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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선교지의 영적 전쟁 이해
I. 서론
21세기를 전후로 예술, 문학, 가치의 영역에서 기존의 이원론적인 세계관(dualistic worldview)이 무너지고 통합적 세계관(holistic worldview)이 등장하면서 퓨젼(fusion)이라는 용어가 모든 영역에서 빈번히 사용되고 있다. 기존의 대립적 관계로 머물렀던 개인과 사회, 동양과 서양, 제 1 세계와 제 3 세계, 남과 북, 좌와 우, 보수와 진보, 남과 녀, 순수 예술과 대중 예술 등의 이원적 벽은 서서히 무너지고 있고 새로운 통합적 가치가 창출되고 있다. 종교계에도 기존의 고등종교(high religion)와 민간 종교(folk or popular religion)의 첨예한 대립이 점차 녹아지고 있다. 고등 종교에서 민간 종교의 특징적인 요소들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예를 들면, 인간의 영혼과 구원, 우주의 생성과 소멸 등 교리적인 강조를 하던 고등 종교는 인간의 현실 세계 혹은 배제된 중간 영역(excluded middle)에 대한 민간 종교(popular religion)의 요구를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귀신, 신령, 부적, 마술, 치병 등의 현상을 고등 종교에서 점차 받아들이고 있다. 기적과 이사가 "사도시대에 끝이 났다"라고 믿었던 고등 종교는 이제 그 기적과 이사의 현실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일반적으로 고등 종교성을 주장하는 자들에 의해 민간 종교성은 억압되어 왔고, 종교에서 미신이나 광신으로 매도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기독교에 있어, 민간 기독교(popular Christianity)에 대한 연구는 미진해 왔다. 왜냐하면, 기독교에 있어 고등 종교성과 민간 종교성의 구조는 하나의 통전적 체계로 인식될 수 없었고 여전히 갈등 대립 구조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신학은 서책(texts)중심의 연구로 교회의 상위 계층인 성직자 계층의 학문으로 전유물화 되었고, 기독교 민간 종교의 구술된(oral) 경험의 세계는 무시되거나 이단시되었다.
특히, 진정한 기독교(true or authentic Christianity)의 범주에 민중의 힘의 경험인 엑스타시와 치유(ecstasy and healing) 등은 속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민간 기독교에 대한 연구는 C. McDannell의 <유물 기독교: 미국의 종교와 민중 문화> (Material Christianity: Religion and Popular culture in America)와 R. Orsi의 <115가의 마돈나>(The Madoona of 115th Street)등 가톨릭과 개신교 종교신학자들 사이에 점차 관심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앞으로 기독교는 종교의 양면성, 즉, 고등 종교성인 형식적 담론의 세계(the world of formal discourse)와 민간 종교성인 비형식적 힘의 세계(the world of informal power)를 창조적 긴장 관계로(some sort of creative tension) 점차 통합시키고 상호 보완시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본 논고에서는 이러한 21세기의 종교계의 퓨젼 현상의 대표적인 일 예인 영적 전쟁에 대하여 선교 신학적인 고찰을 논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우선 II. 단락에서 영적 전쟁과 축귀 사역에 대하여, III. 단락에서 영적 전쟁과 신유에 대하여 살펴보겠다. 그리고 IV. 단락에서 영적전쟁에 대한 선교 신학적 고찰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영적 전쟁과 축귀 사역 영적 전쟁의 개념은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은 성도들과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인 악한 영들과의 영적인 싸움을 가리키는 성서적인 개념이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0:3-4절에 "...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했다.
