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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眼界(무안계): 눈의 경계가 없다는 것은 우리가 보고 인식하는 모든 것이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눈으로 보는 대상이 실재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본질적으로는 그것이 조건과 인연에 따라 잠시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비유하자면, 우리가 화면에 비친 영상을 볼 때 실제 존재한다고 착각하지만, 그것은 단지 빛과 이미지의 결과물일 뿐인 것과 같다.
이를 담원은 빛의 혼색과 결색(缺色)에 의한 내면의 본질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주역의 괘색(卦色)과 추효환상(推爻換象)을 바탕으로 광학을 적용하여 논증한바 있다. 이는 우리가 눈으로 인식하는 것은 찰나적인 것일 뿐 고정된 불가역적인 것이 아니라 인연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통해 내면의 마음(심리)을 읽을 수가 있게 된다.
틱낫한(Thich Nhat Hanh)은 이를 연기(緣起)법의 또 다른 표현으로 상호존재(Interbeing)라고 표현했다. 그는 모든 존재가 서로 연결되어 있고 상호 의존적 존재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고립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의존하며 존재하는 관계적 존재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예를 들어 "한 조각의 종이를 통해 우주 전체를 볼 수 있다"는 비유로, 종이 한 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나무, 햇빛, 물, 나무를 베어낸 사람, 종이를 만드는 공장 등 무수히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즉, 종이 한 장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 모든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어 의존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통해 모든 존재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서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상호 의존적인 관계 속에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틱낫한은 상호존재를 "나 없이 너가 존재하지 않고, 너 없이는 나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로 요약하면서, 우리 각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존재하는 관계임을 강조했다. 이 개념을 통해 그는 자연, 사람, 사회, 우주가 모두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깨달음이 우리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강조한다.
乃至無意識界(내지무의식계): 나아가 의식의 경계도 없다는 것은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의식적 경험이 고정된 실체가 없고,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임을 뜻한다. 인간의 의식 또한 여러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생성되며, 그 자체로는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이다. 이는 물 위의 파도가 바람과 물결에 의해 나타났다가 사라지듯, 의식 역시 여러 조건에 의해 일시적으로 형성되는 현상일 뿐이다.
인간의 의식 또한 여러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생성되며, 그 자체로는 무의식적 경험이기에 고정된 실체가 없는 것으로서, 칼융은 이를 선례와 선험적으로 쌓인 선인류적 집합무의식이라고 표현하여 공시성과 원형론으로 설명한다. 이는 그가 주역의 변화원리인 기미(幾微)를 모본(模本)하여 자신의 이론(분석심리학)을 완성하게 된 원리의 핵심이 된다.
담원은 이를 주역의 상징적 괘의(卦意)와 괘색(卦色)을 맵핑하여, 인연과 조건에 따라 변화하고, 상호 의존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본질(내면, 마음, 심리)의 좌표로 삼았다.
예를 들어, 리(離)괘의 마젠타색은 불과 밝음, 지혜를 상징하지만, 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주변 상황에 따라 다른 괘로 변화할 수 있다(변괘變卦).
이와같은 주역의 색상괘(色象卦)는 인연과 조건에 의해 상호작용하며 변화하는데, 이는 불교의 연기와 맥락이 닿아 있다. 즉, "흰색 건(乾)"은 강력한 창조적 에너지를 상징하며, "검정색 곤(坤)"은 수용성과 인내를 나타낸다. 이 두 괘가 만나 "천지비괘(天地否)"가 되고, 여기서 변화된 상황(변효)에 따라 다른 괘로 전이(변괘)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인연과 조건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며, 고정된 실체가 없음과 맥락이 같다.
비유하면, 불교의 의식이 순간적으로 나타났다 사라지는 현상은, 주역에서 색상과 괘가 상황에 맞게 맵핑되고, 그에 따른 의미와 해석이 변화하는 원리와 일맥상통한다. 물 위의 파도가 바람에 의해 일어났다가 사라지듯, 주역의 색상괘도 상황에 맞게 나타나고 사라지며, 그 과정에서 특정한 색상과 의미가 변화하는 것이다.
본래 흰색과 검정색 조합의 색상괘인 "천지비괘(天地否)"의 2효가 변하면, 본래 흰색은 변화가 없지만 검정색은 마젠타색으로 변하게 되어, 흰색과 마젠타색 조합의 "천화동인(天火同人)"의 색상괘로 변하게 된다.
이로써 본래 "천지비괘(天地否)"의 꽉막히고 닫힌 상태의 환경(심리, 현상)이 "천화동인(天火同人)"의 함께 더불어 화합, 협력, 조화, 통합, 공동체를 형성하는 환경(심리, 현상)으로 변화하게 됨을 선지(先知)할 수 있는 원리와 일맥함을 알 수 있다.
