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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엽 목사님 말씀책의 내용과 100% 동일하게 옮겨 적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독하신다면
말씀의 주인이신 성영님께서 반드시 영의 귀와 눈을 열어 듣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성소 5-1 떡 상과 진설병(생명의 떡을 먹여 주심)
5.너는 고운 가루를 취하여 떡 열 둘을 굽되 매 덩이를 에바 십분 이로 하여 6.여호와 앞 순결한
상 위에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고 7.너는 또 정결한 유향을 그 매 줄 위에 두어 기념물로
여호와께 화제를 삼을 것이며 8.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할지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니라 9.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레24:5-9)
23.너는 조각목으로 상을 만들되 장이 이 규빗, 광이 일 규빗, 고가 일 규빗 반이 되게 하고
24. 정금으로 싸고 주위에 금테를 두르고.... 중략 .... 30.상 위에 진설병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 (출25:23-30)
성소는 예수님과 화목을 이루고, 예수님의 말씀으로 예수님과 함께 사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
님과 화목을 이루고 뜻이 하나 되는 첫째 조건이 등대라고 하는 것 여러분이 다 아셨습니다. 자기
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으므로, 이제 죽은 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영을 따라
산다, 성영님과 함께 말씀을 따라 사는 영적 삶이다. 그것이 거듭나고 예수님과 화목을 이루는 것
의 큰 중심이 되는 곳으로써, 등대에 대한 의미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안에 들어갔고 하나님이 사
람 안에 오신 엄청난 이적이 있는 뜻입니다. 등대는 삼위의 하나님이 성영님으로 우리 안에 오시고
영생을 얻는 뜻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서 죄가 죽었고 육의 사람도 죽었으니, 성영님이 사람 안에
임하여 오실 수가 있게 되었고, 하늘의 신영한 말씀으로 사는 거룩한 복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
합니다.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좁고 협착한 길을 기쁘게 가게 하는, 성영
님이 믿는 그 안에 오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뜻을 말합니다.
그다음 성소에서 만나는 것은 떡 상과 진설병입니다. 금 등대는 성영님으로 다시 났으면, 진설병
과 분향단의 뜻을 믿음(성영님으로 행하는 믿음 안에서의 법)으로 행하여 예수님과 화목을 이루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영님으로 다시 나고 진설병과 분향단의 뜻을
깨달아서 성영님이 먹여주시는 떡을 먹고 향을 사르고 예수님과 함께 뜻도 목적도 같은 신영한 제
사장의 삶으로, 예수님으로 온전한 열매를 맺는(성영님의 열매) 성전의 뜻입니다. 등대의 불을 켜
고 그 불이 어둡지 않도록 밤새 불똥을 따 내, 맑고 환하게 했던 것처럼 삼위 하나님에 대한 믿음
으로 밝아지고, 자기 안에 오셔서 계시는 삼위 하나님으로 속사람의 밝음이 되고, 믿음과 영적 삶
이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으로, 성영님과 함께 연단을 받으며 힘써 행하며 올라가는 것입니다. 이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요 아버지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성전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마어
마한 복인지, 얼마나 엄청난 복인지, 여러분 감이 있습니까? 참으로 성영님으로 예수님의 꿈을 꾸
고 예수님의 환상을 보고 예수님을 예언하는 것이냐는 말입니다.
이처럼 자기 안에 오신 성영님으로 예수님과 화목하고 교제하며 더불어 먹는 관계가 되기 위한 떡
상에 왔습니다. 앞서 말했던 대로 떡 상이나 분향단이 조각목으로 본체를 만들었지만, 그 조각목이
보이지 않도록 금으로 다 쌌다고 했습니다. 금으로 싼 것은 성전 뜰의 번제단과 물두멍이 말씀하는
영적 죄와 육체의 죄들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고 등대에서 말씀하는 거듭남의 경험으로 성품의
죄들을 다스림 받고 거룩한 성도가 된 온전한 구원으로 들어온 믿음, 하나님의 심판과는 상관없는
성영님의 믿음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거듭나고 예수님으로 옷 입었음을 의미
합니다. 속(성품)도 겉(삶)도 예수님의 형상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예수님이 보입니다.
속도 겉도 예수님의 흔적입니다. 속도 싸고 겉도 싸니 하나님이 보실 때, 나는 보이지 않고 예수
님이 보이는 것이니, 그래서 죄인의 심판과는 절대로 무관합니다.