그리고 그는 에베소서 6장 11-12절에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했다. 선교학자 알렌 티펫은 능력 대결(power encounter)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우상들과 영들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기도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의 힘을 의지하는 능력 대결(power encounter)을 통한 현지인의 변화, 즉 집단개종운동을 설명하였다. 능력 대결 혹은 영적 전쟁에 대하여 80년대 말부터 미국의 선교학계에서는 선교 준비를 위한 필수 과목으로 선교대학원의 하나의 교과목으로 받아들였다. 영적 전쟁의 개념은 비록 이 개념이 성서적이라고 하지만, 선교 현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영적 사건과 관련하여 쉽게 비성서적 혹은 성서에 부합하지 아니하는 잘못된 개념으로 사용될 수가 있다. 1996년 로스앤젤레스에서 6시간 동안의 축귀 사역 도중 숨진 한 한국 여인의 경우처럼, 축귀 사역 중에 구타당하거나 살해당하기도 하며 정신적으로 학대받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혼란기나 개인의 실패에서 일시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정신적인 충격 현상을 입신이나 귀신들림 현상으로 잘못 오인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우리는 영적 전쟁의 개념을 현대 의학이 미칠 수 없는 귀신들림의 현상에만 정확하게 사용하도록 해야 한다. 멕시코에는 자신들이 귀신들렸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들은 카톨릭 사제들이나 개신교 목사들, 혹은 신앙 치료사들을 찾아간다. 이들은 악한 영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이방 의식이나 전통들을 차용하는데, 그것들 중에는 히스패닉 이전의 마술, 흑색 주술, 점술, 영매, 진혼 그리고 신앙 치유들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것들이 많다.("Mexican exorcists busy in land of witchcraft, pagan rituals," CNN/AP, Nov. 26, 2000.) 멕시코의 알바레츠(Alvarez) 목사는 멕시코의 유명한 축귀 사역자 중 한사람으로서 멕시코 시티의 노동자 계층이 사는 지역에서 18년 동안 "하나님의 해방 구원 사역"(Divine Saviour Ministry of Liberation)을 통하여 5000명 이상의 사람들로부터 귀신을 쫓아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귀신의 현존은 더욱 증가하여 자신의 사역이 더욱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나 말베르토(Alberto) 신부에 따르면, 매주 그를 찾아오는 10여명의 사람들은 귀신들렸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으며, 청바지 차림에다 소매 걷고 사탄을 쫓아내는 개신교 목사의 축귀 보다는 로마 카톨릭의 전통적인 축귀 의식이 더욱 인기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2000년도에 멕시코 중앙 지역에서는 한 신부가 어린 소녀에게서 귀신을 쫓다가 화상을 입게 만들었고, 무당에 의해서 7명의 사람들이 밀폐된 방에서 향에 질식하여 죽음을 당하기도 하였다.("Exorcists in demand to purge Mexico's demons," The Guardian (England), Feb. 15, 2001.) 2001년 영국에서는 저체온증(hypothermia)으로 죽은 8살 박이 안나 클라임비(Anna Climbie)의 살인 혐의를 지난 70년대 브라질에서 복음적인 세계 교회로 시작했던 하나님의 왕국 세계 교회(the Universal Church of the Kingdom of God)에 두고 있다. 북부 런던의 핀스베리 팍(Finsbury Park)의 레인보우 극장에서 모이는 이 교회의 주 신자들은 아프리카 혹은 아프로-카라비안 배경을 가진 하층 계급의 사람들로서, 월요일에는 재정 혹은 이민 문제 해결을 위한 예배, 화요일은 건강을 위한 예배, 목요일은 가정 문제를 위한 예배, 그리고 토요일에는 번영, 축복의 기도 집회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이들은 부두교(voodoo), 흑색 주술(black magic), 마술(witchcraft)로부터 해를 막기 위해 "구출 예배"(deliverance service)를 시도하고 있다.
이 구출 예배에서 중앙에 한 여인을 세워 놓고 "어떠한 악한 영들이 너를 괴롭히느냐?"고 사회자가 물으면, 그 여인은 크게 "주여 악한 영들을 태우도록 불을 보내소서" 외쳐야 한다. 이 때에 예배자들은 발을 구르며 "태워라, 태워라"를 외치고 사회자는 여인의 목을 누르고 악한 영들에게 빠져 나올 것을 명령한다. 그 여인은 더욱 광란하고 주먹으로 치며 소리를 계속해서 내고, 결국 조용히 바닥에 누여지고, 물 한 컵이 부어지며 성스러운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축복 받는다. 세계 교회(the Universal Church)는 두통, 좌절, 두려움, 외로움, 불운, 질병 등 모두가 귀신들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구출 예배"에 사람들을 초청하고 있다.("Exorcists," The Guardian (England), Jan. 15, 2001.) 뉴질랜드에서 피부 색소 문제를 가지고 있던 한 한국 여인이 축귀 사역 후에 숨졌다. 부패한 37세 된 여인의 사체는 오크랜드 경찰에 의해 2000년 12월 15일에 발견되었다. 오크랜드의 "만유의 주"(Lord of All)라는 종교 그룹의 이 목사는 그녀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고, 기적이라고 말했다. 이 목사는 힌 옷을 입고 그의 목에 은 호루라기를 걸고 공중에 있다고 믿는 귀신들을 호루라기를 불어 쫓아낸다.
