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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건너는 70대의 시간
2024.12. 향기 영란
머리가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바쁜 시간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면부터 항상 타인과 끊임없이 함께 있고, 아이들과는 수업을 하거나 대화를 하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평가한다. 동료들과는 소소한 대화를 나누면서 낄낄거리기도 하고 또 보석같은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어제는 다가올 졸업식 행사 아이디어를 그렇게 얻었다. 그리고 연말에는 미뤄두었던 인간관계나 마무리 차원에서의 저녁 자리 등, 바늘 하나 놓을 틈 없는 해야 일상을 지나고 있다. 그런 시간 중에서 고요한 아침 시간이나, 일과 중 아이들이 수업을 가서 교실이 비는 전담 시간은 황홀경에 가까운 혼자만의 시간을 맛본다. 혹은 조용히 까페에 앉아 오롯이 시간을 갖는 일도 그와 비슷하다. 나는 그렇게 50대의 12월을 보내고 있다.
엄마도 그렇고 시어머님도 혼자서 지내고 계신다. 다정하고 부지런한 엄마는 촌의 밭일, 집안 일은 기본값으로 놓고 유자 공장이나 굴 포장공장 등 철마다 일자리를 바꾸어가며 바쁘게 지내신다. 나는 하루걸러 전화를 하면서 안부를 묻고, 매주 주말마다 엄마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옆자리를 지키지만, 매일매일 혼자인 사람의 그 넓은 빈자리를 메우기란 턱없을 일이다. 엄마가 그토록 기를 쓰고 몸을 움직이고, 어디로든 다니시는 이유는 돈을 버는 것 이외에도 그 휑한 빈자리를 잊기 위함인 이유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렇게 바쁘게 지내다 잠시 일을 쉬는 시간에는 우울증 증세를 보이며 나를 괴롭힐 때가 왕왕 있다.
시어머님은 다정한 스타일은 아니다. 염치 바르고, 피해 주는 것 싫어하시고, 꼭 필요한 일이 있을 때만 전화를 주신다.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며느리라는 의무감에서 할 때도 있지만, 당신께서도 전화를 한 번씩 주시면 좋으련만, 그 오랜 성격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는 없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올해로 5년 째, 제주도에서 2년 여동안 시동생 집에서 살림을 봐 주셨다. 시어머니와의 동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살림을 도와주러 가셨지만, 어쨌거나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양쪽 다 눈칫밥이었던 모양이다. 고단한 2년 여간의 동거를 마치고 미련 없이 다시 하동으로 오셨건만, 촌에서의 일과는 멀어지고 말았다. 밭일, 취나물 비닐하우스 일, 서로 품앗이 하는 일 등 한시도 쉴 틈 없는 육체적인 노동으로 단련된 삶이었다. 2년 여 동안의 공백동안 다시 농사일을 잡을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어머니의 여동생이 농사 일을 물려받았고, 또 당신의 육체 또한 농사 일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어머니의 또다른 시간이 닥쳐온 것이다. 원래 신경이 예민하신 분이어서 늘 수면유도제를 먹고 주무신다. 갑상선 수술을 하셨고, 눈과 발바닥 등 나이가 들면서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어났고, 복용하는 각종 약도 비례하면서 늘어났다. 한움큼씩 먹는 약의 부작용으로 몸의 상태가 부쩍 나빠지셨고, 큰아들(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파서 못 살겠다고 하신다. 그럼 큰아들은 또 편안하게 살기만 하면 그게 자식들 도와주는 일인데, 그걸 못하냐고, 화를 낸다. 어머님의 연세는 74세에 접어든다. 그 연세는 물리적으로도 그렇고, 사고방식으로 보아도 많은 숫자는 아니다. 여기저기서 출현하는 각종 이상 징후들은 내가 보기엔 그건 고독과 외로움, 무위의 다른 표현들이라 생각한다. 어머님께서는 몸이 좋지 않아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남편이 아주 늦게 들어올 경우가 한 번씩 있다. 그 때 나는 잠을 자기가 어려워진다. 밤이면 과다하게 번지는 감정 과잉, 집 안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지는 고요함, 규칙적으로 흐르는, 신경을 긁는 시계 초침 소리, 이제나 울릴까 현관문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에 촉각이 곤두선다. 그것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재로 인한 문제가 아니다. 거의 동료애로 살아가고 있는 50대의 평균적인 부부일 뿐이다. 혼자 남겨진 데 대한 두려움일까, 곧 들어올 사람임에 틀림 없건만, 그렇게 예민해지는 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잠시 동안의 혼자가 되는 연습문제를 푸는 내 모습을 통해 나는 언젠가 다가올 본 시험의 순간을 상상한다. 그에 반해 나는 남편에게 한 번씩 며칠동안 혼자 지내는 유쾌하지 못한 숙제를 낸다. 내가 당할 때와는 다르게, 그걸 혼자 못 지내? 하면서 별다른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그렇게 내가 겪을 때와 상대가 겪을 때의 무게를 똑같이 생각하지 못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대체 단련이 되고 익숙해 질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나는 평소 읽지 못한 책이나, 언제나 잔뜩 밀려있는 일들도 산적해 있는데 말이다.
두 분은 그렇게 사이좋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찌 되었던 남편과 함께 평생을 보냈다. 그 누군가가 자리했던 흔적은 크다. 돌아가신지 6~7년이 다 되었건만, 외로움은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라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늘 할 일로 시간을 분배하는 엄마는 그래도 좀 나은 편이다. 내가 옆에서 늘 일정을 공유하고 소소한 일을 함께 챙기기 때문이다. 어머님께서는 다정한 표현이 적으시고, 자식들에게 자주 연락하는 일에 소극적이신데, 그러면 자식들이 자주 소통하려는 노력을 해야하건만, 아들 삼형제는 그걸 잘 하지 않는다.
50여년 동안 추위와 더위를 맞아도 늘 춥고 더워 힘든 것처럼 외로움도 그래 보인다. 시내에 사는 젊은 우리는 에어컨과 보일러를 껴안고 살지만, 어머니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문만 열면 시린 추위에 맞닥드려야 하고, 집안도 외풍에 노출되어 있다. 이번 주에는 김장을 할 거라고 한다. 나는 수육을 사고, 김장 양념에 들어갈 것들을 챙겨 가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챙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