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 타투
너무 멀리 가면 집에 갈 수 없다는데
요즘 들어서는 자꾸, 방금 기억이 가장 멀리 가요
약과 약속을 잃고 이름과 번호와 비밀을 잃고 하던 일과 가던 길과는
비바람에 가지와 잎까지 잃고 옆집 도랑에 박힌 뒤뜰의 모과 낙과는
내게서 멀리 간 미지의 실종이다
살던 집에서 오래 오래 살고 싶은데 자꾸, 얼굴을 잃고 내일을 잃고
내일을 잃곤 해됴 집 가는 길을 손목에 새겨야 할까요?
집에는 모과나무가 있어요
나는 늘 가까운 것들에 갇히고 가까운 것들에 막혀 고립무원이 었는데요
모과나무 꼭대기에 남겨진 사고무친 모과 한 알은 모과나무에게서
멀리 간 모과의 구멍이었는데요
구멍이 구원이라며 구멍을 구걸할 때마다 나도 집에서 멀리 갔었는데요
내가 알던 사람은 모과 낙과처럼 멀리 갈수록 가까워졌고
내가 알던 세상도 모과 향기처럼 멀리 갈수록 어두워졌다
그러니 가슴에 새긴 연분홍 모과꽃은 내게서 멀리 갔던 구멍이었겠죠?
그런 구멍은 죽을 때면 온몸에 청사진처럼 새어 난다는데
아 참, 신도 나를 깜빡할 수 있으니 등에는 이름과 집도 새겨야겠어요
가을 들어 열두 겹 얼굴로 뒹구는 바닥의 모과잎은
더 멀리 가라고 열두 발 바람을 매단 기억의 망명일 텐데.....
나는 나의 난민,
모과나무 아래서 나는 너무 많은 나를 잃고
손목에 새긴 마지막 모과는 파랗게 새어 나는 청사진처럼 돌아 갈 내 집의
문패가 될 것이다
모과 타투한 패를 펼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