그리고 방에서 하는 축귀 의식의 경우, 여인을 눕혀놓고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여인이 질식사 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목사는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하기를 이 여인이 죽은 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이 여인에게 하나님이 천국을 구경시켜주고 다시 부활하게 할 것인데, 이는 뉴질랜드에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여인의 시체가 싸늘해지고 호흡이 없어지자 관계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여인이 다시 살아나기를 위해 기도하고 기다렸다. 이 교회에는 20여명의 한국인들과 몇 명의 마오리족과 미얀마인들이 소속되어 있다.("Religious group awaits resurrection," Sunday Star Times (New Zealand), Jan. 7, 2001.) 위의 부정적인 사례 외에도 긍정적인 예가 있다. 축귀를 행하는 자들은 귀신들림과 정신병의 차이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성경 구절과 기도를 이용하여 귀신을 쫓아내기도 한다. 덴버에서 축귀 사역을 하고 있는 한 복음주의 목사인 밥 라슨(Bob Larson)은 전국에 40여명의 축귀 사역자 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시카고와 로스엔젤레스의 호텔에서 축귀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특히, 로스엔젤레스 힐튼호텔에서 42세의 병원 행정가인 카렌 워드(Karen Ward) 여인에게서 대중이 보는 앞에서 귀신을 쫓아내었다. 이 여인은 자신의 10대 조상들의 저주를 퍼부었고, 라슨 목사는 그녀에게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무덤으로 가라" 명하였는데, 결국 그 여인은 정상을 되찾았다. 그녀는 라슨 목사를 포옹하고 고쳐주신 예수께 감사를 드렸다. 이러한 종류의 축귀 사역 기관은 "귀신 밟기"(Demon Stompers)를 비롯하여 미국에 수백 개에 이르고 인터넷 상담이나 무료 전화 상담 등 현대 기술력을 동원하여 축귀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축귀 사역은 인간의 문명의 역사와 같이하는데, 지난 200여 년간 서구에서 약화되었다가 70년대부터 다시 흥왕하기 시작했다. 카톨릭에서는 바티칸을 중심으로 국제 축귀 사역자 연합(An international exorcism association)을 이루고 1993년에 그 첫회의를 가졌고 200여명이 참석하였다. 개신교에서는 오순절주의 혹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 축귀 사역자들이 존재하고 있다.("Exorcism Flourishing Once Again," Los Angeles Times, Oct. 31, 2000.) 영적 전쟁으로서 축귀 사역을 할 경우에 몇 가지 주의할 점이 따른다. 첫째, 자신이 축귀의 은사를 분명히 받았는지 검증이 필요하다. 둘째, 귀신들림과 정신병과의 분명한 구분을 해야한다. 셋째, 뉴에이지 운동이나 타종교의 영성에서 사용하는 비성서적인 가르침과 실천 방식을 따라서는 안 된다. 넷째, 귀신들림 현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의 인권을 존중하고, 구타나 정신적인 침해를 주어서는 안 된다. III. 영적 전쟁과 신유(divine healing) 사역 영적 전쟁은 병든 인간을 하나님이 치유하는 신유(divine healing)와 연결되어 있다. 영적 전쟁에서 신유는 의학이나 심리학에 의한 치유보다는 기독교 신앙을 통한 치유(faith healing) 현상이다.
