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성엽 목사님 말씀책의 내용과 100% 동일하게 옮겨 적었습니다. 마음을 다해 정독하신다면
말씀의 주인이신 성영님께서 반드시 영의 귀와 눈을 열어 듣고 보게 하실 것입니다.
제 9 장 중언부언하지 말라. 중언부언으로 판치는 기도들(2)
5.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
았느니라 6.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생략.....(마5:5-15)
지난주 말씀에 이어갑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외식의 기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합니다. 사
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외식이다 하는 것은 알아듣지만 그 유형들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으
면 또 헤매기 때문에 외식을 많이 할 수 있는 요소들을 몇 가지 말하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열심히 기도하러 다닌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새벽기도나 철야기도 등을 열심히
다닙니다. '권사님은 집사님은 우리 교회 기도대장이야 교회가 이만큼 안정되고 부흥되는 것은 다
권사님 집사님 기도 덕인 것 같아! 그래서 우리 교회 기둥이니 안 계시면 안돼!'라고 하는, 이런
외식의 칭찬들, 속 다르고 겉 다른 인간적 칭찬의 말들을 듣게 되니까 어떻습니까? 그러니 기도 안
가면 체면이 서지 않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체면이 자기 우상이 되어서 가슴 내밀고 열심히 다니는
것입니다. "너희들 나 봐라, 나 좀 칭찬해라, 나만큼 교회 위해서, 목사님 위해서, 나라 위해서 기
도 하는 사람 어디 있느냐?"하고 스스로 자기에게 공로를 돌리며, 자기가 보는 기도, 사람이 보는
기도, 열심히 하러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이 특수 외식에 속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합심해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는 모임은 있어야 하겠습니다만, 그런데 이런 기도
모임의 문제가 무엇인가, 사람들은 믿음이 무엇인지 아는 영적인 이해력도 없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믿음에 대해서 알지 못한 가운데, 다시 말해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
어지지 않았음에도 집사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직분 자들이 되어서 성영님의 믿음에 의해서가 아닌,
목사 때문에 할 수 없이 기도회 나와야 하고, 직분 때문에 할 수 없이 나오고, 그러다 보니 이제
습관에 젖어 나오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기도 장소에 나와야만 기도하는 것 같고 하나님이 받으
시는 것 같고, 분위기에 휩쓸려야만 기도하는 것 같은 것에 굳어버렸습니다.
기도 장소에 나와야만 기도가 된다고 하는 종교인들로 훈련이 되어 체질화돼 버렸습니다. 오늘날
교회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의 기도생활에 대한 의식 구조가 대부분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형식에
치우쳐 있고 교회 제도들에 묶여서 움직이는 겉껍데기 신앙들을 가지고 외식의 자리를 열심히 지
키는 것입니다. 예배의 대표 기도도 하나님의 뜻을 같이 하는,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기도가 돼야
하는데 '사람들이 내 기도를 어떻게 들을까?'에다가 관심을 두고, 좋은 말 감동적인 말을 열심히
주워섬기고, 미사여구 수식어를 다 붙여서 해놓고, 잘한 것으로 들었을까? 못한 것으로 들었을까?