오늘 본문 6에서 떡 상을 뭐라고 했습니까? "여호와 앞 순결한 상"이라고 했습니다. 깨끗하고 거
룩한 상이라는 말입니다. 성전 뜰에서 깨끗하게 되어 등대에서 거듭나 거룩케 된 믿음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받을 수 있는 순결한 상이 되었습니다. 순결한 상에게 영원한 언약이신 예수님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신 의미입니다. 그러면 순결한 상 위에다 무엇을 놓으라 했습니까? 떡 열둘을 구워서
두 줄로 한 줄에 여섯씩 진설하라, 8에 항상 매 안식일에 이 떡을 여호와 앞에 진설하라 이는 이스
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요 영원한 언약이라 그러니까 여호와 앞에 진설한 떡은 여호와 하나님을 위
한 것이 아니고, 누구를 위한 것이라는 겁니까? 예수님이 오시기까지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것이
지만, 그것은 영원한 언약으로 그 의미와 뜻을 적용하는 것은 예수님의 강림 때까지입니다. 성소
에서는 이 떡을 매 안식일마다 진설했습니다. 안식일 날 구운 떡을 상에 진설하고 다음 안식일까지
두었다가 또 그 안식일에 교체했습니다(삼상21:6). 열두 덩이의 떡은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 지파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자신을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않겠다고 밤새도록 하나님과
씨름하여 기어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자기를 축복하지 않으면 놓아주지 않겠다고
아주 목숨 걸고 붙잡고 매달리니,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영적인 복을 얻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그 복을 얻어내도록 하신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이제부터 네 이름을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
를 것이라 하셨어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다고 하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적인 복을 주지 않으면 안 되게 된 사람, 반드시 복을 줘야 하게 된, 하나님께 복은
쟁취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이 아브라함의 후손, 곧 야곱의 열두 아들로 이루어진
민족의 이름이 되었고, 열두 덩이의 떡은 그 열두지파의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떡이고, 그다음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을 위한 떡이고, 순결한 신약 성도를 위한 떡입니다.
그리고 열둘의 숫자는, 성경에서 3은 삼위이신 하나님의 수요, 7은 하나님의 완전수라 하듯이 이
열둘은 세상 중에서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자의 수로 거룩함의 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은
열두 지파 안에 들어있고, 신약 시대의 모든 믿는 자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인 사도들 안에 있습니
다. 하나님의 선택을 입은 자라 하니까 여러분이 또 하나님께서 하나님 마음에 드는 자만 선택했
다는 말로 들을까 싶은데, 오해 없도록 이해를 돕겠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입었다는 것은 두 가
지의 측면을 말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일을 돕는 자로 특별히 선택하여 부르시는 일
입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행하게 하려고, 특별히 부름을 받은 그것을 '하나님의 택함을 입었다'
'하나님께 선택 받았다"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구원의 문제인데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자들을 지명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다
구원받도록 주신 복음을 듣고, 특히 성경을 통해 인간은 죄인이라고 하신 말씀을 받아들여,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자기의 구주로 믿는 것을 선택이라고 합니다. 또는 하나님의 택하
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누구든지 죄인을 구원하시기로 한 하나님의 뜻을 믿는 자는 선
택을 입은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시는 뜻을 받아들여 죄인으로 하나님께 나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해 믿는 것을 하나님께 선택받았다고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예정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미 창세 전에 죄인을 구원하시기로 예정을 하셨다는 말이에요. 누구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어요? 죄인! 그래서 죄인만 예수님 만납니다. 그러니까 예정론에 대해 다른 말 하면 들을
필요 있어요, 없어요? 들을 필요 없는 거예요. 만약에 예정론에 대해 다른 이론, 다른 교리가 나온
다면, 거기엔 다 모순이 따릅니다. 이 부분은 이미 설명 다 했었던 것이니 생략합니다.
계시록 21장에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보이니 그 예루살렘 성에
성곽이 있는데 거기에 열두 문이 있더라""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는데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그 성곽의 기초석 위에는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구약
에서는 이방인 중에 누구든지 하나님께 나오는 자, 하나님의 백성 안에 들기 원하는 자는 들어오라
고 동서남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을 세상을 향해 열어놓으셨다는 거예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사람으로 겨루어 하나님의 영적인 복을 기어코 받아낸 이스라엘이란 거룩한 이름을 가진, 열두 지
파로 이루어진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 그 성에 들어갈 거룩한 백성으로 선택을 입었으므로,
이제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오려면, 그 열두 지파 안으로 들어와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이 이방인을 위해 열어놓으신 문이었다는 말입니다.