신유에 대한 용어는 다양하게 사용되어지는 데, 초자연적인 치유를 강조할 경우 초자연적 치유(supernatural healing)로, 기적적인 측면이 강조되어지면 기적적인 치유(miraculous healing), 치유 행위에 인간의 믿음을 강조하면 신앙 치유(faith healing), 영적인 측면을 강조하여 영적 치유(spiritual healing) 혹은 심령 치유(psychic healing), 신적인 측면을 강조하면 신적 치유(divine healing)가 될 수 있다.(미주 1 참조) 이러한 다양한 용어 중에서 기적적인 치유나 초자연적 치유는 기독교적 신적 치유가 아닐 수도 있고, 신앙 치유나 심령 치유는 그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영매, 강신술, 투시력, 마술적 기법이나 인간 자체의 믿음일 수 있기 때문에 본 소고에서는 신유(divine healing)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1. 신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 신유에 대하여 과학적 편견을 가지고 성급하게 미신이나 혹은 광신으로 치부해버리거나, 신유로 인한 초자연적이고 기적적인 치유를 과학적으로 모두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태도, 그리고 신유는 사도시대에 국한된 기적으로 현대에는 의학을 통해 하나님의 신유는 일어난다고 보는 태도 등은 모두 신유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에 속한다. 보통 정통 기독교 지도자들은, 보수주의나 자유주의를 막론하고 신유에 대하여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의 삶 속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근본적 견해 차이에서 비롯된다.
즉, 보수주의자들 중에서 하나님의 교회는 육체의 질병 치유보다는 영혼 구원 사역에 우선적으로 전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질병의 치유는 영혼보다 육체의 일에 더 많은 가치를 두는 현대 가치의 혼미함이라고 주장한다.(미주 2 참조) 특히 세대주의(dispensationalism) 신학은 신유는 하나님이 잠시동안 교회를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사도시대에만 유효했다고 본다.(Morton Kelsey, Healing and Christianity (Minneapolis: Augsburg, 1995), 17-21.) 교회 시대는 오순절과 재림의 중간시기로 메시야가 떠나 계신 세대이기 때문에 모든 질병에서 온전하게 치유되는 육체의 구원은 그의 재림 시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본다. 이들에게 교회 시대의 병 고침은 구원의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고 개인적인 사건이다. 그러므로 공개적인 대중 집회를 통한 신유 사역은 금지된다. 병 고치는 은사는 교회 시대에 거의 사라졌으나 만일 신유 은사가 확실하게 나타났다면 은밀하게 개인의 치료를 위해 사용되어야 할 것으로 평가된다.(Gertrud Wasserzug, Was Sagt die Bible uber Krankenheilung?, 35-37, 41-44, 83-89.) 그리고 자유주의자들 중에서도 교회의 사회 봉사 활동을 통한 도덕적 실제성을 강조함으로써 신유를 강조하는 것은 사회적 행동 중심(social action- oriented)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Morton Kelsey, Healing and Christianity, 1-5.) 특히, 미국의 세대주의 신학을 따르는 무디 출판사의 간행물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다. 예를 들어, 리차드 메이유(Richard Mayhue)의 <오늘날의 신유>(Divine Healing Today)를 읽어보면, 미국 켈리포니아에 사는Larry and Alice Perker 부부의 아들 웨슬리(당시 11세)의 어이없는 죽음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 부부는 발스토우의 한 교회에서 다니엘 바딜라에 의한 특별 신유 예배 시 그의 아들이 당뇨병에서 치유됨을 선언 받은 후 믿음으로 인슐린 투약을 중지하였고, 사흘 후에 그 아들이 죽은 사건이었다. 저자는 성경을 검토한 결과 병 고치는 사람을 통한 직접적인 치유사업은 사도시대에 종식되었고, 신유의 역사로 보도되는 사건들은 오도된 보도나 고의적 기만, 오진, 사탄의 개입, 신체의 치유력이나 의사 치료 후 치유, 심리적 질환이나 정신 질환, 정서적 스트레스로 인한 잘못된 인식이라고 결론 맺고 있다. 그는 달라스 신학교 선교학 교수인 죠지 피터스(George Peters)의 인도네시아의 부흥에 대한 Mel Tari의 <강력한 바람>(A Mighty Wind)에 나오는 신유사례의 재조사한 결과를 인용하는데, 대부분 신유의 사례가 오도된 것이었고, 죽음에서 살아난 기적도 전통적 종교 문화의 영향으로 무의식 상태나 혼수 상태를 죽음으로 생각하는 현지인들의 세계관의 차이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메이유가 주장하려고 하는 것은 사도 시대에 일어났던 것과 같은 "인간을 통한 기적적인 신유" 즉 표적 신유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지, 믿는 자의 간절한 기도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여 육체를 치유하는 일이 때때로 있음을 부정하고 있지는 않는다.(미주 3 참조) 대부분의 신유 사역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갖는 사람들의 특징은 질병에 대하여 의학을 통한 치유와 휴식과 환경의 변화를 통한 자연 치유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인한 치유라고 주장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들은 의학과 자연치유 없이 오직 신앙과 하나님께 의지하는 신유의 가능성도 배제하고 있지는 않는다. (Henry Frost, Miraculous Healing, 이영희 역, <기적적인 치유> (서울: 생명의말씀사, 1980), 146-147.) 이러한 신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는 신유 대중 집회에서 만발되는 신유만능주의에 대한 거센 반발과, 병 고침을 위해 강요하는 기도(manipulating prayer)에 나타나는 마술성에 대한 비판적인 면모가 돋보인다.