에 신경을 쓰고, 잘한 것 같으면 자기 기분이 좋고 잘못한 것 같으면 내심 기분이 언짢은, 이런
자기와 사람에게 보이는 것으로 외식 열심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7에서 뭐라 했습니까?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했습니다. 중언부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 했다가 저 말 했다가 하는 것을 말할까요? 물론 그 말도 맞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
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들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것은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기
도하는 그 대상이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는 가운데 귀신에게 합니다. 누군지 알지 못하는 귀신에게
염불 외우듯이 입에 붙어서 자기에게 복 달라고, 집안 좀 잘되게 해달라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
해 정성을 들여서 절하고 빌고, 빌고 절하고 하는 것 다 대상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그냥 '신이 있을 것이다'생각하고, 즉 땅에든지 하늘에든지 산에든지 신이 있을 것이다 생
각하고 신을 만들어서 절하고 비는 것입니다. 이 같은 인간의 자기 마음, 신심에서 나는 것은 어떤
신이든지 '내가 지성을 들이고 정성을 들이면 감동할 것이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민간 무
속신앙 속에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속담도 있지 않습니까? 생소한 말 아니잖아요.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의 복음을 듣고 나와 하나님을 알지 못한 가운데 그같이
귀신에게 빌듯이 하는 기도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렇게 기도할 때에 지성 들이듯 정성 들이듯
하여 먹는 것, 입는 것, 마실 것을 위해 빌듯이 하는 것부터 하지 말고 믿음을 도와주시기를 기도
하면서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자신을 아는 것부터 배워 알고, 무엇을 기도해야 하는
지 알고 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그 하나님은 예수님이 십자가의 피 흘리심을
통해 죄를 사하시고 예수님의 생명으로 자기를 낳으신 아버지시라는 그 관계를 확실히 알고, 자녀
로서 아버지께 기도하는 것이라는 것부터 깨닫고, 그 관계의 믿음으로 이제 아버지께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에 합당한 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라는 것입니다. 관계를 분명히 알고
기도하라 그 말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서 기도하는 것은 이방인으로 있을 때 귀신에게 기도하던 것과 같은 것입니
다. 그러므로 알지 못한 귀신에게 하듯이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너를 지으
신 그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죄인을 구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던, 이방인으로 살던
때에 가졌던 그 같은 인간 자기 마음에서 나는 신심으로 기도하지 말라,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하는
그런 지성과 정성 들이면 감동하는 신이 아니라 천지를 지으시고 너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니
알고 아버지 뜻대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이시며 또 너는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관계를 이룬 믿음이 되었으면, 이제 그 하나
님 아버지께 기도할 때, 네 마음에서 나오는 이방인이 구하는,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것들을 구하지 말고 필요를 알고 채우시는 아버지께 그 나라 그 의를 구하라고 기도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경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이방인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신 이 중언
부언이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인지를 정확하게 깨달아서 알려주고 있지를 않습니다. 결국 여기 이
이방인들과 같은 자기 생각에서 나는 답변들밖에 해주지 못하고, 구렁이 담 넘어가듯 하는 빗나간
대답들만 들려주고 있음으로써 사람들이 그렇게 자기 마음에서 나는 것으로 지성 들이는 기도하는
것에 열심히 훈련을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니, 훈련이 잘되었습니다. 그래서 의식구조가 그렇게
돼 버렸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감천하시도록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는 것입니다. 밤새우며 기도
하는 이유가 뭡니까? 대부분 하나님을 감동시켜 보겠다는 것 아닙니까?
그렇게 밤새도록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 정성을 보고 감동하셔서 응답해주실 것이라는 것 아닙니
까? 자기 요구를 들어주시도록 하겠다는 말입니다. 자기 기도에 응답하게 하려면 새벽기도 열심히
해서 하나님이 감동하시도록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작정해서 열심히 다닙니다. 40일
작정, 100일 작정, 1년 작정, 일천번제라고 작정해서 자기 마음에서 나는 이런 신심으로 작정하여
하루라도 빠지면 그 작정 깨어지니까 깨지지 않게 하려고 온맘을 다해 목숨 다해 지키려고 정성과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날의 예배는 자기 형편대로 지킵니다. 볼일 다 보러 다니고, 애경사 있으면 교
회는 '나 작정기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그것으로 하나님께 면목은 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날
은 '나 볼일이 좀 있으니 교회는 쉽니다'하고 다니는 겁니다. 자기 방식대로 열심히 기도하러 다니
는 것으로 면목 세우고 애경사 쫓아다니는 겁니다. 관광 다니는 거지요. 볼일 보러 다니는 거예요.
그렇게 예수님의 날은 올 형편이 되면 오는 것이고, 못 올 사정이 되면 자기 형편에 따라 지키면서
만일에 작정이 깨지기라도 하면 그것은 속상해서 탄식하는 겁니다. '내가 이렇게 작정해서 어떤 어
려움이 있어도 온힘 다해 기도하니까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응답하실 것이다'를 자기가 자기에게 확
신 시키면서, 자기 신념을 키우며 기도한다고 했는데, 그것이 틀어졌으니 탄식이 절로 나 탄식합니
다. 이 같은 것들이 다 이방인의 중언부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모르시는 이방인이다 그 말입
니다. 자기 혼자 귀신에게 빌듯이 하고 다니는 거예요.