그다음 신약에는 교회가 세워진 열두 기초석이 있는데, 그 기초석은 바로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열두 사도들의 이름이 그 기초석 위에 있다고 했어요. 이제 그 열두 사도들을 이어서, 예수님의
말씀을 받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듣고 예수님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 그 기초석에 사도들과 함께
이름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늘나라 하나님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으로서, 예수님의
열두 사도와 함께 그 안에 들어간 자라고 하는 겁니다. 따라서 이 열둘이라고 하는 것은, 이스라
엘 열두 지파와 열두 사도와 그 지파와 사도들 안에 들어온 무리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택함을
받은 거룩함의 수라는 것 이제 알 수 있겠어요? 그러므로 사람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단했으면,
가르치시는 말씀을 잘 듣고, 기어코 믿음에 서도록 마음을 다해야 하고, 자기 삶의 전 뜻이 돼야
합니다. 자기의 전 뜻이 되었다고 하면, 해야 할 것과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분명히 가릴 줄 알고
행할 것이요, 중심이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지 않을 것이요, 타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상 위에 떡은 아무나, 누구나 받아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등대의 거듭난 순결한
성도만이 성영님이 먹여주시는 생명의 떡입니다. 성소에 들어온 제사장이 먹는 떡입니다. 또한 아
무 데서나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9에 뭐라고 했습니까? 이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
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떡은 아론과 그 자손에게 돌리라, 즉 성소에서 제사장들만 먹으
라는 말씀입니다.
그것을 또 어디서 먹으라고 했습니까?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해서 그 성소 밖이 아니라, 성소
안에서만 먹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하나님께 화제로 드리는 것인데, 떡만큼은 아론과 그 자손
제사장들에게 돌리는 것으로 지극히 거룩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떡은 '세상 것이 아닌, 하나님의
성전 안에만 있는, 하나님이 친히 주시는 생명의 양식이라'는 뜻입니다. '거룩'은 '구별'의 뜻인데
그것은 '하나님' 또는 '하나님으로부터' 또는 '하늘의 것'이라는 것을 말할 때 쓰입니다. 성경에서
'거룩'을 말할 때 이 같은 뜻과 연관을 두고 읽으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 들어온 자만이
떡을 먹을 수 있고, 먹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떡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 알지 않겠어요?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생명을 주는 떡이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요6장은 생명의 떡에 대한 말
씀으로 '생명의 떡'장이라고들 합니다. 우리가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것처럼 사람이 하늘에서 내
리신 생명의 떡을 먹지 않으면 죽는 겁니다.
구약의 대제사장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섬기는(제사 드리는) 직분입니다. 성소 등잔에 불을 켜고
밤새도록 등불이 꺼지지 않도록 살피고, 안식일마다 떡을 구워서 진설하고, 아침저녁으로 향단에
향을 사르는 일을 했습니다. 그러면 제사장들의 성소 제사는 누구와 화목하기 위함일까요? 바로
오실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과 화목하면 또 누구와 화목이 됩니까? (하나님 아버지) 그래서 화목을
이룬 예수님께서 자기의 흘리신 피를 가지고, 지성소 하나님께 나아가니,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화목 제물이 되실 것에 대한 예표로, 대제사장이 해 년마다 한 차
례씩 속죄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을 했습니다.
또한, 열두 덩이의 떡을 안식일에 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이 먹은 것은 바로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받아먹은 것으로, 백성들을 대표한 것이었고, 그 떡을 먹은 제사장들은 백성을 축복하여, 떡에 참
여한 복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화목 하는 제사
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도 예수님을 화목 제물로 보내신다는 예표로 대제사장에게 속죄 제물을 잡
아 피 흘려 지성소에 가지고 나오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면 대제사장은 누구를 예표합니까? 히브리
서가 말하기를 예수님은 하늘 지성소에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영원히 들어가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전을 통해서 예수님을 정확히 알게 하셨습니다. 번제단과 물두멍으로, 등대와 등불로,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을 비춰주시고, 상과 상 위의 떡으로 생명 주시는 예수님을 가르치시고, 향
로와 향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지극히 거룩한 향이 되신, 중보자가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이
심을 가르쳐주시고, 그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과 화해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난다는 이 엄
청난 복을 알게 하셨으니,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 넓이와 크기와 높이를 알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지 않으면 안 되는 분, 내가 참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
세상 것 다 버려야 한다면 버리고라도 정말 따라야 하는 분, 내가 지음을 받은 너무나 큰 가치를
알게 하셨으니, 목숨을 내드린다 해도 아깝지 않은 너무나 귀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내 구주
예수님이라는 것 알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영원한 성소요, 영원한 대제사장이요, 그분 안에 내가
들어가니, 그 성영님으로 내 안에 생명(빛)을 가지고 오셔서 자녀의 인을 치시고 예수님의 피와
살을 내게 먹이시고, 왕 같은 제사장이 되고, 나와 교제하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히 소유하도
록 도우시는 엄청난 복이 있는 것을 알게 되더라는 말입니다.