또한 신앙으로 치유 받은 자들보다는 치유 안된 자들의 마음의 고통을 이해하는 점과, 현대 의학도 신적 치유의 도구가 됨을 일깨우는 계몽적인 측면에서도 기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병든 자들에게 질병을 이길 수 있는 실제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적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매우 부족하다는 결점이 있다. 오히려 병든 자에게 현대 의학을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만들거나, 아니면 질병을 하나님의 섭리로 쉽게 결론지어 질병과 싸워 이기려는 자세를 약화시키고, 결국 치유에 대한 신앙적 포기로 연결되기 쉽다는 결점이 있다. 2. 신유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 신유에 대한 긍정적 태도는 자신이 병들었다가 의학이나 자연 치유 없이 신적인 방법에 의하여 치유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이들 가운데 80 연대 이후 성령의 제 3 의 물결을 연구 보급시킨 풀러 신학교의 피터 와그너(Peter Wagner)를 비롯하여 존 윔버(John Wimber)(미주 4 참조), 켄 부르(Ken Blue), 에즈베리 신학교의 전학장인 프랭크 스탠저(Frank B. Stanger), 휘튼 대학과 트리니티 대학의 구약학 교수인 월터 카이저, 전 감리교 세계감독인 존 터너(John Turner)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신유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가졌던 자들이나 신유를 체험하고 그 태도를 긍정적으로 바꾸었다는데 그 특징이 있다. 켄 부르는 100회 이상의 신유 집회와 실제적 신유 경험을 토대로 하나의 치유 신학을 정립한다. 그는 신유가 사도시대에 종결되었다고 믿지 않으며, 하나님은 인간의 질병에 관심을 가지시고 치유하는 분이심을 믿는다.
그는 질병을 통한 성화 사상이나 신적 결정론, 믿음 공식 사고, 세속주의 세계관 등은 신유 사역에 있어 실패의 경우 심리학적으로 상처를 주게 되고, 신학적으로 잘못 인도한다고 보며, "하나님께 뿌리를 둔 믿음"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실제적으로 치유 사역 모델을 제시하는데, (1) 하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믿음, (2) 고통받는 자들에 대한 순전한 연민, 그리고 (3) 치유 기도자의 개인적 투지와 위험을 무릎 쓰는 자세가 그 중요한 부분이다.(미주 5 참조) 스탠저는 스탠리 존스와 심프슨(A. B. Simpson)의 영향으로 구원과 전인 치유 사이의 불가분의 관계를 주장하고 교회 사역에서 치유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의 온전함을 원하고 이를 위해 역사하고 계시다는 확신에 기반을 둔 하나님 나라의 신학과 치유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신학, 그리고 이를 실행하려는 영성의 신학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Frank Stanger, God's Healing Community, 배상길 역, <위대한 의사 예수> (서울: 나단, 1992), 11-27, 54-55.) 월터 카이저는 성서학자로서 그리스도의 치유와 기적의 역사가 사도 시대 뿐 만 아니라 "세상 끝 날까지" 유효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교회가 치유하는 공동체로서 주님의 선교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교육, 봉사, 치유 사역을 이루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치유 과정에 있어 상담과 의심 없는 기도 그리고 주님과의 만남을 통한 병고침과 믿음이 중요하다고 보았다.(Walter Kaiser, <치유자 예수님>, 김진우 역 (서울: 횃불, 1995), 12-37, 65-74.) 