또 한편 '빌면 들으실 것이다'하는 신심의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새벽기도 다니면서 무엇을 기도하
는가 하면, '우리 자식 예수님 믿게 해주시고 이렇게 저렇게 잘되게 해주세요. 우리 가족들 건강하
고 잘되게 해주세요. 내 자식만 잘되게 해주신다면 나는 못 돼도 괜찮습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이
많이 몰려들어서 부흥되게 해주세요. 그래서 우리 목사님 힘이 나서 목회 잘하게 해주세요. 우리나
라 경제가 살아서 잘사는 나라가 되게 해주세요'하고 날마다 염불 외우듯이 중언부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입시 철만 되면 교회들에서 보이는 것이 뭡니까? 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
을 것이요,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라의 말씀을 적은 플래카드를 크게 걸어 놓고 수험생들 위해서 시
험 잘 보게 기도해주라고 하지 않습니까? 새벽기도 작정하고 하잖아요. 자기 자식 시험 도와달라고
그런 때만 나와서 기도한다고 하는 집시(Gypsy)같은 이들이 있잖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과 관계 없
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육의 것들의 요구는 듣지 않으십니다. 다 자기 마음에서 나는 것을, 기
도한다고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는 다 이방인일 뿐입니다.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자기 신에게 기도
하러 다니는 것일 뿐입니다. 성황당이라는 데서 빌고, 정화수라는 것 떠놓고 빌고, 부처 앞에 가서
빌던 것과 똑같은 기도를 교회라는 곳에 와서 자기의 뜻 좀 들어주라고 비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것은 자기 자식이나 자기 육의 것들을 위해서, 세상에
서 잘되게 해달라고 하는 것들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 아닙니다. 교회라 이름 붙여놓고 부흥
되게 해달라고, 잘사는 나라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라 하신 적 없습니다. 그런 것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하셨으니 결국 하나님과는 이방인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언부언하지 말라, 다
시 말해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들로 기도한다고 하지 말라 말입니다. 8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그 이
방인들을 본받지 말라 하셨습니다. 너희가 참으로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시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들, 오로지 육의 것만을 위해 사는 자들이 구하는 것을 구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구하기 전
에 어떻다고요?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버지께서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무엇인가, 무엇을 구하는 것이 믿음인가를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마6:25이하에 재차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
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리고 너희는 먼저 뭐라고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셨어요.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아주 백 퍼센트 약속 된 말씀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의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방인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고 '이렇게 기도
하라'라고 기도를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니 생각해보십시오.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얼마나 집중하고 따르고 있
는 것인지 말입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쳐주신 기도도 사실 믿은 지 오래되었어도
중언부언하고 있는 것은 다 매한가지입니다. 그냥 달달 외워서 염불 외우듯이 하는 것입니다. 그래
서 하나님께는 다 이방인입니다. 여러분이 예수님과 관계되지 않으면 죄 사함도 치료도 구원도 영
생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실 수도 없습니다. 단지 영혼이 여전히 저주에 잡혀 있다가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히 고통 가운데 있게 될 뿐입니다. 믿음의 초점은 오직 예수님 뿐이고 그분과
함께 있는 것, 곧 하나가 돼야 하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믿는다는 사람들 속에 예수님은 그림자 정도로 희미할 뿐이고, 말씀 전하는 것을 들어 봐도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말들로 바꿔 놓고, 다 말씀 밖으로 자기 방식대로 자기 마음에서 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이방인보다 더 악한 거짓 선지자, 거짓 그리스도인들이 되
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그리스도인들 속에 예수님의 말씀을 가진 능력들이 없다는 것을 너무
나 보면서 말세 때가 되니 그것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믿음 생활이 자기 마
음에서 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였다는 것 그대로 드러나더라는 말입니다.
