥의 마지막봉인180.3미터 봉을 지나고, 준희님 산패
내려가면 ... 바로 구미교다.
과수원도 지나고...
1533 세멘트 농로에 도착
과수원가운대로 통과 바로 구미교로...
멋진소나무도 있고...
오토 졸업 냄비종도...치보고..
1537 구미교 도착
인증샸(신경호님)
나
대장님
구미교 모습
합수점으로
1545 합수점에 도착(좌 쌍계천, 우 남대천)
남대천 모습
합수점에서 인증샷(나)
신경호님
대장님
임동섭님
최학주님
송주봉님(대장님 사진 퍼옴)
김양호님(대장님 사진 퍼옴)
오늘의 산행 종료, 장거리 산행 수고들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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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등로좋고 날씨좋아 오토지맥 잘 마무리 지었내요. 수고들 많이 하셨습니다.
한국의 전형적인 가을 날씨
산세도 완만하고 등로도 좋아
산행하기 좋은 여건에서
함께해서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힘든 여정이었습니다
그래도 여럿이 함께하여 가능하였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