참으로 예수님 안에 들어온 것이면 제사장의 엄청난 복을 받은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예배
하는 거룩한 예배자입니다. 예수 믿는다면 '뭐 좀 잘 되려나!' 얻어 보려고 믿는 것 아닙니다. 답
답한 마음이나 좀 위로받자고 믿는 것 아닙니다. 자기가 제사장이면 하나님의 복이 자기 안에 다
와있는 것이니, 그 복을 알고 보는 것입니다. 복을 보지 못하면 제사장의 예배가 아니기 때문입니
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과 화목 하는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기던 제사장들에게, 백성을 축복
하게 하셨습니다. 그 축복은 아무나 있지 않습니다. 민수가 6장에 너희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렇게 축복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
노라 할지니라 하라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
을 주리라 하셨습니다. 축복의 명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누구도 파기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부여
하신 축복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이 아니면, 하나님의 복은 없는 것
이니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복이 없는데 축복이 되겠습니까?
또한, 제사장들은 자기가 삶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삶을 확실히 보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있으니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신약의 믿음은 왕 같은 제사장이라
고 말씀했습니다. 왕 같다 하니까 최고 높은 임금이라는 말이 아니라, 그 왕과 같은 권세를 가졌
다는 말입니다. 왕의 권세는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하고, 또한 모든 것을 가졌지 않습니까? 그
같이 예수님이 자기 안에 계시니 하늘과 땅의 큰 복을 가졌습니다. 악한 마귀의 영들이 복종하는
권세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명을 얻게 하는 권세입니다. 또한, 다스리는 권세입니다. 그
러므로 제사장의 이 영적 복을 알아야 합니다. 참으로 성소의 믿음, 하나님을 예배하는 제사장의
믿음으로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 믿음만이 하늘에 들어갔고 아버지 나라에서 영원히 삽니다.
벧전2:5에 너희도 산돌같이 신영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영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했습니다. 산돌은 교회의 기초석이신 예수
님을 말합니다. 신영한 집은 성전으로 지어진 나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때,
절대 순종하셨던 것처럼 예수님을 믿는 나도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장의 삶이어야 함을 말합니다. 롬12:1에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
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했습니다. '너희 몸'이라고 한 것은 영혼육의 전인
(全人)이 다 예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를 받아 성영님(말씀)
으로 충만하여 사는 것이 산 제사요, 예배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예수님의 교회 공식 예배는 주일 한 번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참으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라고, 대단히 강조합니다. 여러분! 예배에 절대 늦지 마세요. 한 주에 한
번 모여서 드리는 예배를, 마음과 뜻을 다해야 하지, 예배의 태도들 그렇게 취하지 말라는 말입니
다.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예배에 와서 왜 좁니까? 교회 졸자고 오는
것입니까? 교회 와서 졸 것 같으면 아예 오지 말고, 그냥 집에서 자지 뭣 하러 옵니까? 그래도 예
배 왔다는 자기만족 하러 옵니까? 이 첫날의 예배는 목숨을 다하라는 강조는, 아무리 한다 해도
하나님께 위배되지 않으니 정말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살리시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중 예배들은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주중에 예배드리지 않아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
다. 저는 여러분이 예배당 중심, 또는 목사 중심이 돼서 열심히 쫓아다니고 따라다니는 것 하지
말고, 삶이 예배가 되라는 것을 분명히 말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사
람들의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인지, 자기 삶으로 예배가 되지 못하고, 예배당 나와서만 예배인 줄로
아는 무지함을 보는 겁니다. 그러니까 열심히 예배당 나와서 예배한다는 그것으로 자기만족을 삼고
생활 가운데서는 세상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을 그 정도의 것으로 착각
한다면, 인격적이지도 않을뿐더러 백 번 천 번 예배한다 해도 죽은 것입니다.