감정에 호소하는 말에 동하여 끌려다니고, 양심적인 말, 착한 말에 감동하여 끌려다니고, 인품적
으로 훌륭하다 하여 끌려다니고,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과 맞는 말을 하니 끌려다니고, 자기 마음
을 위로하는 말에 감동하여 끌려다니고, 지식수준이 높은 사람의 말이라서 끌려다니고, 화려한 이
력에 매혹되어 끌려다니고, 나타나 보이는 현상들에 현혹되어 쫓아가면서 그것이 믿음인 줄로 도취
하고 착각에 빠져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름만 바꿔 앉은 것이지
다 자기 마음에서 나는 것들을 위하고, 땅에 있는지 하늘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신들에게 빌고 섬
기는 것입니다. 자신들은 다 잘 믿는 것인 줄로 알지만 말씀 앞에서는 다 아닙니다. 다 자기에게
맞추었습니다. 자기에게 맞춘 거짓 믿음입니다.
제가 말입니다. 조ㅇㅇ 목사에게 하나님이 전하라 하신 경고의 말을 보낸 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듣
고도 그 말뜻에 대한 이해나 분별이 없음을 확실히 알았습니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알아듣고 동
감하는 정도지, 설사 그 말이 뭘 말하는지 이해는 되었어도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는 아는 능력들이
없으니, 다시 말해 자기 신심으로 예수님을 믿는다 하고 있으니 말씀에 대한 분별이 안 되지요.
'뭐, 그 목사님이 예수님 말하고 있고, 십자가 말하고 있고, 구원, 영생, 다 말하고 있는데 그리고
신이 아닌 이상 하나님 말씀 좀 틀리게 전할 수도 있는 것이지 예수님 부인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잘못됐느냐? 예수님 오셔서 하신 치료 사역도 나타내 사람들 병 낮게 하고, 사람들 복을 받아 잘살
게 하려고 전심으로 말씀 전하고 얼마나 좋은 일도 많이 하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한 분인데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다고 어떤 여자가 말도 안 되는 것 가지고 비난하고 있다'는 것으로 받는 것입니다.
말씀의 문자적인 것이야 문자대로 말하는 것은 맞는 것이지만 문자 속에 넣으신 뜻을 왜곡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교묘히 부인하는 것은 알 턱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니, 자기 마음에서 나는 신심의 것을 기도하고 신심으로 가진 신앙이니, 그런
말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어차피 자기 마음에서 나는 것들을 위해 믿는다 하는
것이기에 분별할 수도 관심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왜곡
하여 사람들에게 거짓을 뿌려 넣어주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실 수 없는 일이시니, 이후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핑계치 못할 증거의 말씀으로 경고를 보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때 이방인같이 기도하지 말라 하신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무엇을 가지고 이방인같이 기도하지 말라는 것인지를 도무지 깨달아 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예수님을 알 수 있고 따를 수가 있겠습니까?
제가 과거에 어떤 가톨릭 신부라는 사람의 강론을 들어보게 되었어요. 여러분이 믿음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데 좀 참고하라는 뜻에서 말합니다. 가난한 어떤 신자 집에 초청받아 가서 식사를 하려는
데, 사람은 없는데 한 사람분의 식사를 더 놓더라는 것이지요. 누가 오느냐 물으니 "우리 집에 주
인으로 계신 예수님의 식사입니다. 저는 끼니때마다 예수님 식사까지 항상 준비합니다"했다는 거지
요. 그 신부가 자신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그 신자보다 못한 것 같아서 부끄러웠고 이 신자가
어려운 살림에도 예수님을 사랑하는 믿음이 얼마나 좋은지 크게 감동을 하여 마음이 찡하더라고,
그 신자를 잊지 못한다고 우리가 다 예수님을 이렇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이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신 사랑입니까? 여러분도 예수님을 이런 식으로 사랑하십
니까? 이 같은 짓이 바로 인간 신심이요, 자기 마음에서 나는 사랑으로 정성 들이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이 밥이 필요한 분이라 끼니마다 오셔서 밥 먹는 분입니까? 이런 것이 예수님을 위해서 사
랑인 것처럼 하지만,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보는 것이요 자기만족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걸어 놓고 그 앞에 앉아서 하는 행위들도 다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모