존 터너는 현대 극단적 카리스마 운동으로 인해 치유 사역에 대하여 회의적인 교회들에게 치유 사역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고 그 실천을 장려하고 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에 관심을 갖는다면 육체적 치유 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치유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치유가 복음 선포의 한 부분으로 악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여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하는 것으로 제자들과 현대 교회에 이르기까지 수행해야 할 계속적인 그리스도의 명령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그는 만일 교회가 치유 사역을 무시한다면 사이비 종교 등에 의해 치유의 진정한 의미가 왜곡되고 오해되어 기독교인들이 그 피해를 당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있다.(John Turner, <치유하는 교회>, 김선도 역 (서울: 광림, 1986), 10-20.) 이상에서 살펴본 신유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교회의 신유 사역의 책임성을 일깨우는 데 매우 큰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리고 신유 사역에 있어 치유의 근본 목적이 하나님 나라의 실현 등 신적 중심이기 때문에 병든 자의 신앙 강화에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신유 사역에 있어 초자연적인 기적을 바라는 요행 심리나 인간의 정신 암시(suggestion), 최면, 적극적 사고, 마술, 주문, 영매 등의 비 성서적인 요소가 침투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 약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또한 질병은 인간의 죄로 인해 사탄이 주는 것으로 쉽게 단정해버리고, 신유를 위해서는 질병의 근원이 되는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사탄을 대적하여야 한다는 단순한 이원론에 빠질 위험이 있다. 이러한 경우, 질병에서 고침 받지 못할 때에, 병든 자는 육체적 병과 더불어 더 심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게 되고, 결국 복음에 대한 의심으로 이어져 신앙을 버리게 될 위험성이 있다. 그러므로 신유에 대한 엄밀한 연구 없이 몇 몇 병 고친 사례를 일반화시켜서 신유 만능이라는 극단적 결론으로 유추되어서는 안 된다.
IV. 영적 전쟁에 대한 선교 신학적 고찰
1. 영적 전쟁 : 하나의 민간 종교성(folk religiosity or popular religiosity)의 영역 종교의 내부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고등 종교성와 민간 종교성으로 나눌 수 있다. 고등 종교성은 우주의 생성과 종말, 신과 구원, 인간의 삶의 의미 등 주로 형이상학적인 교리와 도덕, 권위 등을 다룬다. 이에 비해 민간 종교성은 인간의 삶의 현장에서 비롯되는 현실적인 문제를 다룬다. 즉, 아이의 출생, 성년, 결혼, 회갑, 칠순, 질병, 죽음, 빈곤, 건축, 개업, 이사, 취업, 자녀 교육, 입시 등의 삶의 전이 기간(transitional periods)에 민간 종교성은 실질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본 소고가 다루는 축귀나 신유 혹은 치병 현상은 매우 빈번하게 나타나는 민간 종교성의 하나의 표현 양태이다. 전통적인 사제나 무당은 질병의 근원을 보이지 않는 세계의 영들에 의한 것으로 인식한다. 이들은 치병을 위해 악한 영들은 쫓아내고, 선한 영들은 달래서(appease) 인간과 영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육체적인 요인과 영적인 요인과의 상호 교통의 가능성, 그리고 이것을 통한 잃었던 관계의 회복(restoration), 개인이나 공동체간에 상실된 관계의 조화(harmonization)등의 사상은 민간 종교성의 긍정적인 측면이다.(Bruce Bradshaw, Bridging the Gap: Evangelism, Development and Shalom (Monrovia, CA: MARC, 1993), 126.) 이러한 민간 종교성은 기독교내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특히, 사람들이 만나게 되는 전이의 기간(transitional periods)에 민중들은 통과 의례(a rite of passage)를 통해 그 과정을 무사히 잘 통과하려고 한다. 즉, 개업이나 이사, 취직, 질병, 결혼, 출생 등의 인생의 주요한 전이 기간에 민중 기독교인들은 새벽기도나 금식기도, 혹은 기독교 목사의 축복기도, 안수기도 등 기독교적 통과 의례를 통해 기독교의 최고신 하나님과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미주 6 참조) 그러므로 귀신들림이나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민간 종교성의 중요한 종교 실천 형태인 영적 전쟁을 평가할 때, 고등 종교의 입장에서 천박한 광신이라고 매도할 것이 아니라, 하나의 민간 종교성의 잣대로 그것의 순기능과 공헌을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박일영, "무교의 영성 : 굿정신," 강남대 신학대 편, <종교와 영성> (서울: 한들, 1998), 101-102.) 