자기 믿음은 자기가 경영하는 것이지 누가 해주는 것이 아니에요. 예배당 나왔다고 되는 것 아니란
말입니다. 믿음은 영적인 것이니 성영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말씀을 받아들여 사는 능력을 갖춰가
야 합니다. 자기 믿음은 자기 것이니 자기가 운영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가 성전이면 집에
있어도 성전이요, 길을 가도 성전이요, 화장실에 있어도 성전이요, 잠을 자도 성전이요, 어디에 있
든지 성전입니다. 자기가 성전이면 자기 안에 오신 예수님과 화목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이니, 삶
자체가 제사장 예배의 삶인 것입니다. 그래서 형식에 치우치고 타성에 젖은 그런 예배당 생활이 절
대로 중심이 아니에요. 그렇기에 저는 예수님의 날 모여서 한 번 드리는 예배일지라도, 그가 믿음
이 살았으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니 그 삶이 산 제사의 삶일 것이요, 그렇지 않고 일주일 내내
예배당 나와 예배한다 해도, 죽은 예배라면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교
회는 산 예배자가 모여서 예배하는 곳이지, 이런 죽은 예배를 비위 맞추는 사람 중심의 교회가 아
닙니다. 사람 끌어모으는 데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지, 이제 다 알
게 되었다는 생각에서 말씀드렸으니, 태도를 분명히 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성소에서 예수님과 화목 하는 제사와 기도와 백성을 축복하는 말만 하게 하셨습
니다. 그렇기에 우리 믿음이 예수님 안에 들어온 거룩한 예배자로 제사장이면,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 언어의 자원이어야 합니다. 언어가 예수님의 언어, 말씀이 되지 않으면 제사장의 복은 없습
니다. 생명의 떡을 받아먹은 제사장은 성영님께서 입의 말을 다스리게 되어 있습니다. 성영님께
잡힌 혀가 되어 신영한 하늘의 말이 나와야, 삶으로 복을 들이게 되는 겁니다. 언어의 권세입니다.
대단히 큰 권세입니다. 그 입의 말로 인하여 삶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롬8:29에 우리를 구원하
신 것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려고"
하셨으니 분명히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를 받아야 하고, 예수님의 언어인 말씀이 우리 입에
언어가 돼야 합니다.
벧후1:3,4에 하나님이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우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
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가 있다는 것이요,
예수님과 화목이 되었다는 것이요, 예수님과 사귐을 잘 갖게 된 성전이니, 그러면 여러분이 이 관
계가 되었는가 하는 겁니다. 예수님과 사귐이 깊어질수록, 아버지 하나님과도 깊은 사귐의 관계가
되고, 예수님과 화목이 깊어질수록, 아버지 하나님과도 화목의 관계로 깊어지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멘이기를 바랍니다.
오늘 성소의 순결한 떡 상과 그 위에 진설한 떡에 대한 뜻을 상고하여 보았습니다. 성소에 들어간
것은 곧 예수님 안에 들어간 것으로, 예수님께서 맞아주시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 자신을 먹여
주십니다. 앞에 언급했지만, 그 떡은 아무에게나 먹여주시는 것이 아니요, 아무 데서나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 들어간 거룩한 성도에게만, 생명의 피와 살을 먹여주십니다.
거룩한 성전이 된 자에게 예수님이 자신을 친히 먹여주시는 겁니다. 영원한 하늘의 생명이 되고,
예수님과 연합을 이뤘으니 영생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몸 찢기고 피 흘리신 그 구원의 은혜를
더욱 깊이 깨닫게 되고, 삼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굳게 세워집니다.
오늘 그 떡 상 앞에 와서, 떡은 바로 예수님이다. 예수님이 자기 살과 피를 다 내주시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자들에게 먹이신다. 이것이 성소의 뜻으로 구원받았음을 말한다 하는 것, 여러분
이제 다 아셨습니다. 또한, 성소에 들어온 것은 하나님께 직접 예배드리는 제사장으로, 그 복과
삶도 다 들으셨습니다. 참으로 바라기는 이 모든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이 되고, 제사장의 복이 여
러분의 복이기를 간절히 바라며 말씀을 맺습니다. 떡 상과 떡에 대한 본론의 말씀은, 다음으로 이
어서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말씀으로 한없는 복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과 우리 믿음을 도와주시는
성영님께 모든 영광을 올립니다. 아멘!!
성소 5-1 떡 상과 진설병(생명의 떡을 먹여 주심).p167-p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