양에 예수님 계시지 않습니다. 그것 걸어 놓고 그 앞에 앉는 것 우상 앞에 앉는 것입니다. 귀신이
앉아서 경배 받고 자기 정신을 지배하라고 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이라고 하는 초상화 걸어 놓고,
그것을 예수님으로 보는 것도 다 미신입니다. 그 초상화 쳐다보면서 '예수님'을 부른다면 그것은
귀신이 '내가 예수다'하고 대답하고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신이 들려주는 음성이 하나님의 음
성인 줄 알고 속으며 끌려다니는 것입니다.'우리 집의 주인은 예수님입니다'를 말하는 것처럼 우리
집은 예수님을 믿는 집이라는 것을 표시하는 것처럼, 초상화 걸어 놓는 행위들은 지금 자기가 예수
님과 영적 관계로 맺은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보이는 일들입니다. 예수님을 말씀으로 만나
고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법으로 예수님을 만나려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초상화가 진짜 예수님이라면 만일에 불이 나서 그 초상화를 태웠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태웠잖습니
까? 관리 잘못으로 찢었거나 구겼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찢었고 구겼으니 큰일 났습니다. 인간이 손
으로 그린 초상화를 예수님이라고 걸어 놓거나 바라보는 것, 예수님을 우상시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눈으로 볼 수 있고 만져지는 사람으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너희가 나를 보고 만진 바 되
었으니 내 모습 그대로 그려서 후대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을 알도록 그림으로
남기라'하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모습을 조각하여 형상을 만들어 후대가 보도록 하라 하
지 않으셨어요.
예수님의 오심과 행하심과 말씀을 성경에 남기시면서 그것을 성영님으로 깨달아 믿음이 되고, 생명
을 얻고 예수님의 성품으로 변화 받으라 하신 것입니다. 인간이야 사진 찍었어도 어차피 육체는 흙
으로 돌아가고 영은 부활하기 때문에 찢어도 상관없어요. 그러나 예수님 초상화 가지고 예수님인
것처럼 하는 것은 다 예수님을 우상화한 것이다 말입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눈으로 볼 수 있고 만
질 수 있는 육체로 오셨지만 예수님의 형상이나 그림이나 어떤 것으로도 세상에 남겨 놓지 않으신
것은 물론이고 하물며 그런 초상화 같은 것들에다 예수님 자신을 맡기고 믿음인 냥 그것을 쳐다보
며 빌고 정성 들이라 했겠는가 말입니다.
그다음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시고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러니까 예수님이 기도를 가르쳐주셨고 또 6에서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
지께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믿음, 성
전의 믿음이 되지 않으니 어떻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될 수 있으며 어떻게 골방에 들어가 문 닫고 은
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기도하는 관계가 될 수가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영적 믿음과 삶에 대
해서 말씀하신 산상의 말씀이 믿는 자 속에 없는데 어떻게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는 관
계가 되겠는가 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알고 있는 상식으로 한번 대답해 보세요.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까,
보시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고 말하잖아요?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잖습니까? 그런데 왜 6에서 기도를 들으신다 하지 않고 보신다고 하셨
습니까?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말씀하셨잖아요?
여러분, 또 답해 보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하여주신다고 말합니까?
어떻게 해주시길 바라고 기도하느냐고요? 응답해주시기를 원하다. 응답해주신다고 하잖습니까? 그
런데 예수님께서는 응답해주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네 아버지께서 갚으신다.'하셨습니다. 아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뭐 빚지신 것이 있습니까? 갚으신다 하시니 말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빚지신 것 있어요? 뭐 빚지셨나요? 우리에게 뭘 갚으셔야 하는 건데요!