2. 영적 전쟁에 대한 선교 신학적 제언 1) 평신도 축귀 혹은 신유 사역자의 발굴 및 교육과 인증 평신도는 교회 제도권에서 성례전과 성경해석을 할 수 없도록 소외되어 있다. 평신도는 이러한 면에서 종교적 소외 계층이다. 축귀와 신유 사역을 위해 기독교회의 관심이 증가하지만, 여전히 축귀와 신유 사역자는 교회 내에 안수 받은 목사, 장로에 한정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전쟁 사역의 활성화를 위하여 은사 받은 평신도의 발굴이 필요하다. 그리고 평신도 사역자를 위한 체계적인 교육, 즉 축귀와 신유를 위한 개인 상담법, 성서연구, 축귀와 신유 방법론, 인격 지도 등의 교육과 실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의 목적은 사역자가 병든 자에 대하여 "사랑과 정의"의 소명감(love and justice as motivations)을 확인하고 강화하는데 있다. 육체, 정신, 영적으로 강도 만난 병든 이웃을 위해 공평(justice)과 사랑(love)으로 돌보는 일이 사역자에게 필요하다.(E. Anthony Allen and others, Health, healing and Transformation (Monrovia, CA: MARC, 1991), 32-33.) 그러나 영적 전쟁 사역에서 축귀 혹은 신유 사역자에 대한 교육의 부재는 이단 종교의 발흥과 치유 과정에서 영적 학대 (spiritual harrassment)를 비롯한 인격 파괴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 연결될 수가 있기 때문에 사역자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은 매우 큰 것이다. 축귀 혹은 신유 사역자가 일정한 교육을 수료한 후에는 교회가 이들에게 인증을 해주는 일이 역시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평신도 사역자의 영적 전쟁 사역은 만인 사제설의 실천적 적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교적 소외 계층인 평신도에게 종교 참여를 유도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종전의 평신도 축귀 혹은 신유 은사자들이 교회 구조 안에서 공식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으므로, 기도원 혹은기도제단 등을 세워 교회이탈 현상 등 그 폐해가 많았었다. 그러나 이러한 은둔적 활동을 교회 구조 내에 받아들여 공식화하고 양성화할 때에, 영적 전쟁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더불어 이러한 사역을 통한 교회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평신도 사역자의 발굴과 교육 및 인증 절차는 현 교회 구조의 변화 없이, 엄밀한 의미에서 만인 사제설과 같은 평신도 목회의 실천 없이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평신도 사역자의 사역은 실제적으로 개 교회의 목회자의 영적 권위주의와 기존 교인들의 일반적인 영성 등과의 마찰이 우려된다.(미주 7 참조) 그러므로 현 교회 제도원 안에서 (1) 평신도 교육 강화와 (2) 은사에 대한 객관적 검증과 교육 그리고 교회의 인증, (3) 그리고 교회 내 동역의 길을 열어 주어야 할 것이다. 2) 영적 전쟁 사역에 있어서 토착적 방식의 기독교적 변혁 모델 사용 영적 전쟁 사역은 사람에게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사람 중심적인(people oriented) 치유 사역이 요구된다. 사역자는 병든 사람의 질병 그 자체만을 고치기 위해 서구 의학의 방법을 무비판적으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환자의 질병 상태는 물론 환자의 병력과 가족관계를 비롯한 인간관계 그리고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쌍방 커뮤니케이션, 상담이 먼저 필요하다. 환자와 신유 기도자 사이의 상담에서 환자의 과거의 병력, 죄, 인간 관계, 신앙 정도 등이 파악되어야 하고, 신유의 방법과 의약의 사용 여부도 함께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만일 수피 이슬람 공동체에서 살아 온 사람에게는 그/그녀의 세계관에 적합한 치유 모델을 찾아 적용 시켜야 한다. 