無無明(무무명): "무명(無明)"은 불교에서 어리석음, 즉 진리를 보지 못하는 무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무무명"은 무명 자체도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명이라는 상태조차 고정된 것이 아니라, 조건과 인연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며, 본질적으로는 공(空)하다. 마치 안개가 끼었을 때 주변이 보이지 않지만, 안개가 걷히면 그 모습이 드러나는 것처럼, 무명 또한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조건에 의존하는 것이다.
乃至無老死(내지무노사): 심지어 늙음과 죽음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는 생로병사의 과정도 실체가 없는 현상임을 나타낸다. 인간이 나이를 먹고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은 고정된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또한 연기(緣起)에 의해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다. 이를 비유하자면, 해가 뜨고 지는 것과 계절이 바뀌는 현상 역시 하루의 고정된 실체와 고정된 계절이 아닌,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라는 조건에 의해 나타나는 현상일 뿐인 것과 같다.
亦無老死盡(역무노사진): 늙음과 죽음의 다함도 없다는 것은 생과 사의 순환이 끝나는 상태도 실체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음이라는 과정이 끝난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는 것이 아니며, 이것 또한 조건과 인연에 의해 일어나는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종합적 설명:
이 구절은 감각, 의식, 무명(어리석음), 생로병사라는 인간 경험의 모든 것이 본질적으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을 설파하고 있다. 모든 현상은 인연과 조건에 의해 잠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연기(緣起)의 산물일 뿐이며, 그 자체로는 고정된 본질이나 실체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공(空) 개념이다.
마치 물질적 세계에서 "무언가가 비면 다른 것이 채워지듯이", 감각, 의식, 삶과 죽음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서로 인연에 의존하여 끊임없이 변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현상이 집착할 만한 실체가 없음을 깨닫고, 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강조하는 가르침이다.
[부기附記]
공(空)의 사유思惟
"공(空)"의 개념을 "비었다"는 표현으로 이해할 때,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빈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더 깊은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비었다는 것은 고정된 실체나 본질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리적으로는 무언가가 빠져나갔을 때 다른 것이 그 자리를 채우듯이, "공(空)"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무엇이 비었는가?
공의 개념에서 비었다는 것은 고정된 자아나 독립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이는 모든 사물과 현상이 조건과 인연에 의존해 존재하며, 그 자체로는 고정된 본질이 없음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컵의 물이 비었다고 할 때, 우리가 말하는 것은 단순히 물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다른 무엇(공기)이 채워졌다는 사실이다. 물이 비었지만, 그 자리에 공기가 들어가 텅 빈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의 빈자리가 공기로 채워지듯, 물질적 현상이 사라지거나 변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상태로 전이되거나 새로운 조건과 인연에 의해 다른 형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비었다는 것은 무엇인가가 다시 채워졌다는 것
물리적으로 "비었다"는 개념은 "무언가가 사라져 그 자리를 다른 것이 대신 채운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컵의 물이 비면 그 자리는 공기로 채워지고, 컵 자체가 완전히 텅 빈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불교의 공(空) 개념에서 "비었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비어 있는 상태를 넘어선다. 여기서의 "비었다"는 것은 사물이나 존재가 독립적 실체로 존재하지 않으며, 조건에 의해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의미이다.
비유하자면, 물(색色)이 비면 공기(공空)가 채워지는 것처럼, 우리가 집착하는 고정된 자아나 실체도 본질적으로는 공(空)하다는 것이다. 즉,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사물도 결국 인연과 조건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 뿐, 그 자체로는 독립적인 실체가 없는 것이다. 컵 안의 물이 비었을 때 공기가 그 자리를 채우듯, 우리가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모든 사물도 본질적으로는 실체가 없고 조건에 따라 그 형태와 기능이 변할 뿐이다.
결국
"비었다"는 물리적인 개념으로는 단순히 무언가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른 것이 채워지는 상태를 가리키지만, 불교의 공(空) 개념에서 "비었다"는 것은 모든 사물과 현상이 고정된 실체 없이, 서로의 인연과 조건에 의존해 변화한다는 더 깊은 의미를 가진다. 사물이나 존재는 일시적으로 나타나고 사라지며, 그 자체로는 본질적인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공(空)의 핵심이라고 하겠다.
동양학박사 담원(영묵) 김성수 _()_
원문을 링크합니다.
https://blog.naver.com/sencelife/223591020389
[붙임]
본 게시글은 20여년전 법륜회 상임법사를 하면서 강론하였던 원고를 첨삭하여 게시합니다.
연재가 끝나면 그간의 사유와 단상을 덧붙여 전자출판을 통해 무료로 배부할 계획입니다.
1차적으로 가장 많이 독송하는 반야심경을 연재하고, 이어서 금강경, 천수경 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많은 성원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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