그런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도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러면 아버지께서 보시고 갚으
신다"고 말씀하신 기도와는 분명히 차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사람들이 하나같이 예수님의
말씀하신 것은 그냥 뒷전이고, 또는 말씀이 보이지도 않고 그냥 자기의 원대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기도의 차이에 대해서 깨달아 보는 자가 누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들으십시오. 기도는 아버지께서 들으시는 것이 아니라 보시는 것이고, 응답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갚으신다 하신 것을 깨닫고 그 관계로서 기도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그 외에는 다 거짓이고 이방인
이고 중언부언일 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이 관계가 되지 않았으니 어떻게 골방에 들어가 문 닫
는 것이 될 것이며 은밀한 중에 계시는 아버지께 하는 기도가 되겠습니까?
그러니까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관계가 되지 못하니 다 누구에게 기도합니까? '주님!'에게 하는 겁
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라고 하셨는데 그러면 그 주님이 누구예요? 알지 못하는 가운데 하는
기도는 결국 귀신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다루겠습니다.
아버지께 기도하는 관계가 되지 못하니까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자기 마음에 길게 기도해야 그
자기 주님이 들으실 것 같은 것입니다. 기도의 말을 많이 해야 자기 주님이 좋아하고 응답해주실
것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밥 굶고 목숨 내놓고 기도하면 자기 하나님이 그 정성을 보고
응답하실 것이라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그 정성을 들이고 길게 기도하려고 밥 굶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밤새워 철야기도라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철야기도를 몇 년 했네, 누구는
하루에 일고여덟 시간씩 기도한다네, 그래서 그렇게 신비한 체험들을 하고 많은 능력을 받았다네,
지옥을 다 봤네, 천국을 다 보여주셨네, 40일 금식 기도했더니 불의 말씀을 받았다네, 그러면 사람
들은 감탄하고 부러워하면서 '얼마나 좋을까? 나도 그러고 싶은데'하고 그 마음들이 거기에 끌려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요사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헛된 것들에 끌려가고 있는지 아세요? 여러분은 이 말씀 안에
서만 듣고 믿음을 양육 받으니 주변 상황을 몰라서 그렇지, 정말 그리스도인들이 오늘은 이곳 내일
은 저곳...., 헛된 것들에 마음이 끌려다니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어떤 영적인 것은 체험할는지는
모르지만 그런 것을 체험하다 보면 오히려 교만이 들어오게 되고 악의 영들에게 사로잡혀 이용물이
돼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본받지 말라 당부하신 것입니다.
아니, 내가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이면 밤새도록 기도 할 일이 뭐가 있습니까? 아버지께 기도하는
관계가 되었지 않으니까 그렇게 길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배후에 있는 사단과 그 악한 영들의 역사
에 대한 지식들이 없으니 밤새도록 온 힘을 다해 정성을 다해 기도해야만 악의 영들을 이길 수 있
는 것인 줄로 알고 능력 받는 것인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신심의 기도 백날 한다
한들 오히려 악한 영들에게 딱 붙잡혀서 복음의 능력을 갖지 못하게 하는 곳으로 끌려다닐 것밖에
는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루의 가장 첫 시간에 먼저 나와 기도하면 하나님이 그 정성 보시고 그 기도 들
어 주시지 않겠느냐 하며 자기 마음에서 나는 그 신심에 끌려 새벽에 열심히 빌러 회당으로 쫓아다
닙니다. 아버지께 기도하는 관계가 되어 있지 않으니 예배당 건물에 나와 기도해야 들으시는 장소
인 줄 착각하고 정성으로 기도하러 다니는 것입니다.(물론 성전이라고 속고 있으니...,)그리고 자
기 형편의 것들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내 자식들 좀 잘되게 해주시고 구원해주세요. 내 몸
에 병을 좀 치료해주세요. 치료해주시면 치료의 하나님 전하고 전도 많이 하겠습니다. 내게 복 주
시면 전하고 전도 많이 하겠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 살아 계신 것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께서는 사람의 증거를 받으신다 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받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과 그
와는 관계없다는 말씀입니다.