시원적 세계관(primal worldview)을 가진 사람에게 서구 과학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서구인을 치유하듯이 대하면 안 된다. 이들에게 맞는 토착적인 혹은 전통적인 치유방법을 무조건 배척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들에게 종교 문화적으로 맞는 매개(culturally relevant media)를 기독교적으로 변혁(transformation)시켜 신유의 능력(God's healing power)을 진작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기독교적 신화의 변혁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면, 대부분 신유 사역에 있어 실재(reality)와 신에 대한 이야기인 신화(myth)가 사용되는데, 토착적 신화는 기독교적으로 변혁되어야 한다.(미주 8 참조) 즉, 토착적 영들에 대한 이야기가 성서의 신의 이야기와 만나 변혁되면, 더 이상 토착적 영들(indigenous spirits)의 활동은 영향력을 미치지 못하고, 오히려 성서의 신적 이야기가 믿어지게 되고 기독교적 신유는 일어나게 된다. 동아프리카 이슬람 공동체에서 사역하는 한 가톨릭 선교회는 현대 의학과 더불어 그들에게 문화적으로 맞는 기도(prayer), 고백(confession), 성만찬(communion) 등의 매개를 사용하여 치유 사역에 성과를 보고 있다. 이들은 이슬람 민중 공동체가 가지고 있는 초자연적인 세계와 자연적 세계의 교통 가능성에 대한 세계관을 파악하고 있었고, 이에 대하여 기독교적 변혁을 통해 기도, 고백, 성만찬을 신유 사역에 적용하였던 것이다. 기도와 고백, 성만찬은 병든 자에게 육체적인 면과 영적인 면을 통합시킬 수 있었다. 이러한 신유 방법들은 이슬람 문화 안에 나타나는 신적인 힘의 현현(manifestation of divine power in Islamic cultures)이 되었다. 이것을 통해 이들은 이슬람 민중 공동체가 선교사에게 요구하는 그들의 종교성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 Bruce Bradshaw, Bridging the Gap: Evangelism, Development and Shalom, 125-126.) 이상의 현지 문화와 사람에 대한 배려는 신유의 전과정에서 병든 자가 소외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다. 병든 자는 신유의 방법과 과정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협조할 수 있는 권리가 있기 때문에, 신유 사역자는 신유 방법의 제안과 더불어 신유 방법의 선택과 거부권이 병든 자에게 있음을 알려야 하고, 적절한신유를 위해 신유 기도자를 옮길 수 있는 권리가 병든 자에게 있음을 주지 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유 사역에 있어서 인격적인 돌봄, 신유에 대한 믿음, 신유 방법과 과정에 대한 제안 등은 병든 자의 존엄성과 가치를 회복시켜, 불필요한 두려움에서 아픈 자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된다.(죽음과 출생에서 현대 인간은 병원의 결정권 앞에서 자신의 천부의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사람 중심적 신유사역은 환자의 인격과 권리를 신장시킬 뿐만 아니라, 병든 자를 영적인 학대(spiritual harrassment)의 위험성에서도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V. 결론
지금까지 영적 전쟁에 대한 선교 신학적 고찰을 살펴보았다. 본 논문에서는 축귀 사역과 신앙으로 치유하는 신유(divine healing) 사역을 주로 다루었다. 축귀와 신유는 그 종교 양태가 민간 종교(folk religion)의 영역에 속하여, 성급하게 미신이나 혹은 광신으로 치부되어버린 것이 사실이다. 우리는 축귀와 신유에 대하여 보는 입장을 새롭게 해야 한다. 즉, 축귀와 신유에 대한 엄밀한 연구 없이 몇 몇 병 고친 사례를 일반화시켜서 기도 만능이라는 결론으로 유추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축귀와 신유에 대한 과학적 편견을 가지고 비이성적 광신으로 매도해서도 안될 것이다. 오히려 이것들을 평가할 때, 하나의 민간 종교성의 잣대로 그것의 순기능과 공헌을 올바르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평신도 사역자의 발굴 및 교육과 인증, 영적 전쟁 사역에 있어서 토착적 방식의 기독교적 변혁 모델의 사용 등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