'집 사게 해주세요. 집 팔리게 해주세요. 이번에 일이 성사되게 해주세요' 이런 땅의 것들을 위해
서 열심히 기도하러 새벽 첫 시간에 예배당에 쫓아다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기에 이루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것들 가지고 예수님을 믿는다 했다
면, 땅의 것들로 인하여 예수님의 이름을 들어 공력을 쌓았다면, 이것은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세
워진 공력밖에 안 되기 때문에 그 공력이 나타나는 날에는, 고전 3장에서 뭐라 했습니까? 불타는
것이면 해를 받는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였으므로, 그의 나라와 그 의가 그에게 있어, 그 능력을 갖춰나가면 공력이
나타나는 날에는 그것이 금이요 은으로 불타지 않으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이 되겠지만 그
러나 땅의 것들로 예수님의 이름의 공력을 쌓았다면 그것은 해를 받는다고 하셨으니, 불에 타버릴
나무나 풀이나 짚이니, 불에 다 타버릴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기에 8에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
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하셨으니, 그러면 이방인이
귀신에게 비는 것이 뭐냔 말입니다. 이방인들의 구하는 것이 잘 먹고, 잘 입고, 병들지 않고 잘살
게 해달라는 것밖에 없잖습니까?
과거에 저희 친정어머니께서 예수님을 믿기 전엔 목욕하고 정화수라고 하는 물 떠서 장독대에 올려
놓고 절하고 그냥 비는 겁니다. '내 자식 내 집안 잘되게 무병장수하게 해주세요'하고 비는 것입니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 전부 이런 혈과 육의 것들인데,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이것을
본받지 말라 하셨으니 땅의 것 목숨의 것을 구하기 위해 하나님께 나와 중언부언하지 말라 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믿는다는 사람들이 하나님 뜻에서 빗나간, 자기 생각에 맞는 하나님을 만들
어 놓고 다 불에 타버릴 것, 자기만족을 위해서 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철야기도도 하지 말고 새벽기도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냐? 새벽기도든, 철야기도이든 참
으로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사랑해서 믿고 따르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위해서 구할 일이면 해야
하겠지요.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을 따라서 말씀을 근거로 한..., 예수님께서 분명히 가르쳐 주었지
않습니까? 가르치시는 예수님 말씀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열심히 빌면 듣는다는 자기 신심 가지고
나와서 기도하는 짓들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기 원하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 믿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얼마나 예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고 외면당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의 가르침이 사람들
속에 능력이 되지 못하고 이방인들과 똑같다는 말입니다. 새벽기도 철야기도 열심히 해야 하는 것
이 또 모든 모임에서 하는 기도들이 참으로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는 말씀입
니다. 모든 행함에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예수님의 뜻대로 정확히 깨달아서, 가르쳐주고 따르도록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말에 끌려다니면서 예수님이
본받지 말라 말씀하신 이런 중언부언하러 다니지 말고, 자기 체면 때문에 하지도 말고, 자기 위신
때문에 나와서 그런 짓 하지도 말고, 정말 새벽기도 철야기도에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 위해서
라면 하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목사다, 하면 무조건 믿습니다. 그렇기에 사단이 그것을 이용하여 얼마나 많은 거짓 선지
자(목사)들을 보내고 있는지 압니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가 나오는 과정 말씀드렸지요?
알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예수님을 따라 살기를 원하여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며 사는 중에 혹 필
요한 것이 있습니까? 그러면 아버지께 그 필요를 구하면 됩니다. 직장을 구할 수도 있고, 자식의
영혼을 위해서 그 삶을 하나님 뜻대로 살게 하여 주시라고 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땅에서 잘 먹고 잘살고 훌륭한 사람 되고 명예 얻고 하는 것들을 구한다면 그것은 하나님
께는 이방인입니다. 진정 믿기 원하면 영광 받으실 길로 이끌어 주시고 가난하기 때문에 영광 받으
실 일이면 가난하게 하시고, 부요가 영광 받으실 일이면 부유하게 하시고 아버지 보시기에 합당한
길로 이끌어 주시기를 원하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이 참으로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믿음이
면 아버지가 필요를 아시니 채우시게 되어 있다는 것을 믿기 바랍니다. 그것은 아버지와 자녀의
깨어질 수 없는 분명한 약속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주시고 믿음의 길로 인도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립니다. 성영님께
감사드립니다. 아멘!!
제 9 장 중언부언하지 말라. 중언부언으로 판치는 기도들(2).p183-p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